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열기)(나예)설 명절 전에 지방회 감찰회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날 어떤 목사님이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지금 이런 신앙을 갖게 된 것은 말씀을 배우고 깨달을 때였습니다.”
“그 전에는 체험을 좇아다닌 신앙이었지만 체험이 없거나 시험이 오면 흔들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말씀이 깊이 들어오면서부터 굳게 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만큼 말씀을 듣고 배우고 깨닫는 것은 크리스천에게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해 주는 것 같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처음 주님을 믿기 시작할 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케 해 주신다는 사실이죠.
때로는 기도에 곧장 응답도 해 주시고, 신비한 체험을 하게 해 주시는 분이시죠.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체험이 없거나, 자신의 바람대로 기도 응답이 없으면, 쉽게 낙심하고 좌절해 버리기 때문이죠.
그런 신앙은 길가와 돌밭과 가시밭에 하나님의 말씀의 씨를 뿌리는 것과 같은 신앙입니다.
참된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옥토와 같은 심령에 뿌리를 내려야 믿음이 자랄 수가 있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 하나님께 기도응답을 받는 신앙인이 더 성숙하게 자랄 수 있는 길은 오직 말씀뿐입니다.
(적용)지난 시간에 말씀을 드렸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며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온전하심’이란 무엇을 말한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수준까지 완전한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고 했죠.
개가 주인을 잘 따르고 낯선 사람을 향해 잘 짖어대도, 그토록 완벽하다 해도 사람의 수준이 되는 것은 아닌 것과 같죠.
그만큼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란 작년보다 올해, 5년전보다 지금의 신앙수준에 더 깊어지는 단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깊어질 수 있는 비결은 오직 말씀을 통해 그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릴 때 가능하다는 것이죠.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코자 친히 찾아와주셨습니다.
마치 하란 땅에 있던 아브라함에게 찾아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나아가도록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노예로 살 때 그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찾아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나아가게 하셨죠.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지도자로 삼아 그 백성이 애굽을 빠져나가 홍해를 건너 50일만에 시내광야에 당도하게 하셨죠.
그 50일동안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살아계심을 직접 체험토록 해 주셨습니다.
물론 애굽을 빠져오기 6개월 전부터 이미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는 펼쳐졌습니다.
애굽 땅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가겠다고 말할 때 애굽의 파라오는 처음부터 막아서고 나섰죠.
그러자 그 6개월에 걸쳐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셨죠.
피, 개구리, 이, 쇠파리, 악질, 독종, 우박, 메뚜기, 흑암의 재앙이 그것이죠.
물론 처음 몇가지 재앙은 애굽의 마술사들도 흉내내긴 했지만 그 뒤부터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의 재앙이었습니다.
급기야 10번째 재앙, 곧 애굽의 모든 장남들과 모든 짐승의 초태생을 다 죽일 때 그때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을 내 보냈죠.
그때가 바로 유월절의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이스라엘 백성의 집 문설주와 좌우 인방에 바르게 하신 때였죠.
애굽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6개월 과정 동안 10가지 재앙을 목격하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한 것입니다.
물론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죠.
그 후 애굽을 빠져나가 그들이 맞딱드린 길이 288km 폭 32km의 홍해 앞에서도 하나님께서 그 길을 내서 그들이 통과하게 해주셨습니다.
그후 수르협곡, 마라, 엘림, 신광야, 돕가, 알루스, 르비딤 전투, 시내광야에 이르기까지 50일간의 과정도 마찬가지였죠.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신 것도, 신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신 것도, 르비딤에서 생수를 공급하신 것도 그랬죠.
그 모든 과정 하나 하나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 상천하지에 살아계신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임을 알도록 말이죠.
홍해를 가르신 그 하나님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바다의 주관자이심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닫도록 하신 것이었습니다.
신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락를 공급해주신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주관자가 바로 하나님이심을 알도록 하신 것이었습니다.
르비딤전투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그곳의 반석에서 생수를 공급해주신 하나님께서는 땅의 주관자이심을 알게 하신 것이죠.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과 바다 그 모든 만물의 창조주이시고 주관자이심을 이스라엘 백성들 곧 오늘 우리들에게까지 알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런 체험과 기적만 있으면 그들의 믿음이 깊이 뿌리를 내리는 것이겠습니까?
그랬다면 50일만에 시내광야에 당도한 그들 중에 모세를 시내산에 불러 친수로 쓰신 십계명을 주지는 않으셨겠죠.
그런 체험과 기적이 온전한 믿음으로 세우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들에게 친히 말씀을 내려주신 것이었습니다.
(본문)오늘 읽은 본문 말씀이 바로 그와 같은 이유입니다.
본문 1-2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원해)오늘 읽은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이후 50일째 되던 날에 시내광야에 당도했을 때 주신 말씀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올려 당신이 돌판에 친수로 쓰신 십계명을 전해주신 말씀이죠.
그런데 그 돌판에 쓴 열마디 말씀 곧 십계명을 써서 전해주시는 그 말씀의 첫 번째 부분을 주목해보시기 바랍니다.
본문 1-2절 말씀은 지금도 유대인들에게는 십계명의 제 1계명이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 개신교에서는 3절 말씀을 제 1계명으로 삼고 있지만 유대인들은 지금도 1-2절 말씀을 제 1계명으로 삼고 있는 거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1절에 기록된 말씀처럼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다시 말해 이 열마디 말씀은 모든 말씀의 핵과 같은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그중에 가장 핵심은 “나는 너를(너희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라는 말씀이죠.
그래서 1절에 강조하는 히브리어 원어가 무엇이겠습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엘로힘’(אֱלֹהִים)입니다.
이 말씀 중의 말씀, 곧 모든 말씀 중의 핵심과 같은 이 열마디 말씀은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모세가 애굽의 애굽땅에서 통용되던 도덕률을 가지고 와서 말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깨달음)그 중에서 첫 번째로 강조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는 너를 곧 너희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말씀이죠.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첫 번째 말씀은 창조주로서의 권위나 심파자로서의 권위를 나타내신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첫 번째 말씀을 주시면서 구속주의 사랑을 말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종 되었던 ‘집’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베이트’(בַּיִת)는 ‘집’과 ‘궁전’을 뜻하는 말도 있지만 여기서는 ‘감옥’을 말하는 뜻입니다.
창세기 39장 20절에도 ‘베이트’라는 단어가 쓰여 있는데, 그곳은 요셉이 갇힌 ‘감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요셉이 감옥에 갇힌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도 애굽의 노예로 감옥살이를 해 온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건져내주셨다는 뜻입니다.
(적용)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부터 자유를 얻게 해 주신 긍휼의 아버지이심을 기억하라는 말씀이죠.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억압과 고통의 감옥 속에 갇혀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속해내신 사랑의 주님이심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 아버지를 기억하도록 말씀 중의 말씀인 십계명을 친히 말씀해주시고 친수로 써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말씀이 없이는 그들의 믿음이 온전히 뿌리내릴 수 없음을 아셨기에 친히 말씀해주셨다는 뜻입니다.
(주문)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은혜)저와 여러분들의 믿음이 깊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부어주시고자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뿌리가 체험에 바탕을 둔 것이냐 아니면 말씀에 바탕을 둔 것이냐?”
“그 목사님도 체험과 기적에 바탕을 둘 때는 시험이 올 때 믿음이 무너지지 않았더냐?”
“이스라엘 백성들도 애굽의 기적과 홍해를 건넌 후 50일간의 체험을 경험했어도 왜 하나님께서 말씀을 직접 주셨는지 알지 않느냐?”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여 하늘과 땅과 바다의 주관자임을 체험하도록 했지만 그것으로 믿음의 뿌리를 내리는 게 아니지 않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믿음은 기적과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이 너의 심령에 바탕이 돼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고자 할 때 너의 믿음이 쑥쑥 자란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에서 6개월 기적을 보여주셨고, 시내광야까지 50일간 기적을 체험했어도 말씀을 주신 이유가 그것이지 않더냐?”
“너의 믿음이 작년보다, 5년전보다, 10년 전보다 온전하고자 한다면, 오직 말씀에 뿌리를 내렸으면 좋겠구나.”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말씀이요,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영원하기 때문이다.”
(찬양)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 서리다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 서리다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뜻하신 그곳에 나 있기 원합니다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연약한 내 영혼 통하여 일하소서 주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뜻하신 그곳에 나 있기 원합니다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연약한 내 영혼 통하여 일하소서 주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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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지구촌교회 원로목사님인 이동원 목사님이 젊은 시절 아주대학교 공과대학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을 때 일입니다.
그분이 성경공부 모임을 주관하여 인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임에는 공과대학의 교수님 내외가 참석을 하고 있었죠.
그 교수님의 부인은 신앙심이 매우 좋았습니다.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남편 교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 남편을 위해 그 부인은 이동원 목사님에게 따로 시간을 내서 성경공부를 해 주기를 요청했죠.
그때 이동원 목사님은 목회 초창기 시절이긴 했지만 바쁜 일정 때문에 시간을 내기란 빠듯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심이 좋은 그 부인의 간곡한 요청에 의해 그 교수님의 집에 직접 찾아가면서 끈질기게 성경공부를 인도했죠.
물론 매번 느끼는 것은 그 교수님의 태도가 냉담해서 이동원 목사님이 실망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다가 어느날부터 연락이 끊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교수님이 갑자기 이동원 목사님에게 전화를 해왔습니다.
전화 내용은 자기 집에 꼭 한번 들러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내어 찾아가봤습니다.
그랬더니 그토록 완고하던 냉담하던 그 교수님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때 이동원 목사님은 너무나 놀라고 반가워서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 그 동기를 물어봤습니다.
그때 그 교수님은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목사님. 어떤 특별한 동기는 없었어요.”
“예전에 목사님과 성경공부할 때 별 관심 없이 보고 들은 것이 나중에서야 깨달아지더라고요.”
“그 후에 예수님을 믿을 결심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전도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깨달음)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게 해 주는 것 같습니까?
이동원 목사님은 그 교수님 앞에서 성경을 가르쳤지만 그런 생각을 늘 품고 있었던 것이죠.
‘저분은 절대로 예수님을 믿지 않을 것 같다’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교수님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앙생활도 아주 뜨겁게 하는 사람으로 변화돼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교수 선교사가 되어 중국에서 사역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당장은 그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 것 같아도, 가랑비에 옷이 젓듯,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역사하실 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심령에 박히지 않아 죽은 말씀 같아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 살아 있는 말씀으로 자라난다는 사실이죠.
그 교수님을 보면서 이동원 목사님은 그 말씀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히4:12)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
(적용) 그렇기에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믿음의 삶을 살아도 변화가 없다고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랑비에 옷젓듯이 예배를 드리며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영에 하나님의 말씀이 뿌리를 내릴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그토록 냉담하던 그 교수님도 변화가 되듯이 우리의 심령도 주님의 은혜로 변화되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예화2)이동원 목사님이 또 다른 성경모임을 인도하는데, 어떤 장로님 한 분이 자신의 변화됨을 간증하더라는 것입니다.
“목사님, 제 왼손의 손가락을 한번 보시겠습니까?”
그래서 이동원 목사님이 그 장로님의 왼손 손가락을 보는데, 그 중에 한 손가락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이동원 목사님은 어찌된 사연인지 그 장로님께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 장로님은 자신이 겪은 사연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저는 예전에 도박을 밥 먹듯이 즐기며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고도 도박은 계속되었지요.”
“그래서 도박을 끊기 위해서 별별 노력을 다 해보았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 일이 있던 그날도 밤새도록 도박판을 벌이다가 새벽녘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내가 울고 있더라구요.”
“그 순간 제 모습이 너무나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내가 보는 앞에서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부엌에 있는 칼을 들고 와서 손가락 하나를 잘랐습니다.”
“그때 그 일을 통해 제 손가락이 이렇게 된 것입니다.”
장로님의 그 이야기 앞에 성경공부에 참석한 분들이 모두 놀라 장로님을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장로님은 자신이 내밀었던 잘린 손가락을 감추면서 이렇게 또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그런데 작심삼일이라는 속담이 딱 맞더라고요.”
“사흘이 지나자 다시 도박을 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리더니 제가 저절로 도박장으로 떠밀려 가고 있더라구요.”
“결국 아내 앞에서 한 다짐들은 한순간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침묵이 흘렀고, 그것으로 실패하고 끝나버린 줄 알았는데, 그 장로님이 이렇게 고백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참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요.”
“제가 말씀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한 후로는 제 도박 인생이 달라졌어요.”
“그때부터 완전히 도박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깨달음)하나님의 말씀이 그 장로님의 도박을 고쳐주셔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는 말씀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인생을 변화시키는 능력있는 말씀인 줄 믿습니다.
(내음성)그러니 오늘 우리가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실지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제 믿음의 수준이 주님 보시기에 온전한 믿음의 수준이 되고 싶어요.”
“작년보다 올해 더 깊은 믿음의 뿌리를 내리려면 주님의 말씀을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새기길 원합니다.”
“제가 끊지 못하는 연약한 부분이 있다면,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 부분을 끊어낼 수 있도록 역사해주세요.”
“손가락을 자르면서까지 도박을 끊고 싶어했지만 작심삼일에 불과한 장로님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셔서 새롭게 되었어요.”
“주님. 2022년 한 해를 살아가면서 제가 정말로 끊어야 할 부분을 오직 말씀으로 끊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습관을 다 끊고 가나안 땅으로 나아가는 삶으로 변화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 뿐이었어요.”
“저도 주님의 말씀을 더 깊이 제 심령에 모실 수 있게 해 주시고, 주님의 말씀으로 제 심령과 삶이 변화될 수 있도록 역사해주세요.”
(찬양)주여 우린 연약합니다 우린 오늘을 힘겨워합니다
주 뜻 이루며 살기엔 부족합니다 우린 연약합니다
주여 우린 넘어집니다 오늘 하루 또 실수합니다
주의 긍훌을 구하는 죄인입니다 우린 주만 바라봅니다
한없는 주님의 은혜 온 세상 위에 넘칩니다
가릴 수 없는 주 영광 온 땅위에 충만합니다
주님만이 길이오니 우린 그 길 따라갑니다
그날에 우릴 이루실 주는 완전합니다
https://www.bookpod.co.kr/goods/goods_view.php?goodsNo=1000001130
(설교닫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생에 등불이요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심령 골수를 찔러 쪼개시고 우리의 육체를 새롭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 기도 응답을 받아도 말씀이 뿌리내리지 않으면 쉽게 흔들리는 게 믿음생활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의 믿음이 깊은 뿌리를 내리길 원하시고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길 원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믿음이 작년보다 올해, 5년전 10년전보다 더 온전해지는 믿음이 되길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를 위해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 심령에 뿌리를 내려주시고,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 심령을 새롭게 해 주시는 축복이 임하길 원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이 시간에 함께 기도를 드리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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