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1장은 아담에서부터 아브라함을 거쳐 에서의 후예들에 관한 족보를 기록하고 있었죠. 하나님의 관심이 이방 세계에까지 뻗어 있음을 보여주는 말씀이었죠. 역대상 2장부터 야곱 곧 이스라엘의 12지파에 관한 족보를 기록했는데, 하나님의 사랑이 이제 이스라엘에 집중돼 있음을 밝히고자 함이었죠. 그 야곱의 12 아들들 가운데 장자가 르우벤인데, 유다를 맨 먼저 앞세운 것은 역대기의 기록 목적 때문이라고 했죠. 포로 후에 돌아온 유다 백성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옛날 다윗 왕조의 흥한 역사와 성전을 중심으로 잃어버린 나라를 재건코자 함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다윗 왕조의 선조인 유다 지파를 맨 먼저 언급한 것이었죠. 그리고 어제 살펴 본 역대상 3장에는 전반부에 다윗의 자녀, 중반부엔 솔로몬과 남유다 왕들, 그리고 하반부엔 포로이후의 자녀들을 언급했었죠. 그를 통해 우리가 깨달았던 게 무엇입니까? 비록 바벨론 제국이 세상을 주름잡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바벨론 제국도 바사 곧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 멸망당하도록 하셨고, 그 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왕을 들어 유다 백성들을 포로에서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칙령을 내리게 했다는 점이었죠. 그렇기에 어떤 환경 속에 있던지 간에 하나님의 언약백성임을 잃지 않고, 말씀의 토대 위에 살아가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미래와 희망을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에서도 그 부분을 인지시켜 줍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오늘 읽은 역대상 4장은 유다 지파의 족보와 시므온 지파의 족보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1-23절까지가 유다 지파의 족보인데, 그 중에서도 유력한 자손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엊그제 살펴 본 역대상 2장에서도 다윗 왕에 이르는 족보를 살펴 보게 했죠. “유다는 베레스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살몬은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고”(대상2:5-15) 하고 말이죠. 그런데 본문은 유다에서 베레스로, 베레스에서 헤스론으로 이어지지만, 헤스론 다음에 람이 아닌 ‘갈미’로, 또 갈미에서 ‘훌’로, 훌에서 ‘소발’로 이어지는 족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 곁다리 같은 족보를 소개하는 걸까요? 그것은 역대상 2장이 왕족의 중심 족보였다면, 오늘 4장은 왕족의 후손이 아닌 다른 후손들 가운데 유력한 자들을 소개하고자 함입니다. 이 중에는 우리가 익히 들어 본 이름, 9-10절의 ‘야베스’도 나옵니다. 그런데 야베스가 누구의 아들인지는 정확이 나와 있지 않죠. 다만 이 야베스는 유다 지파의 후손 가운데 한 사람임은 분명하죠. 유대인들의 전통에 따르면 이 야베스는 누구보다도 율법에 대해 능통한 귀중한 자였고, 누구보다 부유할 뿐만 아니라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한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만큼 당대와 후대에 존경받은 인물이었던 것이죠. 물론 9절에 보면 그의 출생은 서글프기 짝이 없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수고로이 낳은 아들’이란 뜻으로 ‘야베스’로 지었기 때문이죠. 그것은 창세기 35장 18절의 베냐민의 출생과 똑같습니다. 라헬이 밧단 아람에서 고향 땅으로 가는 길목에 아들을 낳는데, 그때 그녀는 죽어가면서 아들을 낳았죠. 그래서 자기 자신의 죽음을 내다보면서 ‘슬픔의 아들’이란 뜻으로 ‘베노니’라고 짓고자 했는데, 남편 야곱은 ‘오른손의 아들’이란 뜻으로 ‘베냐민’이라고 불렀죠. 본문의 야베스도 그런 ‘고통의 아들’인데, 야베스와 베냐민이의 출생이 다른 것은 야베스는 아버지조차 없었던 거죠.
그런 환경 속에서 태어난 야베스였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율법에 능통해 귀중한 사람이 되었고, 누구보다 부유할 뿐만 아니라,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경외한 사람이었죠.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요? 그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기도 했겠ㅈ만, 10절에 나온 말씀처럼 하나님께 자기 인생을 의탁하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비록 어려운 환경 속에 태어났어도 자신을 능하게 하신 하나님께 자기 인생을 의탁하며, 하나님께 간구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이 기도문이 어찌 보면 이기적인 복을 간구하는 것 같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응답하심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야베스의 간구를 들으셨을까요? 요한일서 5장 14절에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또 마태복음 6장 33절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만큼 야베스는 자기 인생을 바르게 세워주실 분이 하나님이시고, 오직 하나님께만 그 능력이 있음을 믿었던 자입니다. 그리고 그 인생의 기반 위에서 혼자 잘 먹고 잘 산 게 아니라, 구약의 율법에 능통한 자요 하나님을 경외한 자답게,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돕고 살았던 것이죠.
그리고 13절에 “그나스의 아들들은 옷니엘과 스라야요 옷니엘의 아들은 하닷이며”이 나오는데, 이 옷니엘이 누굽니까? 갈렙의 동생이자 그나스의 아들이죠. 옷니엘은 우리가 사사기를 읽을 때 이미 살펴봤지만 여호수아 사후에 첫 번째 이스라엘의 사사였죠. 바로 그 옷니엘이 유다 지파의 자랑스런 후손이라는 점을 오늘 본문의 계보를 통해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24-43절까지는 이스라엘의 12지파 가운데 두 번째 지파인 시므온 자손들을 소개합니다. 시므온은 사실 야곱의 첫 번째 아들인 르우벤 다음의 둘째 아들이죠. 그래서 유다 지파 다음에 시므온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아니죠.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이 열두 아들을 축복하는데, 유독 시므온과 레위 지파만 저주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 족속의 아들에게 강간을 당했는데, 그것을 빌미로 세겜 족속들에게 할례를 시행토록 했죠. 그러면 자기 여동생 디나를 혼인시켜 주겠다는 것인데, 실은 그들이 할례를 행할 때 완전히 도륙내고자 함이었죠. 그래서 그들이 할례를 행했는데, 그 틈을 좇아 시므온과 레위가 그들을 완전히 죽여 버렸죠. 그래서 야곱은 그 두 아들이 악취나는 일을 행했다며, 그렇게 그들의 후손들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기도했죠. 그런데 시므온과 레위 두 아들 가운데 레위는 후에 모세가 시내산에서 법궤를 가지고 내려올 때 모두가 황금송아지 앞에 광란을 굿판을 벌이고 있을 때 그 레위 지파가 나서서 하나님의 법을 따르겠다며 그 우상의 굿판을 벌인 자들 3천 명 가량을 쳤고, 그것이 여호와께 헌신하는 일로 인정받아 그때부터 제사장 지파로 거듭나는 복을 받게 되었죠.
그렇다면 시므온 지파도 그런 레위지파를 본받아 기사회생할 기회를 찾았어야 했는데, 광야 40년 동안 어떤 헌신도 보여주질 못했죠. 오히려 복채를 바라고 거짓 예언활동을 한 발람의 꾀에 넘어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에서 행음할 때 그 주동자 역할을 했던 자가 바로 시므온 지파의 후손 ‘시므리’(민25:14)였죠. 그만큼 시므온 지파는 레위지파처럼 하나님께 헌신은커녕 오히려 하나님을 등지고 우상숭배와 성적 타락을 조장한 길을 걸었는데 그 일로 인해 너희들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흩어짐을 당할 것이라는 야곱의 예언을 그대로 성취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이스라엘 지파가 각각 땅을 분배받을 때의 모습입니다. 시므온 지파는 그때 유다 지파의 땅에 흡수되어 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유다 지파 다음에 시므온 지파를 기록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들이 둘째 아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유다 지파에 흡수돼 버린 것 때문이죠. 바꿔 말해 결코 자랑할 만한 지파가 못 된다는 점입니다.
https://www.bookpod.co.kr/goods/goods_view.php?goodsNo=1000001131
그렇기에 본문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태어난 배경과 살아가는 환경이 녹녹치 않아도 하나님께 자기 인생을 의탁하는 자에게, 또 하나님께 그 능력이 있음을 믿고 간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야베스처럼 존귀한 자로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므온처럼 비록 능력 있는 출생의 반열에 태어났어도 그 삶을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고 자기 욕망을 좇아 살면 반드시 패망한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저와 여러분들은 어떤 환경 속에서든지 하나님 앞에 티끌과 먼지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야베스처럼 하나님께 내 삶을 의탁하고 맡길 때 존귀한 은혜를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도 그런 은혜가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비록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았어도 내 인생을 하나님께 의탁하고 그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산 야베스처럼,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며 살기 원합니다.
레위는 하나님께 헌신하여 큰 사랑과 은총을 덧입었지만,
시므온은 끝까지 자기 탐욕과 타락의 길을 걷다가 이스라엘 사회에서 흩어져버렸습니다.
오늘 저희 모두도 하나님 앞에 티끌이요 먼지와 같은 존재로서,
하나님께 인생을 의탁하고 헌신할 때,
저희들의 가정과 자녀들과 일터와 사업장도 하나님께서 존귀한 모습으로 가꿔 주실 줄 믿습니다.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새벽묵상DewSermon > 역대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므람의 자녀는 아론과 모세와 미리암이요(대상6:1-30) (0) | 2021.09.03 |
---|---|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 범죄하여(대상5:1-26) (0) | 2021.09.02 |
사로잡혀 간 여고냐의 아들들(대상3:1-24) (0) | 2021.08.31 |
유다의 아들은(대상2:1-55) (0) | 2021.08.30 |
아담 셋 에노스(역대상1:1-54) (0) | 2021.08.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