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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로마서

할례시나 무할례시냐(롬4:1-25)

by 똑똑이채널 2024.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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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자신이 죄인이며,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인간임을 직시할 때 비로소 구원의 주님을 찾게 되죠. 그런 의미에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지난 시간의 말씀을 통해, 율법은 인간으로 하여금 죄인임을 깨닫게 할 뿐 구원의 자리로 이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의 시대 이후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는데 곧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된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이고, 그 분을 믿음으로 구원의 은혜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는 것이고,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능하다고 말이죠.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바울은 이신칭의의 실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의 근거를 찾고 있는 것이죠. 그가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입니다. 왜 아브라함게서 이신칭의의 실례를 찾는 것입니까? 이신칭의의 교리는 사도 바울의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언코자 한 것이죠. 그런데 왜 하필 아브라함을 그 증거의 인물로 내세웠을까요?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시조이고, 성경의 66권 중에서 첫 번째 책인 창세기의 인물이기 때문이죠. 그만큼 바울은 이신칭의에 대한 근거가 성경 어디에서 툭 튀어나온 말씀이 아니라, 창세기에서부터 나오는 말씀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 것입니다.

 

본문 1-2절입니다.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아브라함이 의인이 된 것이 행위로 된 것이라면 자랑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자랑할 것이 결코 없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행위는 하나도 없었던 것인가? 바꿔 말해 우리 그리스도인의 행위는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식인가? 그렇게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아브라함은 헤브론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았고, 조카 롯을 하나님께서 구해주시도록 기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선한 행위가 구원의 조건은 될 수 없지만 구원받은 자가 마땅히 살아야 할 책임과 의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배경이 어디에 있다는 것입니까? 본문 3절입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은 ‘믿으매’ 곧 믿음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의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믿음이 자랑거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았다면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우상을 섬기던 아브라함이 먼저 하나님을 믿겠다고 나섰다면 자랑거리가 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먼저 아브라함에게 찾아와주셨기 때문이죠. 이것은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였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가 먼저 주님을 믿겠다고 한 게 아니라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에게 먼저 찾아와 믿을 수 있도록 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아브라함의 믿음도, 바울의 믿음도 결코 자랑거리일 수가 없는 것이죠.

그리고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배경은 ‘그것이 의로 여겨진바 되었다’는 바로 그것, 다시 말해 믿음입니다. 바울은 믿음을 한 번 더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그 믿음은 무엇으로 드러났습니까? 하란을 떠나서 가나안으로 향하는 행위로 드러났죠. 하란은 상당한 문화 상업적인 도시입니다. 그에 반해 가나안은 황무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자신이 살던 하란을 버리고 황무지인 가나안으로 떠나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믿음이 행동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그 행동은 은혜 때문에 드러났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때에만 나의 믿음도 나의 행위도 결코 자랑할 것이 못되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자랑할 수 있기 때문이죠. 다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 이후에는 반드시 행함을 수반하는 게 참된 믿음이라는 사실이죠. 믿기만 하고 행함이 없으면 실은 죽은 믿음이라고 야고보서에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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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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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바울은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게 행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인함이요, 믿음 이후에 행함이 뒤따르는 것임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바울은 ‘다윗의 시’로 결론 맺습니다. 본문 7-8절 말씀이 그것입니다.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다윗이 어떤 인간입니까? 다윗의 부정함 때문에 한 가정이 송두리째 깨졌습니다. 그의 죄질로 본다면 죽어 마땅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회개하고 그의 삶의 방향을 바꾸었을 때,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난 인물이죠. 그래서 다윗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어떤 일도 한 게 없지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 죄를 가려주셨다고, 패스오버해 주셨다고, 심판을 넘어가게 해 주셨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라는 것이요, 그것이 복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 10절을 통해 다시금 아브라함을 소환해서, 그가 언제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는지를 조명해 주죠.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아브라함이 은총을 받은 때가 할례를 받은 이후냐, 아니면 할례받기 전이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는가, 아니면 그 뜻도 알지 못했을 때 은혜를 받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성경은 무할례 시에 하나님의 은총이 임했다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것은 99세 때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는 75세 때죠. 할례받기 24년 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그 뜻대로 사는 자들에게만 주어진다면, 아브라함은 절대로 은혜를 받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공로나 노력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11절에서도 강조합니다.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브라함은 할례받기 이전에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어 구원받은 자였고, 그런 은혜만 바라보겠다는 결단의 표식으로 할례를 받은 것입니다. 마치 결혼할 때 주고받는 반지와 같은 의미죠. 예수 믿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이후에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동행하는 삶을 살겠다는 뜻으로 받는 세례와 같은 의미죠. 하나님께서 의롭다 여겨주셨으니, 이제부터 의로운 존재로 살겠다는 결단의 예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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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본문 19-2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이 말씀만 놓고 보면 아브라함은 주님을 믿는 믿음이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확고부동한 믿음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75세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원받은 아브라함이 100세에 이삭을 낳을 때까지 흔들리지 않았습니까? 넘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않죠. 그도 수없이 흔들렸고, 넘어졌습니다. 자기 아내를 두 번씩이나 여동생이라고 속였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지 못한 채 몸종 하갈을 통해 후사를 보려고 했던 아브라함입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의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았던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때마다 그의 믿음을 붙잡아주시고, 일으켜 세워주셨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아브라함이 아브라함이 된 것은, 그가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그의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아브라함만 위한 게 아닐 24절에서 “우리도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아브라함보다 더 연약하여 넘어지고 쓰러지고 흔들릴 수 있지만, 그때마다 우리 주님께 모세처럼 내 두 손을 들고, 나의 연약함을 주님께 내어드리면, 주님께서 그때마다 우리를 더욱 굳게 붙잡아주시고, 이끌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도 주님께서 나의 연약한 손을 붙잡아주시고, 흔들리는 우리의 심령을 붙잡아주시는 은혜로운 하루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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