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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1장-14장까지는 공적인 예배에 대한 바울의 목회적 답변이었습니다. 그 중에 12장-14장까지는 바른 은사의 사용에 대한 답변이었죠.
오늘부터 살펴볼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에 대한 사도 바울의 답변입니다. 그런데 다른 부분과 차이가 있는 게 있습니다. 부활에 대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질문하지 않았는데도 바울이 밝혀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7장 1절에서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또 7장 25절에서 “처녀에 대하여는”, 그리고 8장 1절에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하면서 답변할 때마다 그 주제를 밝히고 답을 썼습니다. 하지만 15장 1절은 그냥 시작을 한다는 것이죠.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왜 그렇게 다른 부분과 달리 그냥 쓴 것일까요? 성경학자들은 바울이 먼저 그런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해준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질문이 있었느냐, 아니면 없었는데도 바울이 먼저 섰느냐, 하는 논의보다 더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고린도교회 교인들 가운데에는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권면을 해 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12절에서 밝혀주죠.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사실 고린도교회는 그리스의 고린도에 위치한 곳이죠. 정치적으로 로마제국 소속이지만 문명적으로는 헬라 문명권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헬라철학과 헬라사상의 영향을 받았죠. 헬라 사람들은 영은 대단히 귀하지만 육체는 쓸모없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영혼불멸설은 믿었지만, 몸이 부활한다는 것은 믿지 않았죠. 그런 사고방식이 고린도교회에 팽배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혼불멸설을 믿는 것과 부활신앙은 절대로 같은 게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조상 귀신을 믿는 사람들은 제사를 드리죠. 그분들은 영혼불멸설을 믿는 것입니다. 구천을 떠돌다가 제사 때가 되면 진지를 잡수러 돌아온다고 믿습니다. 그런 영혼불멸설을 믿는 것과, 그리스도인이 믿는 부활신앙이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부활신앙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 때 영으로 만든 게 아니라 흙으로 육체를 만드셨습니다. 따라서 부활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던 본래의 모습, 죄로 말미암아 실낙원 한 하나님의 나라, 그 에덴동산을 회복하는 걸 말합니다. 따라서 내가 가야할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구천을 떠도는 영혼불멸설과, 내가 회복돼야 할 존재 그리고 그 분이 계신 곳에 가야한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죠. 그만큼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을 때만 이 세상에서 육체를 갖고 바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고린도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의 원인은 결국 바른 신앙을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바른 신앙이란 두말할 것도 없이 부활신앙입니다. 부활신앙은 기독교의 핵심이죠. 부활신앙이란 우리가 이 땅에 살지만 우리는 이 땅에 속한 자들이 아니라는 것이죠. 우리는 이 땅을 거쳐 가는 나그네들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땅에 살지만, 이 땅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때, 이 땅의 잡다한 것들, 심지어 이 세상에서 다투고 싸우는 문제로부터도 자유하며 살 수 있죠.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그런데도 다투었다는 것은 부활에 대한 확실한 신앙심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바울이 그래서 부활신앙에 대한 목회적 답변을 위해 15장을 써내려갔다는 것입니다.
귀먹은 하나님 응답하소서 | 권성권 | e퍼플- 교보ebook
"성경으로 문화 읽기를 접목한 세 번째 책이다. 첫 책은 출애굽기로부터 시작해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까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두 번째 책은 여호수아로부터 시작해 사사기, 룻기, 사무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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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토대 위에서 15장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절에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헬라어 원문에는 ‘알게 한다’는 ‘그노리조’(γνωρίζω)가 맨먼저 나와 있습니다. ‘아주 명확하게 밝힌다’는 뜻이죠. 그것이 무엇입니까? 너희들에게 전한 복음입니다. 지금 바울이 왜 이렇게 긴 편지를 쓰는 것입니까?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복음을 분명하게 각인시켜 주기 위함이죠. 그래서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다.” 여기에서 너희란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말하는 것이죠. 그런데 너희들이 받고, 너희들이 섰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고린도교회 개개인들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고린도교회 공동체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고린도교회가 될 수 있었는 것은 너희들이 서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만큼 교회됨의 근거, 그리스도인 됨의 근거는 오직 복음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너희가 “그 가운데 섰다’는 말은 헬라어로 ‘히스테미’(ἵστημι)입니다. ‘굳게 섰다’는 뜻이죠. 문법적으로는 완료형입니다. 완료형이란 과거에서 시작해서 그 영향력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고린도교회가 복음 위에 굳게 서서 교회가 시작되었는데, 지금까지도 굳게 서서 교회로 존속하고 있다는 뜻이죠. 그런데 지금 서로 다투고 있는 그 교회가 제대로 서 있는 교회입니까? 그렇지 않는 것이죠.
그런데도 바울은 그들이 굳게 서 있다고 완료형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두 가지가 담겨 있죠. 하나는 고린도교회 교인들 스스로 이 편지를 읽고서, 스스로 굳게 서 있는지, 처음처럼 굳게 서 있는지, 돌아보고 자성하도록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것이죠. 다른 하나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질타하지만, 그러나 야단만치는 게 아니라, 그들이 바르게 서서 계속 갈 수 있도록 격려해 주기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지금은 교인들이 다투고 흔들리고 있지만, 머잖아 그리스도 안에서 굳게 설 것을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2절입니다.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여기에서 ‘그 말’과 ‘복음’은 같은 말입니다. ‘그로 말미암아’도 역시 ‘복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말은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가 뒤에 나오지만 원문은 제일 먼저 나와 있습니다. 그만큼 복음 밖에 구원 얻을 길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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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의 믿음이 어떠해야 하는지 두 가지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긍정적인 말로 ‘복음을 굳게 지킨다’는 것입니다. 굳게 지킨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유치원 보모라면 그 아이가 다치지 않게 돌봐야 할 책임이 있죠. 대통령의 경호원은 대통령을 지키는 임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을 경호한다면서 대통령이 안 보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경호원 자격이 없는 것이죠. 우리가 말씀을 지킨다는 것도 똑같은 것입니다. 나의 일거수일투족, 나의 생각과 언행 때문에 말씀이 가려지지 않도록 하는 것 말이죠. 내가 어디에 있든지 내가 돋보이는 게 아니라 말씀이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도 단순한 종교적인 행위로 연계시키는 게 아니라 말씀 속에 나를 녹여내는 걸 말합니다.
복음을 굳게 지킨다는 다른 하나의 의미는 소극적인 행위입니다. 이른바 ‘헛되이 믿지 아니하는 것’이죠. 우리말 ‘헛되이’로 번역된 헬라어 ‘에이케’(εἰκῇ)는 ‘목적 없이’ 혹은 ‘까닭도 모르고’ 하는 뜻입니다. 믿음은 목적 없이, 까닭도 모른 채 믿는 게 아니죠. 내가 분위기에 이끌려 믿는 것은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좀 익숙해지는가 싶더니, 예배당 안에서는 주님을 따르는 것 같지만 세상 밖에서는 세상 논리만 좇는다면 헛되어 믿는 것과 다름 없죠. 바울은 믿음이란 주님만 굳게 붙잡고 의지하는 것이요, 주님만 목적으로 확고하게 섬기는 것임을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두 가지 사실을 알려주면서, 긍정적인 표현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답변을, 부정적인 답변 앞에서는 부정적인 답변을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여 당신들은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그때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네, 우리는 굳게 지키고 있습니다.”라고 답변하는 걸 듣고자 하는 것이죠. 또 “고린도교회 성도들이여, 믿음은 헛되어 믿는 게 아닙니다.”할 때 “네, 우리는 우리의 목적인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알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목적 없이 믿고 있지 않습니다.”하는 답변을 듣고자 하는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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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와 같은 말씀 속에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확고히 믿고 있느냐, 하고 물으실 때 우리에게 그런 대답을 듣고자 원하시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혹여라도 세상 사람들처럼 헛되이 나를 믿지 않고 있느냐? 영혼불멸설이 아니라 부활을 믿고 있느냐?”하고 물으실 때 그때 저와 여러분들은 그렇게 답할 수 있기를 원하시겠죠. “네 주님, 저희들은 부활의 주님인 예수 그리스도만 푯대로 삼고 믿고 있습니다.” “주님 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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