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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입니다. 1-11절 사이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임을 이야기하고 있죠. 부활하신 예수께서 베드로를 비롯한 12 제자들에게, 500여 형제에게, 예수님의 혈육 야고보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모든 사도들에게, 심지어 예수님을 핍박하던 바울 자신에게까지도 임하여 주셨음을 이야기했죠. 그래서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1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은 것은 과거형으로 기록돼 있지만 전파한다는 것은 현재형이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성경 말씀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세계 곳곳에서 현재형으로 진행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것 역시 언제나 현재형으로 역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12절이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분명히 예전에는 믿었는데,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영세와 현세의 차이입니다. 이 세상과 이 세상의 것들을 우상으로 삼고 있는 자는 부활을 믿지 않는 자이죠.
13절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죽은 자가 부활한다면 그 근거는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의 부활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14절,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우리 성경은 ‘헛것이며’라는 말씀이 제일 뒤에 나오지만 헬라어 원문은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헛것이다.”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더 강렬한 말씀이죠.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이런 편지를 쓴 것을 보다 확실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헛것이라고 말이죠. 그러나 사도 바울이 헛것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다메섹에서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에, 지금껏 행한 일이 결코 헛것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15절,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하나님의 거짓 증인’이란 ‘하나님에게 대항하는 거짓 선지자’란 뜻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죽은 자가 부활이 없다면, 부활의 근원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박인 예수를 누가 살리셨다고 고백합니까? 하나님이시죠. 그런데 그와 같은 그리스도가 부활을 하지 않았다면, 결국 하나님이 예수를 살리신 적이 없다는 뜻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이 살리신 적도 없는데, 하나님이 살리셨다면 거짓 증거하는 셈이 됩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는 자는 거짓 증인에 지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 분의 부활은 거짓이 없는 사실이라는 것이죠.
16절,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이는 13절의 말씀을 다시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17절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여기에 ‘헛되다’는 단어 ‘마타이오스’(μάταιος)는 미래적인 단어입니다. 앞의 13절에서 ‘너희 믿음이 헛되다’는 것은 ‘현재하고 있는 일이 헛되다’는 것이고, 17절의 헛되다는 것은 너희의 미래를 아무도 책임져주거나 보장해 주지 않기에 헛되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에게 내일이 있겠습니까? 미래가 없는 것이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 살고 좋은 저택에서 산다고 해도 부활이 없다면, 내일이 없기에 아무 소망이 없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당신의 몸을 제물 삼아서 우리를 회복시켜 주셨는데, 그 분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도 없는 셈이죠. 나 스스로 어찌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죠.
18절,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또한’이란 이 말은 문맥상 ‘그 결과’란 의미입니다. 그 결과가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다’ 하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죽음을 ‘잠 잔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가 망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내가 그리스도 때문에 내 삶 속에서 나를 부인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죽고 보니까 부활이 없다면, 어떨까요? 그것이 바로 망한 것이죠. 그러면 차라리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지혜롭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9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렇죠. 부활이 없다면, 세상에 주님을 믿는 사람들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가 굉장히 가보고 싶지만, 안 가는 것이 무엇 때문인가? 내 손에 넣고 싶지만, 예수님 때문에 손도 대지 않는 것들이 많죠. 왜요?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이 허망하게 망하는 것으로 끝나버린다면 이 세상에 그리스도인들처럼 불쌍한 사람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바로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그러나 그것으로 과연 끝입니까? 헛된 것으로, 망한 것으로 끝입니까? 아닙니다. 20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그러나’, 이 말은 대반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로 헛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잠자는 자, 죽은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오경에서 ‘첫 열매’를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첫 열매는 그 이후에 이어지는 모든 열매의 대표성을 띠기 때문입니다. 첫 열매는 그 이후에 이어지는 모든 열매의 질과 의미와 가치와 수준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내가 첫 열매를 하나님께 정성스레 바친다는 것은, 내게 주어진 모든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는 마음으로 관리하겠다는 뜻이죠. 마찬가지입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모든 사람들이 그와 똑같이 부활하게 된다는 것을 그 분이 보여 주셨다는 뜻입니다.
21절,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왔다. 여기에서 ‘사람’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아담’입니다. 아담 한 사람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죽게 되었듯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때문에 모두가 부활케 된다는 것입니다.
22절,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왜 아담 한 사람이 죄를 지었는데,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게 되는 것입니까? 죄를 범한 아담의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아담으로 인해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연합한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22절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를 하나 꼽으라면 바로 ‘모든 사람’입니다. 바로 그 단어 때문에 내가 살 수 있기 때문이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만, 지식인만, 지위가 있는 사람만 산다면 우리는 다 제외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남녀노소빈부귀천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이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사는 자들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그 부활하심의 구원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과 같은 부활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 우리처럼 미련한 자, 헛된 자가 어디에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죠. 그러나, 그러나, 주님의 부활하심이 있기에 우리가 가장 복된 자라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 이 세상의 현실세계에만 집착한 자로 살 것이 아니라 내세를 바라보는 그런 소망가운데 살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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