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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호레이쇼 스패포드(H. G. Spafford)는 1860년대 시카고에서 성공한 법률회사 사장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린드대학교와 시카고의과대학의 법리학 교수이자 노스웨스트 장로교신학교 이사요 운영위원이었죠.
그와 그의 아내 안나 스패포드는 세계적인 전도자 무디와 절친한 친구로 무디교회의 회계집사와 주일학교 교사로 섬겼습니다.
그런데 그의 나이 43세 되던 해인 1871년 시카고 북쪽의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대화재로 전재산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 재난 직전에는 급성 전염성 피부질환으로 첫째 아들도 잃었습니다.
그토록 엄청난 시련을 당한 스패포드와 그의 가족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적은 휴식이었습니다.
1873년 그는 아내와 네 딸 그렇게 온 가족이 유럽 여행을 가기로 계획했습니다.
때마침 유럽에서 복음전도사역을 전개하고 있던 친구 무디의 전도집회도 돕고 싶었습니다.
1873년 11월 15일, 스패포드의 아내와 네 딸을 비롯한 많은 승객을 태운 프랑스 여객선 빌르 드 아브로는 뉴욕항을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출항 몇 분 전에 스패포드는 사업 때문에 지연이 되어 나중에 따라갈 요량으로 배에서 내렸습니다.
아내와 네 딸 그리고 많은 승객을 태운 그 배는 출항했고 순항하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모두 깊은 잠이 든 22일 새벽 2시, 그 배는 대서양 한 가운데서 영국 철갑선 ‘라키언’ 호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말았습니다.
배는 226명의 생명을 안고 바다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죠.
그토록 긴박한 상황에 스패포드의 딸들은 모두 배와 함께 잠겼고 그의 아내만 물 위에 떠올라 구명정에 의해 구조되었습니다.
그로부터 9일이 지난 후 다른 생존자와 함께 웨일즈와 카디프에 도착한 스패포드의 부인은 ‘혼자만 살아남았음(Saved Alone)’이란 짤막한 전문을 남편에게 보냈습니다.
그 소식을 전해 받은 스패포드는 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딸들을 잃고 정신없이 헤맬 그의 아내가 걱정돼 부인을 데리러 가기 위해 배에 올랐습니다.
배에 탄 후 선장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선장은 스패포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지금 이 배는 딸들이 잠긴 물 위를 지나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애써 잔잔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던 스패포드의 마음에 커다란 파도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깊은 그곳에 잠들어 있을 딸들을 생각하니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그는 선실로 돌아와 아픔과 슬픔으로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주님, 누구보다도 주님을 사랑했던 저에게 왜 이 큰 시련을 주시는 것입니까?”
그는 방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했고 주변 사람들은 그의 믿음이 혹시라도 실족할까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요?
절망 속에서 탄식하며 기도하던 스패포드의 마음 속에 갑자기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신뢰와 평안이 솟구치시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의 입술에서는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평안의 고백을 자신도 모르게 하고 있었습니다.
“평안해, 내 영혼 평안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It is well, It is well with my soul. God's will be done!)
그러고는 아침이 되자 스패포드는 주님이 주신 영감으로 시를 써내려 갔습니다.
그 시가 바로 ‘내 영혼 평안해(It is well with my soul)’입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 벌리고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 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겠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찬송가 413장)
(깨달음)비단 세월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가족이 배를 타고 가다가 침몰해 목숨을 잃었다면 그 누구보다도 가슴 아픈 일 아니겠습니까?
그토록 하나님께 헌신한 스패포드가 침몰사고로 딸들을 모두 잃었을 때 그러니 하나님 앞에 얼마나 많은 괴로움을 토로했겠습니까?
그런데 그의 눈물과 탄식의 기도를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그 심령에 평안과 위로로 주셨고 하늘나라의 소망을 부어주셨던 것입니다.
(적용)우리의 삶도 실은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2023년 전반기의 삶에 누구보다도 애쓰며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살았어도 실은 나그네 삶이지 않습니까?
누구보다도 신실하게 일했어도 하나님께서 가족 중 누군가를 부르신다면 언제라도 떠나야 할 존재들입니다.
물론 이 세상을 떠나되 저 영원한 본향 천국에서 다시 볼 수 있기에 하나님의 평안과 소망을 품을 수 있죠.
실은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모습이지 않겠습니까?
이 땅에 벌거숭이로 태어났다가 죽을 때도 벌거숭이로 가는 것 말입니다.
그만큼 이 땅에 사는 곳은 임시 장막집이요 머잖아 하늘나라로 가야 할 육신의 장막에 불과할 뿐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바로 그 사실을 잊지 않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 가지 절기를 지키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3613992
(역배)이스라엘 민족은 7대 절기를 지킨다고 했습니다.
4월에는 유월절(레23:4-5)과 무교절(레23:6-8)을 지킵니다.
5월에는 초실절(레23:9-14) 그리고 6월에는 맥추절(레23:15-21)을 지킵니다.
10월에는 나팔절(레23:23-25)과 속죄일(레23:26-32)을 각각 지키죠.
그리고 10월 중순경 초막절(레23:33-34)을 지킵니다.
그 7대 절기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3대 절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유월절과 맥추절과 초막절입니다.
우리가 24절기에 맞춰 농사를 짓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래야 풍성한 소출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죠.
우리나라 정부가 국경일마다 행사를 거행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라의 존립 자체를 생각하고 앞으로 더 굳게 지켜나가고자 다짐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3대 절기를 지키도록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각 절기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되새김질하고 그 뜻을 다짐하도록 하기 위함 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땅에서는 보리 추수를 3-4월인 유월절에 합니다.
밀 추수는 5월 곧 맥추절이자 칠칠절 때 하게 됩니다.
과일이나 채소는 9-10월경 곧 초막절에 거두게 되죠.
율법은 1년 중 세 차례 거두는 그 수확물들을 가지고 성소에 나가 제사장에게 바치면서 절기를 지키토록 규정하고 있죠.
그중에서도 유월절은 애굽 땅에서 400년간 종살이한 그들을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통해 해방시켜주신 것을 기념토록 한 절기죠.
맥추절 곧 칠칠절은 한 해 농사한 첫 곡식을 추수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는 절기죠.
초막절은 한 해 추수를 마치고 광야에 나가 7일을 거하면서 광야 40년 생활을 떠올리며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그런 절기마다 예물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성소에 나가 드리도록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절기를 지키지 않는다면 이스라엘 백성 자신들이 능력이 있어서 그렇게 살아왔노라고 착각할 수 있기 때문이죠.
자식이 직장에서 승진하고 많은 연봉을 받으면 마치 자신이 잘 나서 그렇게 된 것인 양 말이죠.
그런 위치에 오르기까지 부모의 눈물과 땀이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 부모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소출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한 해 풍성한 농사를 지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임을 되새김질하라는 것입니다.
(본문)본문은 무교병 곧 유월절과 맥추절에 이어 세 번째 꼭 지켜야 할 수장절에 관한 말씀입니다.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16b)
(원해)우리말 ‘수장절’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시프’(אָסִיף)는 ‘모으다’(ingathering) ‘수확하다’(harvest)는 뜻입니다.
레위기 23장 33-43절에서는 초막절로 나와 있는데 이렇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열닷샛날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라
첫 날에는 성회로 모일지니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이레 동안에 너희는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여덟째 날에도 너희는 성회로 모여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너희는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이것들은 여호와의 절기라 너희는 공포하여 성회를 열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번제와 소제와 희생제물과 전제를 각각 그 날에 드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안식일 외에, 너희의 헌물 외에, 너희의 모든 서원제물 외에 또 너희의 모든 자원제물 외에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니라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일곱째 달 열닷샛날부터 이레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 날에도 안식하고 여덟째 날에도 안식할 것이요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너희는 매년 이레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일곱째 달에 이를 지킬지니라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깨달음)‘초막절’로 번역된 히브리어 ‘수카’(סֻכָּה)는 ‘덤불’(thicket) ‘보호’(covert) ‘부스’(booth)를 뜻하는 말입니다.
‘초막절’이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 40년을 살 때 임시천막을 설치하며 옮겨 다니던 날을 되새김질하라는 거죠.
광야에서 임시천막을 치며 옮겨다닐때 하나님께서는 적들과 맹수들의 공격으로부터 그 백성을 지켜주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시원케 해 주셨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따뜻하게 지켜주셨죠.
임시천막의 나그네 삶 속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물이 없는 곳에서는 반석을 터트려 물이 나게 해서 마시게 해 주셨죠.
임시천막의 나그네 삶 동안 옷과 신발이 낡거나 해어지지 않도록 보살펴 주셨습니다(신29:5).
그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 곡식을 거둬 창고에 들이는 수장절 날 광야 40년의 임시천막 시절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도록 초막절로 지키게 한 것입니다.
(원성)그런데 그 백성들만 초막절을 지키며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김질 했습니까?
바벨론 포로에 끌려갔다가 70년 만에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도 초막을 짓고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너희는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들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가져다가 기록한 바를 따라 초막을 지으라 하라 한지라
백성이 이에 나가서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혹은 지붕 위에, 혹은 뜰 안에, 혹은 하나님의 전 뜰에, 혹은 수문 광장에, 혹은 에브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짓되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중이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일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기뻐하며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이레 동안 절기를 지키고 여덟째 날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 ”(느8:15-17)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은 모든 자손들이 광야에 나가 초막을 세우고 초막절을 지킨 것입니다.
그때 그들에게 텐트 같은 게 있었겠습니까?
광야에 나가 나무가지를 주워 임시 부스를 만들어 낮엔 더위를 밤엔 서리를 피했던 것이죠.
그러면서 과거 조상들이 광야 40년 동안 임시텐트를 만들어 거할 때 지켜주신 그 은혜를 떠올리며 지금 포로에서 돌아와 이곳에 살때까지 그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죠.
(깨달음)그러니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도 초막절을 지키면서 그걸 깨닫지 않았겠습니까?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의 삶도 실은 바벨론의 임시 초막의 삶이었다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광야 40년 나그네 삶을 산 이스라엘 백성과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만 그런 것입니까?
바울도 실은 임시천막을 만드는 자 곧 장막 만드는 자(tent maker)였습니다.
태어나면서 로마 시민권자의 자격을 갖춘 바울은 제국이 깔아놓은 탄탄대로를 달릴 수 있었죠.
하지만 바울은 세계 곳곳에 길목에서 임시거처에 머무르며 복음을 전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 삶이 임시장막을 세우는 삶이자 하나님의 나라의 초막을 세우는 일이요 교회를 세운 삶이었죠.
바울은 길에서 잠을 잤고 길에서 돌에 맞아 죽기도 했고 옥중에 갇히기도 했고 배가 파선당하기도 했죠.
바울에게 그 초막의 삶은 고통스러운 광야여정길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때마다 바울과 함께 해 주셨습니다.
마침내 로마의 메마르틴 지하감옥에 순교당할 때 그는 육신의 장막을 벗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고후5:1)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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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2023년을 살아온 우리의 삶도, 머잖아 영원한 본향에 가야될 우리의 모습도 그와 동일하지 않겠습니까?
2023년 전반기의 삶 동안 의식주를 비롯해 많은 계획을 갖고 살아왔지만 내 뜻대로 된 게 얼마나 있습니까?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잠16:9)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6:26)하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2023년 전반기를 내 힘과 내 계획대로 살아온 것 같지만 실은 우리 주님께서 의식주를 비롯해 모든 삶을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신 결과 아닙니까?
그만큼 우리가 살아온 2023년 전반기의 삶도 광야 40년 나그네의 삶, 바벨론 포로의 나그네 삶, 바울의 임시장막과 같은 삶과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광야 40년 임시장막의 삶 동안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지켜주신 것처럼, 바벨론 포로 70년 임시장막의 삶 동안 긍휼과 자비로 베푸신 것처럼, 바울의 임시장막의 삶 동안 온갖 환란과 고난에서 지켜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머잖아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소명을 다하다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 모두는 육신의 장막집을 벗고 영원한 본향집에 들어가게 될 줄 믿습니다.
이것이 수장절 곧 초막절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요 오늘 우리에까지 새기면서 지키도록 한 것 아니겠습니까?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은혜)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 위의 임시장막에 사는 날 동안 먹이고 입히시는 은혜를 베푸실 뿐만 아니라 육신의 장막을 벗는 날 영원한 본향에 입성케 하시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이죠.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왜 3대 절기를 철저하게 지키도록 했는지 이제는 알 수 있지 않겠느냐?”
“수장절 곧 초막절을 지키라는 이유도 주님께서 베푸신 그 은혜를 잊지 말고 살라는 뜻 아니더냐?”
“광야 40년 나그네 임시장막시절에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해주신 그 은혜를 잊지 말도록 말이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전답을 일구며 무화과와 포도나무와 올리브를 거둘 수 있는 것도 그 광야시절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지 않더냐?”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과 성벽을 재건한 것도 70년 임시장막의 삶이요 실은 바울도 텐트메이커로서 길 위에 임시장막 곧 하나님나라를 세우는 삶이었지 않더냐?”
“그리고 그 사명을 다하여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그의 육신의 장막을 벗고 영원한 본향에 입성하는 은혜를 베풀지 않았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2023년 전반기의 삶 동은 너의 계획대로 너의 뜻대로 된 것이 얼마나 있더냐?”
“오히려 네가 계획하고 네가 뜻한 것보다도 하나님께서 앞뒤좌우에서 보호해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신 일들이 훨씬 더 많지 않더냐?”
“주님의 은혜로 너의 나그네 임시장막의 삶을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셔서 2023년 전반기의 삶을 살아온 것 아니더냐?”
“그렇기에 2023년 하반기의 삶도 광야를 헤쳐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처럼 그리고 바울처럼 주님께서는 너의 나그네 임시장막을 삶을 굳건하게 붙들어주지 않겠느냐?”
“그 사명의 삶을 다하다 주님께서 오늘이라도 너를 부르신다면 이 육신의 장막을 벗고 영원한 하늘나라로 부르시지 않겠느냐?”
“그것이 수장절 곧 초막절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김질하는 것이니 너도 나그네 인생길에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찬양)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 벌리고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 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겠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내 지은 죄 주홍빛 같더라도 주 예수께 다 아뢰면 그 십자가 피로써 다 씻으사 흰 눈보다 더 정하리라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저 공중에 구름이 일어나며 큰 나팔이 울릴 때에 주 오셔서 세상을 심판해도 나의 영혼은 겁 없으리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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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임자 반석교회 출신인 제 후배 목사가 있습니다.
중학교 때 목포로 나와서 동생과 함께 할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유학을 했습니다.
지금은 100kg가 넘는 거구지만 그 때는 외소했던지 또래 아이들에게 학교폭력에 시달렸습니다.
심지어 또래 아이들이 싼 오줌도 먹도록 하는 폭력에 시달렸습니다.
세월이 지나 대학교를 졸업하고 어느 날 다시금 그 친구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키와 몸짓이 너무나도 커서 오히려 그 친구들이 피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을 보니까 그때의 일이 떠올라 너무나도 괴로웠던 것이죠.
그때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너무나도 힘든 시절의 그 모습이 괴롭다고 주님께 탄식하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때 주님께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환상으로 비춰주시면서 그렇게 말씀하더라는 것입니다.
“규성아. 네가 친구들에게 시달리고 오줌까지 먹어야 하는 수치심을 겪을 때 내가 너를 내버려 둔 줄 아느냐?”
“나는 그 자리에 너와 함께 하고 있었단다.”
“나는 너를 외롭게 하지 않았고 언제나 네 편이 되어 너를 지켜주고 있었단다.”
“이제는 그 친구들을 용서하면 좋겠구나.”
주님께서 그렇게 자신에게 속삭일 때 그토록 족쇄와도 같았던 학교폭력의 억눌림이 모두 사라지는 것을 체험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을 마음 속으로 용서하게 되었고 주님 안에서 그 모든 소망을 품고 살게 되었습니다.
(예화)신앙시 가운데 ‘모래 위에 새겨진 발자국’(Footprints in the Sand)이란 시가 있습니다.
그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나는 한 꿈을 꾸었다.
지평선 너머로 나의 삶이 섬광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주님과 함께 해변을 걷고 있었다.
백사장에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하나는 나의 것이었고, 또 하나는 주님의 것이었다.
나의 삶의 마지막 장면들이 내 앞에 전개되었을 때, 나는 모래 위에 새겨진 지나온 발자국들을 뒤돌아보았다.
놀랍게도 내가 지나온 그 길에는 한 사람의 발자국만이 새겨진 곳들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그 시기들이 내게 있어 가장 지치고 슬펐던 때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주님에게 그 이유를 물어 보았다.
“주님, 당신께서는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언제나 저와 함께 걷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저의 삶에 있어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들 동안에 단지 한 사람의 발자국이 새겨진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한 그 때마다 주님은 왜 저의 곁을 떠나셨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사랑하는 자녀야, 네가 당한 시련의 때에 나는 결코 너를 떠나지 않았단다.
한 사람의 발자국만이 새겨진 것은 그때마다 네가 너를 안아 지나갔기 때문이란다.”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하는 시 같습니까?
제 후배 목사가 20년 전 중고등학교 시절에 고통스럽고 수치스런 학교폭력을 겪을 때 주님은 함께 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모래 위의 발자국이 자기 것만 있는 것 같지만 주님은 그때 그를 안고 지나왔다고 이야기해주는 것이죠.
마치 출애굽기 19장 4절의 말씀처럼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40년 임시장막의 세월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독수리 날개로 업어서 인도하셨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적용)2023년도 전반기 우리의 삶이 그랬을지 모릅니다.
내가 겪은 일들이 무겁고 힘에 부칠 때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주님께 불평하고 원망했을지 모릅니다.
왜 남들은 잘 헤쳐나가는데 왜 나는 내가 계획한 일들이 번번히 막히는지 모르겠다고 하나님께 탄식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때마다 나를 팽개쳐두시는 분이 아니라 독수리 날개로 나를 안아서 인도해주신 줄로 믿습니다.
바다가의 모래 위 발자국이 하나인 것이 내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업어서 인도해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 위에 사는 날 동안 임시 장막의 처소에 거하는 우리의 삶 속에 그렇게 독수리 날개로 안아주시는 주님이신 줄 믿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장막에 거할지라도 이 땅 위의 장막은 임시 장막이요 바울처럼 텐트 메이커로 복음의 장막을 짓는 사명자들인 줄 믿습니다.
머잖아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어서오시옵소서, 믿음으로 환영하며 맞이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내기도)그렇기에 우리가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이 땅 위에 험한 길 가는 동안 주님은 나를 내 팽개쳐두신 분이 아니라 나를 안아주시고 함께 동행하신 분인 줄 믿어요.”
“제 후배 목사가 고통을 겪을 때도 그렇게 해 주셨고 바닷가 모래 위를 걸을 때 그 걸음이 하나였던 것도 주님께 업어서 인도하신 까닭이었네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 광야 나그네 임시 장막의 삶을 살때도, 바벨론 포로생활을 할때도, 바울의 나그네 임시장막의 삶속에서도 주님은 그렇게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셨어요.”
“2023년 전반기에도 독수리처럼 나를 업어서 인도해주신 주님, 2023년 하반기에도 주님께서 친히 엎어주시고 안아주셔서 인도해주실 줄 믿어요.”
“그리하여 주님께서 이 땅 위에 재림하실 때 ‘아멘 주 예수여 어서오시옵소서’ 마라타나의 신앙을 갖고 나그네 임시 장막의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그것이 수장절 곧 초막절을 통해 제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인 줄 믿습니다.”
(찬양)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땅의 모든 끝 모든 족속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모든 열방이 주께 돌아와 춤추며 경배하게 하소서
우리주님 다시 오실 길을 만들자 십자가를 들고 땅끝까지 우린 가리라
우리 주님 하늘 영광 온 땅 덮을 때 우린 땅끝에서 주를 맞으리
마라나타 마라나타 아멘 주예수여 오시옵소서 마라나타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땅 위의 삶은 잠시 왔다 가는 나그네 삶이요 임시장막에 거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장막을 벗는 그 날 우리는 영원한 하늘나라의 집에 가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광야 40년 이스라엘 백성들, 70년 바벨론 포로로 살았던 유다 백성들, 길 위에 임시장막을 펼치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던 바울도 모두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셨습니다.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제 후배 목사도, 그리고 바닷가 모래 발자국이 하나 밖에 없는 그때도, 주님은 독수리 날개짓으로 품어주시고 안아주셔서 친히 인도해주신 줄 믿습니다.
2023년 전반기에 어떤 나그네 인생 어떤 임시장막의 삶을 살아왔어도 주님은 독수리 날개로 안아주신 줄 믿습니다.
그렇기에 2023년 하반기에 어떤 나그네 인생길을 살더라도 그 현장에 주님께서 독수리 날개로 안아주시고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육신의 장막을 벗는 그 날이 저 영원한 하늘나라의 본향에 입성하는 날로 맞이하게 히실 줄 믿습니다.
그런 수장절 그런 초막절을 되새김질 하면서 2023년 하반기에 주님의 크신 은혜로 함께 해 달라고 우리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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