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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기드론 골짜기 곧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셨죠. 그곳을 찾은 이유는 성찬 제정을 마치고, 이제 당신의 십자가 죽음을 놓고 기도하기 위함이셨죠. 첫 기도의 내용은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지만, 점차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한다고 기도하셨는데, 세 번씩이나 그렇게 기도를 드렸었죠. 그 기도를 끝마쳤을 때, 가롯 유다가 데리고 온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무리들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주님을 체포했는데, 그때 말고의 귀를 친 베드로더러 “내가 지금 하나님께 열 두 군단 되는 천군 천사를 불러서 이 상황을 제압할 수 없는 줄 아느냐”, 그러나 그렇게 하면 어찌 하나님의 뜻, 성경 말씀을 이루어드릴 수 있겠느냐 하시면서, 그 ..
예수님께서 제정해 주신 성만찬, 그 예식을 통해 우리가 생각하게 된 것이 있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빵을 떼어 주시면서 “받아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하셨고, 포도주 잔을 주시면서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하셨습니다. 그 성만찬 제정을 통해 화체설로, 영적임재설로, 상징설로 그리고 기념설로 받아들이는 논쟁들이 있다고 했죠. 우리 성결교회는 기념설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정작 주님의 성만찬 예식에 참여하는 우리 자신들은 그 빵과 잔을 주님의 살과 피로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적으로 유익하다고 했죠 그런데 그 성만찬 예식을 통해 우리가 그런 논쟁을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하는 게 있다고 했죠. 가롯 유다가 왜 주님을 팔게 되었는지, 그에 비해 다른 제자들도 주님을 배반하고..
예수님의 죽으심과 장례를 앞두고 여러 사람들이 있었음을 어제 살펴봤죠. 예수님께서 네 차례에 걸쳐 죽으실 것과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음에도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은 제자들이 있었고, 예수님을 눈엣가시처럼 여긴 채 죽이고자 음모를 꾸렸던 안나스와 그의 사위 가아뱌 같은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있었고, 예수님을 위해 매우 값비싼 향유 옥합을 깨트려 머리와 발에 부어드렸던 마리아도 있었고, 그 분의 죽으심을 앞두고 자기 탐욕에 사로잡혀 노예의 몸값을 쳐주고 은 30냥에 팔았던 가롯 유다도 있었죠. 주님의 죽으심을 내다보면서 우리는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아니, 우리 자신의 죽음을 내다보며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 인생의 앞날에 내 모든 것들이 단순한 장례용품일지, 아니면 하늘 영원..
하루하루 산다는 것이 실은 하루하루 깎아 먹고 사는 삶이죠. 건강을 깎아 먹으면서 돈을 벌고 있고, 시간을 깎아 먹으면서 늙어가고 있고, 생명을 깎아 먹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깎아 먹는 게 실은 채우는 삶입니다. 이 땅에 유한한 생명을 깎아가는 게 실은 하늘 영생을 채우는 삶이요, 이 땅의 재물을 깎아 하나님께 드리는 것도 하늘 보화를 저축하는 삶입니다. 피곤한 새벽단잠을 깎아 새벽기도를 드리는 것도 하루의 삶을 주님의 은혜로 채우는 비결이죠. 나의 죽음 앞에 내 모든 것들이, 내 인생이, 나의 영혼을 깎아 먹는 장례용품인지, 아니면 영원한 생명용품으로 채우는 것일지, 우리는 늘 분별하며 선택하며 살아야 하겠죠. 마태복음에는 다섯 번에 걸친 예수님의 설교가 나타나 있습니다. 마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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