본문 바로가기
728x90
반응형
SMALL

새벽묵상DewSermon/요한복음56

보혜사, 진리의 영이라(요14:15-31) 지금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행하신 제자 강론을 가슴 속에 새기고 있는 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성찬식을 거행하셨고, 또한 제자들의 발을 친히 씻겨 주셨습니다. 그것을 일컬어 예수님의 세족식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물론 당신 자신을 팔 가롯 유다까지도 사랑으로 품으셨죠. 하지만 그는 끝내 자기 탐욕의 노예가 되어 그 날 밤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러 떠났습니다. 가롯 유다가 떠난 뒤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가르침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이른바 제자 강론이죠. 그 때 무슨 말씀을 차근차근 강론하셨습니까? 무엇보다도 내가 이제 아버지 품으로 떠나간다는 것이었죠. 그러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 2024. 6. 24.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요14:1-14) 예수님께서는 마가의 다락방에 제자들과 식사를 하시면서 그들의 발을 친히 씻겨 주셨습니다. 이어 가롯 유다는 제 길을 가기 위해 밤중에 밖을 향해 나갔죠. 그때 주님께서는 그 다락방에 모여 있는 제자들을 위해 친히 강론을 펼치셨습니다. 이른바 내가 이제 아버지께로 간다는 것, 그러니 내가 너희들을 사랑한 것처럼 너희들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죠. 그때 베드로는 주님께서 가시는 곳에 저희 가겠습니다, 하고 이야기했지만 주님은 오히려 네가 나를 닭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죠. 그만큼 베드로에게는 아직 주님의 그 사랑이 자리하지 않고 있어서 결코 주님의 길을 좇을 수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오늘 읽은 요한복음 14장 말씀 역시 예수님의 제자강론입니다. 아직 마가의 다락방에 있는 그 장소에서 제자.. 2024. 6. 24.
서로 사랑하라(요13:22-38) 요한복음 13장은 유월절 전날 밤의 일이었습니다. 다른 공관복음서에는 그 날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하신 것으로 기록돼 있죠. 하지만 요한복음에는 최후의 만찬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단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것만 기록돼 있습니다. 어쩌면 최후의 만찬을 우상시하는 당대의 풍토를 제외시키기 위한 사도 요한의 의도였을 수 있죠. 그러나 우리는 그날 밤에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나누시고, 이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것으로 그 흐름을 종합할 수 있죠. 더 중요한 것은 요한복음 13장에서 그렇게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주님께서 16장에 이르기까지 제자 강화의 시간, 곧 제자들에게 당신의 가르침을 강론하시는 시간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17장에 이르러 하나님을 향해 주님께서 간구하.. 2024. 6. 24.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21) 오늘 본문 1절이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여기에서 유월절이란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세 번째 유월절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구약의 유월절 어린양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죠. 이른바 온 인류의 대속을 위한 죽음을 맞이하신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요한복음 1장 29절에서 세례 요한이 세례 받으러 오신 예수님을 향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하신 그 말씀을 성취하신 일이기도 했습니다.예수님께서는 이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그 뒤에 하늘 아버지께로 올라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다고 증언합니까? 본문 1절 하반절에 “세상에 .. 2024. 6. 17.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요12:37-50) 예수님은 한 알의 밀알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른바 당신 자신의 생명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내어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렇지만 수많은 유대인들은 종려주일에 어린 나귀를 타고 가시는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 찬송합니다. 우리 왕이시여’하고 열광했죠. 그저 눈에 보이는 로마의 압제로부터 나라의 독립을 이룰 분이 예수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해방은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것이죠. 그를 위해 당신의 생명을 유월절 어린양으로 친히 내어놓고자 하신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한 알의 밀알로 말씀하신 바요, 친히 이 땅에서 “들려야” 한다고 32절에서 말씀하신 바였습니다. 그래야만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올 수 있고,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그래서 예.. 2024. 6. 17.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요12:12-36) 세상 사람들은 난세일수록 영웅을 찾습니다. 어려운 시국일수록 새로운 왕과 통치자를 찾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에는 다윗과 같은 위대한 영웅을 그리워하죠. 로마의 압제를 받고 있다면 더더욱 민족의 해방을 가져올 메시아를 고대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그 모든 무리들이 ‘호산나’하고 열광한 것 아니겠습니까? 본문 12절입니다.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여기에서 ‘그 이튿날’이란 어제 읽은 말씀처럼 유월절 엿새 전날이고, 토요일 다음의 이튿날인 주일날을 가리키는 때입니다. 그때 .. 2024. 6. 13.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요12:1-11) 오늘 본문 1절이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여기에서 ‘유월절 엿새 전에“하는 말씀은 마지막 유월절 엿새 전을 가리키는 때입니다. 이른바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어린 양으로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 않습니까? 공생애 3년 동안 세 번의 유월절을 맞이하셨는데, 그 마지막 유월절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유월절이었습니다. 바로 그 유월절을 내다보는 엿새 전이었다면, 토요일이 되는 셈입니다. 더욱이 내일 살펴 볼 요한복음 12장 12절은 “그 이튿날에” 하면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던 이튿날인데, 그때 수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예수님을 열광하던 때였습니다. 이른바 종려주일.. 2024. 6. 13.
공회를 모으고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요11:45-57) 예수님께서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 돌무덤 속에 시체 가운데 누워 있던 나사로,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그 나사로를 살려내 주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단지 그 한 마디 말씀으로 죽었던 그의 생명이 살아났습니다. 주님께서 그와 같은 표적을 보여주신 이유가 있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으로서 성부 하나님과 동일하게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만 천하에 알려주기 위함이셨습니다. 주님의 그 표적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7번째 표적이었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든 표적(요2:1-12), 왕의 신하의 아들을 직접 가지 않고 말씀으로만 고쳐주신 표적(요4:46-54),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를 고친 표적(요5:1-9),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인 표적(요6:1-14).. 2024. 6. 13.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