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site-verification=bWsZs7W0_gSPuMoDXujZISVmSBQHlpw3IxoqFPAwWOg 그런 어른이야말로 유쾌하고 멋진 자취다 google-site-verification=bWsZs7W0_gSPuMoDXujZISVmSBQHlpw3IxoqFPAwWOg
 

그런 어른이야말로 유쾌하고 멋진 자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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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화분 갈이를 하죠. 엊그제 비가 오는 날도 꼭 그런 날이었어요. 물론 내가 추진한 건 아니었고 나이 많은 어른 한 분이 주도한 일이었어요. 그날 이른 아침 밖에서 일을 보고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길가에 봉고차 한 대가 서 있는 거였어요. 더욱이 어른 한 분이 비를 맞으면서 예배당 바깥의 흙과 쓰레기도 담고 있었고요. 그 순간 당황한 나로서는 왜 그렇게 하는지 물어봤죠. 그랬더니 지나가는 길에 너무 지저분하게 보여서 꼭 치워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에요. 

    

그로부터 1시간 반가량 그 어른과 함께 주변에 나뒹구는 벽돌과 쓰레기를 몽땅 담았어요. 그 일을 하는 동안 그 어른은 이러쿵저러쿵 그 어떤 질책이나 훈계도 없었죠. 그 후 그 어른의 동생이 세로 내놓은 집의 배란다 하수구 구멍을 뚫었고, 곧장 무안 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꽃집에 들러 ‘테이블야자’ 일곱 그루를 샀어요. 테이블야자는 여름철이나 겨울철에도 한결같이 푸르른 자태를 보여준다고 해요. 그 멋진 꽃나무로 분갈이를 해서 계단에 놓았을 땐 산뜻한 봄을 맞이하는 것 같아 좋았죠. 더욱이 어른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자취를 남겨야 하는지 깨닫게 돼서 더욱 좋았고요.     

 

“나는 이제 할머니이지 엄마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비겁하지 않다. 나는 자유를 얻은 것이다. 내 자식들은 성인이 되었고 엄마의 역할은 미미하다. 나는 중년의 내 자식이 자신의 업계에서 유능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유능한 사람과 유명인은 다르다. 유능한 사람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차질 없이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40 중반을 넘고 50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 유능하지 않으면 평균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며 살아가기도 힘든 것이 세상이기 때문이다.”(113쪽)  

   

이옥선의 〈즐거운 어른〉에 나오는 이야기에요. 인생에서 보통의 수준을 유지하면서 선량하게 사는 게 제일 좋다는 뜻이겠죠. 살다 보면 사람이 실수도 하고 길에 넘어지기도 하는데 아무도 모르면 툴툴 일어서면 되지만 유명인이라면 순식간에 사람들이 달려들 테니 얼마나 쪽팔리겠냐는 거예요.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부족함이 없고 튀지도 않는다면 그게 최상이고 그게 어른다움의 모습이라는 것이죠.     

 

이 책은 1부 ‘인생살이, 어디 그럴 리가?’와 2부 ‘나에게 관심 가지는 사람은 나밖에 없음에 안도하며’로 구성돼 있어요. 76세의 할머니가 쓴 책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튀는 관점도 많죠. 우리나라 출산율이 제일 낮지만 지구 부담을 줄여주는 차원에서 보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라는 것. 조상 덕 많이 본 사람은 명절날 비행기 타고 여행 가지만 조상 덕 덜 본 사람은 제사 지낸다는 것. 남자 잘못 만나 인생 망한 여자는 있어도 안 만나서 망한 여자는 없다는 것. 자식이 무턱대고 집에 찾아오면 엄마가 좋아할 것 같지만 때로는 불청객일 수도 있다는 것. 그런 이야기를 읽으면 배꼽 잡고 웃게 되지만 어떤 상황이든 건강하게 소화해내는 어른의 내공을 느낄 수 있어서 좋죠.     

 

나이가 들면 ‘어른’이라는 무게감이 그 어깨를 짓누를 때가 많죠. 자식들에겐 존경받고 사회적으론 성공을 거둬야 한다면서 말예요. 하지만 이옥선 작가는 그런 어른으로 사는 건 원치 않죠. 하루하루 자유분방하게 살고 얼굴에 웃음을 띠며 세상을 유연하게 바라보며 사는 게 최상임을 일깨우죠. 그녀가 매일 목욕탕에 들어가 수다를 떨고, 일주일에 세 번 요가 수업 듣고, 저녁 시간대에 책 소개를 듣거나 인터넷 서점에 들러 신간을 탐색하는 것도 그런 연유죠. 그런 어른으로 사는 게 더욱 유쾌하고 더욱 멋진 자취로 남지 않을테니까요.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마28:6)     

 

우리말 ‘눕다’(lie)는 헬라어 ‘케이마이’(κεῖμαι)는 ‘놓다’(set)는 뜻을 지닌 단어에요.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여 있다’(마3:10)고 할 때, 아이가 강보에 쌓여 구유에 ‘뉘어 있다’(눅2:12) 할 때 쓰인 단어죠. 구약성경 히브리어로는 ‘쉼’(שִׂים)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고 그곳에 사람을 둘 때(창2:8) 사용된 단어죠.

 

다만 ‘케이마이’는 단순한 걸 놓는다는 게 아니에요. 뭔가 의도를 가지고 눈에 띄도록 전시하는 걸 말하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고하듯 말이죠. 나무뿌리에 ‘놓인’ 도끼(마3:10)는 벌목꾼이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우연히 떨어뜨린 게 아니라 나무를 베려고 세워 둔 거죠. 언덕에 ‘놓인’ 성읍(마5:14)도 시골 모습을 보여준 게 아니라 왕이 영토를 확보하고자 군대를 파견한 요새고요. 예수님께서 시체로 누운 ‘그 자리’도 단순한 무덤의 자리가 아닌 셈이죠.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님께서 ‘살아난 그 자리’는 주님의 자녀들 모두가 극적인 부활을 이룬다는 걸 표징(눅2:34)으로 전시한 거죠. 모든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롬8:19)처럼 말에요. 

 

어른이 되는 것도, 어른의 자취를 남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에요. 자녀들이나 나이 어린 사람들 앞에서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고 지적한다면 다들 싫어하겠죠. 그저 말은 적게 하고 삶으로 보여주는 게 참된 어른의 모습이겠죠. 물론 어른의 좌표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할거고요. 이옥선 어르신처럼 하루하루 자유롭게 살고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고 세상을 유연하게 해석하면서 사는 게 최상이겠죠. 그런 어른의 삶이야말로 더 유쾌하고 더 멋진 자취로 남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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