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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우리는 엘리후의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는 욥의 세 친구보다도 훨씬 나이가 어린 사람이었죠. 그러나 그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거나, 그 세 명의 친구들처럼 욥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입장의 말을 하는 게 아니었죠. 오히려 욥에게 소망과 격려를 하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었죠. 사실 이전에 등장했던 욥의 세 친구는 현재 욥이 겪고 있는 처참한 상황을 보면서 대경실색했습니다. 그들은 욥에게 숨겨둔 악행이 없다면 그런 고통이 뒤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욥의 고통이 무서운 죄악의 결과임을 확신했던 것이죠. 그리고 그 단죄, 그 정죄를 31장까지 이어나갔습니다. 물론 욥도 그에 뒤질새라 자기 의로움을 그 친구들에게 계속 항변했죠..
오늘 본문은 어제 새롭게 등장한 엘리후가 하는 말을 잇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후, “그는 나의 하나님”이란 뜻의 이름을 지닌 엘리후는 아버지 바라겔, 곧 “하나님이 복 주신다” 또는 “하나님이여 복을 주소서”하는 이름의 뜻을 지닌 아버지 바라겔의 아들인데, 그는 아브라함과 친척 관계요, 또 유다 지파의 후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욥과 같은 동족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성찰도 깊은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그는 욥과 세 친구들 사이에 중재자로 나선 사람이고, 이 후에 하나님께서 욥에게 나타나신 것을 보아 그는 세례 요한처럼 주님의 길을 예비한 사자로서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말을 통해 중요하게 깨닫게 되는 게 무엇일까요? 그의..
지금 우리는 욥의 세 친구와 대화가 끝나고, 이제 젊은 사람이요 욥과 세 친구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한 엘리후가 등장하기 직전에, 막간, 곧 휴지기를 통해 욥의 독백을 듣고 있는 상황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욥이 고백하는 최후 진술이기도 합니다. 어제는 자기 자신의 고통과 괴로움이 너무 극렬해 세 친구뿐만 아니라 자기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까지 조롱하고 비난하는데, 그것보다 더 괴로운 것은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이라고 했죠. 그 침묵의 기간이 너무 길면 의로운 욥이라도 자신의 죄 때문에 그런 게 아닌지 의아해한다고 했죠. 그러나 그런 상황일수록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불의한 자들이 설치고 잘되고 승승장구하고, 그러나 의롭게 사는 자들이 걸려 넘어지고 어려움에 빠진다..
지금 우리는 욥과 세 명의 친구들,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 수아 사람 빌닷, 나아마 사람 소발과 같이 대화하고 나눴던 장면들을 살펴봤습니다. 그것이 욥기서 4~27장까지 계속되었죠. 그리고 이제 막간 곧 휴지기를 거쳐, 또 다른 토론자가 등장하는데 그 사람이 바로 엘리후입니다. 그런데 그는 욥이나 욥의 세 친구들보다 나이가 더 어린 사람인데, 그들의 토론을 계속 지켜보고 있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끼어드는 형국이죠. 바로 그와 같은 엘리후의 등장 이전의 상황을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데, 그 내용이 28장부터 31장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연극으로 치자면 욥을 소개하는 장면이 나오고, 이어서 욥과 세 친구가 토론하는 장면이 나오고, 그 다음에 엘리후가 등장하기 전에, 잠깐 천막이 쳐진 상태라..
고통당하는 욥을 위로하러 왔던 세 친구들, 데만사람 엘리바스 수아 사람 빌닷, 그리고 나아마 사람 소발은 욥을 위로하러왔지만 욥과 대화하는 세 차례의 과정속에서 오히려 욥을 정죄하고 비난했죠. 그들이 이야기하는 방식은 다양했지만 그 중심에 흐르는 논지는 한결같았습니다. 이른바 인과응보의 관점으로 욥을 몰아붙이고 회개할 것을 강권한 내용이었죠. 그들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긍휼하신 하나님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존재론적인 하나님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 못했죠. 이른바 하나님의 초월성에 대해서는 확실히 꿰뚫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내재성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지만, 하나님은..
이미 우리가 읽은 바가 있는 사무엘상 22장에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시기와 질투 때문에 쫓기는 다윗이 나옵니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삶이란 참 피곤하고 힘든 일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혼자서 도망 다니는 것도 힘든데, 다윗의 주변에는 사울 정권 아래 환난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모여들어 다윗과 함께 했죠. 그 수가 400여 명이었죠. 그뿐이 아닙니다. 다윗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연로하여 거동이 불편한 부모님을 모시고 도망 다니는 일이었죠. 도망다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동력 필요한 것 아닙니까? 민첩하게 움직이려면 말이죠. 쫓아오는 사람보다 빨리 도망갈 수 있어야 잡히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 혼자 도망가도록 버려두지 않았습니다. 그 주변에 소외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