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고난주간의 월요일날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할 그곳에 장사치들과 환전상이 판치는 것을 보고 상과 의자를 엎으면서 성전을 청결케 하셨죠.
화요일날은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과 논쟁을 하고 비유를 베푼 날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은 예수님을 향해 무슨 권위로 성전에서 소란을 피웠는지 물었죠. 그때 주님은 비유로 가르쳐주셨습니다. 그 비유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21:42~43).
이 비유는 율법을 잘 알고 있는 대제사장과 장로들을 향한 일침이기도 합니다. 창녀들과 세리들이 오히려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는 자들이고 너희들은 도저히 순종치 않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은 자신들을 향한 비유임을 알고서 예수님을 즉각 체포해서 죽이려고 계획을 세운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참된 뜻을 알려고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 욕심이나 사리사욕을 좇기마련입니다. 그로 인해 주님의 뜻과는 반대편에 서게 되는 것이죠.
[전자책]야긴과 보아스 - 예스24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이 책에는 사무엘서와 열왕기
www.yes24.com
바울이 로마의 마메르틴 감옥에 붙잡힐 때 바울의 곁에 있던 사람들이 많이 떠났다고 했습니다. 그들 중 대표적인 사람이 ‘부겔로’(Φύγελλος)와 ‘‘허모게네’(Ἑρμογένης)였죠. 그들은 자기 행운을 좇고자 바울의 동역자가 된 것이었죠. 어찌 보면 예수님을 통해 영의정 좌의정 자리를 차지하고자 했던 제자들과 같은 모습입니다. 더욱이 예수님께서 종려주일에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할때 '호산나 찬송합니다. 다윗의 자손이여'하고 열광하던 군중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죠. 그들은 정치적인 메시아로서 로마의 압제를 짓누르고 새로운 왕권을 획득할 것을 바라는 마음이었기 때문에 말이죠.
그만큼 믿음이란 자신의 행운을 좇거나 자기 욕망을 좇는 게 아닙니다. 참된 믿음이란 하나님의 섭리와 이끄심에 순종하여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죠. 그래서 바울은 부겔로나 허모게네와는 달리 ‘오네시보로’(Ὀνησίφορος)같은 사람 곧 남에게 이로움을 주는 그런 사람도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왜 바울이 그런 이야기를 디모데에게 하는 것이겠습니까? ‘디모데야, 너도 마지막까지 변질되지 않는 사람이 되라’는 권면이죠. ‘믿음이란 자기 유익이나 자기 행운을 좇는 것이 아니라 신실하게 주님의 섭리를 좇아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임을 알도록 하라’는 차원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바울은 디모데를 가리켜 ‘내 아들아’하고 부릅니다. 물론 친 아들이 아니죠. 바울은 2차 전도여행 때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만나 할례를 행하게 하고 그때부터 선교여행에 합류하여 다니게 했죠. 실은 그때부터 영적인 아들로 삼아서 동역자게 되게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1장 2절에서는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라고 밝혔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내 아들아”라고 부릅니다. 보다 친근하고 애정어린 바울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표현이죠. 그래서 영어 번역본도 ‘my son’하고 번역해 놓고 있습니다.
그런 영적인 아들과 같은 디모데에게 바울이 무엇을 권면합니까? 바울은 디모데가 은혜 안에서 강하라고, 그리고 바울에게 들은 것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부탁하라’는 말은 헬라어 ‘파라티쎄미’(παρατίθημι)로서 ‘맡기다’는 뜻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증거하라’는 뜻이죠.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디모데는 믿음직스런 누군가에게, 또 그들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그렇게 해서 세월을 거치면서 전하고 또 전해지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과연 어떤 자세로 그렇게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또 어떤 마음과 자세로 증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는지, 그 다음 구절에 나와 있습니다. 3-7절입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바울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하나님께서 디모데를 부르셨다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과 자세로 자신처럼 고난받는 것을 피하지 말라는 뜻이죠.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영적인 전쟁터입니다. 마귀와 악한 세력들은 호시탐탐 믿는 자들을 유혹하고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바로 그런 영적 전투 현장에서 디모데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모두 주님의 영적 군사입니다. 물론 모든 병사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군대와 나라를 위해 복무하는 자들이죠. 영적인 군사와 같은 우리를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먼저 살라는 뜻이죠. 그것이 영적으로 깨어 있는 자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 속에서 법대로 경기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게 될 것이라고, 또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얻는 것처럼 전리품을 취할 것이라고 이야기해줍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권면합니까?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지금까지 한 말들, 하나님의 군사로 너를 부르셨다는 것,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면, 하나님께서 면류관과 상급을 주실 것 아니냐, 하는 바로 그런 권면을 생각하라는 것이죠. 그러면 주님께서 너에게 총명을 주셔서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는 권면이죠.
[전자책]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예스24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오래전 신영복 교수의 책을 통
www.yes24.com
이제 바울은 디모데가 왜 영적 군사로 지혜롭게 싸우며 인내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밝혀줍니다. 그것은 디모데의 믿음이나 열심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본문 8-9절입니다.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바울이 전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그 분의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의 무덤을 깨트리고 부활하신 생명의 복음이요 자유의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바울도 마메르틴 감옥에 갇혔고 또 머잖아 디모데도 순교당하지만 주님과 주님의 복음은 결코 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주님을 힘입어 그 분의 복음을 영적인 군사로서 담대하게 전하도록 하라는 것이죠.
본문 10-13절은 왜 더더욱 영적 군사로서 주님의 복음을 힘입어 담대하게 선포하고 전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줍니다.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왜 고난이 닥쳐오고 심지어 순교를 당한다 할지라도, 영적인 군사로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까? 복음을 전하다 주님과 함께 죽으면 다시 살 것이고, 또 주님과 함께 왕노릇 할 것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다 괴롭고 힘들고 핍박이 닥쳐와 주님을 부인하면 주님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란 뜻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연약하고 신실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주님은 항상 신실하시기에 바로 그 주님을 의지하며 끝까지 참된 믿음의 군사, 참된 믿음의 경주자가 되라고 권면하는 것이죠.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한 사람의 인생이 변화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사람이 변질되지 않고 영적 군사로서 끝가지 믿음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도 복음이라는 사실입니다. 복음은 매이거나 갇히지 않는 생명력이기 때문이죠. 그런 복음을 좇아야 군중심리에 끌려가지 않을 수 있고 자기 행운이나 세상의 지위를 좇지 않고 흔들림 없이 주님만 바라볼 수 있는 것이죠. 그것이 대제사장과 백성들의 장로들과는 달리 바울이 일평생 흔들림 없이 주님 나라를 바라보게 된 것이죠.
그래서 신명기 6장 4-9절에 뭐라고 말씀합니까?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유일한 하나님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고, 네가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부지런히 강론하고,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여 기호로 삼고,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으라. 너는 그것을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하고 명령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왜죠? 히브리서 4절 12-13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시고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주님의 그 말씀만이 영혼을 살리고 영적 전쟁터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끝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도록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의 진리와 생명에 붙잡힐 때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기는 자가 되지 않고 바울처럼 그리고 디모데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좇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이죠. 오늘도 주님의 말씀 안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것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며 사는 길인 줄 믿습니다.
[전자책]귀먹은 하나님 응답하소서 - 예스24
성경으로 문화 읽기를 접목한 세 번째 책이다. 첫 책은 출애굽기로부터 시작해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까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두 번째 책은 여호수아로부터 시작해 사사기, 룻기, 사무엘서,
www.yes24.com
오늘도 주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선포하고 외치면서 선한 영적 군사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