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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논지)사람은 사회적 존재입니다.
누구도 혼자 살 수 없습니다.
나의 머리도, 나의 신발도, 나의 의복도, 다 다른 사람의 손길이 미친 것들읿니다.
물론 그렇게 복잡하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문제도 발생합니다.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에는 거액의 돈을 걸고 ‘생존 게임’ 이란 걸 하고 있습니다.
또 보이스피싱도 어느 때보다 넘쳐나고 있고 심지어 부부 스와핑이란 것도 버젓이 행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온갖 죄악이 넘쳐나는 세상일지라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지 않겠습니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것 말입니다.
같은 교회 안에도 그렇게 연약한 성도가 있고 또 죄에 걸려 넘어지는 성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깨달음)그때 우리가 해야 하는 것입니까?
무작정 정죄하고 비난할 게 아니라 묵묵히 기다려주고 오히려 중보하는 자세로 나아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의 인생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주관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도 연약함 속에 있는 자들이요 성령님이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도우시고 계시기 때문에 그런 성도를 향하는 우리의 자세는 사랑입니다.
그가 믿음으로 다시금 설때까지 격려하고 붙잡하고 사랑으로 지지하는 것 말입니다.
그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요 마지막 사회의 보루가 되는 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성경으로 문화읽기2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오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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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역배)고린도후서 1장 1-11절은 고린도후서의 도입부로 바울의 축복기도와 함께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감사의 고백이 나와 있었습니다.
고린도후서의 본론은 1장 12절부터 시작이 되죠.
12-14절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 대한 바울의 양심의 증거와 소망에 대해 쓴 내용이었습니다.
15-17절은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방문 계획을 변경한 일은 인간적 변덕 때문이 아니라는 걸 밝혔습니다.
그것은 오직 신실하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신도 신실하게 행한 일이었죠.
그래서 18-22절을 통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성을 거론하면서 자신도 신실하게 좇아 행했다고 변론한 것이었죠.
1장 23절부터 2장 4절까지는 바울이 여행계획을 재변경한 사유를 보다 명시적으로 밝힌 말씀입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 본 23-24절 말씀은 그것이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가지 않은 것은 교회 성도들을 아끼려 함이라고 말이죠.
거짓 교사들은 그들의 믿음이 흔들리거나 연약하면 비난하고 무시하지만 바울은 그런 그들의 믿음을 북돋아주기 위해 참고 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곧 그들의 믿음을 좌지우지 하려는 입장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 기쁨을 주고자 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통해 그들이 믿음으로 서도록 돕고자 한 일이었다는 것이죠.
(깨달음)그것은 함께 신앙생활하는 성도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도 그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군가 약하고 누군가 죄를 범하고 누군가 믿음이 흔들릴 때 함부로 정죄하고 비난하기보다 바울처럼 묵묵히 곁에서 기도하는 것 말입니다.
그들 앞에서 내가 믿음이 좋다면서 그들의 믿음까지 좌지우지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 말입니다.
오직 그들이 바른 믿음 위에 굳게 서도록 바울처럼 묵묵히 기도로 돕는 것도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오늘 본문은 1장 23-24절을 연잇는 말씀인데 본문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한다면 내가 근심하게 한 자밖에 나를 기쁘게 할 자가 누구냐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모두에 대한 나의 기쁨이 너희 모두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원해)여기에 ‘눌림’으로 번역된 헬라어 ‘튈립시스’(θλῖψις)는 외부에서 가하는 ‘압박’(a pressing)과 ‘괴로움’을 뜻하는 말입니다.
‘걱정’으로 번역된 ‘συνοχή’(쉬노케)는 마음의 ‘고뇌’와 ‘비통’을 뜻하는 말입니다.
(깨달음)바울이 그처럼 외적인 압박과 마음의 고뇌를 겪게 된 이유가 뭡니까?
고린도 교회에 침투한 거짓 교사들과 바울의 대적자들의 선동에 휘말려 동조한 일부 고린도교회 성도들 때문이었죠.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보냈는데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죠.
그래서 당시에 목회하던 에베소에 더 머물려던 계획을 변경해 고린도 교회를 급히 방문을 하죠.
하지만 그 방문으로도 사태는 호전되지 않자 금방 에베소로 귀환하고 말았죠.
그처럼 이처럼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두 번째 방문한 것은 근심 중에 이루어진 방문이요 그 후에도 계속 압박과 고뇌는 계속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자기 이기심이나 욕심에 의한 게 아니라 오직 고린도교회를 향한 사랑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성도들을 아끼고 사랑했기 때문에 디모데를 보내고 전격 방문하고 또 안 되자 편지를 보내도 디도까지 파송했겠냐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게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사랑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무례히 행하지 않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그것을 본문 4절에서 ‘넘치는 사랑’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우리가 알고 있듯이 ‘아가페’인데 대가 없이 바라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 단어죠.
독생자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우리를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한 없는 사랑입니다.
바울도 주님의 그 사랑에 힘입어 구원받은 자요, 그 사랑에 힘입어 지금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속을 썩이고 있지만 그들을 향해 오래 참으면서 직접 방문하고 또 눈물의 편지를 써 보낸 것이죠.
(적용)그런데 이 사랑은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잃은 양 비유와 잃은 드라크마 비유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이 사랑은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과도 같습니다.
이 사랑은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하던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향해 주님께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면서 품어주신 그 사랑과 같습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심령 속에도 깃들어 있어야 할 아가페 사랑이지 않겠습니까?
이런 사랑이 있어야 연약함 속에 있는 성도를 품을 수 있고 죄로 인해 넘어진 성도를 다시금 일으켜 세울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바울은 그런 사랑으로 고린도교회 넘어진 성도들을 방문했고 또 눈물의 편지를 써 보낸 것이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더불어 사는 세상, 온갖 죄악이 넘쳐나는 세상속에서도 주님의 사랑을 펼쳐 보여줄 수 있는 사도 바울처럼 살 수 있는 은혜가 충만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바울의 일생과 편지 | 권 성 권 - 교보문고
바울의 일생과 편지 | 바울은 누가 뭐래도 복음 전도자였다. 그가 복음 전도자로 활동한 것은 그의 곁에 위대한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나바, 디도, 실라, 디모데, 누가, 루디아, 야손, 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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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의 아가페 사랑 속에서 넘어진 자들을 사랑으로 품는 은혜안에 거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의 머리나 너의 신발이나 너의 의복은 너 홀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손길로 함께 사는 것 아니더냐?”
“더불어 사는 사회 속에서 죄악에 빠지기도 하고 다른 일에 연루돼 힘든 과정에 지친 사람을 볼 때 너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본문의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 바울이 에베소에서 디모데를 보내고 전격적인 방문을 하고 눈물의 편지를 써 보낸 것도 그들을 아끼고 사랑해서 그런 것 아니더냐?”
“바울이 진격적인 방문을 했을 때도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그때도 바울은 그들을 좌지우지 하지 않고 묵묵히 사랑을 기다려주고 품어주지 않았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예수님께서 집나간 탕자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무엇인지 너는 알 수 있지 않느냐?”
“99마리 양보다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찾는 이유도 간음한 현장에 붙잡힌 여인을 두고 정죄하지 않는다면서 다시는 그런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녀를 사랑으로 품은 이유도 마찬가지 아니겠느냐?”
“오늘 네 곁의 성도가 죄악에 넘어지고 누군가를 오해하고 불신을 차 있어도 너도 바울처럼 주님의 마음으로 아가페 사랑을 오래참고 묵묵히 중보하며 품어야 하지 않겠느냐?”
“주님께서 그런 사랑으로 네가 살아갈 때 이 시대에 바울처럼 너를 친히 사용하시고 은혜를 부어주실 테니 말이다.”
(찬양)주의 사랑을 주의 선하심을 주의 은혜를 생각해보라
하늘보다도 더 높으신 아버지의 사랑 크고 놀랍네
아버지 사랑 크고 놀랍네 내 어찌 그 사랑 잊으리
내 어찌 주의 긍휼 잊으리 내 영혼의 모든 소원 만족시킨 하나님
나 길을 잃고 헤맬 때 그 사랑 날 찾아내셨네
내 영혼의 모든 소원 만족시킨 하나님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은 누구든지 홀로 살 수 없고 더불어 사는 세상입니다.
교회도 혼자 신앙생활하지 않고 함께 신앙생활하는 곳입니다.
그러니 은혜가 많은 곳에 죄가 많을 수 있고 때로는 성도가 넘어지기도 하고 죄에 빠지기도 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완고함 때문에 상대방의 선함도 받아들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바울처럼 아가페 사랑으로 묵묵히 참고 인내하며 품어주는 데 있습니다.
그때 성령님은 때가 되면 상대방을 회복시키고 더 굳건한 믿음의 반석 위에 세워주실테니 말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그런 은혜의 통로,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 이 책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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