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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마태복음58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마26:1-16) 하루하루 산다는 것이 실은 하루하루 깎아 먹고 사는 삶이죠. 건강을 깎아 먹으면서 돈을 벌고 있고, 시간을 깎아 먹으면서 늙어가고 있고, 생명을 깎아 먹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깎아 먹는 게 실은 채우는 삶입니다. 이 땅에 유한한 생명을 깎아가는 게 실은 하늘 영생을 채우는 삶이요, 이 땅의 재물을 깎아 하나님께 드리는 것도 하늘 보화를 저축하는 삶입니다. 피곤한 새벽단잠을 깎아 새벽기도를 드리는 것도 하루의 삶을 주님의 은혜로 채우는 비결이죠. 나의 죽음 앞에 내 모든 것들이, 내 인생이, 나의 영혼을 깎아 먹는 장례용품인지, 아니면 영원한 생명용품으로 채우는 것일지, 우리는 늘 분별하며 선택하며 살아야 하겠죠. 마태복음에는 다섯 번에 걸친 예수님의 설교가 나타나 있습니다. 마태복음.. 2023. 12. 14.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마25:31-46) 마태복음 25장에는 세 가지 종말의 비유가 나오는데, 그 첫 번째가 열 처녀의 비유였습니다. 혼인식을 맞이해 신랑이 더디 오니까 다들 졸며 잤죠. 드디어 신랑이 온다고 하니까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고 있었고,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죠. 그것은 주님의 재림을 뜻하는 바로서, 기름을 준비하며 깨어 있는 자만 주님의 재림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기름이 ‘믿음’ ‘사랑’ ‘선행’ ‘영적 경건성’을 뜻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깨어 있는 상태가 더 중요하다고 했죠. 깨어 있다는 것은 잠자는 걸 말하는 게 아니라 영적 예민함을 말하는 것이죠. 세상의 가치관에 잠식당하는 게 아니라 영적인 촉수를 세우며 하늘나라의 가치관을 추구하는 것이죠. 두 번째는 달란트의 비유였습니다... 2023. 12. 13.
착하고 충성된 종아(마25:14-30) 어제 우리는 열 처녀의 비유를 살펴봤습니다. 혼인식을 맞이해 신랑이 더디 오니까 다들 졸며 자는데, 드디어 신랑이 온다고 하니까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고 있었고,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않는 모습이었죠. 그 비유는 머잖아 주님의 재림을 뜻하는 비유로서, 그때에 기름을 준비하며 깨어 있는 자만 주님의 재림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다는 뜻이었죠. 그 기름이 ‘믿음’, ‘사랑’ ‘선행’, ‘영적인 경건성’ 등을 뜻하지만, 그보다 깨어 있는 상태가 중요하다고 했죠. 깨어 있다는 것은 잠을 자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영적인 예민함을 놓쳐버리지 않는 것, 다시 말해 세상의 가치관과 세상의 외적인 것에 잠식당하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었죠. 신앙의 절대적인 가치, 곧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가치를 .. 2023. 12. 11.
신랑이 더디 오므로 졸며 잘새(마25:1-13) 〈별〉이란 작품으로 유명한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가 1871년에『마지막 수업』을 발표했습니다. 그 작품은 알퐁스 도데의 제 2 단편집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소설입니다. 그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알자스와 로렌의 귀속문제로,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프로이센과 프랑스 전쟁이 벌어지던 때죠. 당시 알자스 주에 사는 프랑스 소년 ‘프란츠’는 공부보다는 늘 들판에서 뛰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 소년이었죠. 보통 때처럼 그는 교실에 늦게 도착했는데, 무거운 교실 분위기에 놀라며 당황을 합니다. 교단 위에 있는 선생님은 정장차림이었고, 교실 뒷자리에는 마을 사람들이 와 있었습니다. 담임 선생인 ‘아멜’은 무거운 목소리로 오늘 수업이 프랑스어로 하는 마지막 수업임을 알리고, 평소와는 달리 더욱 열.. 2023. 12. 11.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마24:36-51) 마태복음 24장과 25장은 개인적인 종말이 아닌 전지구적인 종말의 때에 일어나는 일들에 관한 말씀과 영생에 들어갈 자와 영벌에 처할 자들에 관한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마태복음 24장에 대해 우리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하고 있는데, 그 초반부에는 종말의 때에 있을 ‘그 재난의 시작점’에 관한 내용들을 살펴봤습니다. 이른바 거짓 그리스도, 거짓 메시아가 나타나 많은 사람들을 현혹시킬 것이고, 여기저기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는 말씀이셨죠. 그와 함께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다고 했는데, 예배를 통해 인간의 탐욕과 성공과 자기 우상화를 부추긴 채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일들이 횡행한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그런 재난의 시작점에, 큰 이적과 기사와.. 2023. 12. 9.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는다(마24:1-22) 예수님께서 이제 성전에서 나와 동쪽 베다니 마을로 가시는 상황입니다. 제자들의 눈동자는 성전, 곧 헤롯이 46년 동안 증축한 성전에 쏠려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성전이라는 건물에 집착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본문 2절입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예수님께서는 그 화려한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그 말을 들을 때 얼마나 황당한 말씀이라고 생각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순간에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고, 감람산 곧 올리브나무가 많은 감람산, 기드론 골짜기 맞은편에 위치한 그 감람산에 올라가 앉으셨을 때, 비로소 제자.. 2023. 12. 7.
화 있을진저(마23:23-39) 예수님께서 갖가지 기적을 행하시고, 병자들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려내시는 그런 은총을 베푸실 때 모든 백성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신 것은 아니었죠. 오히려 그 반대편에서 예수님을 거부하고, 예수님께서 일으키고자 하신 ‘하나님의 나라’ 곧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그 주권’을 거부하는 이들이 있었죠. 그 대표적인 이들이 바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었죠. 바리새인은 본래 ‘분리된 자’라는 의미로 히브리어 ‘페루쉼’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 말은 BC 130년경 헬라제국의 셀류쿠스 왕조의 에피파네스가 유대인들을 억압하고 안식일도 폐지하는 철권통치를 펼칠 때, 유대 민족의 독립운동인 마카비 혁명이 일어났는데, 바로 그 무렵에 ‘페루쉼’ 곧 ‘바리새인’이란 말이 최초로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 후기 .. 2023. 12. 6.
화 있을진저(마23:1-22) 어제 읽은 22장에서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의 의도적인 질문에 대답하시며 대화에 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오늘 읽은 23장에서는 제자들과 따르는 무리들에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에 대해 아주 강하게 책망하시면서, 그들이 받을 화에 대해 말씀하시고, 그들을 본받지 말라는 경계의 말씀을 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문제를 제기하며, 예수님의 행동에서 율법적인 흠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늘 논쟁을 벌였습니다. 당시의 백성들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신앙적으로 존경하였고 그들을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외형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살았기 때문에 백성들도 그렇게 하나님을.. 2023.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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