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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고린도전서49

2024년 11월 12일 3분새벽묵상_내가 자랑할 것은 오직 그것(고전2: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5)  죽음은 비수처럼 찾아옵니다. 예고 없는 죽음 앞에 우리의 지성도 소유도 가문도 그 어떤 것도 자랑할 게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가진 게 많으면 많을수록 죽음은 더 허무할 뿐이죠. 그날 죽음을 뛰어넘게 해 주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주님만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 내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어떤 경우에도 자기 세력이나 자기 의를 드러내려고 하지 말고 주 예수님만 자랑하라고 권면한 것입니다.오늘 하루도 내 능력이나 지혜보다 오직 주님만 드높이는 하루의 삶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교보문고.. 2024. 11. 11.
하나님의 지혜(고전2:6-16) 병원에 가서 전도를 하거나 붕어빵 전도를 할 때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심령이 가난해지지 않고서는 절대로 하나님 아버지를 찾지 않는다는 것이죠. 바꿔 말해 성령님께서 그들의 심령을 불쌍히 여겨주셔야 그들이 주님을 모시려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절박한 심령의 상태가 되야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말입니다.그런 의미에서 전도를 한다는 것은 실은 그만큼의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도는 영적인 싸움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죠. 한 영혼이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하는데, 그 한 영혼이 주님 앞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과 기도가 필요한지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그것은 곧 자기 지식이나 자기 지혜의 말을 하는 게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심령에 역사가 일어나고, 그 심.. 2024. 11. 10.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1-5) 죽음은 비수처럼 찾아옵니다. 예고 없는 죽음 앞에 우리의 지성도, 소유도, 가문도, 그 어떤 것도 자랑할 게 없죠. 그날 그 죽음을 막아 낼 줄 방패는 우리에게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가진 게 많으면 많을수록 죽음은 더 허무할 뿐이죠. 그날 죽음을 뛰어넘게 해 주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주님만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 내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2장 마지막 절을 통해 너희들이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하면서 세력을 과시하면서 자기 의를 드러내려고 하지 말고, 진정으로 자랑하고 싶으면,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주님만 바라본다면, 주님을 자랑하려고 한다면, 결코 자기 자신들을 자랑할 수가 없기 .. 2024. 11. 10.
십자가의 도(고전1:18-31)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나는 바울파다, 아볼로파다, 게바파다, 그리스도파’다 하면서 말의 지혜에만 앞섰을 뿐, 복음을 삶으로 살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라고 했죠. 오늘 저와 여러분들을 주님의 도구로 부르신 이유는 복음을 삶으로 사는 증인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십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십자가의 도’에 대한 중요성을 언급하는 말씀입니다. 18절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여기에서 ‘십자가의 도’는 헬라어로 ‘로고스’입니다. 십자가의 ‘말씀’을 뜻하는 것이죠. 바울이 17절에서 ‘복음’이라 했는데, 그것을 18절에서 ‘십자가의 말씀’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위해서 보이셨던 그 놀라운 복음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 2024. 11. 10.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고전1:10-17)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아울러 ‘우리의 아버지’이시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언제나 미쁘신 분, 곧 신실하신 아버지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어떤 절망적인 상황속에 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으로 이 세상에서 담대하게 소망을 갖고 살아가는 이유가 있죠. 바로 하나님의 신실하심 말입니다.  본문 10절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헬라어 원문에 ‘데’(δέ) 곧 ‘이제’라는 부사가 빠져 있습니다. ‘이제 내가 본론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지금까지는 인사말이었고, 이제 본론에 들어가는 것이죠. 그리고 내가 권한다는 헬라어 원어는 ‘파라칼레오’(παρακαλ.. 2024. 11. 10.
2024년 11월 8일 3분새벽묵상_실망감이 들어도 기다리는 이유(고전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1:9)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쓴 것은 여러 문제를 책망하고자 함이었습니다.그런데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잘못하고 있는데도 하나님께서 세워 줄 것을 믿으며 감사했습니다.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미쁘신 분이기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미쁘시다는 말은 ‘신실하다’는 뜻입니다. 바울을 세워주신 하나님이 신실하신 분이기에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세워주실 것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내 주변에 믿음이 연약한 자가 넘어질지라도 묵묵히 기다리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교보문고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2024. 11. 6.
2024년 11월 7일 3분새벽묵상_점 하나에 불과한 집이지만(고전1:1-3)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전1:1-3)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단순히 ‘교회’라고 부른 게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라고 불렀습니다. 거대한 상업도시에서 이 편지를 받는 ‘유스도의 집’은 점 하나에 불과한 작은 집이었습니다. 고린도의 성벽 안쪽의 도시 둘레만 해도 10km에 달할 정도였죠. 그 거대한 도시 속에 그들이 앉아 있는 그 집의 공간은 눈에 띄지도 않는 곳입니다. 그런데도 .. 2024. 11. 6.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1:4-9) 어제 읽은 3절 말씀이 이렇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고린도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인사말에 해당하는 말씀이죠. 그런데 바울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아버지’라고 칭한 표현은 구약에 나와 있습니다. 시편 68편 5절에,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또 이사야 9장 6절에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 왠지 친근감이 있고 더 다정다감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 2024.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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