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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마태복음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마26:1-16)

by 권또또 2023.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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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산다는 것이 실은 하루하루 깎아 먹고 사는 삶이죠. 건강을 깎아 먹으면서 돈을 벌고 있고, 시간을 깎아 먹으면서 늙어가고 있고, 생명을 깎아 먹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깎아 먹는 게 실은 채우는 삶입니다. 이 땅에 유한한 생명을 깎아가는 게 실은 하늘 영생을 채우는 삶이요, 이 땅의 재물을 깎아 하나님께 드리는 것도 하늘 보화를 저축하는 삶입니다. 피곤한 새벽단잠을 깎아 새벽기도를 드리는 것도 하루의 삶을 주님의 은혜로 채우는 비결이죠. 나의 죽음 앞에 내 모든 것들이, 내 인생이, 나의 영혼을 깎아 먹는 장례용품인지, 아니면 영원한 생명용품으로 채우는 것일지, 우리는 늘 분별하며 선택하며 살아야 하겠죠.

마태복음에는 다섯 번에 걸친 예수님의 설교가 나타나 있습니다. 마태복음 5∼7장에 이르는 산상설교, 10장에 나오는 제자 파송 설교, 13장에 나오는 천국 비유 설교, 18장에 나오는 제자 공동체의 설교, 그리고 24∼25장에 나오는 성전 파괴와 세상 종말의 설교가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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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욥기서 읽고 묵상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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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본문 1절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여기에서 이 말씀을 마쳤다는 것은 예수님의 그 마지막 설교를 마쳤다는 뜻입니다. 보통 다섯 번째 그 설교를 감람산 위에서 펼치셨다고 해서 ‘감람산 강화’라고도 합니다. 그와 같은 감람산 강화를 마치신 예수님께서 이제 제자들에게 본문 2절을 통해 일러주십니다.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하시더라.” 이틀이 지난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체포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다는 것은 이미 세 차례에 걸쳐 알려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1절을 통해, 마태복음 17장 22절 이하를 통해, 그리고 마태복음 20장 17절 이하를 통해 말이죠. 오늘 본문을 통해 이제 네 번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찌 보면 제자들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한 말씀이죠.

그런데도 어떻습니까?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전혀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체포당하시고 죽으신다고 해도 그들은 믿지 않았죠. 또한 베드로는 그런 일이 결코 주님에게 일어날 수 없다면서 예수님을 비난까지 했었죠. 더욱이 그들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다들 도망쳐 버렸고, 예수님의 시신을 안치한 무덤이 빈 무덤이라는 사실을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로부터 전해 듣고서야 베드로와 요한이 맨 먼저 주님의 빈 무덤을 찾아 갈 정도였죠. 왜 그렇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셨는데도, 그들은 마음속에 품지 못했던 것입니까? 그들은 주님을 정치적인 메시아로, 다시 말해 로마를 전복시키고 유대 사회의 왕으로 군림할 메시아상을 품고 있었던 까닭입니다. 여태 우리가 나눈 말씀에 비춰본다면, 그야말로 ‘깨어 있지 못한 심령의 소유자들’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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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교보문고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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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 본문 2절을 통해 주님께서 네 번째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팔릴 것이라고 말씀하는데, 제자들의 반응이 나옵니까? 전혀 없죠. 그만큼 제자들은 이 세상의 것에 취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대신에 3절을 통해 보여주는 게 있죠.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의 관정에 모여서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 것인지, 모의하고 있는 바쁜 모습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관련하여 나오는 마태복음 26장의 첫 번째 단락의 사람들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다고 해도, 전혀 관심도 질문도 보이지 않는 제자들의 모습 말이죠.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모습이죠. 그런데 그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려고 계획을 세우는 일단의 무리들이 있다는 것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 단락은 6-13절 말씀입니다. 이 내용은 예수님께서 베다니 나병 환자 곧 문둥병 환자의 집에 계실 때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옥합을 깨트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장면입니다. 같은 상황을 그려주는 요한복음 12장에서는 ‘베다니’라고만 나오고, 거기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나사로’까지 나오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베다니 문둥병 시몬의 집에 계신 예수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당신의 죽음을 앞둔 그 상태 속에서도 예수님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과 함께 하셨음을, 그런 자들을 품고 계신 분임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죠.

그런데 이 베다니 문둥병 환자 시몬의 집, 그 누구도 함께 하려고 하지 않고, 그 동네 밖에서 떨어져 살아야만 하는 당시의 문둥병 환자의 집에, 예수님께서 찾아가셨는데, 바로 그곳에서 식사를 하실 때 한 여인 곧 나사로의 누이인 마리아로 알려져 있는데, 그 마리아가 ‘매우 귀한 향유’,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서는 ‘나드 향유’라고 밝혀주고 있고, 그 값어치를 300데나리온, 곧 당시 노동자의 1년 품삯에 해당하는 값비싼 향유인데,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그 나드 향유는 인도에서만 공수할 수 있는 것으로 귀하디귀한 향유라고 소개하는데, 그것을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드렸다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분개했다고, 성을 냈다고 전하고 있죠. 그러면서 “가난한 자들에게 그것을 팔아 줄 수 있지 않았겠냐?”하고 구박을 주는 상황입니다. 아마도 이 상황은 우리가 충분히 예견해 볼 수 있는 모습이죠. 줄곧 예수님을 따라 3년 동안 따라다닌 제자들인데, 예수님께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셔도, 그것도 오늘 본문에까지 네 번씩이나 말씀하셨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제자들인데, 이제 죽음을 앞두고 마리아가 매우 값비싼 향유 옥합을 깨트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 드리고 있으니, 제자라는 자신들은 하지 못한 일을 그녀가 보여주고 있으니 괜히 자신들이 뻘쭘해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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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교보문고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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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마리아가 그렇게 1년 치 노동자의 품삯에 해당하는 그 값비싼 향유를 주님의 머리와 다른 복음서에는 다리에까지 부어드렸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부어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자기 오라버니 나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내신 분이 바로 그 예수님이셨기에, 그 분을 향해 온 뜻과 마음을 다해 감사의 표시로 그렇게 값비싼 향유를 부어드린 것이었죠. 물론 그녀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염두에 두고 한 일은 결코 아니었죠. 그런데 예수님은 그녀의 행위에 대해 12절에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하고 그녀의 행위를 장례와 연관지어 해석해 주신 것이죠. 그리고 그녀의 일을 어디서든지 전파하여 기억하도로 하라고 칭찬해주시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제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니고데모가 삼베 수의를 자신을 위해서 사용했다면 그것은 2천년이 지나 아무런 가치도 없이 흙에 묻히고 진토로 끝나버렸을 것이지만, 예수님을 위해 폭 1m4cm,길이 4m20cm가 되는 수의천으로 감쌌을 때, 그 삼베 수의는 로마의 토리노 대성당 안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위대한 증거품이자 인류 최고의 보물로 여김받는 것이죠. 막달라 마리아도 농업과 상업과 조선업의 중심지인 막달라란 도시에서, 일곱 귀신에 들려 수많은 남성들에게 몸을 팔던 창녀였지만 주님을 만나는 은총을 덧입게 되고 주님께서 그녀 속에 있던 일곱 귀신을 좇아주셨을 때 그녀의 삶은 180도 달라졌죠. 그만큼 남은 인생을 주님을 위해 내어드렸을 때 다른 제자들을 제치고 예수님의 부활의 첫 증인이 되는 감격을 누린 것이죠. 내가 사용하는 물건이나 음식이나 혹은 나에게 있는 물질이 어떤 정도이든지 상관없이, 내 인생 자체가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주님 나라를 위해 내어드리면, 우리 주님께서는 그것을 영원한 가치로 세워주신다는 것이죠.

그런데, 바로 그런 상황 속에서 또 하나의 사건이 벌어지고 있음을 본문 14-16절에 증언해줍니다. 열두 제자 중 하나인 가롯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짜고서 예수님을 은 삼십 냥에 팔아넘길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게 그것이죠. 출애굽기21장 32절에 소가 만일 남종이나 여종을 받으면 소 임자가 은 삼십 세겔을 그 상전에게 줄 것이요 소는 돌에 맞아 죽을지니라하는 말씀이 있는데, 예수님을 은전 30냥에 요구한 것은 그 당시의 쓸모없는 노예의 몸값, 노동자의 4개월 품삯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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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면 볼 수 있어요 | 권성권 | 유페이퍼- 교보ebook

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너무나 답답했다. 지금도 그게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모든 게 답답하기만 하다. 청년들도 꿈을 꿀 수 없는 상태다. 초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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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모습들을 통해 내게 깨닫게 하는 그림이 있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장례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 제자들처럼 전혀 관심도 없는 사람이 있고, 뜻하지 않았지만 주님을 위한 장례를 위해 자신의 귀한 것을 부어드린 마리아와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그 속에서도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과 짜고서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가롯 유다와 같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것 말이죠. 오늘 우리들이 어떤 관점으로 주님의 죽으심을 바라보며 살아야 할지, 아니, 우리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단순한 장례용품으로 삼아야 할지 아니면 영원한 생명용품으로 삼아야 할지 깊이 생각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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