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히브리서 1-10장까지는 바울이 유대교의 배경을 지닌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쓴 편지 내용이죠. 이른바 로마 황제의 핍박 속에서도 그 어떤 유대계의 인물보다도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으로 붙들라고 말입니다. 더욱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서도 아직도 옛 율법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향해 초보 수준에 머물지 말고 그 탁월하고 월등하신 주님을 붙들고 살도록 권면했습니다. 그래서 1-10장까지 천사와 모세와 아론과 아론 후손과 여호수아를 비롯한 대제사장들까지도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해서 변증을 해 준 것이었죠. 그 속에 있는 율법도, 제사도, 그리고 성막도, 그 성막 안에 있는 금촛대와 분향단과 진설병과 법궤도 실은 예수 그리스도도를 비유하는 것,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모형에 불과한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만큼 어떤 핍박 속에서도 모형에 불과한 그것들을 붙들지 말고 참 실상이신 주님을 붙들고 소망하며 살라는 것이었죠.
그런데 우리는 히브리서를 읽으면서 그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얼마나 큰 환란과 박해가 찾아왔는지 쉽게 간과해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의 환란과 박해로 인해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자의 밥이 되었고, 또 원형경기장의 불을 밝히는 땔깜 용으로 처형당했음을 우리는 이미 살펴봤었죠. 바울도 그래서 마지막에 지금의 크로아티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마메르틴 지하 감옥에 붙잡혀 곧 순교당할 위기에 놓여 있는 것이었고, 그 마지막을 내다보며 디모데후서와 히브리서를 썼다고 했죠. 왜요? 그만큼 모든 것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32절에서는 여러 사람들을 열거하기에는 시간이 없다고 할 정도의 상황에서, 주님만 소망하며 살도록 권면한 것이었죠.
그런 급박한 상황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은 히브리서 곳곳에 나타나 있습니다. 어제 읽은 히브리서 10장 32-34절도 마찬가지였죠.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바울은 이 편지를 받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 처음 기독교를 받아들이며 고난을 겪었던 그 시절을 기억하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그런 권면은 현재 상황에서도 겪는 시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35절에서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고, 또 36절에서는 ‘인내’하며 살라고 권면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38절에서는 그 유명한 하박국 선지자의 글을 인용하며 끝을 맺습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 말씀은 하박국 2장 4절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왜 그 말씀을 인용한 것이겠습니까? 지금 무서운 환란과 박해로 인해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고, 또 과거 유대교로 돌아갈 위기에 놓였기 때문에 그만큼 믿음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입니다. 인내는 반드시 믿음에 기초해야 하는 것이고, 그 믿음이 없는 인내할 수도 없고, 금방 무너지고 후퇴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며 믿음으로 붙들라고 권면한 것이었습니다.
[전자책] 하나님의 시간표 : 알라딘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www.aladin.co.kr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이 지녀야 하는 ‘믿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의하고 있습니다. 본문 1-2절을 통해 바울은 이렇게 믿음을 정의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으니라” 헬라어 성경에 근거해서 이 부분을 쉽게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믿음은 소망하는 것들에 대한 실체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믿음에 대해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바울이 정의하고 있는 믿음이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죠.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실체를 붙드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를 붙드는 것이라 한다면,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바울은 3절 이하를 통해 차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바울은 먼저 창조의 사건을 기억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창조 사건에 이어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차례로 기술하고 있죠. 창세로부터 나타나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눈에 보이는 것을 믿어서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은 존재에 대한 ‘믿음’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말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죠.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우리가 성경을 펼쳤을 때 가장 먼저 접하는 이 구절에 대해 우리의 ‘믿음’은 도전을 받죠. 태초, 그러니까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인 까마득한 이전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만드셨다는 증거입니다. 바울은 그런 창조기사에 대해 눈에 보이는 것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고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땅과, 이 땅에서 바라보고 있는 하늘,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만물은, 눈에 보이는 것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고 말입니다. 그 사실은 믿음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죠. 하나님의 창조는 우리의 뇌나 논리로 분석해서 믿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부어주시는 감동과 감화를 통해 그냥 믿어지기에 믿는 것이죠. 그것을 믿게 되면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 주님께서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있음도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죠. 지금 바울이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자책] 눈을 뜨면 볼 수 있어요 : 알라딘
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너무나 답답했다. 지금도 그게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모든 게 답답하기만 하다. 청년들도 꿈을 꿀 수 없는 상태다. 초등학생
www.aladin.co.kr
이어서 바울은 그런 믿음을 따라 살았던 믿음의 증인들을 언급해 줍니다. 실제 사례를 드는 것이죠. 그 첫 번째 인물이 아벨입니다. 4절에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창세기 4장에 아벨은 양을 치는 사람이고, 가인은 농사 짓는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가인은 자신이 가꾼 농산물로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양을 잡아 제사를 드렸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아주셨지만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습니다. 그때 가인은 분노해서 아벨을 쳐 죽였죠. 그 사건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가인이 바친 제물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두 사람이 드린 믿음의 차이에 있음을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믿음의 증인인 에녹, 곧 두 번째 실례를 들어주죠. 본문 5절에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창세기 5장 24절을 통해 에녹을 그렇게 소개해 줍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바울은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에 대해,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여김받게 된 이유라고 말하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란 가인의 후손들처럼 눈에 보이는 대로 자기 욕심대로 사는 삶이 아니라고 말이죠. 오직 믿음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는 삶이라고 말이죠.
그래서 바울은 6절에서 믿음에 대해 그렇게 정리해 줍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궁극적으로 바울이 이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이죠. 오직 믿음 안에서만 어떤 환란과 박해도 이겨낼 수 있고, 오직 믿음 안에서만 하나님의 상을 바라보고 인내할 수 있다는 것 말입니다.
[전자책]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알라딘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오래전 신영복 교수의 책을
www.aladin.co.kr
그렇기에 오늘 성령님께서 주시는 음성은 그것 아니겠습니까?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통치하고 계시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살라는 것 말입니다. 그때 어떤 핍박도 어떤 고난도 능히 이겨내며 믿음의 경주를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오늘도 그 주님과 동행하는 하루의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