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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마태복음

무슨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심문을 받으리니(마12:22-37)

by 권또또 2023.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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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읽은 본문을 통해 바리새인들이 보여주는 안식일의 법 형식과 예수님께서 보여주고자 하는 안식일 법의 참 정신과 가치에 대해서 우리가 살펴봤습니다. 유대인들이, 바리새인들이 아무리 안식일 법을 잘 지킨다해도 그것이 그들의 자랑거리나 내세울 만한 게 못 된다고 했죠. 왜냐하면 그 법은 본래 애굽의 문화와 풍토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체계를 설정해주신 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는 종은 영원토록 종이 되고, 약한 자는 영원토록 약한 자로 살아야 하는 법이지만, 하나님 나라의 법은 종도 때가 되면 자유를 주도록 했고, 약한 자도 때가 되면 회복이 되게 하는 법이 하나님 나라의 법이었죠. 그래서 사람도 50년째 되는 날 곧 희년의 때에는 모든 종과 노예들을 원래 상태로 되돌려 보내게 했고, 땅도 7년째 되는 날에는 아무런 농사도 짓지 못하게 하여 쉬게 했습니다. 그것이 안식일 법이자 희년 법이죠. 그 법이 가능한 것은 그들에게 참된 자유와 해방을 주신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았던들, 다시 말해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그들을 인도해 낸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던들 안식일 법 자체도 실은 가능하지 못했던 것이죠.

그런데도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종교적인 형식에 얽매여 있는 자들은 안식일의 참된 정신과 가치보다 안식일 법 자체의 형식논리만 강조하면서 살아왔기에, 죽어가는 생명도 긍휼히 여기지 않았고, 배고 파 하는 사람들을 정죄할 뿐이었고, 병든자와 귀신들린 자와 연약한 자에 대한 동정심조차도 품지 않았던 것이죠. 하지만 아무리 그들이 안식일의 형식논리를 잘 따른다 한들, 사람에 대한 긍휼어린 마음이 업으면 그것이 어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신 안식일 법이 되겠습니까? 바로 그와 같은 사실을 주님께 일깨워주시면서, 주님은 그 안식일에 또 다른 약한 자, 병든 자, 귀신들린 자, 그런 약한 자들을 고치고 치료해 주셨습니다.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교보문고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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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22절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예수님께서 귀신들려서 눈이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들이 데리고 왔는데, 그를 고쳐주신 사건입니다. 육체의 눈도 보지 못하고, 육체의 귀로 듣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의 영혼까지 악한 영에게 잠식당해 살아가는 그야말로 괴로움에 처한 영혼을 주님께서 만져주신 것이죠. 보통 사람들이 삼중고를 이야기하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그 삼중고를 떠올리면 흔히들 ‘헬렌 켈러’를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런데 언제가 말씀을 드렸듯이, 헬렌 켈러가 어떻게 그런 삼중고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는가, 그것은 곧 그를 사랑으로 품은 설리반 선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죠. 그런데 여러 낱말을 설명해 주는 설리반 선생이 어느 날 헬런 켈러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설명해 줘야 하는데, 그때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할지 모르고 있데, 헬렌 켈러가 그렇게 답하더라는 것이죠. ‘선생님께서 저를 꼭 안아주신 것, 그것이 사랑이잔하요.’하고 말입니다.

본문에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것이 바로 그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에 대한 긍휼어린 마음, 질병으로 악한 영으로 괴로워하는 이들을 향해 민망히 여기는 그 마음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니 말입니다. 그 사랑으로 그 귀신들려 말못하고 듣지 못하는 그를 고쳐주신 것입니다.

그때 그 곁에 있던 무리들이 다 놀라면서 이가 다윗이 자손이 아니냐하고 말하는데, 바리새인들은 또 뭐라고 말합니까? 본문 24절에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무슨 이야기입니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악한 귀신들을 쫓아낸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죠.

그때 예수님은 26-27절 말씀을 통해 어떻게 귀신이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는 것이냐, 하면서, 사탄이 사탄을 쫓아낸다면 스스로 분쟁하는 꼴인데, 어찌 그것이 가능할 수 있겠느냐, 하고 말씀하시죠. 그러면서 28절을 통해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오직 내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영, 성령을 통해 귀신의 세력들을 좇아내는 것이고, 그렇기에 그런 일을 믿는 자들의 심령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란 무엇이겠습니까? 보통 하나님의 나라, 하면 죽어서 가는 저 천국, 영원한 나라를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다고 말씀합니다.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로 번역된 헬라어 ‘바실레이아’는 영토 혹은 땅이란 의미도 있지만 주권 혹은 통치권이란 뜻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나라란 죽어서 가는 저 천국의 개념도 있지만, 하나님의 통치주권이 미치는 이 세상,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굳게 지키고 순종하는 자들이 사는 이 땅도 하나님의 나라라는 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 귀신이 떠나가는 것을 믿는 자들에게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지키며, 가난하고 약하고 병든 자들을 주님의 마음으로 살아하고, 그들을 긍휼히 여기면 내가 사는 곳곳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사실입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통치주권이 실현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 땅에 그런 하나님의 통치주권을 모신 자로 살아가는 자들은 당연히 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자신있게 입성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의 나라 곧 하나님의 통치주권을 온전히 받들지 못한 자들이 어떻게 죽어서 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당당하게 입성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그런 이치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이 땅에 예수님과 더불어 이루어졌지만, 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 그것을 흔히 신학자들이 ‘이미’와 ‘아직’ 사이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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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본문 31절에서는 그와 같은 바리새인들의 공격,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들린 사람을 좇아내는 것이라고 비꼬는 그들의 언행을 예수님께서 엄히 경계하시면서 말씀합니다. 그것이 곧 성령을 모독하는 행위요, 그것은 결코 사하심을 받지 못하는 일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본문 34절에서는 좀 더 강력하게 질책하십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아주 무서운 심판의 말씀 아닙니까?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지, 그 속에 들어있는 것으로 말을 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 속에 악독이 가득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향해 정죄하고 비판한다는 것입니다. 그 속에 불의가 가득하기에 성령의 일도 사탄의 일로 규정하여 싸잡아 비판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언행은 결코 심판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특별히 히브리인들의 개념이 하나 있는데, 그들은 말 자체가 곧 기도라고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무슨 말을 하든지 그것이 하나님께 들으시는 기도가 된다는 것 말입니다. 이것은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14:28)하는 말씀과 그 맥을 같이 합니다. 우리가 어떤 말을 하든지 그것이 하나님의 귀에 들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도 성령의 입술로 말하는 것처럼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고, 대신에 불평이나 원망이나 비판하는 말은 절대로 삼가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행한 말들이 곧 하나님께 기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들도 작고 연약한 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을 품고 사랑하는 것이 곧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길이요, 그런 자가 저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는 자요, 어떤 사람이든지 비판이나 심판자의 입장보다 늘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기도자의 입술이 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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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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