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열기)(예화)신데렐라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고생고생하다가 멋진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죠.
우리나라의 콩쥐팥쥐, 흥부와 놀부와 같은 권선징악을 담은 이야기라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실제로 그런 주인공이 있다면 어떻게 할까요?
1970년대 시골 어느 처녀가 서울의 한 장로님 댁의 부엌데기로 들어갔습니다.
그 장로님의 아들은 당시에 서울대를 다니고 있었죠.
그 처녀는 그 집에서 온갖 허드렛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밥도 짓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잔심부름도 하고 말이죠.
그런 삶을 사는데 서울대를 다니던 그 장로님의 아들의 눈에 그 부엌데기 처녀가 눈에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어느날 그 장로님이 그 아들에게 신붓감을 준비했다면서 선을 보도록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그 아들은 따로 마음에 둔 처녀가 있다고 이야기를 했죠.
처음엔 말하기를 꺼려했는데, 결국은 자기 집의 부엌데기 처녀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장로님은 역정을 내면서 절대로 안 된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며칠간 기도를 해 보자고 했죠.
그때부터 1주일 넘게 기도를 하는데 그 장로님은 아들의 마음을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바꿔 달라고 기도를 했죠.
그리고 다시 만나 이야기를 하는데, 끝까지 아들이 고집을 꺾지 않자, 아들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면서, 결국 승낙을 했죠.
그로 인해 시골에서 올라온 부엌데기 처녀는 갑자기 신데렐라처럼 서울대를 나온 그 아들과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깨달음) 그러니 부엌데기 처녀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감개무량하고, 그 장로님과 부인 권사님에게 얼마나 감사했겠습니까?
그 무엇보다도 자신을 아내로 택하여 준 그 준수한 남편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했겠죠.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게 끝나는 것이겠습니까?
당시에 부엌데기에서 서울대를 졸업한 남자와 결혼을 했고 신분상승까지 한 마당이니 그에 걸맞는 수준을 갖춰야 했죠.
그때부터 그녀는 남편의 수준에 걸맞게 공부를 했고, 삶의 규범과 수준까지 끌어올려 부족함이 없도록 살아갔던 것입니다.
그 남편이 동창회 모임을 가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수준의 모습을 드러내게 됐던 것이죠.
(적용)이와 같은 실제 이야기를 신앙적으로 해석하여 우리에게 적용하면 어떤 모습이 되는 것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의 신부들이고, 주님은 신랑으로 이 땅에 재림하게 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신랑되신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신부로 거듭나게 된 것, 그렇게 신분이 변화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나의 죄와 허물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주님께서 내게 찾아와 주지 않으시면 여전히 죄와 사망과 지옥을 향해 치닫고 있을, 더럽고 추한 부엌데기에 불과할 우리 자신들이죠.
그렇게 더럽고 추한 부엌데기에 불과한 우리를 주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품어주셔서 구원해주신 것이죠.
그렇다면 죽음에서 생명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상승된 우리에게 필요한 게 무엇이겠습니까?
그 부엌데기 처녀가 자기 남편을 바라보며 그에 걸맞는 수준으로 꾀하게 위해 노력하고 애쓰는 삶과 같은 것이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우리에게도 바로 하나님의 자녀다운 수준의 모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신 게 십계명과 같다는 것입니다.
(성화)지난 시간에 애굽의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와 시내광야까지 인도한 과정을 살펴봤었죠.
6개월에 걸쳐 피, 개구리, 이, 파리, 악질, 독종, 우박, 메뚜기, 흑암, 그리고 장자의 죽음에 이른 10가지 재앙을 보여주셨죠.
그 모든 심판의 재앙을 바라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인도에 따라 애굽을 빠져나와 홍해에 당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마른 땅처럼 갈라 주신 그 홍해 길을 통과했죠.
그 후에 수르 협곡을 지나 신광야에 당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빈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해 주신 대 역사를 체험했죠.
그리고 르비빔에서 마실 물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 반석을 쳐서 생수를 공급해주시는 놀라운 사건을 경험하게 되었죠.
왜 그토록 하나님께서는 갖가지 기적과 역사를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체험케 하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애굽 백성들이 섬기는 각종 신들보다 가장 뛰어난 신이자 독보적이고 유일하신 신이심을 알도록 하기 위함이었죠.
홍해를 가르셔서 하나님께서 바다의 주관자임을 알게 하셨고, 빈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셔서 하늘의 주관자이심을 알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르비딤 반석을 쳐서 생수를 공급해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땅의 주관자이심을 알도록 하기 위함이셨죠.
(깨달음)그런데 그런 기적과 체험을 보여주시는 것으로 끝내셨습니까?
아니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시내광야로 인도하셨을 때,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표자들을 불러 언약을 체결하셨죠.
이른바 하나님께서 그들의 아버지가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자는 쌍방간의 언약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어떤 계약이든지 일방적인 계약은 계약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상호간에 유익이 있어야 계약이 성립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간에 맺은 언약도 마찬가지죠.
여태껏 애굽에서 6개월간의 심판 재앙을 다 보여주셨고, 50일동안 시내광야에 당도하기까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바다의 주관자이심을 다 보여주셨죠.
그때 비로소 ‘나는 너희들의 아버지가 될 테니, 어떻느냐? 너희들은 나의 자녀가 되겠느냐?’하면서 쌍방간에 언약을 맺은 것이죠.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짐승의 피를 잡아 하나님을 향해 피를 뿌렸고, 또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피를 뿌리면서 언약식을 체결했죠.
그리고 온 백성들은 둘러앉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의미로 서로가 떡을 떼며 잔치를 벌였죠.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올려 오늘의 말씀 곧 하나님께서 친수로 쓰신 ‘십계명’을 주신 것이었죠.
물론 첫 번째 써 주신 돌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황금송아지 굿판을 벌인 까닭에 모세가 깨트렸죠.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령을 재정비토록 하여, 다시금 모세를 시내산에 불러올려 다시 써 주셨죠.
그만큼 그 십계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와 사망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변화된 모습으로 살도록 하라는 지침서와 같은 것입니다.
시골 부엌데기의 수준으로는 새로운 남편의 수준에 맞출 수가 없기에 그 남편의 수준에 걸맞는 삶의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전에 애굽에 살던 방식대로, 애굽의 습관대로는 결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신 것이죠.
(적용)그렇다면 이 십계명의 말씀은 과연 지금으로부터 3천년 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국한된 계명이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죠.
그 십계명은 출애굽 1세대만이 아니라 광야의 1.5세대와 2세대는 물론이고, 그 후 지금까지도 지켜야 할 언약의 계명이죠.
모름지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수준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죠.
(역배)바로 그것을 강조한 말씀이 본문 1-2절 말씀이었음을 지난 시간에 살펴봤었죠.
지금도 유대인들은 1-2절의 말씀, 그 중에서도 2절 말씀을 지금도 제 1계명으로 삼고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왜 그 계명을 유대인들은 지금도 제 1 계명으로 삼는다고 했습니까?
이 말씀이 없이는 유대인들의 근거도, 그들의 정체성도 성립이 되지 않기 때문이죠.
이스라엘 백성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애굽 땅 종되었던 집, 곧 애굽의 감옥에서 건져내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적용) 이것은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어떻게 마귀의 종에서, 사단의 노예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까?
오직 우리의 죄와 사망을 위해 대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 가능한 것이죠.
바로 그와 같은 사실을 유대인들은 지금까지도 기억하면서 제 1계명으로, 가장 근간이 되는 계명으로 지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오늘 우리가 집중하고자 하는 말씀은 3절 말씀입니다.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역본)이 말씀을 새번역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
(역본2)그런가 하면 현대인의성경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아라.”
(원해)그런데 히브리어 원문은 ‘안된다’(with verb - absolute prohibition)는 의미의 ‘로우’(לֹא)라는 부사가 맨먼저 나옵니다.
원문에 보다 가깝게 번역하면 “안된다. 나 외에 다른 신들, 다른 엘로힘들을 둬서는 안된다”하는 말입니다.
(깨달음) 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른 신들을 둬서는 안된다고 강력하게 말씀하신 겁니까?
이미 애굽 땅에서 6개월간 10가지 재앙을 내릴 때, 너희들이 보지 않았느냐, 하는 뜻입니다.
애굽의 마술사들이 피나 개구리나 재앙까지는 흉내냈지만, 이의 재앙부터는 결코 흉내낼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실은 애굽 사람들은 갖가지 동물도 신으로 섬기고 있었고, 여러 자연물들을 모두 신으로 섬기고 있었던 것이죠.
애굽 사람들 중에는 개구리를 신으로 떠받든 이도 있고, 파리와 여러 짐승은 물론 해와 달과 별까지도 신으로 떠받들고 있었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그것들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들을 신으로 섬겨서는 안된다는 것을 일깨워주신 것이죠.
(적용)그런데 오늘날 우리 주변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장사를 새로 시작하는 사업장이나 새로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돼지머리를 놓고 절을 올리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죠.
돼지머리를 잡아 제사상에 올려야 신이 복을 내려준다면서 말입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새로운 차를 샀을 때도, 새로운 집에 이사를 갔을 때도, 새로운 배를 만들어 바다에 항해할 때도, 차신와 집신과 바다신이 있다면서 돼지머리를 놓고 제사를 하죠.
그것은 절대로 신이 될 수 없고, 다 귀신을 부르는 일인데도,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들이 복을 주는 게 아니라, 그것들은 죽이고 멸망시키는 게 목적인데도, 무지한 사람들이 그걸 모르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3천년 전에 이미 이와 같은 사실을 십계명에 두어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구별되게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주문)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변화되게 해 주셨고 그 수준에 맞는 삶을 살도록 하나님만을 섬기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입니다.
(주음성) 그래서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는 60년대에 시골서 올라와 장로님의 집에 부엌데기로 살던 그 처녀가 신분이 변화된 사실을 알 수 있지 않겠느냐?”
“유능한 집안의 며느리가 되고 그 남편의 아내로 신분이 변화되었다면 그 수준에 걸맞는 삶을 살고자 애쓰지 않았더냐?”
“애굽에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변화되었기에 그에 걸맞는 수준을 위해 십계명을 주지 않았더냐?”
“과거에 마귀 사탄의 종으로 살던 너도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를 삼아주셔서 너의 영적인 신분이 변화되지 않았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도 신데렐라가 신분이 변화되어 그에 걸맞는 수준의 삶을 살아야 하듯이, 너도 하나님의 자녀다운 수준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도 돼지머리 앞에 절을 올리고, 집신 차신 바다신을 섬기는 그리스도인들을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겠느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돼지머리를 올려놓고 절을 하는 그리스도인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겠느냐?”
“오늘 하나님께서 너의 심령가운데도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고’ 강력하게 말씀하지 않겠느냐?”
“왜냐하면 죄와 사망으로 죽을 수밖에 없고 지옥갈 수밖에 없는 너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구원해내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지 않더냐?”
“오늘 네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변화된 것을 깨닫고 있다면 절대로 자연만물이나 잡신을 섬기지 않도록 하기를 바란다.”
(찬양)세상 흔들리고 사람들은 변하여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믿음 흔들리고 사람들 주를 떠나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나라는 영원히 쇠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https://www.bookpod.co.kr/goods/goods_view.php?goodsNo=1000001130
(예화)〈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를 쓴 일본의 ‘우찌무라 간쪼’ 선생이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처음 알고서 감사의 고백을 드린 내용도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만 천하에 살아계신 유일하신 신이신데, 어찌 내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길 수 있겠는가, 하고 말입니다.
사실 그가 하나님을 알기 전까지 그도 일본 사람들처럼 여러 잡신을 숭배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지금도 집에 사당을 모신 집들이 허다하죠.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은 전통적으로 800만 개가 넘는 잡신들을 섬겨오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찌무라 간쪼도 어느 동네를 찾아갈 때면, 여러 골목을 지나쳐가야 했죠.
그때마다 이 골목길을 가면 이 골목을 지키는 신에게 절을 해서 무사히 통과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지나갔죠.
또 다른 골목에 접어들면 그 골목을 지키는 신에게 기도를 하고 지나가곤 했죠.
하나님을 모르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찾아와 구원을 베풀어 주신 것을 알기 전에는 그렇게 곳곳의 신을 섬긴 그였죠.
그러다 삼위일체 하나님,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을 알고 난 뒤에는 어떻게 했겠습니까?
그때부터 그는 하늘과 땅과 바다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이름을 한 번만 부르고 기도하면 그 마음에 평화가 주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고백한 것입니다.
(깨달음)비행기를 타고 갈 때도, 배를 타고 바다로 나아갈 때도, 땅 속 지하를 지나갈때도, 하나님의 이름을 한 번 부르고 의탁하는 기도를 드리면 그것으로 평강을 얻게 된 그였습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길 수 있겠냐는 그의 고백인 것입니다.
(적용)그 고백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논지)그런데 하나님께서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하신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와 구원해주셨기에 앞으로도 나를 책임져주실 것이기에 그 분만을 섬기라는 뜻입니다.
애굽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와 그들을 자유케 하셨는데, 그것으로 끝이었습니까?
50일에 걸쳐 시내광야로 인도해내신 다음에 언약식을 체결하고 십계명을 주신 이후에 그것으로 끝이었습니까?
아니죠.
그 후 광야 40년 동안에도, 그리고 그들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으로 그들이 들어가 살때까지 하나님은 그들의 인생을 책임져주셨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그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가나안 땅 곧 우리를 천국으로 부르실때까지 책임져주시는 아바 아버지이십니다.
(성화)이것은 최초 아담과 하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담과 하와과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고 숲속에 숨어 무화과 잎으로 그들의 수치를 가리면서 살았죠.
그때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내팽개치셨습니까?
아니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찾아와 가죽옷을 지어서 입혀주셨습니다.
그것은 가인도 마찬가지셨죠.
가인이 제사를 드리는데,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 제물을 받으셨지만, 가인과 그 제물은 받지 않으셨죠.
그렇다면 가인이 스스로 부족함과 연약함을 돌아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수준의 제사를 드려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자기 분노를 이기지 못한 가인은 동생을 죽이는 살인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런 가인을 내팽개쳐버렸습니까?
아니죠.
하나님께서는 그런 가인일망정 다시금 찾아와주셨죠.
그래서 가인을 죽인 자에게 벌 칠 배를 더할 것이라면서 가인에게 표를 주셔서 결코 죽임당하지 않도록 지켜주시겠다고 하셨죠.
그래서 가인이 아들을 낳자 그 이름을 에녹이라고 하고, 성읍의 이름도 에녹성이라고 지엇죠.
죄인인 자신을 먼저 찾아와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이제는 바르게 응답하며 살겠다는 헌신의 다짐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시대의 인물들만 그런 것입니까?
그렇지 않죠.
신약시대의 갈릴리 어부 출신인 베드로와 요한은 또 어떻습니까?
그들이 먼저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을 먼저 찾아 나섰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먼저 찾아가셔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해 주겠다’고 먼저 품어주셨습니다.
더욱이 성격이 급하고 다혈적인 베드로와 같은 연약한 제자조차도 주님은 맨 먼저 품어주셨습니다.
그것 뿐입니까?
다른 제자들도 모두가 주님을 배반하고 달아났을 때, 그 연약한 제자들을 발로 차 버렸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당신을 배반하고 도망친 그 제자들을 일일이 찾아가 다시금 품어주셨고, 성령을 불어넣어주셨습니다.
(깨달음)그러니 어찌 그 제자들이 주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어찌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으로 응답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아담과 하와도, 가인도, 신약성경의 갈릴리 제자들도, 다들 연약한 인간이기는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먼저 찾아와 주셨고, 불순종하고 실패할지라도 다시금 찾아와 격려해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로 선택한 이상 당신의 자녀들을 끝까지 책임져주실 것을 약속하셨기에 하나님 한 분만 섬기도록,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도록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음성)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기도를 들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실지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주님께서 저에게 먼저 찾아와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셨는데,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어요.”
“주님께서 먼저 나를 구원해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을 변화시켜주셨고, 내가 불순종해도 나를 내팽개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아요.”
“나는 자꾸 넘어지고 쓰러지기를 반복하는데도, 아담과 하와를 품고 가인을 품어주시고 제자들을 품어주시듯, 저를 품어주셨음을 알게 돼요.”
“부족하고 연약한 저를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해주신 이상 저를 천국가는 그날까지 끝까지 책임져주실 것을 믿기에, 이제부터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않고 살게 해 주세요.”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구원자요, 나의 주인이시오, 내 생명의 주관자요, 나의 아바 아버지이심을 믿습니다.”
(찬양)아바 아버지 아바 아버지 나를 안으시고 바라보시는 아바 아버지
아바 아버지 아바 아버지 나를 도우시고 힘주시는 아버지
주는 나를 고치시고 볼 수 없는 상처 만지시네
나를 아시고 나를 이해하시네 내 영혼 새롭게 세우시네
https://www.bookpod.co.kr/goods/goods_view.php?goodsNo=1000001131
(설교닫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에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먼저 찾아와주셔서 나를 구원해주신 아바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연약하여 세상의 유혹을 받고 믿음이 흔들릴때도 불순종할때도 품어주시고 격려해주시는 아바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었는데, 어찌 다른 신을 마음에 두고 섬길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사업을 시작하거나 차를 사거나 집을 이사했거나 바다에 배를 띄울 때 돼지머리를 놓고 제사하는 크리스천들도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신을 향해 절하고 비는 모습이겠습니까?
그것은 귀신을 부르는 짓이요 귀신은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하는 존재들입니다.
그 귀신이 우리의 숭배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더욱이 해와 달과 별들과 각종 짐승과 산과 바다의 그 어떤 것들도 우리의 신이 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피조물일 뿐입니다.
오늘도 죄와 사망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고 지옥갈 수밖에 없는 내게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베푸신 예수님의 사랑을 확신하지 않습니까?
그 사랑을 확신하는 자로서, 이제부터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나의 주인으로 섬기며 살겠노라고, 다짐의 기도를 주님 앞에 드리도록 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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