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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서울 관악구에 있는 ‘아름다운 교회’의 한 청년에 올린 간증입니다.
그 청년은 부동산 투자 전문가를 꿈꾸며 감정평가시험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한 문제 차이로 세 번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3년이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방황을 했겠으며 시련도 많이 겪었을까요?
그러던 중 추운 새벽에 자신을 위해 기도하러 나가는 어머니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때 눈물을 많이 흘리게 되었죠.
그런 어머니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면서 처음으로 새벽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놀랍게도 새벽기도회를 통해 그를 괴롭히던 축농증도 낫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대전에 있는 고향교회에서 신앙생활하던 때였습니다.
그 후에 믿음의 용기를 갖고 서울로 상경해서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의 신앙은 형식적이었고 예배도 주일예배만 참석하는 반쪽짜리 신자가 되었죠.
그러던 중에 관악고 고시촌에 있는 아름다운교회에 출석해서 새벽기도회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결단하고 새벽기회부터 나갈 때 그의 몸도 건강을 되찾게 되었죠.
주일예배도 사모하는 마음으로 미리 준비해서 나갔고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예배했습니다.
이제 시험 당일날이 되었습니다.
그때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한 형제와 함께 스터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형제는 공부한 경험이 적어서 자신이 가르쳐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솔직히 1차와 2차를 함께 준비해야 했던 그에는 어려운 선택이었습니다.
그 형제를 도와주었다가는 자신도 제대로 시험을 준비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면 할수록 그 형제를 도와주라는 성령님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는 시험에 나오지도 않는 문제를 계속 질문했는데 그는 귀찮았지만 책을 찾아가면서 답을 알려주었죠.
놀랍게도 그 문제가 시험 당일날 가장 큰 문제로 출제가 된 것이었습니다.
시험 전날에는 함께 시험을 봐야 하는 한 분에게 복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분이 한 문제를 물어왔고 그 답도 알려줬는데 그 문제가 2번 문제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의 고백을 하면서 침착하게 답안을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 자신이 합격하게 된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감사의 고백을 올려드렸습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감정평가학원에서 강의할 수 있는 하는 길도 열어주셨습니다.
지금은 업계 최고의 감정평가법인에 취직해서 열심히 일을 배우고 있는 형제입니다.
(깨달음)이런 간증을 듣게 되면 깨닫게 되는 바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일이 나와 내 자녀에게도 일어났던 일이요, 앞으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 말입니다.
우리 각자의 인생에서 내 능력과 내 실력으로는 안 되는 일을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집에 물이 찼을 때 바가지로 하루 종일 퍼올릴 일도 모터 펌프로는 금방 퍼올릴 수 있는 일처럼 말이죠.
주차장의 자갈을 삽으로 나르면 하루 온 종일 걸릴 일도 포크레인으로 나르면 금방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내 실력으로는 도저히 안 될 일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길을 열어주신 일들이 그렇습니다.
(적용)그런데 신앙의 기초가 무너지면 아무리 화려한 모습들도 헛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를 아무리 요란하게 한다 한들 신앙의 기초가 없으면 결코 응답받을 수 없는 것이죠.
비록 야단법석을 떨지 않는다 해도 신앙의 기초와 중심이 잡혀 있다면 하나님께서 선한 역사를 베풀어주시는 분이시죠.
감정평가사에 합격한 그 청년도 실은 어머니의 신앙심을 본받아 그가 중심에 신앙의 가초를 세운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런 신앙의 기초와 중심을 잡도록 연단의 과정을 거치게 하신 것이었죠.
그런 과정을 통해 자기 실력보다 하나님께 번제물처럼 드리고 또 성령님의 감동에 순종했을 때 놀라운 역사를 이루게 하신 것이었죠.
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오 지금도 신앙의 기초와 중심을 잡고 주님을 경배하는 저와 여럽누들에게도 친히 응답해주시는 아바 아버지이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선포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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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북왕국 이스라엘의 7대 왕 아합은 두로의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정략결혼이 아니라 그녀를 통해 바알과 아세라 신이라는 두로의 신을 들여오는 일이었죠.
그녀는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 온 산지에 바알과 아세라 신상을 세웠고 백성들이 하나님을 등지고 우상을 숭배토록 조장했죠.
북이스라엘 백성들도 바알과 아세라 신을 숭배하면 두로처럼 부국강병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말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시퍼렇게 살아계신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보여주시고자 엘리야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나 여호와의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아니하리라”(왕상17:1)하고 말입니다.
그때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을 두려워하여 요단강 앞 그릿 시냇가에 숨어 들어 갔는데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를 통해 먹이셨죠.
또 시돈 지역의 사르밧 과부에게 가서 먹을 것을 공궤받도록 했습니다.
그때 엘리야는 자기 아들과 함께 한 끼 식사를 마치고 죽으려는 그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자신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했죠.
그러자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먼저 엘리야를 하나님처럼 섬기고 대접할 때 가뭄이 끝날때까지 그 집에 밀가루통과 기름통이 떨어지지 않는 복을 받게 되었죠.
더욱이 그 아들이 머리가 아파 죽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통해 그 아들의 생명을 살려내는 통로로 삼게 하셨죠.
(깨달음)왜 그 같은 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엘리야가 아합과 이세벨 앞에 서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으로 보여주신 것이었죠.
아합과 이세벨 때문에 먹을 게 없어 굶주림에 처한다해도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먹이실 것을 알려준 거죠.
심지어 아합와 이세벨의 공격을 받아 죽는다해도 그 생명을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시겠다는 것이었죠.
(전개)그렇게 시간이 흘러 3년 6개월이 지나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아합 왕과 이세벨에게 보내셨죠.
그때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말하기를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갈멜산으로 보내도록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참 신이신지, 바알과 아세라가 참 신인지 대결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함께 엘리야 선지자는 해발 450m의 갈멜산에 올라갔습니다.
해발 450m라면 목포 유달산의 두 배 높이지만 팔레스타인의 지형상 갈멜산은 동산 정도의 언덕빼기 산이죠.
그때 엘리야는 블레셋의 육척장신 골리앗과 수많은 블레셋 군대 앞에 홀로 물맷돌을 가지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간 다윗과 같은 심정으로 올라갔겠죠.
물론 엘리야와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만 갈멜산으로 올라간 게 아니었습니다.
북이스라엘 땅에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던 수많은 백성들도 구경꾼처럼 갈멜산을 올라갔겠죠.
엘리야도 실은 혼자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궁중 선지자 오바댜가 50명씩 50명씩 100명의 선지자(왕상18:4)를 굴에 숨겨서 먹을 것과 마실 물을 공급해줬는데 그들도 함께 갈멜산에 올라갔겠죠.
그때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은 제단을 쌓고 나무를 올려놓고 각을 뜬 송아지를 번제물로 올려놨죠.
아침부터 정오까지 ‘바알이여 아세라여’하고 그들의 신을 부르며 불로 응답해주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래도 응답이 없자 이번에는 그 신을 향해 뛰면서 기도했고, 그래도 응답이 없자 칼로 몸을 자해하면서 기도했죠.
그토록 요란한 부채춤과 방울춤과 칼춤을 출지라도 하늘로부터 불은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깨달음)지난 시간에 살펴봤듯이 그들이 제단 주위에서 ‘뛰놀더라’하는 번역은 춤추다는 뜻과 함께 절뚝발이가 되다는 번역이라고 했죠.
갈멜산에 올라와 구경하는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의 춤을 신비로운 춤으로 여겼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엘리야가 보기에는 그들의 모습이 절뚝거리는 절름발이 모습일 뿐이었습니다.
지금도 무당이 부채춤을 추고 작두무당이 칼춤을 출 때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들의 춤이 화려해보이고 무형문화재로 등재되기도 하지만 그 신기어린 춤은 3-5년이면 끝나고 말죠.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무당의 진을 다 빼먹은 귀신은 가차없이 무당을 버리게 되고 그때부터 무당의 삶은 절뚝발이 인생으로 전락하는 것이죠.
(전개)그처럼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이 야단법썩을 떨면서 기도해도 응답이 없자 이번에는 엘리야가 나섰죠.
엘리야는 지난 시간 살펴본 것처럼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기 위해 돌 12개를 취해 제단을 쌓도록 했죠.
돌 12개란 에덴동산의 보석과 같은 돌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머잖아 새 하늘과 새 땅 곧 천국에 입성할 때 천국의 재료가 보석으로 치장돼 있다고 계시록에 말씀하죠.
그런데 엘리야가 취한 12개 돌은 이스라엘 12지파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하나님을 향한 제단을 쌓게 한 것입니다.
(깨달음)인생에 가뭄이 닥쳤을 때, 가정과 자녀들에게 어려움이 생겼을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도 그것 아니겠습니까?
부모와 자녀와 손주까지, 온 세대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하나님께 예배의 제단을 새롭게 쌓는 것 말입니다.
감정평가사를 준비하는 아들을 위해 어머니가 기도하듯 그 아들도 자기 신앙으로 제단을 쌓은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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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오늘 본문은 그 이후에 행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본문 32-35절 말씀을 다시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고 제단을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둘 만한 도랑을 만들고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째로 그리하라 하여 세 번째로 그리하니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더라”
(원해)엘리야가 12개 돌을 취해 번제단을 쌓고 번제물을 올려 놓은 다음에 도랑을 파고 물을 붓게 했습니다.
‘도랑’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테알라’(תְּעָלָה)는 ‘도랑’ ‘수로’와 함께 ‘치료’(healing of new flesh)라는 뜻이 있습니다.
피부가 썩어 고름이 끼고 딱지가 생긴 그 부위에 새 살이 돋아나는 모습으로 치료되는 걸 말하죠.
이 ‘테알라’의 어근이 ‘알라’(עָלָה)라는 단어로 ‘오르다’(to go up, ascend, climb)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성산을 오르고 하나님의 성전을 오를 때 사용된 단어요 엘리야도 불말과 불수레를 타고 하늘 승천한 단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도랑에 물을 붓되 ‘곡식 종자 두 세아’를 ‘둘 만한’ 정도로 물을 가득 붓도록 했습니다.
여기에 ‘두다’는 히브리어가 ‘베이트’(בַּיִת) 곧 ‘집’을 뜻하는 말입니다.
야곱이 돌베개를 하고 잘 때 하늘의 사닥다리를 통해 천사를 맞이하고서 ‘벧엘 ‘하나님의 집’이라고 명명했죠.
엘리야가 번제단과 도랑에 물을 붓게 한 것은 하나님의 집 곧 성전 제단에 흐르는 물을 붓게 한 것과 같은 뜻입니다.
그 물이 실은 예수님의 생명수의 물이지 않겠습니까?
그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그 물을 마시는 자는 영생수를 마시는 것이죠.
더욱이 ‘곡식 종자’는 히브리어로 ‘제라아’(זֶרַע)인데 ‘씨앗’(seed)과 ‘후손’(offspring)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깨달음)그렇다면 그 번제단과 번제물과 도랑을 파서 물을 붓게 한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죠?
그 물은 성전으로부터 흘러넘치는 생수요, 그걸 곡식 종자를 둘 만한 물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수를 공급받은 믿음의 자녀를 뜻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이스라엘 12지파가 한마음 한 뜻으로 제단을 쌓고 그 위에 예수님의 생명을 지닌 후손을 하나님의 번제단에 쏟아붓듯 헌신해 드리라는 뜻입니다.
그때 하늘로부터 불이 임하듯 하나님의 기적과 역사를 맞이하는 은혜를 부어주신다는 것이죠.
(원성)마치 75세에 하나님의 선택과 부름을 받았어도 25년간 자식을 얻지 못한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죠.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18:14)
아브라함이 몸종 하갈을 통해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식을 낳아 이스마엘을 자기 아들로 삼으려 했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낳는 이삭을 통해 그의 후손을 이어가도록 했습니다.
거기에는 그 어떤 인간적인 방법도 들어갈 수 없었고 오직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역사하신 일이었습니다.
바로 그런 아들을 모리아 산에 번제로 바치라고 할 때 아브라함은 기꺼이 번제물로 드렸습니다.
마치 엘리야가 그런 후손의 씨앗을 하나님의 생수로 부어드리도록 헌신을 요구할 때 기꺼이 순종한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그런 믿음을 지닌 부모의 헌신과 자녀들의 헌신을 통해 복주시는 아버지이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번제물로 바친 아브라함처럼 지금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후손의 씨앗을 하나님의 제단에 헌신의 씨앗으로 붓게 한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도 하나님의 제단에 나와 내 후손의 씨앗을 하나님께 헌신의 씨앗으로 바치길 원하시는 것이죠.
그렇다고 목회자나 선교사로 바치라는 게 아니라 각자의 삶 속에 신앙의 기초와 중심을 잡고 하나님께 쏟아붓도록 하는 것이죠.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시고자 그 심령과 자녀의 심령과 손주들의 심령에 감동감화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적용)우리 예수님은 그런 믿음의 씨앗, 그런 믿음의 후손을 보고자 친히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습니다(사53:10)
그렇기에 ‘곡식 종자 두 세아’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물과도 같은 자녀요 헌신된 후손입니다.
그것은 엘리야와 함께 궁중 선지자 오바다가 떡과 물을 공급해 돌본 100명의 남은 자들과 같은 자손들이죠.
우리 시대에는 예수님의 피 값을 주고 산 성도들이자 이 땅에 예수님의 생명수를 공급받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이자 손주들입니다.
지금 엘리야가 번제단을 수축하고 도랑을 파고 물을 붓도록 할 때 누가 그 일에 헌신했겠습니까?
3년 6개월간이나 가뭄이 임했는데 그 번제단과 도랑에 부은 물은 어디서 난 것입니까?
지금 그곳에 엘리야를 따라 올라온 100명의 무명의 선지자들 믿음의 후손들이 각자 마시려고 가져온 생수를 하나님의 제단과 도랑에 마지막 한 방울까지 쏟아부은 것이죠.
바로 그것이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따라 짊어지는 삶이요 해산의 수고를 맞이하는 일입니다.
바로 그것이 십자가 제단에 생명수를 부어드리는 헌신의 모습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하늘의 불로 응답해주셨고 3년 6개동안 가물었던 땅에 비를 내려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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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극심한 가뭄과 같은 인생의 위기 앞에 믿음의 자녀들이 생수를 붓듯 헌신할 때 놀라운 응답을 베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렇기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3년 6개월간 극심한 가뭄이 닥쳤을 때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 원하시는 게 원하신 게 무엇이었느냐?”
“12개의 돌을 취해 번제단을 쌓았고 번제물과 번제단과 도랑에 물을 붓게 하지 않았더냐?”
“부모와 자녀와 손주들까지 한마음 한뜻으로 예배의 제단을 쌓고 예수님의 생명수를 받은 자들이 헌신하는 걸 주님께서 기뻐받지 않았더냐?”
“감정평가사에 세 번이나 낙방한 그 청년도 엄마의 믿음처럼 자신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쌓고 생명수를 붓듯 헌신할 때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 아니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이전에 네 삶 속에서 하나님께 응답해 주신 일들을 떠올려 보면 좋겠구나.”
“그때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믿음으로 예배의 제단을 쌓고 순전한 번제물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지 않았더냐?”
“그 순전한 믿음을 너와 네 자녀와 손주들까지도 생명수를 붓듯 헌신할 때 주님께서는 지금도 응답해주지 않겠느냐?”
“그 감정평가사에 합격한 그 청년도 주님 앞에 순전한 예배의 제단을 쌓았고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헌신의 생명수를 쏟아부었듯이 말이다.”
“너에게도 너의 자녀들에게도 너의 손주들에게도 그런 축복의 문을 열어주고자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지 않겠느냐?”
(찬양)주님 예수 나의 동산 내 맘속에 동녘 하늘 아침햇살 가득 안고 활짝 피는 백합 같아
그 안에서 이 생명도 피어나는 꽃 되리라 오 하나님 이 꽃 바쳐 주의 재단 밝히리니
은혜로운 사랑으로 하늘 평안 내리소서
주님 예수 나의 동산 내 맘속에 동녘 하늘 아침햇살 가득 안고 자라나는 나무 같아
그 안에서 이 생명도 귀한 재목 되겠어요 오 하나님 이 재목 바쳐 주의 재단 쌓으리니
은혜로운 사랑으로 하늘 평안 내리소서
주님 예수 나의 동산 내 맘속에 동녘 하늘 아침햇살 가득 안고 피어나는 안개 같아
그 안에서 이 생명도 맑은 영혼 되겠어요 오 하나님 이 영혼 바쳐 주의 제단 향 내리니
은혜로운 사랑으로 하늘 평안 내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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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엿새 전 나사로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죽음에서 살아난 나사로를 위한 잔치를 열었을 때 주님께서 참석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때 마리아가 최상품의 향유 한 근을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그 향내가 온 집안에 진동했습니다.
가롯 유다는 그 향유를 팔면 300데나리온을 받을 수 있고 차라리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면 더 좋았겠다고 핀잔을 줬죠.
300데나리온이란 한 사람이 1년간 벌 수 있는 품삯으로 요즘으로 하면 1천만원의 향유값입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행위가 자기 십자가 죽음을 기념하는 행위라면서 그녀의 모습도 십자가에 제물되는 일에 자기 생명수를 쏟아붓는 헌신이라면서 칭찬해 주셨습니다.
마리아의 헌신된 모습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엘리야를 위해 공궤했던 사르밧 과부의 헌신과 같은 격입니다.
마리아의 그 헌신은 마치 아브라함이 모리아 제단에 자기 이삭을 바친 헌신과 같은 격이지 않겠습니까?
그런 그들을 하나님께서는 저 영원한 나라에서 복되게 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빛나게 해 주셨죠.
(예화)어느 교회에 성도 한 분이 예배당 건축을 위해서 헌금을 해야되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가진 게 없어서 어떻게 헌금할까 생각하다가 폐품을 모아다 팔아서 건축헌금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간을 모아서 건축헌금을 드렸습니다.
그 날밤 꿈을 꿨고 하늘나라에서 예수님을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에게 “이것이 네 집이다”하고 폐품으로 만든 거적 같은 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때 그분이 말했죠.
“아니 천국은 황금보석으로 아름답게 꾸며진 집이라고 했는데 왜 내가 살 집은 이렇게 폐품으로 만든 거지같은 집이야!”
그래서 그 집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망설이고 있는데 천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이 정성으로 지은 천국의 집은 폐품으로 만든 집이니라.”
비로소 그때 꿈에서 깨어났는데 그 말을 들은 게 너무나도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그때 그분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끓고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올려드렸죠.
“하나님. 값비싼 보화와 돈뭉치는 장롱에 놔두고 폐품을 판 돈을 하나님께 드렸네요”
그래서 그분은 다음 날 장롱 속에 깊이 놔뒀던 보화와 돈뭉치를 꺼내 하나님께 다시금 드렸다는 것이죠.
(깨달음)어떻습니까?
머잖아 천국에서 살 집을 이 땅에서부터 준비하는 길임을 그분이 새롭게 깨달은 것 아니겠습니까?
향유 옥합을 깨트린 마리아의 헌신도,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의 헌신도, 엘리야를 공궤한 사르밧 과부의 헌신도, 이 땅에서도 빛나는 모습이지만 천국에서도 멋진 집을 준비하는 길이지 않겠습니까?
(내기도)그렇기에 우리가 주님 앞에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엘리야가 부모와 자녀와 손주들까지 모든 세대를 모아 하나님께 예배의 제단을 쌓게 했어요.”
“거기에 마지막 한 방울까지 귀한 생명수를 부어드리는 헌신을 요구했을 때 그들이 전적으로 순종했고 불의 응답이 임했어요.”
“주님 제 인생의 위기 앞에, 제 자녀들과 손주들의 어려움 앞에 말씀을 좇아 헌신할 때 응답받는 역사가 임하게 해 주세요.”
“마리아처럼 향유 옥합을 깨트리고 아브라함처럼 이삭을 바치고 사르밧 과부처럼 주님의 사자를 대접하는 헌신자들을 주님은 지금도 찾고 계시고 그들을 통해 놀라운 축복을 베풀어주셨네요.”
“주님의 제단에 귀한 백향목을 드리듯 장롱 속에 귀한 보물과 재물을 주님께 드릴 때 그 삶이 이 땅에서도 빛나고 천국에서도 영원한 축복의 집을 짓는 비결인 줄 믿습니다.”
“저와 제 자녀들과 손주들까지도 그런 헌신의 생명수를 주님의 제단에 쏟아붓게 하셔서 우리 시대에 축복의 통로가 되도록 하늘 문을 열어주시옵소서.”
(찬양)내게 있는 향유옥합 주께 가져와 그 발 위에 입맞추고 깨뜨립니다
나를 위해 험한 산길 오르신 그 발 걸음마다 크신 사랑 새겨 놓았네
내게 있는 향유옥합 주께 가져와 그 발 위에 입맞추고 깨뜨립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오르신 그 발 흘린 피로 나의 죄를 대속하셨네
내게 있는 향유옥합 주께 가져와 그 발 위에 입맞추고 깨뜨립니다
주님 다시 이 땅 위에 임하실 그때 주의 크신 사랑으로 날 받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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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며 사는 것보다 인생 최고의 기쁨이 어디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인생의 위기 앞에 가정과 자녀들의 문제 앞에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해결받는 게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습니까?
과거에 그런 체험을 하셨을 때 그 순전한 믿음의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순전한 번제물을 드리고 생명과도 같은 생수를 부어드린 일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 순전한 믿음을 나와 내 자녀들과 손주들까지도 이어받아 예수님의 생명수를 공급받는 믿음의 후손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곧 천국에 살 집을 짓는 길이요 그것이 곧 이 땅 위에서 잘 되고 형통케 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시는 길인 줄 믿습니다.
그런 은혜가 충만할 수 있도록 이 시간 결단의 기도를 주님 앞에 드리도록 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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