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SMALL 새벽묵상DewSermon/로마서52 2024년 10월 4일 3분새벽묵상_흔들리는 심령을 붙잡 주시는 은혜(롬4:1-2)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롬4:1-2) 신앙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자신이 죄인이요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인간임을 직시할 때 비로소 구원의 주님을 찾게 되죠. 바울은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은 그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겨주신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신칭의의 교리인데 그것은 바울의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런데 75세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아브라함이 100세에 이삭을 낳을 때까지 흔들리지 않았습니까? 그도 수없이 흔들렸고 넘어졌습니다. 자기 아내를 두 번씩이나 여.. 2024. 10. 3.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롬5:1-11) 아브라함에게 구원의 믿음이 주어진 게 할례시였는가? 할례받기 이전의 무할례시였는가? 무할례시였다고 했죠. 하란에 있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와 주셔서 그를 불러내주셨고, 그때 믿음을 좇아 가나안 땅으로 옮겨간 것 말이죠.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은 행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가 100세가 되어 이삭을 낳기까지 믿음이 약해지거나 흔들리지 않았는가? 그도 수없이 흔들렸죠. 그런데도 어떻게 믿음의 조상이 되었는가? 흔들리고 넘어질 때마다 주님께서 은혜로 붙잡아주셨기 때문이죠.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이 성경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의 본보기요, 우리 자신의 본보기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선택해주셨고 지금까지 붙잡아주고 계시기에 흔들리고 넘어지는 가운데서도 믿음의 삶을 굳게 살아가고 있.. 2024. 10. 3. 할례시나 무할례시냐(롬4:1-25) 신앙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자신이 죄인이며,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인간임을 직시할 때 비로소 구원의 주님을 찾게 되죠. 그런 의미에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지난 시간의 말씀을 통해, 율법은 인간으로 하여금 죄인임을 깨닫게 할 뿐 구원의 자리로 이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의 시대 이후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는데 곧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된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이고, 그 분을 믿음으로 구원의 은혜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는 것이고,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능하다고 말이죠.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바울은 이신칭의의 실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 2024. 10. 3. 2024년 10월 3일 3분새벽묵상_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롬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20) 유대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구약의 말씀을 위탁받은 특권이 있었습니다.하지만 그들은 말씀 맡은 것을 특권으로만 인식할 뿐 말씀을 실천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바울은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유대인들도 죄의 지배 아래에 있는 죄인들이기는 마찬가지라 했습니다.유대인들이 특권이라고 여긴 율법의 용도는 사람의 죄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게 하는 통로입니다.그렇기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율법의 길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의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오늘도 그 은혜를 베풀어주신 주님을 온 중심에 모시고 사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축복합니다.https://product.kyobobook... 2024. 10. 2.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3:21-31) 매년 10월 마지막주일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종교개혁은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곽 교회에 ‘95개조 면죄부 논제’를 붙인 사건으로부터 촉발된 일이었죠. 당시 중세 교회 내에는 섬김과 봉사의 직분이 종교적인 권위주의와 계급화로 변질되었고, 이 같은 교권의 타락과 부패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과는 전혀 상관없이 전통과 관습이 생겨났죠. 특별히 죄의 사면을 조건부로 하는 면죄부 판매와 같은 행태들이 벌어졌습니다. 그런 부정과 타락에 맞서서 깨어있는 신앙인들이 저항했고, 결국 1517년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사건을 통해 그동안 곪아있던 상처가 터진 것이었습니다. 루터는 어떻게 죄인이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가? 이른바 칭의( Justification)에 대한 부분을.. 2024. 10. 2.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롬3:1-20) 로마서 1장 전반부에 바울은 인사말을 했고, 후반부에서는 자기 욕망을 좇아 짐승처럼 사는 본능적인 인간에 대해 밝혀주었습니다. 2장 전체에서는 도덕적인 인간의 세 부류, 곧 도덕을 부르짖는 비도덕주의자, 또 타락한 자기 양심만 믿는 양심주의자, 그리고 형식만 강조하는 형식주의자에 대한 말씀이었죠. 오늘 읽은 로마서 3장 1-8절 말씀은, 그런데도, 하나님 앞에서 끝없는 자기변명을 늘어놓는 자들을 보게 해준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앞에 반발하는 자들의 모습이 그것입니다. 바울은 어제 읽은 2장 후반부를 통해 형식에 치우친 유대인들을 비춰줬습니다. 그들은 선민이라는 자부심 속에서 율법과 할례를 자랑거리로 여기며 과시하는 자들이라고 했죠. 그래서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이면적 유대인, 곧 중심과 .. 2024. 10. 2.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롬2:17-29) 로마서 1장에서, 형이하학적 인간, 다시 말해 본능적인 인간, 짐승처럼 사는 인간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2장에서는 형이상학적인 인간, 도덕적인 인간 다시 말해 철학적인 인간에 대해 생각해봤죠. 도덕적인 인간의 첫 번째 부류는 도덕과 윤리를 부르짖는 것 같지만 실은 비도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남을 비판하는 그가 똑같은 일을 행하는 경우였죠. 도덕적인 인간의 두 번째 부류는 ‘양심주의자’였습니다. 인간의 양심만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었죠. 하지만 도덕주의자들이나 양심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도덕주의자 가운데 마지막 부류에 속한 사람입니다. 율법주의자, 곧 ‘형식주의자들’입니다. 만물은 하나로 돼 있지 않고 겉과 속이 따로 돼 있습니다. ‘겉’이란.. 2024. 10. 2. 2024년 10월 1일 3분새벽묵상_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사람아(롬2:1-2)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롬2:1-2) 인간은 짐승과 같은 형이하학적인 인간과 도덕을 좇는 형이상학적인 인간이 있다고 했습니다. 도덕적인 인간 중에는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면서 자신도 똑같이 하는 부류가 있습니다.더욱이 자기 양심으로 모든 의와 선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하지만 성경은 인간의 양심이 철저하게 타락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자기 힘과 공로로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다고 여기는 양심주의자들은 너무나 거짓된 것입니다.우리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를 이루며.. 2024. 9. 30. 이전 1 ··· 3 4 5 6 7 다음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