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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성화)야곱이 밧단 아람 외삼촌 집에서 20년 넘게 죽을 고생하며 일을 하며 살았죠.
그 과정 속에서 두 명의 아내와 두 명의 첩을 통해 11명의 자식을 얻게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소유도 많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꿈에 환상 가운데 야곱에게 나타나 고향 땅 브엘세바로 돌아가도록 명령했죠.
그러자 야곱은 처자식들과 종과 소유물을 거느리고 외삼촌 라반의 집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그 길목을 지키고 있을 때 홀로 얍복강에 남아 하나님께 기도의 제단을 쌓았죠.
그날 야곱은 밤새도록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와 씨름하면서 기도를 했는데 급기야 천사가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절게 되었죠.
절뚝발이 모습으로 에서에게 나타난 동생 야곱을 봤을 때 형 에서는 측은지심이 들어 모든 걸 용서하게 되었죠.
그리고 함께 자신이 거주하는 세일산 암벽 동굴로 가자고 했지만 야곱은 어떤 화를 당할지 몰라 그곳 세겜에 남겠다고 했죠.
그런데 그 세겜 땅 추장 하몰의 아들이 그곳을 구경 나온 야곱의 딸 디나를 강간했고 그 일로 야곱의 아들 셋이 피비린내 나는 일을 저질렀죠.
르우벤 시므온 레위가 세겜 족속들에게 할례를 해야 자기 동생을 추장 아들에게 줄 수 있다고 하면서 그들이 할례를 행할 때 모조리 칼로 죽여버렸죠.
그 일을 모두 알게 된 야곱이 그때 어떻게 합니까?
이 모든 화근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방향을 좇지 않고 나 보기에 좋은 것에 취해 살고 있어서 이런 일을 겪는구나, 생각했죠.
그때 야곱이 결단한 일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창35:3-5)
(깨달음)야곱은 지나온 인생길에 환란을 당했을 때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던 그 벧엘로 올라가자 제단을 쌓자는 것입니다.
그때 아들들과 며느리들이 섬기고 있던 이방 신상들을 모두 야곱에게 줬고 그것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었죠.
그리고서 벧엘로 향해 올라가 하나님께 예배의 제단을 쌓는데 야곱과 그 자손을 추격하는 자가 없도록 하나님께서 지켜주신 것이죠.
(적용)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게 무엇입니까?
야곱은 비록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았을지라도 그 아들들과 며느리들은 밧단 아람의 종교에 심취한 채 우상의 장신구들을 달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하나님의 제단을 쌓자고 결단할 때 그 아들들과 며느리들이 취하고 있던 각종 우상 단지들을 모두 땅에 묻고 나아간 것이죠.
이를테면 부모와 자식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하나님께 전심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인생의 위기, 가정의 위기, 공동체의 위기 앞에, 하나님께 한 마음 한 뜻으로 제단을 쌓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럴 때 그 모든 위기와 고난을 하나님께서 해결해주고 평강과 은혜를 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성화2)이런 모습은 바벨론 포로 이후에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왕국 유다 백성들의 죄로 인해 심판하셨지만 그 언약백성들을 70년만에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해 주셨죠.
1차 포로귀환자들의 인솔자는 스룹바벨 총독과 제사장 예수아였는데 포로 귀환자들과 함께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게 되었죠.
물론 성전재건의 방해꾼들이 있어서 중단된 후에 20년만에 완공하게 되었죠.
그 후에 바벨론 땅에 태어난 아론의 16대 자손인 에스라의 주도로 2차 포로귀환이 있었는데 백성들의 심령을 재건코자 했지만 잘 되지 않았죠.
그 후에 페르시아의 술맡은 관원장 느헤미야의 주도로 3차 포로귀환이 있었는데 그때 성벽과 성문을 재건하게 되었죠.
물론 성벽과 성문을 재건할 때도 성전을 재건할때처럼 방해꾼들이 있었는데 철저한 무장을 하면서 52일만에 완공했죠.
그것이 컴퓨터의 하드웨처럼 외부를 재건하는 일이라면 컴퓨터의 소프트웨어처럼 백성들의 심령을 재건하는 것도 중요했죠.
그때 느헤미야의 주도로 온 백성들이 수문 앞 광장에 모였고 에스라가 하나님의 율법를 낭독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성경은 그렇게 증언합니다.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호여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느8:5-6)
온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질 때마다 ‘아멘 아멘’하며 땅 바닥에 엎드려 경배하는 모습을 취한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세대 모든 공동체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삶을 회개하며 다짐한 것입니다.
그 결단의 의식으로 초막절을 지켰고 하나님의 성전 곳간에 먹을 것을 채워넣었고 이방 여인을 아내로 삼은 자들은 다 돌려보냈죠.
그러자 그 땅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임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합니까?
공동체의 삶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 인생의 위기가 찾아왔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시는 것이죠.
부모와 자녀 세대 할 것 없이 무든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결단하는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도 바로 그것이죠.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0899457
(역배)북왕국 이스라엘의 7대 왕 아합은 두로의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정략결혼이 아니라 그녀를 통해 바알과 아세라 신이라는 두로의 신을 들여오는 일이었죠.
그녀는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 온 산지에 바알과 아세라 신상을 세웠고 온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등지고 우상을 숭배하도록 조장했죠.
북이스라엘이 두로의 신인 바알과 아세라 곧 풍요와 번영의 신을 숭배하면 두로처럼 부국강병할 수 있다고 말이죠.
그를 위해 왕실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보호하고 먹고 살 수 있도록 다 뒷받침을 해 준 것이었죠.
그러나 하나님은 시퍼렇게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고자 엘리야를 통해 하신 말씀이 있었죠.
‘나 여호와의 말이 있기 전에는 이제부터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 하고 말이죠.
그때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을 두려워하여 요단강 앞 그릿 시냇가에 숨어들어갔는데 하나님은 까마귀를 통해 먹이셨죠.
또 시돈 지역의 사르밧 과부에게 가서 먹을 것을 공궤받도록 했죠.
그때 그녀는 자기 아들과 함께 한 끼 식사를 하고 죽으려고 했는데 엘리야가 먹을 것을 달라고 하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엘리야를 섬겼을 때 그 집에 밀가루와 기름통이 마르지 않는 복을 받게 되었죠.
더욱이 그 아들이 머리가 아파 죽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통해 그 아들의 생명을 살려내는 통로로 삼게 하셨죠.
왜 그 같은 일을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까?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명을 받아 아합과 이세벨 앞에 설 때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죠.
먹을 것이 굶주림에 처할 때 하나님께서 먹이고 입히시겠다는 것이죠.
심지어 네가 아합와 이세벨의 공격을 받아 죽는다 할지라도 네 생명을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시겠다는 것을 예표로 보여준 거죠.
이제 3년 6개월이 지날 때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아합과 이세벨 앞에 보냈습니다.
그때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갈멜산으로 보내서 누가 참 신인지 대결을 하자고 말했죠.
그래서 850명의 선지자들과 엘리야 선지자 한 명이 갈멜산에 올라갔는데 이스라엘의 수많은 구경꾼들이 그곳에 올라왔죠.
그러자 바알과 아세라 850명의 선지자들은 제단을 쌓고 그 위에 각을 뜬 송아지 제물을 올려 놓고 아침부터 정오까지 바알과 아세라 신을 불렀죠.
그래도 응답이 없자 춤을 추면서 요란한 행동을 했고 그래도 하늘로부터 불의 응답이 없자 이제는 칼로 자해하면서 불의 응답을 간구했죠.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부채춤과 칼춤을 출지라도 하늘로부터 불의 응답은 임하지 않았습니다.
(원해)그것이 오늘 읽은 말씀 전 단계에 나오는 부분이죠.
26절에 보면 그들은 바알을 위한 제단 앞에서 ‘뛰놀더라’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여기에 ‘뛰놀다’는 히브리어 ‘파사흐’(פָּסַח)는 ‘뛰어넘다’(pass over) ‘춤추다’(dance)는 뜻과 함께 ‘절뚝거리다’(to limp) ‘절름발이가 되다’(to be lame)는 뜻이 있습니다.
몇 몇 영어번역에서는 춤을 추는 것으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절뚝거리는 모습’ ‘절름발이가 된 모습’으로 번역하고 있죠.
갈멜산에서 구경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기에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의 모습은 흡사 바알 신 앞에서 신비로운 춤을 추는 모습처럼 보이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엘리야의 눈에는요?
하나님을 섬기는 엘리야의 눈에는 그들이 모습이 절뚝발이 모습 절름발이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마치 무당이 굿판을 벌일 때 부채춤을 추고 구슬을 돌리고 때로는 칼춤을 추는 것이 신성한 춤처럼 보일 수 있겠죠.
하지만 크리스천의 관점 신앙인의 관점에서 그것은 신성한 춤이 아니라 절뚝발이 곧 절름발이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깨달음)우리 주님은 말씀하셨죠.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도둑이 오는 것 곧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짓밟고 지옥으로 끌고 갈 흑암의 세력들은 모두 도둑과 같다는 것입니다.
무당이 굿판을 벌이는 것 역시 귀신에게 쓰여 그런 짓이니 그 부채와 칼춤이 아무리 화려해도 절뚝발이 절름발이 인생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실제로 무당이 굿을 벌이고 부채춤을 추고 칼 춤을 출 때만 해도 영험하고 신통방통 다 맞추는 것 같죠.
하지만 3-5년만 지나면 그 신기는 다 떨어지고 결국 그 무당을 갖고 논 귀신은 그 무당을 패가망신시키고 떠나버리죠.
그러니 그 인생이 어찌 절뚝발이 인생 절름발이 인생이 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전에 어떤 무당으로 살았어도 하나님 앞에 나오면 그 인생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케 하신다는 것이죠.
이전의 절뚝발이 인생 절름발이 인생에서 영원한 생명의 자녀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게 해주시기 때문이죠.
(적용)그런데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의 부채춤과 칼춤을 추는 모습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내가 이 세상의 것들을 더 많이 얻고 더 많이 누리고자 이 사람 앞에 저 사람 앞에 발버둥치는 모습 말이죠.
하나님의 중심은 다 제쳐놓고 내 주변의 세상 사람들이 취하는 방식만을 좇아 온통 바쁘게 돌아다니는 모습 말이죠.
그것은 마치 목적도 없이 방향도 없이 아무 것이나 붙잡고 경배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는 모습이죠.
크리스천이라는 무늬만 가진 채 하나님을 향한 중심어린 신앙을 잃어버리면 우리도 그런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의 모습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화려하고 그것이 아무리 크고 멋져보여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절름발이 절뚝거리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는 거죠.
지금 내가 무엇 때문에 부채춤을 추고 칼춤을 추듯이 바쁘고 분주한가?
지금 내가 누구 때문에 요란법석을 떨면서 아무 것이나 붙잡으려고 소리치고 있는가?
그것이 자식일지라도, 그것이 돈과 명예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목적과 방향을 놓친 것이라면 절름발이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죠.
그만큼 세상의 화려함과 멋드러진 모습에 현혹되기보다, 내 열심을 다하면 성공할 것 같은 그런 맹신보다 오직 하나님을 향한 정조준된 시선을 갖고 살라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60620580
(본문)오늘 본문은 그 이후의 상황을 증언해주는데 본문 30-32절 상반절까지 읽어보시겠습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엘리야가 돌 열두 개를 취하니 이 야곱은 옛적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고”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이 제단을 쌓고 번제물 앞에서 절름발이 모습을 보인 그 제단을 다시금 수축하도록 하죠.
그 굿판을 벌이며 무너진 제단을 다시금 하나님을 위한 번제단으로 새롭게 쌓게 한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이 돌 12개를 취해 그 돌로 하나님을 향한 번제단을 다시 쌓도록 한 것이죠.
그 번제단 위에 하나님을 향한 번제물을 올려놓고 기도를 하자 불의 응답이 하늘로부터 임했습니다.
(원해)우리말 ‘돌’로 번역된 히브리어 ‘에벤’(אֶבֶן) ‘돌’을 뜻하지만 에덴동산의 보석을 칭할 때도 쓰인 단어입니다.
더욱이 구약시대의 제사장들이 입던 에봇 위에 12개의 돌 곧 12개의 보석을 단 조끼 같은 것을 입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머잖아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 천국의 돌들이 실은 각종 보석으로 꾸며 있음을 말씀해주고 있죠.
그런데 지금 엘리야가 하나님을 향한 번제단을 다시 쌓아 올리고자 한 12개의 돌이 무엇을 뜻하는 것이겠습니까?
이 12개의 돌은 최초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수아와 함께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기념으로 세우게 한 돌입니다.
일종의 기념비와 같은 12개의 돌이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언약을 신실하게 약속하신다는 증거로 12개의 돌을 취해 세우도록 하신 것이죠.
그 돌들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라는 기념비이죠.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12개의 돌이 나오는데 엘리야는 12개의 돌을 취해 하나님을 향한 번제단을 수축하게 한 것이죠.
그 12개의 돌들은 야곱의 12아들 곧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는 돌입니다.
지금 12지파는 남과 북으로 나뉜 상태입니다.
그 12개의 돌처럼 모든 백성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진정으로 연합해서 예배의 제단을 쌓도록 한 것이죠.
(깨달음)그러니 12개의 돌은 온 이스라엘의 부모와 자식들 곧 온 세대가 한 마음으로 한 뜻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제단을 쌓게 한 것입니다.
마치 야곱이 자기 자식들과 며느리들과 손주들이 따로 신을 숭배할 때 어려움을 당한 걸 알고 모두가 우상 붙이들을 땅에 묻고 하나님을 향한 제단을 한 마음 한 뜻으로 쌓은 것처럼 말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이 수문 앞 광장에서 에스라가 율법을 낭독할 때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한 마음 한 뜻으로 무릎을 꿇고 통회자복하듯이 말이죠.
그래서 이제부터는 우리 조상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아 망하고 포로로 끌려갔지만 이제부터는 말씀대로 살아 복된 자녀로 살겠다는 다짐과 결단의 예배를 드렸듯이 말이죠.
그렇듯 지금 엘리야가 12개의 돌을 취해 새롭게 제단을 수축하도록 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식으로 빗대면 가정의 부모와 자식들까지도 그 손주들까지도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배할 때 그 모든 환란과 우환에서 치료와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주시겠다는 뜻이죠.
불의 응답은 바로 그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3년 6개월 동안 가물었던 그 땅에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하게 된 것도 바로 그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에 위기에 찾아왔을 때 온 가족이 함께 하나님을 향해 전심으로 제단을 쌓아 회복케 하시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야곱이 환란날에 자식들과 며느리들까지 우상의 패물을 묻고 벧엘로 올라가 제단을 쌓을 때 회복의 은혜를 베풀지 않았더냐?”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놓쳐 패망하고 포로가 된 것을 깨닫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가 회개하며 회개의 제단을 쌓아 올리지 않았더냐?”
“지금 엘리야가 12개의 돌을 취해 새로운 제단을 쌓게 한 것도 이스라엘의 부모와 자녀세대가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님을 향한 제단을 쌓도록 한 것 아니더냐?”
“그때 비로소 야곱도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손들도 갈멜산상의 구경꾼들도 하나님께서 치유와 회복의 주관자이심을 알게 해주셨으니 말이다.”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네 인생과 네가 속한 가정과 공동체에 어려움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지 않겠느냐?”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라 미래와 희망을 주고자 하시는 주님이지 않더냐?”
“우리 주님은 도적이 오는 것은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지만 양으로는 생명을 얻게 하시고 더 풍성케 하시는 분이지 않더냐?”
“네 인생과 가정의 자녀들과 네가 속한 공동체에 어려움과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 주님을 향해 온 가족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하나님을 향한 제단을 쌓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것이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 치료자 되시고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아 알게 하시는 길이니 말이다.”
(찬양)주님 예수 나의 동산 내 맘속에 동녘 하늘 아침햇살 가득 안고 활짝 피는 백합 같아
그 안에서 이 생명도 피어나는 꽃 되리라 오 하나님 이 꽃 바쳐 주의 재단 밝히리니
은혜로운 사랑으로 하늘 평안 내리소서
주님 예수 나의 동산 내 맘속에 동녘 하늘 아침햇살 가득 안고 자라나는 나무 같아
그 안에서 이 생명도 귀한 재목 되겠어요 오 하나님 이 재목 바쳐 주의 재단 쌓으리니
은혜로운 사랑으로 하늘 평안 내리소서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2960924
(예화)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체션트 칼리지 학장이었던 모건 박사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결혼하자마자 아버지께서 제 집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는 집 안 구석구석을 둘러보셨습니다.
저희 부부는 방이며 거실이며 주방을 다 보여드렸습니다.
이곳 저곳을 둘러보신 아버지께서 큰 소리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집이 크고 좋구나.
하지만 이곳저곳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네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인지, 사탄에게 속한 사람인지 종잡을 수가 없구나’
저는 그 말씀을 듣고 집안 이곳저곳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아버지 말씀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마음을 고쳐먹고 방마다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그림을 걸고 장식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깨달음)그리스도인의 신앙은 그 삶을 통해 확인된다는 것이겠죠?
그리고 그 신앙과 삶은 환경의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의 가정이라면 소장품이나 장식에서부터 차별화된다는 것입니다.
집안 분위기가 신앙생활과 동떨어진 것이라면 문제가 된다는 것이죠.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신혼집에서부터 우상이 될만한 것들은 치우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들로 채우는 모습을 원하신다는 것이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2959805
(예화)미국에 프랭크라는 사업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무일푼으로 시작해 백만장자가 되었죠.
사회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주는 기부가로 지역 신문에는 여러 차례 훌륭한 기업가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지역의 학생들을 위한 장학재단도 설립했고 주민들을 위한 행사에는 언제나 앞장서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번 돈으로 사회에 좋은 일을 하고 존경을 받아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프랭크에겐 모자란 것이 딱 한 가지 있었는데 바로 신앙이었죠.
그는 자신의 힘으로 성공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했고 자신의 노력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사려고 했습니다.
그 계획은 결과적으로 이루어졌지만 결국엔 모든 것들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갑작스레 가정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들은 마약 중독자가 되어 감옥에 갔고 딸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아내마저 급작스럽게 터진 사고들로 인해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그를 떠났습니다.
프랭크는 결국 자신이 지금껏 노력한 일들이 마치 모래 위에 집을 지은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에선 가장 중요한 무언가가 빠졌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닫게 된 것이죠.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지반 아니겠습니까?
지반이 약하면 아무리 호화로운 집이라도 금방 무너지고 말기 때문이죠.
그만큼 믿음의 가정은 부모와 자녀와 손주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제단을 쌓는 가정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회복케 하시는 반석을 세워주시는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그런 가정과 세대를 이루는데 밑거름이 된다면 하나님께서 크신 은혜를 베푸실 줄 믿습니다.
(깨달음)바로 그것이 야곱이 자녀들과 며느리들과 손주들을 통해 새우고자 했던 믿음의 반석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의 모든 후손들을 통해 나라의 기반을 다지고자 했던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이스라엘의 12돌을 취해 제단을 쌓고자 한 것이었죠.
(내기도)그렇기에 오늘 말씀을 듣고 주님 앞에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실지 알 수 있겠죠?
“그래요. 주님. 이 연약한 자를 통해서도 무너진 제단을 새롭게 쌓기를 워하시는 주님이시네요.”
“가정에 주님을 섬기는데 필요한 것들이 있고 우상과 같이 사라져야 할 것들이 있음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해요.”
“이 세상에 아무리 성공을 했어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믿음의 제단이 반석과 같은 기반인 줄 믿습니다.”
“저와 제 자녀들과 나중에 태어날 손주들까지도 온 마음과 온 뜻을 다해 하나님을 경배하는 12돌이 되게 해 주세요.”
“그리하여 3년 6개월 동안 가물었던 땅에 비를 내려주시듯이 저희 가정과 자녀들과 손주들과 일터 위에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찬양)우리 보좌 앞에 모였네 함께 주를 찬양하며 하나님의 사랑 그 아들 주셨네
그의 피로 우린 구원받았네 십자가에서 쏟으신 그 사랑 강같이 온 땅에 흘러
각 나라와 족속 백성 방언에서 구원받고 주 경배드리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도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도다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고 말씀합니다.
가정의 회복과 인생의 치유와 문제의 해결도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고 찬양합니다.
엘리야가 이스라엘의 12개 돌을 취해 제단을 쌓은 것도 부모와 자녀와 온 세대가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님께 제단을 쌓게 한 것이죠.
야곱도 인생 환란과 가정의 고난 앞에 자녀들의 모든 우상패물을 땅에 묻고 벧엘로 올라가 제단을 쌓은 것도 마찬가지죠.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다 민족도 그 공동체가 다시 살 길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예배의 제단을 쌓데 있다는 것을 알게 돼 결단했죠.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아니 부모와 자녀와 손자들의 세대까지도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예배할 때 그런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 은헤가 충만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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