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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고린도전서

하나님의 지혜(고전2:6-16)

by 똑똑이채널 2024.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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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가서 전도를 하거나 붕어빵 전도를 할 때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심령이 가난해지지 않고서는 절대로 하나님 아버지를 찾지 않는다는 것이죠. 바꿔 말해 성령님께서 그들의 심령을 불쌍히 여겨주셔야 그들이 주님을 모시려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절박한 심령의 상태가 되야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도를 한다는 것은 실은 그만큼의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도는 영적인 싸움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죠. 한 영혼이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하는데, 그 한 영혼이 주님 앞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과 기도가 필요한지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곧 자기 지식이나 자기 지혜의 말을 하는 게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심령에 역사가 일어나고, 그 심령에 변화가 일어나는 길은 오직 십자가 복음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제 읽은 1절 말씀에서도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 곧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일 게 아니라고, 또 4절에서는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전도하기 위해서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일 필요도 없고, 그를 논리적으로 설득시키기 위해 자기 지혜를 갖다 붙일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전도의 미련한 방법을 통해 그 심령에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그 사람이 쉽게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심령이 무너져 내릴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눈을 뜨면 볼 수 있어요 | 권성권 | 유페이퍼- 교보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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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이 그 사실을 언제 깨달았을까요?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오기 전에 아덴 곧 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한 일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7장 16절 그 모습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아테네라는 곳이 어떤 도시였습니까? 아테네는 그리스도의 수도입니다. 또한 아테네는 철학의 도시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모두 아테네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전통이 있는 아테네에는 철학자들과 같은 지성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때 사도 바울은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또 많은 철학자들이 모여드는 시장의 장터(ἀγορά) 곧 ‘아고라 광장’에서도 복음을 전하고 토론했습니다. 그 중에는 에피쿠로스 철학자들과 스토아 철학자들이 있었는데, 바울이 그들과 논쟁을 했다고 사도행전17장 18절에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에피쿠로스 철학자들은 인간의 삶은 도피와 쾌락이 전부라고 가르친 자들이었고, 스토아 철학자들은 인간의 숙명과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고 가르친 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의 눈에는 에피쿠로스 학파는 철학의 사유를 통해 영혼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로 비쳤고, 스토아 학파는 무슨 고행이나 도를 닦아 영생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이들로 보였죠. 그런 그들의 철학과 도를 들은 바울은 그들과 논쟁을 벌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 영원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강론했던 것이죠. 그때 에피쿠로스 철학자들과 스토아 철학자들은 바울을 데리고 아고라에서 남쪽으로 200m 떨어진 ‘아레오바고’에 가서 그가 논쟁하던 주님의 교리를 더 차분하게 설명하도록 기회를 주기도 했죠. 그때 바울은 하나님은 천지만물의 창조주이시기에 당신들처럼 인간이 지은 신전 안에 갇혀 계신 분이 결코 아니고, 무엇이 부족한 신처럼 사람의 손으로 대접받고 싶어하는 분도 아니고, 오히려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는 분이시고, 그렇기에 너희 신들의 조형물처럼 금이나 은이나 돌로 빚어서 섬길 분이 아니라고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그대로 내버려 두셨지만 이제는 각처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길 명하셨고, 그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 가운데서 부활케 하신 그 증거도 주셨다”고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들은 바울을 조롱하기도 하고, 다른 이들은 바울의 말을 다시 듣겠다고 한 이들이 있었죠.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고 사도행전 17장 24절에서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한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요? 바울이 논쟁을 벌이면서 복음을 전할 때 얻은 결실은 ‘몇 사람’(행17:34) 곧 얼마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아테네에 오기 전에 베뢰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는 그 수가 많았습니다. 사도행전 17장 12절에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왜 그런 차이가 발생했을까요? 많이 배운 지성인들에게 지성적인 접근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지 않았겠습니까? 전도의 미련한 방법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면 족할텐데, 굳이 철학자들에게 뭔가 논리와 이성적인 접근 방식을 택하면서까지 그들과 논쟁을 벌이고자 했던 까닭 말입니다.

 

귀먹은 하나님 응답하소서 | 권성권 | e퍼플- 교보ebook

"성경으로 문화 읽기를 접목한 세 번째 책이다. 첫 책은 출애굽기로부터 시작해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까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두 번째 책은 여호수아로부터 시작해 사사기, 룻기, 사무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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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사실을 깨달았기에 그 다음 전도지인 고린도에 들어가서는 어떻게 해야겠다고 다짐했겠습니까? 이제는 ‘인간의 지식이나 인간의 말로 복음을 전하지 않아야 되겠다’, ‘정말로 미련한 방법일지라도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복음을 전해야 되겠다’, 하고 다짐하지 않았겠습니까? 주님의 복음은 인간의 지식이나 말 자랑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성령의 역사하심 속에 있다는 것을 이전의 아테네에서, 또 그 전의 베뢰아에서 절감했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서 본문 6-7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세상 지혜, 곧 이 세상 철학과 논리로는 하나님의 복음이 온전히 전해질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오직 감추어진 지혜, 곧 십자가의 도 밖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길이 없다는 것이죠.

왜 그렇겠습니까? 본문 10-1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영 외에 알 길이 없다는 것이죠. 오래전 주일날 김하중 장로님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만 그 분은 크고 작은 그 모든 일에 기도의 중심을 갖고 살아가는 분이셨습니다. 심지어 김대중 대통령 의전비서관으로 있을 때에도 뭔가를 보고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를 했고, 그 모든 순서를 놓고 기도하면서 대통령께 보고를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몇 번씩 기도하지 않고 김대중 대통령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는 대통령께 양해를 구하고 다시 자기 방으로 돌아와 하나님께 기도를 한 다음에, 그 다음에 대통령에게 보고를 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정도로 그는 하나님 중심, 기도 중심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중국대사로 6년 6개월간 장수할 수 있었고, 사스문제도 또 마약밀매로 사형에 처한 두 명을 8년만에 소환시키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죠. 그야말로 하나님의 영과 소통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의 기도의 삶 때문이죠.

그것을 일컬어 본문 13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예전 중국대사관에 근무하던 부하직원들이 사스문제 때문에 다들 교민들을 철수해야 한다는데도 그 분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육의 눈이 아닌 영적인 눈으로 분별했기 때문이죠. 성령님께서 그 분의 영을 통해 말씀해 주셨기 때문에 말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그런 하나님의 지혜 곧 하나님의 영적인 눈을 갖고. 영적인 것들을 분별하며 사는 은혜 안에 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이 미련하다고 생각하는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우리에게 힘이요 능력임을 믿습니다. 그런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갖고 세상을 분별하며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교보문고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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