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site-verification=bWsZs7W0_gSPuMoDXujZISVmSBQHlpw3IxoqFPAwWOg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느니라(고후1:15-22) google-site-verification=bWsZs7W0_gSPuMoDXujZISVmSBQHlpw3IxoqFPAwWOg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느니라(고후1: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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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사람이 살다보면 속으로는 안 하고 싶은데 겉으론 인심 쓰는 것처럼 ‘예, 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1938년 9월 30일 날 독일의 히틀러가 영국 수상 체임벌린을 독일 뮌헨에 불러 평화조약을 맺었습니다.

유럽에 전쟁이 안 나게 평화롭게 상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6개월이 채 되지 않은 1939년 3월에 히틀러는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해 전쟁을 하게 되죠.

겉으로는 ‘예, 예’ 했지만 속으로는 영국을 묶어 놓고 자기 맘대로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1939년 9월 30일 독일은 소련하고 불가침 협정을 맺습니다.

그런데 협정을 맺은 두 나라는 똑같이 폴란트를 침공하고 맙니다.

소련은 폴란드 동쪽을 침공하고, 독일은 폴란드 서쪽을 침공한 것입니다..

그 후에 둘을 병합합니다.

그리고는 2년 뒤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하게 됩니다.

실제로는 평화가 아닌데 겉으로만 ‘예, 예’하면서 달랬던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과 이란이 전쟁을 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중재하여 휴전에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예 예’하고 휴전에 합의했을지라도 속으로 이란은 핵 활동 중단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그래서 ‘예, 예’하고 대답은 했지만 언제든지 이란을 칠 수 있다는 사실이죠.

 

(깨달음)이런 모습은 정치판만 그런 게 아닙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죠.

가령 소매치기가 잡혔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때 잡은 사람이 경찰서에 넘기지 않고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하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네, 절대로 하지 않겠습니다.”하고 대답을 합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돌아서면서 속으로 하는 말이 있겠죠.

‘웃기고 있네.’

 

(적용)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도 속으로는 분명히 아닌데 겉으로는 ‘예, 예’ 할때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때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맹세인가, 나의 대답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대답인가, 하는 걸 늘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여라도 나도 겉과 속이 다른 대답을 할 때 누군가 나를 향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속이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대답을 하면서 사는 크리스천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전자책]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예스24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오래전 신영복 교수의 책을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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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고린도후서 1장 1-11절은 고린도후서의 도입부이고, 1장 12-13장 10절은 본론부, 13장 11-13절은 종결부입니다.

1장 1-11절까지 바울의 축복기도와 함께 위로의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감사의 고백이 담겨 있었고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간증도 포함이 돼 있었습니다.

1장 12절부터 고린도후서의 본론부가 시작되는데, 12-14절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 대한 바울의 양심의 증거와 소망에 대해 써 내려가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영광스럽게 여기고 또 자랑스럽게 여긴 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신실하심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그리고 세상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관계 맺고 있는 걸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잘 안다는 걸 영광스럽게 여기고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다만 그 사실을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는 아주 명확하게 드러나게 되어 알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을 사도 아니라고 불신하고, 바울의 말일 틀렸다고 하고, 고린도교회에 온다고 자기 입으로 말했으면서 오지 않았다고 다들 자기 염원으로 판단하는 것 자체가, 실은 부분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바울을 부분적으로 알고 있었는데도 바울을 완전히 알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착각하면서 말한 것이었습니다.

 

(적용)그런 고린도교회 성도들과는 달리 바울은 어떻게 했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들이 거짓 사도들과 함께 모의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에 대한 사랑을 지속했습니다.

왜냐하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비록 지금은 연약한 모습이지만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그들이 자신에게 자랑거리가 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바울은 그들을 향한 사랑을 내려놓지 않고 믿고 바라고 견뎌냈던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도 바로 그와 같은 믿음과 사랑과 인내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본문)오늘 본문 15-17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도움으로 유대로 가기를 계획하였으니

이렇게 계획할 때에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 혹 계획하기를 육체를 따라 계획하여 예 예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겠느냐

 

(깨달음)바울의 첫번째 고린도 방문은 언제 있었습니까?

고린도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울 때 최초 방문한 것(행18:1)이었습니다.

이 기간이 아마 A.D.51년 가을부터 A.D. 52년 봄에 이르는 1년 6개월 간의 방문이었을 것입니다(행18:11)

그렇다면 두번째 고린도교회 방문은 언제 이루어진 것일까요?

고린도후서 2장 1절에 밝힌 바 있습니다.

내가 다시는 근심으로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하고 말이죠.

그 언급에서 파악되는 것처럼 그 방문이 그에게 무척 서글픈 사건이었다는 것 이외엔 바울의 방문목적과 그 정황에 대해 자세히 알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A.D. 55년 고린도전서를 발송한 이후에 이루어진 이 제2차 방문을 ‘근심의 방문’이라 부르죠.

 

이 방문에 대해 고린도후서나 사도행전도 굳게 침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두번째 방문은 그의 3차 전도여행 시기인 A.D. 55년에 이루어졌던 게 분명합니다.

에베소에서의 장기간의 체류 중에 고린도에 대한 불안한 소식을 접하고 갑작스레 방문했던 것입니다(행20:31)..

 

원래 바울이 고린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했던 방문 계획은 그가 제1차 서신에서 통보한 것처럼 에베소를 거쳐 고린도를 지나 마게도냐로 건너가 고린도를 거쳐 다시금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고린도에서 좀 더 많은 시간을 지내기 위해 계획을 변경했고 그 변경 사실을 고전16장 5-92절을 통해 밝힌 바 있습니다.

고린도를 두 번 방문하는 대신, 에베소에서 마게도냐, 마게도냐에서 고린도, 고린도에서 예루살렘의 여정으로 가겠다고 변경된 여정을 통보한 것이다.

그러나 고린도에서 돌아온 디모데로부터 교회의 상황이 악화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보도 없이 불시에 고린도를 방문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거듭되는 계획 변경으로 인해 바울의 반대자들은 바울을 일관성 없는 경솔한 사람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이러한 비난에 대해 바울은 자기가 결코 경솔한 사람이 아니라고 변명하면서 본래 세웠었던 여정 계획을 15-16절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원해)그런데 그렇게 계획을 변경했는데, 그걸 어찌 경솔했겠느냐? 하는 것이죠.

우리말 ‘경솔하다’는 헬라어 ‘엘락프리아’(ἐλαφρία)는 ‘변덕이 심하다’는 뜻입니다.

내가 그렇게 바꾼 것이 내가 경솔하고 내가 변덕이 심해서 그랬겠느냐?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들릴 때 먼저 경유지로 삼아 마게도냐를 지나 고린도로 간다고 한 게 속셈으로는 아닌데, 너희들에게 듣기 좋게 ‘예, 예’했다고 생각하겠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결코 겉으로 ‘예, 예’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바울은 본절을 통해 자신이 결코 경솔하거나 변덕스럽게 계획을 세우고 변경한 것이 아님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육체’도 헬라어로 ‘사르크’(σάρξ)로 죄된 인간의 본성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자기 중심적이고 천박인 이기심을 좇아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인데, 바울은 결코 그런 관점으로 ‘예, 예’하고 답한 게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했고 성도들의 유익을 먼저 고려했던 바울입니다(고후2:1-3,행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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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이 책에는 사무엘서와 열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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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2)본문 18-20절입니다.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원해)여기에 ‘미쁘시니라’는 헬라어 ‘피스티스’(πιστός)는 ‘신실하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기에 나 또한 신실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는 바울의 말입니다.

내가 ‘예, 예’ 할 때 속셈으로 ‘아니오’하려고 한 게 아니라 신실하게 ‘예’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신실하시다’를 먼저 꺼내는 것일까요?

두 번째 일정에 변경했던 것에 대해 ‘예’했던 것은 나의 이기심을 위한 게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한 것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죠.

 

(깨달음)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스’가 되는 것처럼 우리도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한 것입니다.

‘아멘’(ἀμήν)이란 뜻은 ‘확고히하다’(firm) ‘진실로’(verily)라는 뜻이죠.

누군가 기도할 때 나도 ‘아멘’하는 것은 나도 동의하고 진실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는 표현이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에 우리가 ‘아멘’하는 것도 진실로 그렇게 따르겠습니다, 하는 뜻입니다.

그렇게 ‘예’ ‘아멘’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내가 여행의 일정을 바꾸었다 할지라도 내 주님을 본받아 주님께 ‘예’ ‘아멘’ 함으로 영광을 돌리려 했다는 뜻입니다.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은 우리의 대답이 늘 신실한 대답이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도록 하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독일의 히틀러가 영국과 평화조약을 맺었지만 슬로바키아를 침공하기 위한 제스쳐이지 않았더냐?”

사람은 그렇듯 겉으로는 , 하면서 속으로는 인간적인 욕심으로 가득한 행동을 할 때가 있지 않더냐?”

바울도 고린도교회를 방문한다고 했다가 변경한 것을 두고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라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판단하지 않았더냐?”

하지만 바울은 자기 욕심에 이끌려 겉과 속이 다른 대답을 한 게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 앞에서 하고 대답한 게 아니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하는 말이 신실함을 입증하는 말이 되도록 늘 신경을 써야 하지 않겠느냐?”

네가 하는 대답이 인간의 본성에 이끌린 대답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드러내는 대답이 되도록 하는 것 말이다.”

지금 당장의 유리함보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가치를 좇아 늘 아멘. 아멘하는 대답으로 주님의 뜻을 따르며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너의 신실한 그 대답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실 것이고 그런 너를 가장 귀하게 여기실 테니 말이다.”

 

(찬양)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하소서

하나님 나의 마음 만져주소서

하나님 나늬 영혼 새롭게 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하소서

하나님 나의 기도 들어주소서

하나님 주의 길로 인도 하소서

 

[전자책]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예스24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 속에서 페르시아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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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세우고 다시금 방문하려고 했는데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거짓 선생들에게 휩쓸린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인간적인 관점으로 바울을 판단하고 또 정죄하는 모습이었죠.

그런 그들에게 바울은 신실하신 하나님 앞에서 ‘예’하며 살아왔고 ‘아멘’하며 살아왔노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만큼 바울은 인간적인 본성에 이끌려 겉과 속이 다른 대답을 한 게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좇아 신실한 삶을 살아온 것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나의 유리함과 불리함 때문에 겉과 속이 다른 대답을 할게 아니라 언제나 진실한 대답 신실한 삶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실 것이고 저와 여러분을 존귀하게 세워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 은총의 주인공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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