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민기 목사의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었다〉
홍민기 목사님는 12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미국의 고든대학(Gordon College)에서 성서학을 공부하면서 청소년 집회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이후에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M.Div)를 받았습니다.
2002년에는 한국에 들어와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영성교육학 신학석사(Th.M)를 받았습니다.
그분은 전도사 시절에 청소년 사역에 집중했는데 ‘탱크전도사’라 불렸습니다.
미국 퀸즈장로교회 전도사로 섬길 때 50명의 청소년들이 1년 반 만에 30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분이 청소년수련회를 개최하면 꼭 가져가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담배였습니다.
담배피우는 청소년들에게 아침점심저녁을 먹고 나서 피울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 청소년들이 20〜30명씩은 되었고, 그들에게 직접 담배 불을 붙여줬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감사해서 그 친구들이 앞자리에 앉고, 말씀을 듣다가 성령을 체험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자리는 그만큼 중요한 자리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사정을 모르는 퀸즈장로교회 장로님들은 “네가 전도사냐?”하면서 그 전도사에게 호통을 쳤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자기 손주들이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영향을 받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교회의 본질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교회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요, 누구든지 와서 성령안에서 변화돼야 한다고 말입니다.
예수님 곁에도 세리와 창녀와 수많은 죄인들이 주님께 나와 변화된 것처럼 말입니다.
그만큼 교회의 중직자들이 자기 의나 권위에 갇힌 채 새로운 사람을 가로막으면 교회부흥은 멀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술담배를 해도, 도박판을 기웃거려도, 부랑자라도,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우리가 품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목사님이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2007년 잠실에 ‘함께하는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 교회도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개척했는데, 3개월만에 100명의 학생들이 모였다고 합니다.
그 학생들에게 밥을 먹이고 꿈을 심어줬는데, 1년 뒤엔 그 부모님들이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도 모두가 십일조만 잘 드려도 그와 같은 사역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긍휼어린 사역을 감당하면서 4년 만에 그 교회도 대부흥을 맞았습니다.
그때 미국 대형교회인 LA동양선교교회 담임목사청빙제의가 들어왔는데, 그분은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2011년 부산의 한 대형교회인 호산나교회에서 담임목사 청빙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이번에도 많은 목사님들은 그 교회에 가지 않겠지 생각했는데, 기도 중에 그분은 갔습니다.
그리고 4년 만에 호산나교회는 1,500명이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송태근 목사님이 부임한 서울 삼일교회는 4년간 1만 명 이상이 줄었습니다.
그런데 송태근 목사님은 지금껏 교회를 섬기고 있는데, 홍민기 목사님은 4년만에 내려놓았습니다.
원로 목사님과 마음이 맞지 않는 등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 분은 자신의 건강상의 문제라면서 교회를 사임하고 말았습니다.
어떻습니까?
4년간 1,500명이나 부흥한 그 교회를 그 목사님이 사임할 것을 누가 생각 했겠습니까?
50대 초반의 나이로 장래가 너무나도 유망한 분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큰 고충을 겪었으면 그런 결정을 했을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그 모든 책임을 자신의 부족함으로 돌리면서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는 기도원에 들어가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하소연도 하고 또 떼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때 필리핀의 선교사님으로부터 초청을 받았고, 이후 아프리카를 돌면서 선교사님들을 위로하는 사역을 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대형교회에서 목회했다면 자신도 모르게 괴물이 되었겠지만,
아무 것도 없는 그 모습, 그 실패작 모습을 통해 선교사님들이 더욱 큰 위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4년이 지날 무렵 주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 다시금 교회를 개척도록 강권했습니다.
주변의 권유 속에서 호산나교회와 떨어진 해운대고등학교에 교회를 세우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까?
크고 높은 봉우리일수록 골짜기는 더 깊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않습니까?
직책이 높고 맡은 일이 클수록 짊어져야 할 책임감도 더 무겁다는 것 말입니다.
그런 일을 자기 욕심껏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를 사랑하시기에 기도원과 아프리카 광야로 부르신 것 아니겠습니까?
그 속에서 온갖 것들을 비우게 하시고 말씀과 기도를 통해 성령의 은혜를 덧입도록 말입니다.
그런 광야의 삶을 통해 그런 고백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성령님은 이끄신 것 아니겠습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1-4)
그 성령님은 우리에게도 찾아와 위로해주시고 새 길을 열어주시는 분이신 줄 믿습니다.
내가 힘들어 할 때도, 지쳐 쓰러질 때도,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는 분이신 줄 믿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처럼 길이 막혀 있을 때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는 분이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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