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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에 등장한 김혜자가 일수꾼으로 나타났죠. 상갓집까지 찾아가 고인이 빌린 돈을 받아낼 정도였으니 너무나도 강렬했어요. 오죽했으면 고인의 딸도 김혜자에게 지옥에나 가라고 빌고 또 빈다고 했을까요? 그런데도 김혜자가 천국에 갔으니 자신도 놀랐죠. 그 이유가 딱 하나 있었죠. 밥도 못 먹고 아버지에게 얻어맞고 점심 도시락조차 못 싸가는 어린 이정은을 엄마처럼 돌봐준 것 말에요. 그 드라마 때문일까요?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최근에 홍도에서 사는 분과 목포에서 사는 분들을 초대해서 따뜻한 밥을 섬겼어요. 다들 어렵게 살아가는데 밥이라도 먹고 힘내라면서요. 또 다른 분도 있어요. 그분은 배드민턴 동호회 사람들에게 종종 삶은 달걀과 바나나를 섬기고 있어요. 저녁밥을 굶고 오는 이들에게..
봄이 오면 화분 갈이를 하죠. 엊그제 비가 오는 날도 꼭 그런 날이었어요. 물론 내가 추진한 건 아니었고 나이 많은 어른 한 분이 주도한 일이었어요. 그날 이른 아침 밖에서 일을 보고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길가에 봉고차 한 대가 서 있는 거였어요. 더욱이 어른 한 분이 비를 맞으면서 예배당 바깥의 흙과 쓰레기도 담고 있었고요. 그 순간 당황한 나로서는 왜 그렇게 하는지 물어봤죠. 그랬더니 지나가는 길에 너무 지저분하게 보여서 꼭 치워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에요. 그로부터 1시간 반가량 그 어른과 함께 주변에 나뒹구는 벽돌과 쓰레기를 몽땅 담았어요. 그 일을 하는 동안 그 어른은 이러쿵저러쿵 그 어떤 질책이나 훈계도 없었죠. 그 후 그 어른의 동생이 세로 내놓은 집의 배란다 하수구 구멍을 뚫었..
모든 사람은 한 번 왔다 가요. 하지만 저마다 한 편의 드라마를 쓰고 가죠.〈유 퀴즈〉의 작가 이언주가 한 말이에요. 그 방송이 어느덧 289회를 맞이했다고 해요. 삼복더위가 기승이던 2018년 8월의 어느 날 시작했는데 그 출발점은 그거였다고 하죠. 퀴즈를 핑계 삼아 사람을 여행하며 누군가의 일상에 뜻밖에 재미를 더해보자는 취지 말에요. 지금도 그 방송에 출연한 사람들은 저마다 잔잔한 감동과 유쾌함을 주고 있죠. 인생은 분명 일회용이에요. 다만 그런 인생을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죠. 누군가는 거창한 성공이나 영웅담을 좇아 살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주어진 일상에서 작은 의미와 행복을 발견하며 살고요. 한 번뿐인 인생을 자기 선택권 속에서 성실하게 살다 보면 누군가에게..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은 저마다 다 다르겠죠. 누군가는 젊은 날에 활짝 꽃을 피울 수도 있고 누군가는 나이가 들어 유명세를 날리기도 하겠죠. 또 누군가는 죽어서 별처럼 빛나는 사람도 있겠고요. 세상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진리와 가치를 지니고 꾸준하게 살아가다 보면 의도치 않게 그런 때가 찾아오는 법이니까요. 축구선수 김민재와 닮았다며 유명세를 날리는 정동식 심판도 그렇죠. 그는 20대 때 노숙자 쉼터 상담원, 신문 배달, 우유 배달, 초중고 축구심판, 일용직 등 하루 7가지 일을 했다고 해요. 5년 만에 1억을 모았을 땐 너무나 뿌듯했고요. 하지만 상가분양사기로 몽땅 그 돈을 잃고서는 죽고 싶었다고 하죠. 하지만 7년을 견뎌냈고 가정을 꾸린 지금은 환경공무관과 퀵서비스 일을 하고 축구심판은 프리랜서..
열흘간 계속된 산불이 잡혀서 정말로 다행이에요.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집을 잃은 건 너무 안타깝지만요. 앞으로는 산불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두가 조심해야 하겠죠. 더욱이 산림청의 정책도 바꿔야 할 것 같아요. 산림청에서 ‘숲가꾸기’ 명목으로 키 작은 활엽수를 베어내고 소나무 숲을 만든 게 이번에 산불이 번진 주된 이유였다고 하니까요. 사실 침엽수에 속한 소나무는 송진이라는 기름 성분을 만든다고 해요. 불도 활엽수보다 두 배나 더 지속되고 나무 꼭대기까지 불이 붙는 특성도 있고요. 산림청에서 그런 소나무 숲을 조성하려다가 이렇게 큰 산불 피해를 키우지 않았나 싶어요. 뭐든지 인간의 간섭은 줄이는 게 최선이겠죠. 자연 스스로 활엽수가 늘어나도록 놔두고 돌보는 것도 묘책이겠고요. 그러고 보니 언젠가 이때..
올해 그녀는 쉰여덟이에요. 초등학교 5학년까지만 해도 그녀는 목포에서 제일 잘 나가는 부잣집 딸이었다고 해요. 아버지는 매일신문사와 지금의 삼양사인 당시의 삼화사를 운영하고 있었고요. 중등포 저수지 둘레 땅도 모두 그분 것이었고요. 집도 목포에서 제일 좋은 2층 한옥에 살았고요. 그 당시 유치원과 초등학교도 자동차를 타고 다녔고 성악가 꿈을 키우고자 조선대학교 음대 교수로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지도를 받았다고 하죠. 그런데 그토록 건강하던 그녀의 아버지는 갑자기 위가 좋지 않아 목포와 서울의 병원을 찾아다녔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해요. 급기야 일본에 가서 치료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요. 그러니 그녀의 어머니는 한순간 날벼락 맞은 셈이었겠죠. 매일신문사는 공중분해 되었고 삼화사도 곧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