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열기)(나예) 평상시에도 하루에 세 번씩 교우들을 위해 기도하지만, 어떤 일이 닥치면 더 기도하게 됩니다.
그것이 작은 교회를 맡고 있는 저 같은 담임목회자의 삶이요 기도이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제가 기도한다 한들 그 주권은 하나님의 영역 속에 있음을 우리는 놓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도 없어서는 안될 절대적인 것들은 미리 공급해주시는 분이십니다.
햇빛도, 물도, 공기도, 이것들은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될 절대적인 것들이지만, 우리가 구하지 아니해도 공급해주시죠.
그와 같은 자연계의 피조물을 통해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심을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자각하도록 하기 위함이신 것이죠.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푸신 인자하심의 은혜, 곧 헤쎄드의 은혜 아니겠습니까?
물론 하나님께서는 자연계의 피조물이 내 삶과 거리가 먼 것 같아, 아주 친밀한 헤쎄드의 은혜를 베푸실 때가 있죠.
(나예2) 제 어릴적 기억이 왜 없는지 모르겠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헤쎄드의 사랑은 그것입니다.
시골 뒷산에 올라가 꾸지뽕을 따다가 깨진 콜라병에 발이 박혀 피가 줄줄 흘렸는데, 그때부터 한 달간 어머니의 손길을 통해 나를 감싸주신 하나님의 헤쎄드 말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시골 동네 저수지에서 또래 아이들과 수영을 하곤 했는데, 그 저수지에서 선배 한 명이 빠져 죽은 일이 발행했습니다.
무더운 여름철에 늘 하던 물놀이였는데, 왜 하필 그 선배가 빠져죽었는지, 나머지는 왜 죽지 않았는지 누가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날 물 속에서 빠져 죽지 않고 무사할 수 있었던 것, 그 날의 일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신 헤쎄드 외에 설명할 길이 없는 것이죠.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전주 태평교회에서 중고등부 학생들을 이끌고 여름수련회를 할 때도 우전리 해수욕장에 간 일도 있었죠.
충주 성광교회에서 청년들을 데리고 괴산면 속리산 화양계곡에 간 일이 있었는데, 그때 큰 어려움에 빠질 뻔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헤쎄드의 은혜로 감싸주셨습니다.
더욱이 50이 넘어서면서부터, 20대를 넘기지 못하고 죽은 친구나 40대 과로사로 쓰러진 친구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헤쎄드를 깊이 깨닫곤 합니다.
(깨달음) 어떻습니까?
이와 같은 하나님의 헤쎄드는 저에게만 베푸신 하나님의 긍휼과 인자하신 헤쎄드이겠습니까?
여러분들에게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헤쎄드가 없었습니까?
아니죠.
우리 각자는 하나님께서 직간접적으로 베푸신 하나님의 헤쎄드를 다 체험한 자들입니다.
그 옛날 어머니의 배속에서 있을 때부터 세상에 나올 때도,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도 많았는데, 그런 시대에 나를 태어나게 하신 것만 해도, 하나님께서 베푸신 헤쎄드의 은혜 아니겠습니까?
육신에 질병이 찾아올 때도, 가정적인 어려움을 당하는 그때도, 자녀로 인해 답답한 그 상황에도,
하나님의 긍휼하신 헤쎄드가 없었던들 어찌 지금껏 우리가 존재할 수 있었겠습니까?
(적용) 왜 하나님께서 그런 헤쎄드의 은혜, 자비와 긍휼과 인자하심의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것입니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세상의 창조주이심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시죠.
내가 내 인생의 주관자가 되어 내 모든 것을 주도할 수 있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못한 인생임을 깨닫도록 말이죠.
내가 내 계획대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내 인생은 내 설계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도록 말이죠.
그를 통해 나의 무능함, 나의 한계를 알게 하셔서, 창조주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날 수 있도록 이끄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지나온 인생의 길목마다 우리가 생각지 못한 헤쎄드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이죠.
(발췌) 그것은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이랜드 그룹의 박성철 회장, 목포가 고향인 그 분도 마찬가지 아니었습니까?
박은몽의 〈나타내심〉이란 책에 박성수 회장이 주님의 헤쎄드를 덧입은 삶이 나와 있다고 했죠.
그는 어린 시절 부유한 집안에서 예수님을 믿는 가정 속에서 자랐고, 어머니 손에 이끌려 예배당에 나갔습니다.
1971년 연세대학교 식품공학과에 입학했는데, 그 당시 교회생활에 익숙했지만 거듭남의 체험은 없었죠.
예배당에 나가 예배는 드렸지만 자기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상태였죠.
그러다 CCC에서 활동하던 사촌 누나로부터 성령 충만에 관한 전도지 한 장을 건네받게 되었죠.
그때 그 전도지를 통해,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고, 마음 속에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죠.
그러자 여태껏 느끼지 못한 평안과 승리와 기쁨과 감사에 그 심령에 봇물처럼 터져 나왔습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푸신 헤쎄드의 은혜 아닙니까?
그 와중에 그는 중간에 휴학을 하고 반수를 했는데, 이듬해 서울대 건축공학과에 입학했죠.
1973년에는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빌리 그레이엄 전도 집회에 참석해 주님께 헌신을 다집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대학 4학년 때 1975년, 그에게 생각지도 못한 무서운 병마가 찾아왔었죠.
근육무력증이라는 휘귀질병 말입니다.
갑자기 손에 힘이 풀리면서 손글씨를 쓸 수 없었고, 이불도 무거웠고, 점퍼를 올리는 것조차 힘겨워했죠.
더 무서운 것은 근육이 악화돼 전신마비가 되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었죠.
그래서 금식기도에 매달렸고, 여러 기도원도 찾아다녔고, 주변에 그를 위해 중보기도해 주는 사람도 많았죠.
그러다 어머니 소개로 어떤 한의사를 만나 한약을 먹게 되었는데, 조금씩 힘이 생기고, 3개월이 되자 불편이 없었죠.
하지만 재발할지 몰라, 그 한의사를 찾아가 다시금 약을 달라고 요청을 했죠.
그러자 그 한의사는 “이상하네요. 제가 어떤 처방전을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하고 말해죠.
처방전조차 어디로 사라져버렸는지 알 길이 없다고 할 때, 그때 박성수는 깨달았죠.
“아, 하나님께서 내 불치병을 고쳐주신 거구나.”하고 말이죠.
그것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의 헤쎄드를 절실하게 깨달은 사건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생기발랄한 청년이라 해도, 자기 건강을 자랑치 못할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그러나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면 한순간 회복케 하신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의 인생은 그의 것이 아니라 그를 지으신 하나님의 것임을 뼈저리게 느끼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헤쎄드였던 거죠.
그런데 또 어떻습니까?
몸은 낫게 되었는데 1980년 학원과외금지조치로 학원 강사 일을 못하게 되었죠.
그러자 병상에 있으면서 읽은 책들을 토대로 사업구상을 했고,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했죠.
“하나님, 사업의 길을 열어주시옵소서. 제 삶은 이미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원하지 않았습니까?”
“사업이 성공하더라도 온전히 하나님께 소유권을 맡기며 영광을 돌리는데 사용하겠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두 사람을 통해 5백만원의 사업자금을 얻을 수 있었죠.
그 5백만원으로 이화여대 앞에 2평짜리 옷가게를 열었는데, 그것이 잉글랜드의 출발이자 이랜드 출발이 되었죠.
그때 남대문시장과 평화시장을 누비며 시장성이 있는 옷을 골라 팔았는데, 의류체인점을 둘 정도로 불티나게 팔렸죠.
그렇게 사업이 잘 되다가, 세금계산서를 떳떳하게 낼 수 있고, 하나님께 더욱 영광돌리는 사업이 되길 기도했죠.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게 1986년 주식회사 이랜드, 곧 법인 이랜드가 탄생한 것이었죠.
그 해 매출액이 66억원, 1987년엔 1백45억원, 1988년엔 4백65억원, 1989년에는 1천억이 넘어섰죠.
그때마다 하나님께 십일조와 감사의 예물을 드리며, 구제와 선교도 적극적으로 헌신했죠.
왜요?
그 모든 것이 자신이 잘 나서, 자신이 건강해서, 자신의 능력으로 된 일이 아님을 그는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죠.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모든 섭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펼쳐지는 것임을, 전적으로 체험했기 때문이죠.
다만 그 시절 이랜드가 성장하기까지 대리점 경영방식이 한 몫을 담당했기에 회사이익보다 대리점이익에 신경을 썼죠.
하지만 모든 대리점에게 절대 양보하지 않은 게 하나 있었다고 했죠.
무엇이었습니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십계명이 그것이었죠.
그래서 ‘주일은 주님과 함께’라는 경영방침을 세워, 대리점 프로세스를 세웠죠.
주일에 문을 연 게 한번 발각되면 1주일간 물건납품 중지하고, 3번 이상 발각되면 대리점계약취소를 하는 조항 말이죠.
사실 그 당시 다른 의류 업체들은 일 년 가운데 총 매출의 30%를 주일 판매에 의존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만큼 주일에 쉰다는 것은 그만큼의 매출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죠.
하지만 왜 그것을 감수하면서까지 하나님 제일주의로 경영방침과 프로세스를 세웠습니까?
자신을 구원해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자신의 연약한 육신을 치료해주신 분이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업자금이 없이 허덕일 때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사업자금을 대주셨기 때문에.
그리고 주일날 가게 문을 열지 않아도 매출의 30% 이상을 책임져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죠.
바로 그것이 그의 인생에 베푸신 하나님의 헤쎄드 아닙니까?
(적용) 어떻습니까?
그와 똑같은 모습은 아닐지라도, 우리 주님은 우리를 향해서도 그와 동일한 헤쎄드의 은혜를 베푸시는 창조주이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시는 주님의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 시편은 히브리어로 ‘테힐림’(Tehillim)이이라고 부르는데, 그 뜻은 ‘찬양의 노래들’입니다.
시편은 1편에서 150편까지 있는데, B.C.1400년 경의 모세가 쓴 시도 있고, B.C.100년경의 다윗이 쓴 시도 있죠.
더욱이 그 아들 솔로몬의 시도 있고, 고라자손과 아삽과 또 다른 뮤지션들이 쓴 시도 있습니다.
그 시들을 바벨론 포로 이후에 편집하여 엮은 것으로 알려진 게 우리가 갖고 있는 시편입니다.
이 시들 중에는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체험담을 기록한 시도 있죠.
또한 공동체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한 내용의 시도 담겨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인생의 위기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긍휼을 덧입은 시편도 들어 있습니다 .
오늘 읽은 시편 136편도 실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덧입어 찬양의 고백을 올린 시라고 했습니다.
그 감사의 고백시가 계속 반복되는 게 있다고 했습니다.
26절로 기록된 시편 136편에 총 26번이나 등장하는 “그 인자히심이 영원함이로다”하는 고백이 그것이라고 했죠.
그리고 그 ‘인자하심’이라는 히브리어가 ‘헤쎄드’(חֶסֶד)인데, 우리말로 ‘친절’, ‘자비’, ‘긍휼’, ‘인애’로 번역되는 단어였죠.
그 단어는 사람과의 관계, 사람과 천사의 관계,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베푸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에게 요청하는 헤쎄드,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천사에게 요청하는 헤쎄드였죠.
그런가 하면 아브라함의 늙은 종 엘리에셀이 하나님께 간구하는 긍휼의 은혜가 헤쎄드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빠져나와 홍해 앞에 섰을 때도 하나님께서 긍휼의 헤쎄드를 베푸셨다고 찬양했죠.
그런가 하면 시내산에서 언약관계를 맺은 그들이, 황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굿판을 벌일 때, 그들 중 3,000명을 처단하신 뒤에, 다시금 그들과 관계를 맺을 때도 바로 그 헤쎄드의 은혜를 베푸셨다고 고백을 하게 됩니다.
(본문) 오늘 읽은 본문은 하나님의 어떤 헤쎄드를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까?
본문 5-9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실까요?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원해) 어떤 헤쎄드의 은혜를 찬양하는 시 같습니까?
그렇죠.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시죠.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 땅을 물 위에 드러나게 하신 이, 해로 낮을 주관하고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 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시 아닙니까?
그런데 2절을 유심히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그런데 여기에서 ‘빛’은 히브리어로 ‘오르’(אוֹר)입니다.
‘오르’라는 빛은 해와 달과 별을 뜻하는 발광체와는 다른 빛입니다.
어둠과 대조되는 ‘밝은 상태’, 거짓과 대조되는 ‘진리’, 또 죽음과 대조되는 ‘생명’을 뜻하는 빛입니다.
왜냐하면 본문에 나오는 해와 달과 별들은 발광체의 빛들로 하나님께서 넷째날에 지으신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는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죠.
그것은 죄와 사망을 향해 치닫는 인간에게 생명과 구원의 빛을 비춰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깨달음)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 요한과 그 형제 야고보에게 주님께서 ‘나를 따르라’하고 부르셨을 때, 그들의 심령에 빛의 세계를 열어주신 게 그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죄와 사망을 향한 다메섹 길을 걸어갈 때, 부활하신 주님께서 빛의 세계를 열어주신 게 바로 그것입니다.
수가성 여인이 남편 다섯을 두었고 또 새로운 남편과 함께 정욕을 위한 삶을 살아갈 때, 그 우물터에서 그녀에게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맛보게 해 주신 게 바로 그것입니다.
기드온이 미디안 연합군 135,000명 앞에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을 때, 그에게 그 크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여주기 위해 양털뭉치와 타작마당 사이에 양털뭉치만 이슬이 내리는 것을 보여주신 게 바로 그 빛의 세계죠.
그와 같은 자연계의 발광체를 초월하는 빛, 생명과 진리의 빛의 세계를 열어주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자연계는 물론이요, 자연계를 초월하는 영적인 세계의 주관자임을 알도록 하는 것 아닙니까?
그 빛의 세계를 깨닫지 못했다면 어찌 주님의 부르심에 갈릴리 제자들이 응답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빛의 세계를 보지 못했다면 어찌 사도 바울이 주님을 위한 선교사로 나설 수 있었겠습니까?
그 빛의 세계를 맛보지 않았다면 어찌 정욕에 사로잡힌 수가성 여인이 동네 사람들에게 주님을 만났다고 대놓고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빛의 세계를 체험하지 못했던들 어찌 기드온이 300명의 군사와 함께 미디안 대군 135,00명을 향해 싸울 수 있었겠습니까?
주님께서 열어주신 그 빛의 세계를 통해 청년 박성수가 주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빛의 세계를 통해 아무리 사업이 번창해도 주일은 주님과 함께 지켜야 한다는 것을 최고의 모토로 삼지 않았습니까?
(주문)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께서는 자연계의 발광체와 더불어 영적인 빛의 세계를 우리에게 열어주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시길 원하신다는 것이죠.
(주음성)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금 성령님을 통해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나는 자연계의 발광체를 통해 이 세상의 창조주 하나님을 너에게 알게 하지만, 영적인 빛의 세계도 열어주길 원한다.”
“갈릴리 어부 출신의 제자들에게, 사도 바울에게, 수가성 여긴에게, 기드온에게 체험케 한 그 빛의 세계를 말이다.”
“청년 박성수에게 몸의 고통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네 인생의 뒤안길 속에 네 뜻대로 된 일보다 하나님께서 헤쎄드로 너를 빚고 너를 이끌어오신 게 훨씬 더 많지 않더냐?”
“그러니 눈에 보이는 것 전부라고 단정하지 말고, 오직 눈을 열어 빛의 세계를 열어주시도록 주님께 간구하면 좋겠구나.”
“박성수 청년이 사업자금 500만원이 없어서 주님께 간구할 때 주님께서 돕는 자를 보내주셨던 것처럼, 너에게 그런 은혜를 베풀지 않겠느냐?”
“기드온이 거대한 적들의 위협 앞에 큰 산이라고 감히 맞서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빛의 세계를 통해 기꺼이 믿음을 가지고 나가 싸웠던 것처럼 말이다.”
“너는 너의 힘이나 너의 역량만을 의지하지 말고 이 세상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며 믿음으로 나아갔으면 좋겠구나.”
“주일을 지켜도 다른 의류업체와 충분히 경쟁에서 이기게 하시는 그 빛의 세계를 박성수에게 열어준 것처럼, 너에게도 열어주길 원한단다.”
(찬양) 은혜 아니면 살아갈수가 없네 호흡마져도 다 주의것이니
세상평안과 위로 내게 없어도 예수 오직 예수뿐이네
크신 계획 다 볼 수도 없고 작은 고난에 지쳐도
주께 묶인 나의 모든 삶 버티고 견디게 하시네
은혜아니면 실아갈 수가 없네 나의 모든것 다 주께 맡기니
참된평안과 위로 내게 주신 주 오직 예수 뿐이네
(발췌) 신세계 콜택시 대표이자, 뉴저지주 웨인에 있는 베다니 교회에 장로로 섬기고 있는 김정일 장로가 있습니다.
그 분은 20년 동안 미국에서 택시 운전을 하면서 성실하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분이죠.
그의 〈New York 천국으로 가는 마차〉라는 책은 가난한 어린 시절부터 미국에서 하나님을 만난 이야기가 담겨 있죠.
그가 초등학교 1학년 2학기때 그의 아버지는 막걸리를 마시다 고혈압으로 쓰러져 5남3녀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죠.
그때부터 찢어지는 가난과 싸워야 했는데, 학교 육성회비를 못 냈다면서 졸업장도 받지 못한 그였습니다.
그 후에 무허가자동차공장에서 일을 했는데, 당시에 자동차 밑의 시다발이에 들어가 콜타르를 칠하는 게 그의 일이었죠.
1970년대 무렵, 그렇게 한 달간 콜타르를 묻혀가며 얼굴에 뒤집어 쓰고 일하면서 받은 월급이 2천원이었습니다.
그 후 학원을 나와 학원강사겸 청소부 일을 했고, 몇 년 후는 충무로의 ‘엔젤사’ 오디오가계 직원으로 취직을 했죠.
그곳에서 고장난 오디오를 수리하고 판매된 오디오를 운전사와 함께 싣고가 손님 집에 설치해 주는 게 그의 일이었죠.
그곳은 그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들, 태평양화장품 회장, 동신제약 회장, 신앙촌 박태선, 국회의원등이 단골이었죠.
어느 주일날엔 엔젤사 오디오 사장이 골프를 치러가며 그에게 금고열쇠를 맡기며, 가게를 지키도록 했죠.
그런데 그날 누구도 팔지 못한 4,500만원짜리 오디오를 그가 팔았는데, 갑자기 봉급도 오르고 영업주장으로 발탁됐죠.
이제 군대에 갔다 왔는데,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에 음악감상실 오디오 오퍼레이터를 모집한다는 광고가 붙었죠.
그 일을 해본 경험이 있고, 재벌들을 상대한 이력이 있어 서류를 넣는데, 합격이 됐습니다.
그로부터 6개월간 5차까지 면접이 이어졌는데, 그 당시 신격호 회장의 딸 신영자 롯데백화점 사장이 그를 지목했죠.
그렇게 3년간 열심히 일하고 돈도 많이 벌었는데, 친형제 같은 형님이 CD음반수입회사를 설립하자는 제안에 일을 그만뒀죠.
그런데 서울대 졸업생들과 고대연대 졸업생들을 뽑아서 직원으로 채용해 놓은 상태였는데, 그 형님이 없던 일로 하자는 것이었죠.
그때 그가 결심한 게 미국 이민이었는데, 가족 4명의 비행기표를 구입하고 났을 때 백달러가 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런 남편과 함께 꼬맹이 둘을 데리고 낯선 미국으로 떠나야 했던 그의 아내, 도초 출신인 그의 아내는 어땠을까요?
그의 아내는 미국에 와서 남편과 같은 직장동료의 권유로 교회에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는데, 밤마다 울어대는 아이를 위해 기도할 때 신기하게 하나님께서 고쳐주셨습니다.
더욱이 남편도 하루에 두 갑의 담배를 피웠는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자, 담배도 끊고 술도 끊으며 함께 교회에 나갔죠.
더 놀라운 사실은 그런 남편에게 성령님이 임하셨고, 콜택시를 몰면서 전도하는 증인으로 변화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큰 아들은 대학교에 들어가서 모두 A학점을 받았고, 월스트리트 도이처 뱅크에 인턴으로 들어가게 되었죠.
그 인턴이 끝나던 날 그 아들이 제일 좋은 점수를 받아 일을 했는데, 후에는 도이처 뱅크보다 한 단계 직급이 높고 토요일과 주일엘 쉬는 회사에 합격되어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는 사실이죠.
어떻게 도초에서 태어난 섬마을 댕기머리 소녀가 미국의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아들을 두며, 기도로 살게 하셨는지, 꿈만 같다고 간증을 하죠.
(깨달음)김정일 장로가 쓴 그 책을 보면, 콜택시를 몰면서 수많은 사람을 전도한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 왜 그 책 제목을 천국으로 가는 마차라고 했는지, 알 수 있죠.
그가 모는 콜택시는 단순한 차가 아니라 많은 영혼들을 전도하여 하나님 품으로 인도하는 천국행 마차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콜택시를 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위급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분들과 쫄지 않고 담대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 기본기는 어디에서 갖춰지게 된 것입니까?
서울 충무로 엔젤사에서 근무할 때, 그때부터 이미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하게 하셨다는 것을 그가 간증하고 있습니다.
(적용)직업에 귀천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빛의 세계를 열어주시는데, 빈부귀천의 차별이 있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죠.
하나님께서는 갈릴리 어부 출신의 제자들에게 빛의 세계를 열어주셨고, 율법학자였던 바울에게도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뽕나무 재배자였던 아모스에게도 빛의 세계를 열어주셨고, 왕의 아들 솔로몬에게 열어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있던지, 어떤 지위속에 있던지, 주님은 그것을 따져묻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 심령이 가난한 상태의 심령이라면,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그런 절박함을 주님께 토로하는 자라면, 기꺼이 그 빛의 세계를 열어주시길 원하시는 분이신 줄 믿습니다.
(내음성)그렇기에 우리가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 받으실지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주님, 저에게도 제가 예상할 수 없는 주님의 헤쎄드의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김정일씨처럼 택시를 몰지라도, 도초에서 태어난 댕기머리 섬소녀라 할지라도, 자식이 밤마다 울면서 보챌지라도, 주님 제 힘으로는 이 세상을 이겨낼 힘도 능력도 없어요.”
“주님, 사업을 하려다 사업자금을 날린 김정일 씨의 심령이 제 심령이예요.”
“아니, 모든 게 갖춰 있어도 주님께서 열어주시지 않으면, 주님께서 세워주시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저예요.”
“주님의 긍휼하심의 헤쎄드 은혜를 저와 제 가정에, 제 일터와 사업장에게, 제 자녀들에게 비춰주세요.”
“그를 통해 제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김정일씨처럼 전도하는 증인으로, 그 빛의 세계를 소개하는 증인으로 살겠어요.”
“지금은 제 자녀의 앞길이 희미하지만, 주님께서 빛의 세계를 열어주시면 월스트리트에서 일을 할지 누가 알겠어요”
“주님, 제 자녀에게 빛의 세계를 열어주시옵소서.”
(찬양)하나님은 너를 만드신 분 너를 가장 많이 알고 계시며
하나님은 너를 만드신 분 너를 가장 깊이 이해하신단다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너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며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너를 쉬지 않고 지켜보신단다
그의 생각 셀 수 없고 그의 자비 무궁하며
그의 성실 날마다 새롭고 그의 사랑 끝이 없단다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이 세상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해와 달과 별들을 지으신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아둔한 우리의 영혼을 흔들어깨우시고자 우리에게 자연계의 빛을 넘어 영적인 빛의 세계를 열어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갈릴리 어부들을 부르실때의 그 부르심의 빛처럼, 바울의 영적인 눈을 열어주신 그 빛의 세계처럼, 수가성 여인에게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맛보게 하시는 그 빛의 세계처럼 말입니다.
근육무기력증이라는 고통 속에서 그를 부르셨던 박성수 청년에게 비춰주셨던 영적인 깨달음을, 낯선 미국 땅에서 주님께 매달릴 때 새로운 직장은 물론 큰 아들까지 월스트리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근무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그 빛의 세계처럼 말입니다.
왜요?
왜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 눈에 보이는 자연계의 세계를 넘어 영적인 세계의 빛과 깨달음을 열어주시는 것입니까?
우리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나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알도록 하기 위함이십니다.
그를 통해 남은 인생도 창조주 하나님의 헤쎄드, 그분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신 은혜를 사모하며 살도록 하기 위해서죠..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그런 빛의 세계를 갈망할 때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그런 은혜를 부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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