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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장에서, 형이하학적 인간, 다시 말해 본능적인 인간, 짐승처럼 사는 인간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2장에서는 형이상학적인 인간, 도덕적인 인간 다시 말해 철학적인 인간에 대해 생각해봤죠.
도덕적인 인간의 첫 번째 부류는 도덕과 윤리를 부르짖는 것 같지만 실은 비도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남을 비판하는 그가 똑같은 일을 행하는 경우였죠. 도덕적인 인간의 두 번째 부류는 ‘양심주의자’였습니다. 인간의 양심만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었죠. 하지만 도덕주의자들이나 양심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도덕주의자 가운데 마지막 부류에 속한 사람입니다. 율법주의자, 곧 ‘형식주의자들’입니다. 만물은 하나로 돼 있지 않고 겉과 속이 따로 돼 있습니다. ‘겉’이란 말을 ‘형식’ 혹은 ‘형태’라고 하고, 영어로는 ‘form’이라고 말하죠. ‘속’은 ‘내용’ 혹은 ‘의미’라고 말합니다. 영어로는 ‘meaning’입니다. 그런데 겉과 속 중 어떤 것을 더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그 질이 달라집니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내용, 의미, 속보다는 형식, 형태, 겉이 전부인양 착각하며 거기에 모든 것을 걸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8장과 19장은 아브라함이 살고 있던 헤브론과 롯이 살고 있던 소돔 성읍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헤브론은 화려하지 않는 촌구석에 지나지 않는 곳이죠. 반변에 소돔 성은 화려하기 그지없는 도시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소돔 성에 있는 롯에게 천사를 보내 그 성읍을 멸망시킨다고 하셨죠. 하지만 롯은 그곳을 떠나가려고 하지 않죠. 왜죠? 겉모습이 화려해 보니이까 그렇죠. 얼마 지나지 않으면 멸망당할 성읍인데도 말이죠. 사람들은 그만큼 속이 아닌 겉에 치중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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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나님은 어떻습니까? 사무엘상 16장 7절에서 말씀하셨죠.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겉을 보시는 분이 아니라 속을 보시는 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칫 잘못하면 겉에 치중하게 되는 덫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도 은연중에 형식주의자가 되는 것이죠. 그런 형식주의자들을 신학적으로는 율법주의자라고 부르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외식주의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겉모습은 하얗게 평토장한 그럴싸한 무덤인데, 속은 시체 썩는 것들이 가득한 모습이라고 말이죠.
본문 17-20절에는 율법주의자가 치중하는 다섯 가지 부분이 나옵니다. 첫째로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법을 철저하게 따지는 자들이죠. 유대인들은 구약의 율법을 613개로 나눴는데, 248개는 하라는 것으로, 365개는 ‘하지 말라’는 것으로 분류해서 철저하게 의지하며 살죠.
둘째는 17절 하반절입니다. “하나님을 자랑하며.”, 매사에 하나님을 높이며 사는 자들입니다. 옛날에 성경을 인쇄할 수 없던 그 시절에 서기관들이 ‘야훼’라는 이름이 나오면 목욕을 하고 새로 썼죠.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성경을 읽을 때 ‘여호와’라는 단어가 나오면 ‘아도나이’ 곧 ‘나의 주님’으로 바꾸어 읽거나 하늘을 쳐다봤죠. 그 정도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였습니다.
셋째는 18절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무엇을 할 때마다 자신의 뜻대로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현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칫 자기 욕심을 강화하는 경우가 많죠.
넷째는 18절 하반절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하고, 이른바 선한 것과 악한 것을 구별할 줄 알고, 선을 행하는 자들을 칭찬할 줄도 안다는 것이죠.
다섯째는 20절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며 어둠에 있는 사람을 빛으로 인도해 내는 말씀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는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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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살펴 본 것처럼, 유대인들은 율법을 의지하고, 율법을 받았으며, 율법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말끝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고, 절대 남을 정죄하지 않죠. 자기 양심을 내세우지도 않습니다. 매사에 하나님의 말씀만 이야기합니다. 겉으로는 아무 흠이 없는 완벽한 신앙인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런 겉모습을 한 꺼풀 벗겨 내면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인다는 것입니다. 본문 21-24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무엇이 그들의 문제라는 것입니까? 말씀으로 가르치기는 하지만 그들의 속사람은 전혀 가꾸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율법주의자들은 법률로 금한 도둑질은 절대로 하지 않지만 속은 도둑질을 일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성령의 전에 위배되는 것들이 들어 있는 것들 말이죠. 또 율법주의자들은 여자와 몸을 맞대지 않았다면 간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의 관점은 음욕을 품고 보는 것 자체를 간음으로 규정할 정도셨죠. 또 우상 앞에 드린 것에 관한 물건을 도둑질하는 것을 정당하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죠? 우상은 신이 아니기에 그 앞에 드린 물건을 가져온다한들 그것이 무슨 죄가 되겠느냐는 것이죠. 하지만 그 물질 자체를 탐내는 것이 곧 우상숭배와 같은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겉으로는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처럼 행동하는데, 실제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모독하는 이들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를 욕되게 하는 사람은 부처와 상관이 없는 사람이 아니죠. 불자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죠. 누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사람이겠습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되 속사람의 심령과 삶이 변화되지 못할 때, 그 영광을 가리게 되는 것이죠.
본문 25-29절입니다.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이 말씀은 할례를 통해 율법주의자가 어떤 사람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준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은 모두 할례를 받았습니다. 아브라함도 이삭을 낳은지 8일만에 할례를 시행했죠. 할례를 받는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자기 생명을 바쳐서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충성을 다하겠다는 결단의 표식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과 율법주의자들은 자기 몸에 할례의 흔적을 지닌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이죠. 왜죠? 할례를 받았다면 실제로 경건한 삶으로 이어지고 그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래야 할례가 가치 있는데, 그런 삶으로 연결되지 못했다는 것이죠.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들도 연약하기 때문에 형식과 겉모습에 치중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을 바라볼 때 늘 외적인 것에 현혹되기도 하죠.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겉과 껍질이 아닌 속과 내용과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듣고 깨우친 것만큼 또 그대로 실천하는 자들이 되는 것, 그것을 하나님께서 속 중심으로 보시는 바입니다. 아무쪼록 그런 속 심령으로, 율법주의자가 아닌 참된 믿음의 도를 행하는 자들로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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