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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인생도 죽 쑤고 있는데, 무슨 죽이냐?” 최복이 집사는 충남 청양군 칠갑산 아래 최씨 집성촌에서 태어났습니다. 본처와 후처 사이에 태어난 13남매의 자녀들 틈바구니 속에서 자란 그녀였습니다. 그 집에는 사당이 있었고 선산에는 사찰이 있었고, 고모들 중에는 스님도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시를 쓰거나 이야기 작가가 되는 꿈을 안고 그녀는 대학의 국문과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1년 선배를 만나 연애했고, 4학년 때 6개월간의 방위생활을 한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24살의 신랑과 23살 신부가 그때 신접살림을 차린 것이었습니다. 결혼 후 ‘대학출판사’라는 남편의 첫 사업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 후 다이아몬드수입, 인삼제품제조판매, 목욕용품판매등 모든 사업들이 줄줄이 망했습니다. 그때 그녀는 돌 지난 아이를 업고 부천에서 보증금 100에 월세5만원의.. 2021. 10. 12.
그가 대형교회를 목회했다면 자기도 모르게 괴물이 되었을 것이지만 홍민기 목사의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었다〉 홍민기 목사님는 12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미국의 고든대학(Gordon College)에서 성서학을 공부하면서 청소년 집회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이후에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M.Div)를 받았습니다. 2002년에는 한국에 들어와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영성교육학 신학석사(Th.M)를 받았습니다. 그분은 전도사 시절에 청소년 사역에 집중했는데 ‘탱크전도사’라 불렸습니다. 미국 퀸즈장로교회 전도사로 섬길 때 50명의 청소년들이 1년 반 만에 30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분이 청소년수련회를 개최하면 꼭 가져가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담배였습니다. 담배피우는 청소년들에게 아침점심저녁을 먹고 나서 피울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2021. 10. 12.
아버지는 아들에게 ‘신용’ 이상의 ‘신뢰’를 건네주셨다 맥스 루케이도 목사의〈깊은 은혜〉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은 미국에서 유명한 동화작가이자 영성설교가로 알려진 분입니다. 어렸을 적 그 분의 아버지는 신용카드에 관한 철칙 하나를 갖고 계셨다고 합니다. 가능하면 카드를 가지고 다니지 않고 할 수 있는 대로 빨리 카드대금을 갚는 게 그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정비사 일을 했던 아버지의 월급은 식구들이 먹고 살기에는 충분했지만 풍족하게 남아도는 정도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연체이자를 내는 걸 너무나 아까워했고, 월말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카드대금을 완납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어렸을 때부터 지켜봤던 어린 맥스 루케이도가 이제 대학에 합격을 했습니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던 날, 차를 한 대 구입해서, 자신이 들어가야 할 대학을 위해 차를 몰고 떠날 .. 2021. 10. 12.
너는 내 나라의 홍보대야. 이효진 씨의 〈네 약함을 자랑하라〉 그녀는 3살 때 아궁이에서 끓고 있던 주전자를 엎어서 얼굴과 왼손에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또래 아이들로부터 ‘파충류 같다’고 놀림을 받았고, 그때마다 땅만 보고 살아야 했던 그녀였죠. 그래도 그녀의 엄마는 스무 살이 돼서 수술을 받으면 나을 수 있다고 달랬습니다. 그 희망 때문에 그녀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의 시간을 견뎌냈습니다. 그런데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병원에 알아봤더니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녀는 하나님을 떠나버렸고, 절망과 좌절을 겪으면서,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그래서 이 약국 저 약국 찾아다니며 수면제를 구입 했고 급기야 그것들을 다 털어넣었죠. 그런데 그런 그녀를 남동생이 발견했고 엠뷸런스로 응급실에 실려간 그녀는 기적적으로 살.. 2021. 10. 12.
김제 금산의 ㄱ자교회 김제에 금산교회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교회가 유명한 것은 옛 예배당 건물이 ‘ㄱ자교회’이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1907년 그때 우리성결교회가 태동된 시기인데 그당시 금산교회는 장로선출을 하던 때였죠. 그때 금산교회는 두 명의 장로 후보 중에 한 명을 뽑아야 했습니다. 이른바 조덕삼 장로 후보와 이자익 장로 후보였습니다. 장로 후보라고 부르기 때문에 둘 다 그 당시 돈 많은 지주 출신인가 싶었지만 그렇지 않았죠. 그 지역에 돈 많은 지주는 조덕삼 장로 후보였습니다. 그에 비해 이자익 장로 후보는 조덕삼 장로 후보의 머슴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둘 다 장로 후보에 이름을 올렸겠습니까? 지금과는 달리 그 당시에 장로란 그 당시의 목사님들처럼 모든 삶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며 살던 분들 아니었습니까?.. 2021. 10. 12.
뭐든 1등인 그분이 6년간 고통의 세월을 겪은 것 저와 같은 안동 권씨 출신인 대구동신교회 권성수 목사님이 있습니다.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졸업하고 총신대교수로 14년간 지내다 동신교회를 섬긴 목사죠. 처음 부임할 때 700명인 교인이 18년동안 7000명으로 부흥한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분의 〈고통의 은총〉은 자신의 역경 속에 하나님께서 만져주신 은혜를 기록한 책입니다. 경북 의성에서 찢어지게 가난한 그 분은 어렸을 때 산에서 나무를 해 오며 살았습니다. 가난하던 그때 할머니 따라 교회에 갔는데 할머니가 마늘밭을 예배당 짓도록 헌납했습니다. 그 할머니 밑에 태어난 아버지도 목회자의 길을 걸었는데 시골에서 힘들게 목회했습니다. 더 황당한 것은 그 아버지가 땅을 팔아 서울의 홍제동에 교회를 개척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자신을 비롯한 형제들이 굶으면.. 2021. 10. 12.
“톨레레게 톨레레게”(들고 읽어라 들고 읽어라) 본래 아프리카 시골 출신인 어거스틴은 어렸을 적 어머니 모니카를 따라 거룩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10대 중반에 어머니는 아들을 카르타고 대학에 입학시켰고, 그곳까지 와서 영적으로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신앙과는 거리가 멀게 되었고, 이내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어쩌면 숨막히는 경건생활을 강제하는 풍토 때문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로부터 13년 간 그는 어느 여인과 동거하면서 사생아까지 낳는 그야말로 탕자로 살았습니다. 더욱이 페르시아의 영지주의 교리를 가르치는 마니교라는 이상한 교리에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 모니카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그야말로 찢어지지 않았겠습니까? 그가 30살이 되었을 때 그 어머니는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어렵게.. 2021. 10. 12.
“그 분만이 너를 도우실 수 있어.” 리 스트로벨의 〈은혜, 은혜, 하나님의 은혜〉에 실린 이야기 스테파니는 6.25 전쟁 중에 부산에 내려 온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딸아이였습니다. 혼혈아였던 그녀는 서너 살 때 한국인 엄마에게 버림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그녀는 3년간 산과 들판을 떠돌며 짐승과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일곱 살 무렵 고아들이 모여 사는 곳에 들어갔다가 또래 아이들에게 학대와 강간을 당했습니다. 10살 무렵에 죽을 것 같은 상황속에서 고아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미국에서 온 선교사 부부가 스테파니를 입양하고자 부드럽게 다가가 얼굴을 만지고 감싸 안았습니다. 그런데 스테파니는 무심결에 그 분들의 손을 뿌리쳤고, 무의식적으로 얼굴에 침까지 뱉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속으로는 너무나도 황홀했지만,.. 2021. 10. 12.
“만약 저 교수대에서 마지막 숨을 거둔다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독일 히틀러의 잔혹한 독재정치에 항거한 사람이 있습니다. 1945년 4월 히틀러 암살 작전에 가담한 죄목으로 39살 나이에 교수대에서 죽은 본 회퍼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본 회퍼가 히틀러 체제에 동조하지 않고 참된 신앙을 지킬 수 있도록 고백교회의 토대를 놓은 사람이 있습니다. 마르틴 니묄러 목사님이 바로 그분입니다. 그분은 히틀러에 항거한 죄로 1937년부터 7년간 다차우 감옥의 독방에서 수감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가 갇혀 있는 방에는 조그마한 창문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유일하게 바깥을 내다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창을 통해 볼 수 있는 바깥의 풍경은 결코 행복할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창문 너머로 보이는 것은 죄인의 목을 매는 밧줄과 교수대가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무슨 .. 2021. 10. 12.
그것이 훗날 그 유명한 파스칼의 ‘팡세’ 프랑스의 사상가 파스칼은 39세라는 짤막한 삶을 산 사람입니다. 그는 천재 수학자요 과학자요 철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게 이성적이고 철학적이고 계산적인 파스칼이었는데, 그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하나님께서 불 가운데 찾아오신 ‘불 체험’이 그것이었습니다. “1654년 11월 23일 밤 10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 불 불 불이 내렸다. 하나님은 철학자의 하나님 수학자의 하나님이 아니었다. 그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었다. 이 확신 이 감격 이 기쁨 이 평화 이 환희의 눈물 아멘!” 이것은 그가 겪은 체험을 자신의 쪽지에 써 놓은 감동적인 글입니다. 파스칼은 전혀 예상치도 못한 그 밤에 성.. 2021.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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