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에 대해 밝혀주었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사복음서에는 여자들에게 맨 먼저 나타나주셨지만 고린도교회를 향한 이 편지를 통해서는 공신력이 있는 베드로와 12제자들, 500여 형제들, 예수님의 혈육 야고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모든 사도들, 심지어 예수님을 핍박하던 바울 자신에게까지도 임하여 주셨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바울은 주님의 부활하심이 있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의 삶이 헛된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가장 복된 자라고 말이죠.
본문 23절입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제일 먼저 부활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속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곧 그를 믿는 자들 말이죠. 여기에서 ‘강림한다’는 ‘파루시아’(παρουσία)는 본래 황제가 행차하는 것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께서 처음 오실 때에는 베들레헴의 말구유통에 비천하게 오셨지만, 재림의 주님으로 오실 때에는 만 왕의 왕으로, 온 세상의 통치자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24절,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 후의 마지막, 곧 종말이 되면,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을 주님께서 멸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이 세상의 악한 권세들을 말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께 모두 바친다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나라였지만, 타락한 이 세상의 통치와 권세와 능력을 예수님께서 회복시키셔서 하나님께 돌려드린다는 것입니다.
25절,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종말의 때에 이 세상 모든 악한 세력들을 주님께서 발아래 둘 때까지.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는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은 시편 110편 1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는 것은 자리를 의미하기보다는 모든 통치권을 맡긴다는 뜻입니다.
26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제일 마지막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멸절시킬 것은 사망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죽음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죽음에 이르게 하는 모든 사단의 세력, 죄악의 세력 자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회복시키고 난 후에는 죽음이 존재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는 악이라는 게 존재치 않는다는 것이죠.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성경으로 문화읽기2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오래전
ebook-product.kyobobook.co.kr
27절,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28절에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만물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실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 또한 하나님에게 복종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자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보다 존재적으로 열등하거나, 성자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께 종속되었다 걸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체는 똑같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의 경륜과 역할이 다르다는 걸 말하는 것이죠.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이는 하나님께서 만유의 주인이심을 밝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만물을 초월하시는 분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만물을 초월하시고 또 만물 안에 내재하시는 분이시죠. 왜 바울이 이런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까? 마지막 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심판을 통해 만물을 회복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절대 주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29절,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2천 년 전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이 전파된 지 얼마 안 되어 믿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믿는 사람보다 믿지 않는 사람이 태반이었죠. 그래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죽은 자들을 위해,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대신 세례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내가 죽은 자를 위해서 세례받으면 죽은 자를 구원해 주지 않으실까, 하는 것이었죠. 그것이 맞다 맞지 않다, 하는 게 아니라 단지 부활을 강조하는 자신들의 논증으로 그런 흐름을 좇은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지금 그 모습을 인용하고 있는 것이죠. 왜죠? 죽은 자를 위해 세례는 받으면서도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을 믿지 않고 사는 게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이죠.
30절에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위험한 삶을 감수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어찌 그런 위험을 받겠느냐? 하는 것이죠. 그러나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 24절 이하의 고백을 통해, 그가 얼마나 그런 위험을 기꺼이 감수했는지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바울이 그런 고통을 감내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죠. 그분의 부활에 자신도 참여할 것을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31절,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바울이 매일 죽는다는 것입니다. 왜요? 부활하신 주님을 믿기 때문에, 나를 죽이면 죽일수록 영원의 씨앗을 뿌릴 수 있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에 죽는다는 것입니다.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묵상하기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
ebook-product.kyobobook.co.kr
32절,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바울이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직접 원형극장에서 맹수와 싸웠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 내용은 사도행전에 나와 있지 않죠. 맹수와 싸웠다는 것은 ‘맹수와 싸우는 것 같은 위험을 당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사람의 방법을 좇아, 곧 자기 욕심을 좇아 그런 위험을 당했다면, 그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는 것이죠.
33절,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의역을 하면, 세상은 끊임없이 너를 속이려 한다, 그러므로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과연 누구에게 속지 말라는 것입니까? 이 세상의 것이 이 세상의 것으로 끝난다고 속이는 악한 자들에게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34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이 말은 몽롱한 상태에서 의식 없이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곧 하나님의 심판을 뜻하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런데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하고 하는데, 4장 14절에서도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라는 말을 했습니다. 너희들 중에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수치를 통해라도 하나님을 바르게 알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4장에서의 부끄러움은 외형적인 것에 관한 것이고, 15장에서의 부끄러움은 죽고 사는 것의 문제입니다. 바르게살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뿌릴 것을 뿌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 | 권성권 | 유페이퍼- 교보ebook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ebook-product.kyobobook.co.kr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성령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주님의 부활을 내다보면 부활을 통해 받을 상급과 회복하심을 바라보며 진리의 삶을 이 땅에 뿌리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도 바울처럼 이 세상을 떠난 뒤에 이 세상을 밝히는 빛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그 삶을 바라보며 죽어야 것을 위해 죽는 빛의 통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728x90
반응형
LIST
'새벽묵상DewSermon > 고린도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에 가지고(고전16:1-12) (1) | 2024.12.16 |
---|---|
신령한 몸으로(고전15:35-58) (1) | 2024.12.16 |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15:12-22) (1) | 2024.12.15 |
내게 보이셨느니라(고전15:3-11) (3) | 2024.12.12 |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고전15:1-2) (1) | 2024.12.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