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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로마서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3:21-31)

by 똑똑이채널 2024.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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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월 마지막주일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종교개혁은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곽 교회에 ‘95개조 면죄부 논제’를 붙인 사건으로부터 촉발된 일이었죠. 당시 중세 교회 내에는 섬김과 봉사의 직분이 종교적인 권위주의와 계급화로 변질되었고, 이 같은 교권의 타락과 부패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과는 전혀 상관없이 전통과 관습이 생겨났죠. 특별히 죄의 사면을 조건부로 하는 면죄부 판매와 같은 행태들이 벌어졌습니다. 그런 부정과 타락에 맞서서 깨어있는 신앙인들이 저항했고, 결국 1517년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사건을 통해 그동안 곪아있던 상처가 터진 것이었습니다. 루터는 어떻게 죄인이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가? 이른바 칭의( Justification)에 대한 부분을 로마서 1:16-17절에서 해답을 찾았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씀 말이죠. 그래서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서’라는 종교개혁의 슬로건을 내세운 거죠.

 

그런데 루터가 칭의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된 그 사실을 생각하면, 당시 로마서의 수신자인 로마교회에서도 칭의에 대한 의견차가 있었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로마교회는 안디옥 교회와 유사하게 자생적으로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로마 제국의 다른 지역에 세워진 교회들도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섞여 있었던 것처럼 로마교회에도 유대교 전통 신앙을 배경으로 한 유대인들과 헬라 문화권의 종교적 배경을 지닌 이방인 성도들 간에 관점의 차이가 있었고, 그 중에서도 칭의 문제로 갈등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1:16)하고 인사말을 통해 ‘구원의 보편성’을 선포했습니다. 그 뒤에 짐승처럼 자기 본능대로 이끌려 사는 사람들의 죄를 지적했고(1:18-2:16), 이어서 종교적 특권 속에서 율법과 할례를 내세운 유대인들의 죄 곧 도덕주의자들의 비도적인 죄를 지적(2:17-3:8)했습니다. 그래서 형이하학적인 인간이나 형이상학적인 인간 모두가 하나님 보시기에 실은 죄인일 뿐이라고 일깨워주었죠(3:9-18). 그렇기에 율법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밝혀주었습니다(3: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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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교보문고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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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으로 시작이 됩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우리가 갖고 있는 개역개정판 성경에는 없지만, 원문은 “그러나”로 시작이 됩니다. 무슨 의미겠습니까? 지금까지 인간의 행위나 의지로는 그 어떤 희망도 소망도 없었다고 선포했던 바울이 돌연 어투를 바꾼 것입니다.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비춰주기 위함이죠.

과연 무슨 희망이겠습니까? 본문에서 이제는”은 논리적인 의미, 연대기적 의미, 종말론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논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앞 뒤 구절을 논리적으로 연결시켜주는데, 율법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죠. 신앙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논리적 자각에서부터 시작해서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자신을 맡길 때 진정한 신앙의 길로 접어들기 때문이죠. 시간적인 측면으로 보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바로 그 순간을 의미합니다. 그때부터 구원을 향한 발걸음이 시작되죠. 그리고 종말론적 의미로 본다면 “율법 외에” 즉 율법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렸고,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즉 구약을 통해 예언된 하나님의 의로 인해, 새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죄를 범한 인간이 하나님께 의롭다하심을 얻는 길은 무엇일까요?

 

바울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하고 22절에서 답변합니다. 이신칭의(以信稱義)라고 하는 신학적인 용어가 여기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그만큼 이신칭의 교리는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루터가 새로 고안한 것도 아니고, 그 이전의 어거스틴에 의해, 그리고 그 이전의 오늘 본문의 바울에 의해, 그리고 그보다 앞서 이미 예수님께서 구약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심지어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지어 입히신 가죽옷(창3:21)을 통해서 이미 이 교리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의”란 하나님의 기준이 되기에 죄인인 인간은 “의”의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23절 말씀이 그것이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만큼 죄인인 인간은 의의 주체일 수 없고 “의”의 주체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의의 주체가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의에는 차별이 없는 것이죠.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남녀노소, 지위 고하, 인종을 막론하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동등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죄인인 인간을 하나님의 공의에 비춰서 품을 수 있는 기준이 생겼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본문 25절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하나님의 공의에 비춰보면 모든 죄인인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죄인인 인간을 속량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세우셨고, 예수님은 화목제물로서 당신의 피 값을 지불했고, 하나님은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의 죄를 간과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죄를 간과한다는 원어 ‘파레시스’(paresis)는 “넘어감 벌하지 않고 내버려둠“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출애굽기의 ‘pass-over’ 개념입니다. 죄를 간과하셨다는 것은 우리가 저지른 죄가 없어졌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지은 죄는 그대로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보혈을 믿을 때, 그 죄에 대한 심판이 넘어가게(pass over) 되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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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시간표 | 권성권 | 유페이퍼- 교보ebook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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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하나님이 당신의 독생자 예수를 피의 화목제물로 삼으신 이유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본문 26절 말씀이 그것입니다.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앞서 말씀드린 대로 공의의 하나님께서 아무런 속량 없이 인간과 바른 관계를 선포한다면, 당신 스스로가 인간의 불의를 용납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의 피의 화목제물 없이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용서한다면 인간은 여전히 죄악 속에 놓여있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의, 즉 인간과 바른 관계를 위해 예수님을 피의 화목제물로 삼으신 것입니다.

 

바울은 27-30절을 통해 하나님의 율법을 소유한 유대인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고 하는 유대인들이나, 그렇지 않은 이방인들이나, 이제는 모두가 동일한 방법으로 의롭다함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이것은 율법과 믿음의 관계에 대한 바울의 입장입니다. 율법과 믿음의 관계는 서로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는 것이죠. 이전에는 율법에 제시된 제사와 계명을 이행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의로우심 앞에 나아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선지자들이 말한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성취할 수 있죠. 그렇기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믿음을 통해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맺어졌다면 그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주님.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어찌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기나 했겠습니까? 주님을 믿을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처럼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 수 있는 은혜도 부어주시옵소서. 주어진 환경 속에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말씀으로 인해 깨어있는 신앙인으로 살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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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교보문고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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