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열기)(성화) 열왕기하 5장에는 이스라엘과 인접한 아람나라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나옵니다.
나아만 장군은 우리 식으로 말하면 ‘국방부장관’에 해당하는 직책을 부여받은 자입니다.
그 막강한 권력과 힘을 가진 자였지만 그에게 숨기고 문둥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전쟁할 때 붙잡아 온 계집종 하나가 그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땅에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는데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 어떤 질병도 고친다는 이야기였죠.
그러자 나아만 장군은 아람 왕의 허락을 받아 엘리사 선지자를 만나고자 이스라엘을 향했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나아만 장군이 찾아왔을 때 마중나가지 않고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나아만은 명세기 아람의 군대장관이 왔는데 자신을 맞이하지 않는다면서 불쾌하게 여긴 채 돌아가려 했죠.
그러자 그 휘하의 사람들이 더 어려운 일이라도 하지 않았겠냐며 계속 간청하자 수락하여 요단강에 내려가 몸을 일곱 번 씻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나아만에게 명령하셨겠습니까?
‘요단강’은 해수면 보다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을 말합니다.
그만큼 나아만이 가진 직책의 교만함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주님을 모시라는 뜻이었습니다.
바로 그렇게 순종할 때 나아만의 몸이 깨끗케 되는 은혜를 덧입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때 누구보다 감격할 사람이 누구였겠습니까?
두말할 필요 없이 나아만 자신이었죠.
여태껏 자신의 문둥병을 고치고자 얼마나 많은 의원과 민간요법을 써 봤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사건을 통해 고쳐주셨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워 했겠습니까?
그때 나아만은 엘리사 선지자에게 은금보물과 의복을 주려고 했지만 엘리사는 거절했죠.
그러자 나아만은 엘리사 선지자에게 그런 청을 넣었습니다.
‘엘리사 선생이여. 내가 이제야 하나님만이 살아계신 분이심을 알게 되었나이다.’(왕하5:17하)
‘이제 번제든지 다른 제사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드리겠나이다.’
‘다만 내가 아람나라의 고국으로 돌아가면 제가 모시는 왕이 림몬 신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제가 왕 곁에서 부축하여 왕이 림몬 신을 섬기도록 하는데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앞으로 자신은 하나님만 경외하며 살겠지만, 직책상 어쩔 수 없이 왕을 모시고 우상에게 절해야 하는 입장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평안히 가라’하고 대답을 해 줬죠.
(깨달음) 엘리사의 그 대답 속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나아만은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이시니 오직 하님만을 섬기겠다고는 하지만 아직 초신자였습니다.
하나님만 경외하고 싶지만, 왕을 부축해 림몬 신을 경배해야 하는 입장임을 이해해달라는 것이었죠.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순전한 마음을 모르실리 없기에 엘리사를 통해 허락해주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열왕기하 5장에 나오는 나아만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열왕기 6장에 넘어가면, 그 후에 아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벌어집니다.
놀랍게도 그 시절에는 나아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무엇을 생각하게 해 주는 것입니까?
나아만은 하나님을 체험하고 아람 나라에 돌아가서 하나님을 경배하면서도, 내적인 갈등을 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우상을 섬기는 것 사이에서 결단을 한 것 아니겠습니까?
군대장관이라는 직책을 가지고서는 온전히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면서 그의 직책을 벗어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진실되게 하나님을 섬겼으니, 어찌 하나님께서 기쁘게 품어주지 않았겠습니까?
(적용)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지 못한 초신자들은 나아만의 처음 모습처럼 갈등할 수 있습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 곁에서 절을 하고 제사를 올릴 수도 있죠.
그러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면,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결단하게 되는 것이죠.
물론 그런 결단을 할 때 나아만처럼 할 수도 있고, 신약성경의 니고데모처럼 결단할 수도 있습니다.
나아만은 자기 직책까지 내어던지면서 하나님만을 경외하겠다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직장 상사나 오너가 돼지머리 앞에 절하는 것 때문에 그 우상을 섬길 수 없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경우죠.
하지만 니고데모는 유대 관원이라는 직책속에서, 미운털이 박힌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받든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란 바로 그런 삶을 두고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고린도에 3개월간 머물 때 로마교회를 향해 로마서를 써 보냈죠.
로마교회는 오순절 성령강림절 때 로마에서 온 사람들이 주님의 복음을 듣고 로마에 돌아가 세운 교회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세운 교회도 아니고 바울이 세운 교회도 아니라, 로마교회 성도들이 세운 자생적인 교회였습니다.
물론 로마교회는 로마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이 주축이 된 교회요, 이방인들의 수는 적었습니다.
그렇기에 유대인이 주님께 나와도 할례와 같은 율법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관습이 자리잡았죠.
그에 비해 이방인들이 주님께 나올 때 유대인의 관습과 같은 할례로부터 자유롭고 싶어했습니다.
바울은 그런 로마교회의 형편을 이해하고 로마서 1장부터 16장에 이르는 편지를 써 보낸 것이었죠.
1-11장까지는 오직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받는 것임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모든 사람은 아담의 죄 아래 있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서만 구원받는다고 말이죠.
그것이 구원의 교리에 관한 부분입니다.
12-16장까지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써 보낸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구원받은 자가 구원받은 이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써 보낸 것이었죠.
구원받은 이후에 그 육체로 쾌락과 방탕을 좇아 산다면 어찌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겠냐는 뜻이었죠.
(전개)구원의 실천편에 해당하는 첫 번째 부분인 로마서 12장에서 맨 먼저 강조한 바가 무엇이었습니까?
구원받은 자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는 권면이었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포도주를 부어드리는 ‘전제’처럼 각자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고 말이죠.
그것은 서두에서 말씀드린 나아만처럼 구별하여 드리는 것이기도 하고 니고데모처럼 구별하여 드리는 모습입니다.
주님을 섬기기 위해 자기 직책을 벗어던지면서 드리는 이도 있고, 자기 직책을 갖고 주님의 기쁨을 좇아 드리는 이도 있는 것이죠.
그러면서 두 번째로 권면한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이었죠.
황제를 신처럼 떠받들고, 황제의 돈과 명예와 권력과 쾌락에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세대 말이죠.
그런 세대는 아무리 호화로울지라도 100년 안팎이면 썩어 문드러질 삶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만 영원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나요?
무엇보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길이란 그 심령을 흙처럼 부드럽게 갈아 엎는데서부터 시작된다고 했죠.
돌처럼 굳어버린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품을 수도 없기 때문이죠.
흙과 같이 부드러운 심령이라야 말씀의 싹이 나고 30배 60배 100배 결실도 맺을 수 있기 때문이죠.
지난 시간에 살펴 본 말씀은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된 자가 분별해야 할 첫 번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분별하라는 것이었죠.
하나님의 선하심이란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것이 옳다고 여기는 믿음의 자세죠.
욥이 재산 다 잃고, 자식들 죽고, 자기 몸에 악창이 들끓어도,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하나님은 옳습니다’하고 고백한 신앙 모습 말이죠.
정윤선 집사님이 어린 시절 새엄마에게 구박당하고, 새엄마 밑에서 술을 팔고 일하면서 지냈죠.
그 후에 온누리교회 간사로 일하면서 남편을 만났는데, 그 남편도 뇌종양 수술을 해야 했죠.
그 와중에 소매치기 당하고 집이 온통 도둑을 맞아버렸죠.
댐이 터지듯 한꺼번에 고통이 밀려드는데 너무 힘들어 수건을 입에 물고 울 수밖에 없던 그녀였죠.
그런데 아이를 재우다가 다섯 손가락이 눈에 들어왔고, 그 손가락마저도 하나님께서 빚어주신 흙임을 깨달았죠.
지금껏 자신이 살아 있는 것도, 자신이 버텨온 것도, 하나님께서 빚어주신 은혜였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때 비로소 새 힘을 얻었고, 디자인에 눈을 떠서 회사를 차렸고, 지금껏 주님의 기쁨이 되어 살고 있죠.
그래서 어떤 자리에 서든지 간에 그분이 간증할 때면 그렇게 고백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옳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십니다.”
욥도 그렇고, 정윤선 집사님도 그렇고,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들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내게 어떤 일이 닥쳐와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해 가장 선하신 일, 가장 옳으신 일을 보여주시는 분이란 사실 말입니다.
바로 그 고백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분별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오늘 본문은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된 사람이 두 번째로 분별해야 할 것을 일깨워준 말씀입니다.
본문 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원해)두번째로 분별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곧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분별해 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기뻐하시고’라는 헬라어 단어는 ‘유아레스토스’(εὐάρεστος)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acceptable), 하나님께서 ‘만족하실만한’(well pleasing)이란 뜻입니다.
(원성)이 단어가 신약에 9번 쓰였는데, 그 중 에베소서 5장 8-10절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깨달음) 여기에 ‘주께 기쁘시기 할 것’이란 단어가 바로 ‘유아레스토스’입니다.
주님께서 받으실만한 일이란 어둠과 짝하던 삶을 청산하고 빛의 자녀로 사는 것을 말하죠.
빛의 열매 곧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좇아 사는 그 삶을 주님께서 기뻐받으신다는 뜻입니다.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비춰보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겠습니까?
예전에 로마 황제와 돈과 명예와 권력과 탐욕을 좇아 살던 어둠의 일을 벗어나 빛의 열매를 구별하며 사는 삶을 말하는 것이죠.
그것이 주님께서 기뻐받으실만한 산 제물이 된다는 뜻입니다.
(원성2) 그런데 ‘유아레스토스’라는 단어가 빌립보서 4장 16-18절에도 쓰인 바가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깨달음)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시는 것은 곧 향기로운 제물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게도냐 성도들이 바울의 선교사역을 위해 하나님께 드린 헌금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은 왜 자신들의 물질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금으로 드렸습니까?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맡기신 것이요, 그 물질의 청지기들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이전에는 로마의 황제와 돈과 명예와 권력과 쾌락을 위해 쓰던 물질을 주님 나라를 위해 드렸던 그들입니다.
그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물과 같은 삶이라는 것입니다.
(적용)이와 같은 말씀을 볼때 ‘주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분별하여 산다는 것은 어떤 삶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삶의 방향전환을 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 아닙니까?
여태 세상만을 위해, 세상의 우상만을 위해서 좇아온 삶에서 주님께 방향전환을 이루는 삶 말이죠.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도 그전까지는 림몬 신에게 초점을 맞췄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님께 방향전환을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를 위해 자기 직책까지 벗어던지는 방향전환을 이루었으니, 어찌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것은 유대 관원이라는 직책속에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방향전환을 한 니고데모도 마찬가지였죠.
그래서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을 향해 주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구별하여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주님의 구원받은 자녀가 됐다면 이제부터는 어둠의 일을 좇지 말고 빛의 열매를 좇는 방향전환의 삶을 살라고 말이죠.
이전에는 여러분이 물질의 주인이 되어 살아왔다면 이제부턴 물질의 청지기답게 주님의 것을 구별하여 드리는 삶의 방향전환을 이루며 살라고 말입니다.
그런 삶을 결단하기까지가 쉽지 않지만 주님 안에서 결단하면 주님께서는 더 큰 은혜를 부어주시기 때문이죠.
(주문)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주님의 기쁨되는 방향전환의 삶을 사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이죠.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주님께서 성령님의 음성으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나아만이 여태 추구하던 아람의 신 림몬을 뿌리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삶으로 방향전환한 것을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겠느냐?”
“니고데모도 유대관원으로서 주변 사람들에게 미운털이 박히면서까지 예수님을 섬기던 방향전환의 삶을 주님께서 기뻐받지 않겠느냐?”
“로마교회 성도들이 로마의 황제와 돈과 명예와 권력과 쾌락을 좇던 삶에서 주님만을 왕으로 섬기는 방향전환의 삶을 주님께서 흡족하게 여기지 않겠느냐?”
“로마교회 성도들이 그때까지 모든 물질의 주인이 되어 쓰다가 주님을 만난 후부터 주님을 위해 드리는 청지기로 방향전환을 할 때 어찌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도 나아만 장군처럼, 니고데모 관원처럼, 너의 신앙심과 삶의 형편 속에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좇아 방향전환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로마교회 성도들이 황제와 돈과 명예와 권력과 쾌락을 숭배하던 데서 주님을 왕으로 섬기던 삶으로 돌아서듯이 너도 그런 삶으로 방향전환해야 하지 않겠느냐?”
“로마교회 성도들이 그 전까지 자신들이 물질의 주인이 되어 사용했지만 주님을 만난 후부터는 주님의 나라를 위해 청지기로 주님께 드리며 살았듯이 너도 그런 삶의 방향전환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바로 그것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취할 삶의 방향이요, 그것이 주님의 소유된 자가 취할 삶의 방향전환이기 때문이니 말이다.”
(찬양) 나의 모습 나의 소유 주님 앞에 모두 드립니다
모든 아픔 모든 기쁨 내 모든 눈물 받아주소서
나의 생명을 드리니 주 영광 위하여 사용하옵소서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주를 찬양하며 기쁨의 제물 되리 나를 받아주소서
어제 일과 내일 일도 꿈과 희망 모두 드립니다
모든 소망 모든 계획 내 손과 발을 받아주소서
나의 생명을 드리니 주 영광 위하여 사용하옵소서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주를 찬양하며 기쁨의 제물 되리 나를 받아주소서
우리 가진 이 모든 것들을 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었네
몸 밖에 드릴 것이 없으니 내 삶을 받아주소서
나의 생명을 드리니 주 영광 위하여 사용하옵소서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주를 찬양하며 기쁨의 제물 되리 나를 받아주소서
https://www.bookpod.co.kr/goods/goods_view.php?goodsNo=1000001130
(예화) 엊그제 집사님 가정에 가서 추모예배를 드린 일이 있습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1주기 때는 믿지 않는 형제들과 집안 어른들의 의견을 좇아 제사를 드렸었죠.
그때가 어쩌면 나아만이 왕을 부추겨 림모의 신당에 참여하는 그런 모습과 같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2주기를 맞이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로 영적인 방향전환을 결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결정하기까지 그 집사님께서 남편과 말하고 집안 어른과 형제들을 설득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래도 형제들이 묵묵히 따라주고 집안 어른들조차 함께 하는 모습을 보고, 그 집사님이 하나님도 잘 섬기고 형제들까지도 잘 섬겨왔겠구나 하는 걸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결정하기까지 참 힘겹고 눈물도 흘렸을텐데, 주님은 가장 기뻐하셨을 줄 믿습니다.
(깨달음)뭔가 새로운 물꼬를 트는 일, 새로운 일에 방향전환을 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존의 관행이 그만큼 익숙하고 편하고 좋다고 다들 생각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뭔가 방향전환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될 때,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좇아 결단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받으시는 줄 믿습니다.
나아만의 방향전환도, 니고데모의 방향전환도, 로마교회 성도들의 방향전환도,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받으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마음과 자세로 주님의 빛된 길을 좇고, 주님나라를 위해 자기 소유물을 주님께 드릴 때, 주님은 가장 흡족하게 받으시는 줄 믿습니다.
(발췌)이동원 목사님의 〈로마를 바꾸어 놓은 사람〉이란 책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오페라 가수였던 ‘제롬 하인스’(Jerome Hines)의 소원이 있었습니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의 오페라 무대 위에 서서 노래하는 것이었죠.
그 목표를 위해 그는 피나는 연습을 했습니다.
드디어 그는 뉴옥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의 가수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오페라단의 가수가 되자마자 ‘내가 여태껏 추구한 것이 겨우 이것이었단 말인가’ 하며 공허에 빠져들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뉴욕 아파트에서 공허한 가슴을 달래고자 텔레비전를 켰습니다.
마침 빌리 그래함 목사의 전도대회가 방영되고 있었고, 설교 직전 어떤 분이 찬양을 불렀습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은 내 대신 돌아 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그 은혜로운 찬양을 죠지 베버리쉐아가 부를 때 제롬 하인스는 충격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토록 멋진 바리톤의 목소리를 지닌 분이라면 더 멋진 세상의 무대에서 노래할 수도 있었는데, 왜 그는 저곳에서 찬양하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는데, 그때 성령님께서 임재해 주셨습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의 죄악된 삶을 주님께 회개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의 삶을 쥐님께 영광돌리는 삶의 방향전환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화려함만 추구하는 오페라 가수가 아니라 주님을 찬양하는 오페라 가수가 되겠다고 말이죠.그렇게 결단하자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충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당장 오페라 무대를 떠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페라 무대는 당신과 같은 사람이 필요하니까 계속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도 이런 저런 고민을 하고 기도를 하면서 급기야 오페라 무대에 계속 서기로 결단을 했습니다.
그때부터는 그의 목적이 예전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더이상 사람들의 박수갈채나 스타가 되고자 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소리가 되기로 결단했습니다.
자신의 목소리로 인해 한 영혼이라도 구원받는다면 그것이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라 생각했죠.
그로부터 10년간 탁월한 오페라 가수로서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오랫동안 소원하던 오페라 한 작품의 주인공으로 발탁이 되었습니다.
계약서에 사인을 한 후에 연습을 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연습 도중 서곡 부분에 춤이 나오는데 그 춤은 거의 나체로 추어야 하는 춤이었습니다.
본 작품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기 때문에 왜 그런 내용이 필요한지 감독자에게 따져물었죠.
그러자 감독은 현대인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부르는 노래 가사 가운데에는 더욱더 저질스런 욕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마음이 너무 아파서 원래 이런 가사가 없지 않냐고 항의하며 부를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감독은 현대 오페라에서 이런 것들이 필요한데 원치 않는다면 매니저를 찾아보라고 말했죠.
그때 그는 그 당시 유명한 빙(Mr. Bing)이라는 매니저를 찾아가 항의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도저히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없다고 말하자, 매니저는 할 수 없다면서 다른 사람을 쓰겠다고 했죠.
그러면서 그 매니저는 제롬 하인스가 계약을 파기했기 때문에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제롬 하인스는 그 막대한 벌금을 지불한 채 그 오페라 작품의 가수직을 버렸습니다.
그의 간증집을 보면 그가 사표를 던지고 나오는 그 순간은 가장 고귀한 기쁨을 얻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해가 저문 뉴욕의 밤거리를 걸어 나오면서 자신에게 감동을 주었던 그 찬양, 인생의 방향전환을 이끈 그 찬양을 불렀습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은 내 대신 돌아 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깨달음) 제롬 하인스의 간증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바가 무엇입니까?
제롬 하인스야말로 주님의 기쁨을 좇아 자기 직책까지 내어 던진 것 아니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주님께서는 주님의 기쁨을 위해 자기 자신을 던진 그를 위해 더욱 웅장하고 멋진 무대로 세워주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내음성) 그렇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 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저도 제롬 하인스처럼 그 집사님처럼 진정한 삶의 방향전환을 행할 수 있도록 저를 붙잡아 주세요.”
“주님의 기쁨을 좇는 일과 세상의 유혹을 좇는 일이 겹쳐올 때 기꺼이 주님의 기쁨을 좇아 살 수 있도록 저를 붙들어 주세요.”
“제가 물꼬를 새롭게 틀 수 없는 입장이라면 묵묵히 주님을 섬기며 따라가게 하시되, 물꼬를 틀 수 있는 위치라면 과감히 영적인 물꼬를 틀 수 있도록 역사해주세요.”
“그렇게 주님의 기뻐하심을 좇아 내 삶을 드리고 내 물질을 드릴 때, 저의 삶에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실 줄 믿어요.”
(찬양)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내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새부대가 되게 하여 주사 주님의 빛 비추게 하소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겸손히 내 마음을 드립니다 나의 모든 것 받으소서
나의 맘 깨끗게 싰어 주사 주의 길로 행하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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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 각자를 위해 십자가에 제물이 되어 죽으신 이유는 우리 각자를 구원코자 함이신 줄 믿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녀로만 부르신 것으로 끝이 아니라, 주님의 기쁨이 되어 살도록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주님의 기쁨이 되어 사는 삶이란 주님보시기에 기뻐하시는 삶의 방향전환을 이루며 사는 길입니다.
여태껏 인생의 목적을 황제와 돈과 명예와 권력과 쾌락을 좇아온 것에서 주님만을 주인으로 모시는 방향전환이 그것이죠.
내가 물질의 주인이 되어 써왔던 삶에서 주님나라를 위해 주님께 드리는 청지기의 방향전환이 그것이죠.
나아만 장군도, 니고데모도, 로마교회 성도들도, 집사님도, 제롬 하인스도 그런 방향전환의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께서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영적 방향전환을 이루고 물질의 방향전환을 이룰 때, 주님께서 더욱 크신 은혜로 복을 내려주실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그런 은총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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