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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2장을 통해 어떤 마음과 자세로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했는지 세 가지로 밝혔죠.
첫째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구하려고 간사함이나 속임수나 아첨이나 탐심으로 복음을 전한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구하려 복음을 전했고, 둘째로 유순한 유모처럼 그들을 돌보는 심정으로 복음을 전했고, 그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는 마음으로 자비량으로 일하면서 복음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권면했습니다. 나와 일행이 그렇게 복음을 전하며 산 것을 너희들이 안다면, 이제 너희들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우리가 전한 말을 인간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며 살고, 우리가 핍박 속에서 담대했던 것처럼 너희들도 담대하게 신앙생활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3장 후반부에서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을 보고 싶다고 말했죠. 물론 사탄이 막아서 못 갔지만, 그들의 얼굴을 직접 보는 것보다 머잖아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너희들이 주님의 인치심을 받고 상급을 받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 될 것이라고 격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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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 속에서 페르시아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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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말씀은 그 연장선상에서 쓴 편지입니다. 이른바 디모데의 파송과 보고에 대한 내용입니다.
본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5절은 함께 동역자로 섬기고 있는 디모데를 데살로니가교회에 보낸 내용이고, 6-10절은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돌아온 디모데로부터 보고 받은 내용이고, 11-13절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한 바울의 중보기도 내용입니다.
먼저 1-2절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생각하고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바울 사도는 ‘이러므로’라는 말도 편지를 써 내려갑니다. 그 말은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교회를 다시 방문하려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서, 다시 말해 참다못해서, 바울과 그 일행이 아덴 곧 오늘날 그리스의 아테네에 남아있기로 하고 디모데를 보냈다는 이야기입니다. 트별히 바울 사도는 1절과 5절에서 두 번씩이나 ‘참다 못하여’ 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만큼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을 보고 싶어 했다는 뜻입니다. 디모데를 보낸 게 참다못한 분노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도 염려하고 사랑해서 그 애절한 심정을 그렇게 두 번씩이나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도 우리를 그렇게 참다 못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계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주님은 우리를 향해 항상 마음을 두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이가 사랑하는 이에게 늘 마음을 두듯이 말입니다. 우리 주님은 한 순간도 지나침 없이 우리를 향해 계시고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달려와 말씀과 진리로, 성령님의 은총으로 우리를 바른 길로,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시죠.
본문 3-5절입니다.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그를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이니.” 바울 사도가 디모데를 데살로니가교회에 보낼 때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은 어려운 환난과 시험 가운데 있었다는 뜻입니다. 바로 그런 상황을 이미 예측하고 있었기에 디모데를 보내서 교회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려는 것이었죠.
사실 바울이 2차 선교여행 때 데살로니가에 들어가 복음을 전할 때, 쉽지 않았었죠. 3주 곧 한달 못 미친 기간 동안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지만 헬라인과 귀부인들이 주님을 영접할 뿐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완강하게 거부했죠. 심지어 불량배들을 매수해서 바울 일행을 위협했죠. 그래서 야손과 몇 몇 성도들까지 관리당국에 끌고 고발했죠. 그러니 바울 일행이 그곳을 빠져나올 때, 남아 있는 야손의 집 사람들 곧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얼마나 힘들지 환히 내다볼 수 있는 상황이죠. 더욱이 그 이후의 지역이 베뢰아로 가서 복음을 전할 때도 마찬가지였죠. 베뢰아에서 바울 일행이 복음을 전하는데,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베뢰아까지 쫓아와서 바울 일행을 방해하고 난리를 폈죠. 그런 어려움과 고난을 잘 알고 있기에, 지금 야손의 집에서 시작된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얼마나 큰 어려움과 환란을 당하고 있을지 환히 내다보이는 것이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위해 산다는 것은 고난과 박해의 삶을 감수하는 길입니다. 그 사실을 바울이 디모데후서 1장 8절에서 이렇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하고 말입니다. 요즘은 성공과 축복이 복된 영성처럼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고, 대신에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위해 받는 고난은 잘못된 것처럼 인식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외형으로 판단하시는 분이 아니라 속 중심을 보고 판단하시는 분이시죠. 만일 눈에 보이는 성공과 축복이 전부였다면 사도 바울이 참수형 당한 것, 또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핍박과 환란을 당한 것, 우리가 환란 당한 것도 다 가짜 복음이여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것은 가짜가 아니라 진짜 복음이란 사실입니다. 고난 없는 영광이 없고, 십자가 없는 부활이 없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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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7-9절은 데살로니가교회에 보낸 디모데가 돌아와서 보고하는 내용입니다.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데살로니가에서 돌아온 디모데의 보고는 바울 사도와 모든 동역자들에게 너무나도 고맙고 위로가 되는 소식이었죠.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힘겨운 궁핍과 박해와 환난에도 그들의 신앙을 저버리지 않고 지켜오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것이 도리어 사도를 비롯한 모든 동역자들에게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고 감사가 되고, 피차간에 그리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깨닫게 되는 게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 누군가 힘들고 고통 속에 있는 삶에서 주님을 잘 믿고 의지하며 산다면 그것이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위로요 기쁨이 도전이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에 그런 감동과 도전을 선사할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그렇기에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자신의 안전과 행복과 풍요와 축복만을 위한 신앙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의 신앙은 철저하게 현실 축복과 이기주의에 깊이 빠져있죠. 그러기에 우리 안에 있는 신앙이 생명력도, 감화력도, 도전정신도 주지 못한 채 화석화된 종교, 죽어있는 종교인의 모습처럼 전락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도, 또 그곳에 파송한 디모데와 동역자들도 모두가 고난 속에서도 참된 믿음의 삶을 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동역자는 물론 함께 신앙생활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감동과 도전을 주었듯이, 우리의 삶도 그러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점입니다.
본문 11-13절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바울 사도의 중보기도입니다.
주 안에서 성도가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피차간의 중보 기도죠. 자신의 기도에 상대방의 형편과 마음과 믿음을 위해 기도하는 것 말입니다. 왜 그렇게 서로를 위해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까? 중보기도를 통해 엮어지는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연대를 통해 주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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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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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무엇입니까?
내가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나의 신앙의 삶이 누군가에게 보고 싶어서 참다 못할 마음이 되게 하는 것, 환란과 핍박 중에서도 나의 신앙의 삶이 누군가에게 감동이 되고 도전받는 삶이 되게 하는 것, 그것을 원하신다는 점입니다. 더욱이 나의 중보기도가 누군가에게 힘과 위로와 되고, 주님의 능력으로 역사하는 힘이 되기를 주님은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그런 믿음의 삶, 격려의 삶, 중보기도의 삶이 되길 발바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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