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site-verification=bWsZs7W0_gSPuMoDXujZISVmSBQHlpw3IxoqFPAwWOg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히11:7-16) google-site-verification=bWsZs7W0_gSPuMoDXujZISVmSBQHlpw3IxoqFPAwWOg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히1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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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는 고난과 핍박 받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편지라고 했죠. 로마 황제의 핍박이 거세게 밀어닥칠 때 그 고난에 맞서 믿음으로 나아가기보다 뒤로 후퇴하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 말입니다. 더욱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로 구원받은 그들이 아직도 구약의 율법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모습을 보고 더 깊은 믿음의 단계로 나아갈 것을 촉구한 편지죠.

그래서 바울이 1장부터 10장까지 계속 강조한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천사보다도, 모세보다도, 아론보다도, 그리고 대제사장인 멜기세덱보다도 우월하고 월등하신 분이라고 변증했습니다. 천사들이 아무리 영적인 존재라고 해도 실은 하늘의 보좌에 계신 주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존재들이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섬기는 존재라고 했죠. 그리고 유대민족은 아브라함으로부터 근원이 시작되지만 출애굽에서부터 민족이 출발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모세보다도 더 뛰어난 인물, 더 능력있는 지도자가 없지만,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사환 곧 심부름꾼에 불과할 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아들 곧 주인임을 밝혀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론이 아무리 대제사장직을 수행하고 그 후손이 대제사장직을 위임받았다 할지라도 그들은 매년 대속죄일에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하는 연약한 존재라고 했죠.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해마다 반복적으로 제사를 드리게 하지 않고 단 번에 영원한 속죄의 제물이 되어 주신 대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더욱이 멜기세덱도 족보도 없고 출신배경도 없는 그는 실은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했죠. 그렇듯 예수 그리스도는 천사보다도, 모세보다도, 아론보다도, 멜기세덱보다도 더욱더 탁월하고 월등한 분임을 변증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를 읽다보면 구약의 율법과 제사가 많이 등장하고 있어서, 율법을 일깨워주고자 하는 것인가,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서를 쓴 본 목적은 다른 데 있다고 했죠. 하나는 과거로 돌아가지 말라는 것이죠. 로마 황제의 핍박이 거세가 몰아치더라도 절대로 과거 유대교로 돌아가지 말라는 것 말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선하심과 하늘의 은사와 성령을 맛보았음에도 뒤로 물러가 유대 율법주의의 삶으로 돌아간다면, 그들은 대속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다시 못 박게 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절대로 구원받을 수가 없다고 할 정도로 강력하게 말해 줬죠.

또 하나 히브리서를 쓴 본 목적이 있죠. 어떤 환란과 유혹이 밀려와도 끝까지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끝까지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고, 모이기를 힘쓰며 서로 돌아보아 격려하고 선을 행하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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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오래전 신영복 교수의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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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과거로 돌아가지 않도록, 더욱더 앞을 향해 인내하며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게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죠. 믿음이죠. 바로 그 믿음에 대해 어제 읽은 히브리서 11장 1-6절까지 믿음의 정의를 내려줬습니다. 믿음의 정의가 무엇이었습니까? 눈에 보이는 것을 붙드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실체, 곧 이 세상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붙들고 사는 것이 믿음이라고 했죠.

그리고 그 믿음의 실체이신 하나님을 붙들고 산 인물들에 대해 차례로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누구였습니까? 아벨이었죠. 아벨은 가인에 비해 믿음의 제사를 드렸던 인물이라고 바울은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인물은 에녹이었죠. 에녹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하나님과 동행한 인물입니다.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것을 좇기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 모든 만물의 주관자이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믿음으로 살았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세 번째 믿음의 인물 곧 노아에 관해 밝혀주고 있습니다. 7절에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성경의 여러 인물 중에 ‘노아’ 하면 드는 생각이 무엇입니까? 홍수와 방주죠.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대홍수의 심판을 면하기 위해 방주를 지었습니다. 길이가 삼백 규빗 곧 136m, 넓이가 오십 규빗 곧 22m 그리고 높이는 삼십 규빗 곧 13m 정도입니다. 축구 경기장의 1.5배 정도 달합니다. 19세기 후반에 들어 노아의 방주가 완전한 황금률로 지어졌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30대 5대 3의 비율로 그 어떤 바다의 폭풍에도 선박을 유지할 수 있는 비율로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그 방주의 용적률은 양이 12만 5천마리가 들어갈 수 있는 부피요, 400종 2,000마리의 동물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는 크기입니다. 노아가 그런 방주를 짓는데 모세처럼 성막설계도를 받은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노아의 비상한 독창적인 두뇌와 체력이 바탕이 된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방주를 짓는데 두뇌와 체력보다도 더 필요한 게 있었습니다. 바로 온전한 믿음 말입니다. 그 황량한 벌판에 방주를 짓는다고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망령이 들었다고 비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노아는 그 방주를 짓기 위해 무려 120년을 망치질을 하며 살았다는 점입니다. 지금 일어나지도 않을 그 일을 위해 왜 노아가 방주를 지었겠습니까? 믿음이 없이는 그렇게 미래를 걸지 않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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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 문화 읽기를 접목한 세 번째 책이다. 첫 책은 출애굽기로부터 시작해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까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두 번째 책은 여호수아로부터 시작해 사사기, 룻기, 사무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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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바로 방주부터 짓기 시작한 게 아니었다고 합니다. 먼저 나무를 심었고, 그 나무들이 잘나 뒤에 벴고, 또 톱질을 해서 목재를 만들었고, 그런 다음에 방주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방주를 지은 120년의 기간은 목재가 될 나무를 심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노아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무시하지 않는 믿음의 방주의 목재가 될 나무를 심는 믿음이죠. 그로 인해 온 가족이 홍수의 심판 속에서 구원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제 바울은 네 번째 믿음의 인물에 대해 소개합니다. 본문 8-12절입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아브라함은 어떤 믿음의 실증을 지녔다고 말합니까?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 전까지 자식이 없었지만 그 자식을 주실 것이란 믿음이죠. 그것도 하늘의 별처럼 많이 말입니다.바로 그 언약의 믿음을 아브라함이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당시 지도도, 내비게이션도 없었지만 하란에서 가나안 땅을 향해 갔던 아브라함이었죠. 그것은 90세에 이삭을 낳은 사라도 마찬가지였죠. 물론 아브라함이나 사라가 완벽한 믿음의 사람이었던 건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중간에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속인 연약한 자였고, 사라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한 채 몸종 하갈을 통해 자식을 얻고자 한 연약함이 있었죠. 바꿔 말해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빚어주신 것이었습니다. 나는 한 없이 연약할지라도 하나님의 더 크신 사랑으로 나를 품어주시는 것 말이죠. 그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는 것이 바로 믿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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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너무나 답답했다. 지금도 그게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모든 게 답답하기만 하다. 청년들도 꿈을 꿀 수 없는 상태다. 초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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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13-16절은 본향에 관한 말씀인데, 궁극적으로 이 땅의 성취보다 더 중요한 것, 곧 하나님의 영원한 성취를 바라보는 권면입니다. 다시 말해 믿음의 경주자로서 뒤로 후퇴하지 말고 앞을 향해 영원을 향해 믿음으로 전진해가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원한 본향은 하늘나라에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세상의 마지막이 있음을 알고, 우리의 본향인 천국을 바라보며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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