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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마태복음58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마15:1-20) 누군가 선한 의도로 어떤 말을 하면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편에 서서 그 의도를 꺾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죠. 예수님께서 천국의 비유를 선포하셨을 때에도 진정으로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귀를 닫아버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주님께서 그들과 논쟁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본문 1절에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여기까지는 아주 좋아 보이지 않습니까? 예루살렘에서 갈릴리까지는 무척이나 먼 거리입니다. 우리 식으로 빗댄다면 서울에서 대전 간의 거리 정도 되죠. 그 먼 거리를 찾아 예수님께 나아 온 것, 그것 자체만은 아주 높게 평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자, 그 분의 진리와 생명.. 2023. 11. 14.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마14:1-36) 오늘 읽은 마태복음 14장은 크게 세 가지 사건이 기록돼 있습니다. 첫 번째 사건은 헤롯 대왕 곧 헤롯 안디바가 세례 요한을 참수시킨 일이고, 두 번째 사건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푼 사건, 마지막 세 번째 사건은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사건입니다. 이 세 가지 사건을 통해 성경이 증언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왕과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왕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죠. 사실 헤롯 안디바는 유대인들에게 모든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자입니다. 로마의 황제 티베리우스의 승인을 받아 유대 지역을 다스리는 분봉왕이기는 했지만 현 실권에서 최고권력자입니다.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들을 맘대로 쥐락펴락할 수 있는 위치죠. 바로 그와 같은 권력으로 자기 동생 곧 빌립의 아내였던 헤로디아를 자기 아내로 빼.. 2023. 11. 13.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마13:44-58) 마태복음 13장을 통해 예수님께서 일곱 가지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네 가지 밭 곧 길가, 돌밭, 가시떨기밭, 그리고 좋은 밭에 뿌리는 씨를 뿌리는 비유가 그 첫 번째 비유요, 두 번째 비유는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로서 분명코 좋은 씨앗을 뿌렸는데도 가라지가 자랄 수밖에 없지만 그 추수때까지 기다려주신다는 비유였고, 세 번째 비유는 겨자씨의 비유요, 네 번째는 누룩의 비유였습니다.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가 갖고 있는 공통점은 아주 작은 것이지만 그것이 점차 커지고 커져서 세상을 이롭게 하듯이 하나님의 나라의 자녀들도 그런 하나님의 나라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는 예수님의 나머지 짧은 비유 세 개가 더 나와 있습니다. 44절에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 45-46절에 나오는 .. 2023. 11. 12.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마13:1-23) 오늘 읽은 마태복음 13장을 통해 예수님께서 일곱 가지 비유를 말씀해 주십니다. 이 비유들은 각각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면서, 동시에 맥락상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에서 시작해 미래에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이 중 첫 번째 비유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또는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의 비유”라고 알려 있는 비유죠. 그러나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뿌린 씨가 떨어진 그 네 가지 종류의 땅”이라는 측면에 포커스를 맞추었으면 합니다. 오늘 본문 1-2절은 이 비유를 베푸신 시점과 장소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이 비유를 베푼.. 2023. 11. 9.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마12:38-50) 사랑하는 사람과 1시간, 그리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과 10분. 그렇게 보낸다면 둘 중에 어떤 시간이 길고 또 어떤 시간이 짧겠습니까? 물리적인 시간개념으로는 당연히 1시간이 10분보다 길겠죠. 하지만 심리적인 시간개념으로 본다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1시간은 찰나(刹那)처럼 지나갈 것입니다. 삶에서 우리들을 힘들게 하는 요건들 중에 하나는 바로 이런 경우죠.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맞이하기도 하지만 나와 성향이 다르고 뜻이 다른 사람들과 만나기 때문에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 말입니다. 그로 인해 일터와 직장이 무척 힘든 곳이 되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서 공생애 사역을 하는 동안, 주님 곁에는 주님을 좋아아고 따르는 무리들만 가득 한 게 아니라, 시기하고 질투하며 적대시하는 일들, 그래서 주님의 실수.. 2023. 11. 8.
무슨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심문을 받으리니(마12:22-37) 어제 읽은 본문을 통해 바리새인들이 보여주는 안식일의 법 형식과 예수님께서 보여주고자 하는 안식일 법의 참 정신과 가치에 대해서 우리가 살펴봤습니다. 유대인들이, 바리새인들이 아무리 안식일 법을 잘 지킨다해도 그것이 그들의 자랑거리나 내세울 만한 게 못 된다고 했죠. 왜냐하면 그 법은 본래 애굽의 문화와 풍토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체계를 설정해주신 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는 종은 영원토록 종이 되고, 약한 자는 영원토록 약한 자로 살아야 하는 법이지만, 하나님 나라의 법은 종도 때가 되면 자유를 주도록 했고, 약한 자도 때가 되면 회복이 되게 하는 법이 하나님 나라의 법이었죠. 그래서 사람도 50년째 되는 날 곧 희년의 때에는 모든 종과 노예들을 원래 상태로 되돌려 보내게 했고,.. 2023. 11. 7.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마12:1-21) 오늘 읽은 마태복음 12장 전반부 말씀은 안식일 논쟁에 관한 내용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예수님 간에 일어난 안식일 논쟁이죠. 모세의 율법 중 십계명에 이런 계명이 나오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20:8) 또 안식일에 파종하거나 추수해서는 안 된다는 금지규정이 출애굽기 34장 21절에 나옵니다.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일곱째 날에는 쉴지니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지며.” 안식일에는 아무런 노동도 하지 말고, 사람도 동물도 밭도 모든 것들로 하여금 다 쉬게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것이 안식일 규례입니다. 이 규례는 다른 모든 율례와 법도도 마찬가지이듯, 애굽의 종된 삶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시면서 주신 율례와 법도입니다. 애굽의 문화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억압하고 약탈하는 문화.. 2023. 11. 6.
나의 멍에를 메고 배우라(마11:20-30) 세례요한은 주님의 길을 예비한 자요,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푼 자요, 헤롯 안디바의 죄악을 규탄하다가 참수형을 당한 자였기에, 예수님의 표현 그대로 이 땅에 세례 요한 보다 더 큰 자가 업을 정도로, 그야말로 대단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어제 읽은 내용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그런 세례요한의 업적과 능력을 칭찬하지만, 그러나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권이 임하는 이 땅에서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레위인들, 병든 자와 귀신들린 자들에게 주님의 온기와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돌보고 베푸는 자가, 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장 큰 자라고 일깨워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눈과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쏠려 있어야 하는지 깊이 깨닫게 하시는 말씀이셨습니다.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 2023.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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