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근 8년간을 도피행각을 벌였습니다. 사울의 칼날을 피해 이스라엘 땅 그것도 유다 광야지역에서 4년간 도망자 신세의 삶을 살았고, 또 4년간 정확히 말해 3년 4개월가량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의 통제관할지역인 시글락에서 숨어 지냈습니다. 그 이후 사울 왕이 죽자 다윗은 30살에 유다 지파의 왕이 되어 헤브론에 올라가 7년 6개월간 다스렸죠. 그 중 2년간은 이스보셋과 내전을 치렀죠. 사울 왕의 아들 이스보셋이 이스라엘의 11개 지파의 왕으로 재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그 이스보셋의 휘하에 있던 아브넬 장군이 자기 권력욕에 이끌려 다윗에게 나아와 협약식을 치르고 돌아가는 길목에 다윗의 부하 장수인 요압 장군의 칼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번에는 그 아브넬의 휘하 장수인 바아나와 레갑에 의해 이스보셋까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들 두 장수는 아브넬의 죽음이 곧 모든 이스라엘의 기운이 이제는 다윗 집안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것을 내다보고, 자신들의 군주인 이스보셋의 목을 다윗에게 갖다 바치면 자신들에게 큰 자리 하나 쯤은 줄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아브넬도 그렇고 그 휘하의 두 장수 바아나와 레갑도 자기 탐욕에 이끌려 다윗에게 나온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공의로움과는 어긋나 있었기 때문에 참된 생명으로 존재치 못하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이스보셋도 죽고, 그 휘하의 영향력 있는 아브넬과 그 밑의 바아나와 레갑이 죽자, 북쪽 이스라엘의 기운이 순식간에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쏠리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다윗이 그 헤브론에서 7년 6개월간 머무는 동안, 그 2년 동안 이스보셋과의 내전을 치르긴 했지만 결코 무력으로만 죽고 죽이는 관계를 벌였던 것은 아니란 점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방법을 좇아 묵묵히 인내하며 기다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과의 연합’에 방점을 두면서 그 2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2년 동안 하나님을 인내하며 기다리던 그 끝에 하나님께서 북쪽의 11지파를 이끌고 있던 장로들의 마음, 곧 그 지파들의 지도자들 마음을 다윗에게 향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본문 1-5절을 통해 밝혀주는 내용인데, 특별히 3절 말씀이 그것을 더 확고하게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 이스보셋과의 내전 속에서 2년 동안 다윗은 그렇게 인내하며 관대하고 온유하게 대했을 때 종국에는 하나님의 방법에 의해 그 모든 대적들이 정리되었고, 급기야 북쪽의 지도자들이 다윗에게 나아와 전국적인 왕으로 추대하게 된 모습입니다.
이때 다윗의 내면 속에 무슨 생각이 밀려들었겠습니까? 15살에 하나님에 의해 기름부음 받은 왕으로 지명되었지만 전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받기까지 무려 15년의 세월이 걸린 것 아닙니까? 그리고 15년의 세월이 순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망의 늪을 허우적거릴 때가 훨씬 더 많았죠. 그야말로 삶의 끝자락과 같은 낭떠러지 같은 상황에 직면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 속에서 다윗이 느끼고 깨달은 게 무엇이었습니까?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 도울 이는 하나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지 않았습니까?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시34:6) 삶의 끝자락에 서 본 다윗이 흘렸을 눈물들, 그리고 지금 15년이 지나 전 유다 지파의 왕이 되어 이전의 인생길을 생각할 때, 어찌 그가 더 큰 감사의 눈물을 하나님 앞에서 흘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에 우리가 그 헤브론에서 하나님과 연합한 삶을 살아 온 다윗의 7년 6개월, 그 중 2년은 이스보셋과의 내전을 치르면서 인내했고, 또 5년 6개월은 북쪽 11개 지파의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데 인내했던 그 세월을 보면서 무엇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인생의 낭떠러지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만난 사람만이 자기 욕망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공의로움 속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관대하게 대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일생토록 취해야 할 자세가 바로 다윗과 같은 삶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가 헤브론에서 하나님과 연합하며 산 7년 6개월은 단순한 말씀과 기도의 삶이 아니라 그 어떤 사람이든지 주님의 온유한 심령으로, 곧 주님의 작고 연약한 자를 품는 그런 관대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다져나갔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취해야 할 삶의 헤브론도 바로 그와 같은 삶이어야 할 줄 믿습니다.
본문 6-16절은 여부스 지역, 훗날 예루살렘으로 명명되는 그 난공불락의 여부스 지역을 점령해 들어간 다윗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여부스 사람들이 사는 여부스 성읍은 천년 넘게 이어온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그곳이 얼마나 강하고 단단했는지 여부스 사람들은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다윗 정도의 적은 물리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하던 사람들이었죠. 그런데 그 여부스 성읍 곧 예루살렘성읍을 다윗의 군대가 점령한 것입니다. 전면전인 아닌 성벽 밖으로 이어져 있던 수로를 통해 잠입해 들어가서 그들을 무너뜨린 것이었죠.
난공불락의 요새가 작은 수로 하나 때문에 무너졌다는 것은 무엇을 생각하게 해 주는 것입니까? 여부스 족속 성읍 사람들, 곧 예루살렘성읍 사람들의 교만이 스스로를 무너뜨렸다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그 성읍이 함락되는 모습을 지켜 본 다윗이 무엇을 깨달았겠습니까? 자기 자신이 쌓아 온 탑도 자기 자신의 교만으로 한 순간 무너질 수 있다는 의식을 새롭게 다졌겠죠. 인생의 큰 둑도 보이지 않는 개미 구멍 때문에 무너질 수 있는 것이 인생의 교훈 아닙니까? 그렇기에 성경은 그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또한 전도서 9장 1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
그 모든 시기와 때는 우리의 인생을 정하신 하나님의 시기에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부할때든지 가난할 때든지, 높은 지위에 있는지 낮은 지위로 내려와 있든지, 그 모든 상황속에서 교만하거나 비굴하지 말고 주어진 것에 자족하며 겸손하게 사는 게 가장 지혜로운 삶을 사는 자임을 밝혀주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와 같은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 자였기에, 오늘 본문 12절에서 그렇게 고백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 인생을 왕으로 세워주신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자였습니다. 베들레헴의 시골 촌뜨기에 불과한 자신, 더욱이 7명의 배다른 형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외톨이로 양을 치며 살아야 했던 자기 자신을 한 나라의 왕으로 세움받은 것은 자기 능력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총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다윗은 그렇게 그런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난공불락의 성읍인 여부스 곧 예루살렘 성읍도 점령한 것을 깨닫게 되었고, 본문 17-25절에서 보여준 블레셋 군대를 치고 승리한 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망각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가족이나 자녀들 그리고 직장과 일터와 사업장에서, 심지어 교회 안에서조차 어떤 훌륭한 일을 해 냈을 때,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가 어떤 것인지 깨달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늘 고백했던 그런 모습입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고전15:10)이라고 하는 마음과 자세 말입니다. 오늘 하루도 내 곁에 주신 하나님의 사람들을 하나도 잃지 말고, 그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며 소망으로 인내하며 살 때, 하나님께서 더욱 크고 위대하신 일을 감당케 하실 것이요, 그때도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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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주님. 삶의 낭떠러지에 서 있던 지난날의 다윗의 모습이었기에 지금 온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들의 지도자들로부터 왕다운 왕이 되는 그 모습 앞에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아니셨던들 그 인생의 굴곡을 어찌 통과할 수 있었으며, 어찌 모든 이들의 왕이 되었겠으며, 또 난공불락의 성읍도 점령했겠으며, 블레셋 군대를 물리칠 수 있었겠습니까? 오늘 우리들도 다윗의 마음, 곧 주님의 마음을 닮아 자기 비움의 삶을 살 수 있게 하시옵소서. 나의 나 된 것은 주님의 은혜라며 더 많은 사람들을 겸손하게 품고 사랑하는 삶을 살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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