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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빅토르 위고의 장편소설 <레미제라블>에는 선하게 살아보려고 애를 쓰는 주인공 장발장이 등장하죠.
장발장은 빵 한 조각을 훔쳤다가 죄가 불어나 무려 20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고 만기 출감했습니다.
하지만 모두들 그가 전과자라고 외면했습니다.
잠잘 곳이 없어 방황하던 그는 사제관에서 뜻밖의 따뜻한 영접을 받고 은식기로 식사대접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 유혹을 못 이긴 장발장은 그 날밤 은식기를 훔쳐 달아났다가 순경에게 붙잡혔습니다.
그러니 사제관에 다시금 끌려올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그를 본 신부는 장발장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은식기와 은촛대 모두 내가 준 것인데, 당신은 왜 은촛대는 안 가져간 것입니까?”
이런 용서와 사랑을 장발장이 받았을 때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그 후에 그는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어 착한 사람이 되어 선행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장발장과 달리 장발장을 쫓아다니며 괴롭히던 형사 자벨이 있습니다.
장발장이 나중에 어느 소도시의 시장이 되었는데 그때도 쟈벨 경사는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가 과거에 탈옥범이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공개하려고 하죠.
그때 마침 대 프랑스혁명이 발생했습니다.
장발장을 존경하는 청년대원들은 일평생 장발장을 과롭힌 악질 경사 자벨을 잡아 옵니다.
그때 그 청년들은 자벨 경사를 총살시키려고 계획을 했습니다.
그 사실을 안 장발장은 그 사형을 중지하라고 말하죠.
그리고는 그를 풀어 주어 자유인이 되게 해 줍니다.
그러자 자벨 경사는 장발장을 향해 묻습니다.
“당신이야말로 나를 가장 죽이고 싶을 텐데 왜 살려 줍니까. 왜 그런 것입니까?”
그때 쟝발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세상에는 넓은 것이 많이 있소. 바다가 땅 도다 넓고 하늘은 그 땅보다 더 넓소. 그러나 그보다 더 넓은 것은 바로 용서라는 관대한 마음이요.”
(깨달음)어떻습니까?
복수는 복수를 낳지만 용서는 그 복수를 품는 위대한 사랑 아닙니까?
용서는 나의 것을 포기하고 서로 화해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사랑의 행위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랑을 십자가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셨습니다.
(적용)그렇기에 저와 여러분들도 용서의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게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알 수 있죠.
혹여라도 내 주변 가운데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있어도, 교회 안에 혹시 그런 사람이 있어도, 주님의 마음을 품고 용서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주님의 마음이요 복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전자책]야긴과 보아스 - 예스24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이 책에는 사무엘서와 열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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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고린도후서 1장 1-11절은 고린도후서의 도입부였습니다.
바울의 축복기도와 함께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감사의 고백이 나와 있었죠.
고린도후서의 본론은 1장 12절부터 시작이 되죠.
12-14절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 대한 바울의 양심의 증거와 소망에 대해 쓴 내용이었습니다.
15-17절은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방문 계획을 변경한 일은 인간적 변덕 때문이 아니라는 걸 밝혔습니다.
그것은 오직 신실하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신도 신실하게 행한 일이었죠.
18-22절을 통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성을 거론하면서 자신도 신실하게 좇아 행했다고 변론한 것이었죠.
고린도후서 1장 23절부터 2장 4절까지는 바울이 여행계획을 재변경한 사유를 보다 명시적으로 밝힌 말씀이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가지 않은 것은 교회 성도들을 아끼려 함이라고 말이죠.
거짓 교사들은 그들의 믿음이 흔들리거나 연약하면 비난하고 무시하지만 바울은 그런 그들의 믿음을 북돋아주기 위해 참고 가지 않았다는 것이었죠.
그것은 곧 그들의 믿음을 좌지우지 하려는 입장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 기쁨을 주고자 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통해 그들이 믿음으로 서도록 돕고자 한 일이었다는 것이죠.
오늘부터 살펴볼 2장 5-11절은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미 징계받은 자들을 용서하고 위로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입니다.
(본문)우선 5-8절 말씀을 살펴보고자 하는데 본문 5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모두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지나치게 말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원해)여기에 ‘근심하게 한 자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근심이란 바울을 근심하게 한 자이기도 하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근심하게 한 자들입니다.
성서학자들은 그들이 할례의 시행과 같은 율법의 준수를 강조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더욱이 그들은 자신들에 있는 추천서가 바울에게는 없다고 공격한 사람들(고후3:1)로 여기죠.
그런 이들은 율법 준수를 강조하는 유대인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유대 출신일 가능성이 높겠죠.
그들이 나를 근심하게 했고 그것은 여러분 모두를 근심하게 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너무 지나치게 말하지 않고자 한다고 밝힙니다.
여기에 ‘지나치게’라는 말은 헬라어로 ‘에피바레오’(ἐπιβαρέω)인데 ‘짐을 지우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만큼 바울은 자신을 근심케 하는 이들의 문제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짐을 지우게 될까 염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나치게 말하지 않겠다는 것이죠.
그 정도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배려하고 아끼고 있는 모습입니다.
(본문2)오늘 본문 6-8절 말씀도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는 것이 마땅하도다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
(원해)5절에서는 자신을 근심하게 하는 이들로 인해 교회 성도들에게 짐을 지우지 않게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내 비쳤습니다.
그런데 6절에서는 ‘그들이 벌 받는 게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앞뒤가 조금 맞지 않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부분을 공동번역에서는 아주 명확하게 번역해 주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이미 여러분 대다수의 사람에게서 상당한 벌을 받았으니
이제는 여러분도 그를 용서하고 위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지나친 슬픔에 빠져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부디 그에게 사랑을 다시 베풀어주십시오.”
공동번역을 보니까 쉽게 이해가 되죠.
바울을 근심케 하고 그 일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분란을 초래한 이들로 인해 고통을 당했지만 바울은 더 이상 자신의 일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더욱이 그것은 이미 그들이 여러분 다수에 의해 상당한 벌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여기에 ‘벌’은 헬라어로 ‘에피티미아’(ἐπιτιμία)입니다.
‘〜위에’란 뜻의 전치사 ‘에피’(ἐπί)와 ‘받다’ ‘당하다’는 뜻의 동사 ‘티메’(τιμή)의 합성어입니다.
이 단어는 ‘처벌을 주다’라는 말과 ‘상을 주다’는 말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바울이 사용한 경우에는 법적인 징계보다는 ‘책망’ 정도가 적당한 단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바울을 힘들게 하고 교회를 힘들게 하는 이들을 징계해서 쫓아내기보다는 책망으로 끝내는 게 낫다는 뜻이죠.
그래야 교회에 분열과 다툼도 치유가 되고 회복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7절 말씀도 이제는 그들을 용서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큰 슬픔에 빠지지 않겠냐고 말한 것이죠.
8절에는 이제 그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게 좋겠다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전자책]하나님의 시간표 -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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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그런데 바울이 이렇게까지 용서하고 사랑을 베풀도록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인간의 죄에 대해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죄인 중의 괴수로 살았던 바울 자신을 사랑과 긍휼로 품어주신 주님의 사랑을 몸소 체험하고 겪은 바울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권면할 수 있는 것이죠.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연약과 불의함에도 불구하고 은혜로서 주어지는 선물 아니겠습니까?
그것처럼 바울이 말하는 용서와 사랑이 그것이죠.
아무리 상대방의 죄가 명백하다고 해도 그 죄인을 품는 사랑과 화해의 여지가 없는 처벌만을 위한 처벌만 행한다면 결코 회복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죠.
그래서 회개한 범죄자들을 징계만 하고 용서하지 않고 품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신앙공동체에 들어올 수 없게 되는 것이죠.
그들을 용서하고 품고 사랑으로 안아줘야 공동체의 일원으로 회복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바울은 8절에서 사랑을 나타내라 하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사랑을 ‘나타내다’는 단어가 헬라어로 ‘퀴로오’(κυρόω)인데 ‘유효하게 하다’ ‘공적으로 확증하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회개한 이들에 대해 교회의 공식 결의를 통해 받아들이고 그 권위를 회복시켜주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 공동체에 사랑을 확증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적용)바로 이것이 장발장을 용서한 사제의 모습이요 악덕 자벨 경사를 용서한 장발장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용서가 용서를 낳고 사랑이 사랑을 낳듯이 말입니다.
예수님의 용서와 사랑을 통해 삭개오도 자신이 토색하고 훔친 것을 가난한 자와 세상에 내 놓겠다고 한 것도 그런 연유 아니겠습니까?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진정으로 깨닫고 체험한 자는 이 세상에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죠.
바울도 죄인 중에 괴수 같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품어주시고 용서하신 주님의 사랑을 알기에 자신을 괴롭게 하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흔들어 놓는 이들을 용서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죠.
[전자책]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예스24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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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저와 여러분들도 원수 같은 사람이 혹여라도 있다면 묵묵히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통해 용서하는 은혜를 베푸시길 원하신다는 것이죠.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빵 한 조각을 훔친 장발장을 누구도 믿어주지 않고 용서하지 않았지만 그 사제는 그를 용서하지 않았더냐?”
“그런 장발장이 다시금 물건을 훔쳐 달아났다 체포됐을 때도 더 큰 용서로 용서했을 때 그가 진심으로 변화되지 않았더냐?”
“사람이 진정으로 변화되는 것은 한 순간에 가능한 게 아니라 꾸준한 용서와 사랑 속에서 그가 변화되는 것 아니겠느냐?”
“지금 바울이 자신의 사도성을 부정하고 거짓말하는 자로 깍아내리는 이들을 향해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권면한 것도 마찬가지 아니겠느냐?”
“그들이 교회 안에서 이미 적절한 비난과 책망을 받았다면 이제는 기꺼이 용서하고 사랑하는 게 주님의 마음이라고 말한 것 아니겠느냐?”
“주님은 베드로에게 일흔 번에 일곱 번씩이라도 용서하락 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말썽과 다툼 이후에 화목하게 된다면 비온 뒤에 땅이 더 굳건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니겠느냐?”
“공동체 안에서 다툼과 분란을 경험했다면 이제는 용서하고 사랑으로 하나될 때 더 결속력이 강화되듯 말이다.”
“바울이 지금 자신을 험담하고 모함한 이들을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권면한 것도 고린도교회 공동체의 더 큰 결속을 위함이지 않겠느냐?”
“바울이 그렇게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적극적으로 권면한 것은 죄인 중의 괴수와 같은 자신을 사랑해 주신 주님의 한 없는 용서와 사랑 때문이지 않더냐?”
“그러니 네 주변에 용서하기 힘든 사람이 있다면, 교회 안에 미워하는 성도가 있다면, 주님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주님께서 원하지 않겠느냐?”
(찬양)아바 아버지 아바 아버지 나를 안으시고 바라보시는 아바 아버지
아바 아버지 아바 아버지 나를 도우시고 힘주시는 아버지
주는 내 맘을 고치시고 볼 수 없는 상처 만지시네
나를 아시고 나를 이해하시네 내 영혼 새롭게 세우시네
[전자책]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예스24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오래전 신영복 교수의 책을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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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용서하고 사랑하는 자녀를 가장 귀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장발장을 용서한 사제를 통해 장발장이 변화되었고 그를 통해 자신을 괴롭히던 자벨 경사까지 용서하게 되었습니다.
미움은 또 다른 미움을 낳고 다툼은 또 다른 다툼의 연속이지만 용서와 사랑은 더 큰 용서와 사랑으로 이어지는 법이죠.
바울도 주님의 용서와 사랑을 체험한 사람이었기에 자신을 험담하고 괴롭히는 일로 고린도교회를 어지럽히고 아픔까지 준 이들조차도 기꺼이 용서하고 사랑하길 권면한 것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우리 주변에 교회 안에 그런 사람이 있을 때 주님의 마음으로 용서하고 사랑할 때 주님은 우리를 축복의 통로로 삼아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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