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5장에서 다윗은 그의 나이 30살때 왕위에 오르죠. 이른바 유다 지파의 왕이 된 것입니다. 다윗은 그곳 헤브론에서 7년 6개월을 살았습니다. 그 중 2년은 유다 지파의 왕으로서 11개 지파를 이끌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과 내전을 치렀죠. 나머지 5년 6개월은 이스라엘의 중부지역이자 천년 요새였던 난공불락의 여부스 성읍을 점령했죠. 그리고 그 성읍 이름을 예루살렘 성읍으로 개명했죠. 그때 비로소 11개 지파를 통합하여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때가 그의 나의 37세의 일이었죠.
"다윗이 나이가 삼십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 동안 다스렸으되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삼하5:4-5)
사무엘하 6장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 성 곧 다윗성으로 옮겨오죠. 40년 가까이 기럇 여아림, 곧 ‘바알레유다’에 머물고 있던 그 법궤를 두 차례에 걸쳐 예루살렘 성으로 모셔온 것이죠. 더욱이 그 법궤를 모실만한 성전을 짓고 싶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셨죠. 다만 그 마음은 기쁘게 받으셔서 그의 시대에는 평안함을 주실 것이고, 그 아들 대에 성전을 짓게 될 것이라고 했죠.
그것이 사무엘하 7장을 지나면서 나눈 말씀이고, 사무엘하 8장에서는 그 약속대로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서 승리케 해 주셨죠. 이스라엘의 동쪽 지중해 해변에 위치한 블레셋의 경계선도, 이스라엘의 북쪽인 소바 곧 시리아와 다메섹 지역의 경계선도, 이스라엘의 서쪽 사해바다 건너의 모압지역, 그 위쪽 암몬 지역, 그리고 모압의 아래쪽 에돔 지역의 경계선들까지 모두 정복했죠. 그때마다 다윗은 전쟁의 전리품을 하나님께 올려드렸고, 아래로 백성들을 공의와 정의로 다스렸죠.
사무엘하 9장에선 사울 집안에 남은 자손에게 다윗이 은총을 베풀고자 했죠. 그 은총을 덧입은 자가 사울의 손자요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이었죠. 두 발이 절름발이요, 스스로 죽은 개 같은 자라고 칭하던 자였는데, 다윗은 요나단과의 언약을 기억하여 그런 은총을 덧입게 해 준 것이었죠.
사무엘하 10장에선 다윗이 어렵고 힘든 도망자 시절에 은총을 베풀어 준 암몬 왕 나하스를 기억하고자 그의 죽음 앞에 사절단을 보내 애도코자 했죠. 그런데 나하스의 아들 하눈은 신하들이 염탐하러 왔다는 소식을 듣고서, 다윗의 사절단에게 모욕과 수치심을 안겨줬죠. 수염 한쪽을 자르고, 엉덩이 볼기짝 옷을 도려내버린 것이었죠. 그 일로 다윗의 부하 장수요 군대 총사령관인 요압은 암몬 왕 하눈이 용병으로 데려온 3만3천명과 싸우죠. 오직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나갈 때 승리를 거뒀죠.
다윗은 그만큼 15살 무렵에 왕으로 기름부음 받았지만 골리앗을 쓰러트린 이후에 8년간 도망쳐다녔고, 사울의 죽음과 더불어 헤브론에서 유다지파의 왕이 되어 2년간 내전을 치르고 또 5년 6개월간 여부스 성읍을 정복했죠. 비로소 37살이 되어 명실상부한 이스라엘의 전 지파의 왕이 되어 33년간 예루살렘에서 통치하다가 70세에 죽게 되죠.
그렇다면 왕이 되어 법궤를 옮겨오고, 하나님께서 평안함을 주셔서 가는 곳마다 전쟁에 승리하고, 므비보셋을 불러 자기 식탁에서 식사하도록 하는 은총을 베풀고, 암몬 왕 하눈의 용병까지 물리친 모습들을 떠올리면, 어떻겠습니까? 아주 숨가프게 살아온 인생 아닙니까? 죽을 고비도 많이 넘기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때마다 간절히 하나님을 의지했고,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길을 열어주셨죠.
그런데 오늘 본문은 전혀 엉뚱한 상황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좇았던 다윗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나옵니다. 한 여인을 범할 뿐만 아니라 그 일을 무마시키기 위해 남편을 전장터에 보내 죽게 만든 살인죄까지 저지른 모습입니다.
본문 1절에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암몬의 랍바란 지금의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을 일컫는 곳이죠. 고대 시대에 왕들은 그런 책임과 의무가 있었죠. 해가 바뀌면 전투에 참전한 장수들을 왕이 찾아가서 격려하고 위로해줬던 것 말이죠. 그런데 다윗은 지금 어떤 모습입니까? 요압 장군과 그 부하들만 보낸 채 자기 자신은 그 왕궁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었던 것이죠. 바로 여기에서부터 다윗이 죄악에 노출될 기미가 보인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는 자에게 이와 같은 죄의 유혹이 쉽게 찾아온다는 것이죠.
본문 2-3절은 그런 책무를 망각한 채 자기 안일만을 추구한 다윗이 왕궁 옥상을 거닙니다. 그의 눈에 한 여인이 목욕하는 장면이 들어오죠. 죄의 유혹이 순식간에 밀고 들어온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때 그 유혹을 이겨냈다면 괜찮았을 텐데, 문제는 그 여인 밧세바를 데려오도록 군사를 보냅니다. 더욱이 그녀와 동침하고 맙니다. 그만큼 죄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죠. 죄는 그처럼 민첩하게 파고드는 속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5절에서는 그 밧세바가 임신했다고 밝혀주죠. 분명히 4절 중반절에서는 밧세바가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는 정결례 기간이었음을 밝혀줍니다. 하지만 그 여자가 임신했다는 것이죠. 무엇을 뜻하는 말씀입니까? 자기 책임과 의무를 망각한 채 편한함과 자기 안일을 좇는 자에게 죄는 민첩하게 파고들 뿐만 아니라 죄는 결실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그때 다윗이 무엇을 합니까? 그 죄를 덮고자, 전장터에 나가 있는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불러오죠. 요압 장군에게 기별해서 그 남편 ‘헷 사람 우리아’, 다시 말해 히타이트 족 출신의 우리아를 불러 그 아내와 합궁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른바 알리바이를 꾸미도록 한 것이었죠. 그런데 그 충직한 우리아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밖에서 야영을 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에 또다시 집에 들어가라고 하지만 그때도 들어가지 않고 성 밖에서 머물죠.
그때 다윗이 어떻게 합니까? 알리바이를 꾸밀 수 없다고 생각한 다윗은 요압 장군에게 파발을 띄우죠. 우리아를 암몬 군사들과 맞서 싸우는 최전방에 보내고 나머지는 뒤로 빠져 우리아가 적에게 죽도록 하라고 말이죠. 바로 그 파발을 우리아가 가지고 가서 요압 장군에게 전해주죠. 요압은 다윗의 명령대로 우리아를 최전방에 보내 적의 칼에 죽게 만들죠. 이제 그 소식을 접한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는 어떻게 합니까? 본문 26을 통해 자기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 앞에 통곡하죠. 그리고 장례를 마친 후에는 어떻게 됩니까?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아내로 삼고, 그로부터 아들이 태어나죠.
어떻습니까? 그렇게 하면 모든 게 아무렇지도 않는 것처럼 덮이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대로 묻혀버리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본문 끝부분에 뭐라고 말씀합니까?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보시기에 악하였더라.” 시퍼렇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평가는 정확하다는 것입니다. 결코 덮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뒷부분에 가면 다윗의 죄를 철저하게 심판하시는 하나님, 그 죄의 후유증을 겪게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해 줍니다.
오늘 이와 같은 말씀 앞에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망각하게 되면, 자기 안일만 좇으면 죄는 민첩하게 파고든다는 것이고, 그 죄는 분명한 결실을 가져온다는 것이죠. 그리고 하나의 죄를 덮기 위해 또 다른 죄의 알리바이를 만드는 죄의 확산성을 가지고 온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으로 끝이 아니죠. 이후 죄의 후유증을 겪죠.
그래서 진짜 실력 있는 신앙인은 누구겠습니까? 다윗이 15살때 왕으로 지명받은 후에 골리앗을 쓰러트리고, 사울의 칼날을 피해 다니고,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왕이 되어 내전을 치르고, 후에 난공불락의 성읍인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그 뒤에 이스라엘 전역의 왕이 되어 동서남북의 변방들까지 다 정복할 정도로 외부적인 상황에 대해선 승리해왔습니다. 그때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그의 심령은 주님으로 가득찼던 것이죠. 그러나 이제 편안한 중년에 접어들 때 내부의 마음을 다스리지지 못했던 것입니다. 외적인 인생의 탑을 아무리 잘 쌓아올렸어도 자기 내부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이렇게 한 순간 무너질 수 있는 것을 말씀해주는 것이죠.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사랑하는 주님.
다윗이 15살에 왕으로 지명받고, 골리앗을 쓰러트리고, 사울의 칼날을 피해 8년 간 도망다녔습니다.
후에 유다지파의 왕이 되어 2년간 내전을 치르고, 5년 6개월 동안 예루살렘 성읍을 점령했습니다.
30살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또 가는 곳마다 전쟁에서 승리하여 이스라엘의 동서남북의 변방들까지 정복했습니다.
바쁘고 힘들때일수록 주님을 의지하며 외적인 인생의 탑을 잘 쌓아올렸습니다.
하지만 편안하고 안전할 때, 인생 중년에 접어들때 , 자기 책무를 망각하는 순간 순식간에 죄가 밀려들었습니다.
그 죄는 확산성을 가져왔고, 결실성도 맺는 법이었습니다.
오늘 저희들도 힘들고 바쁠수록 주님을 더욱 의지하며 살게 해 주시옵소서.
혹여라도 일이 잘 풀리고 평안할 때도, 인생 중년기에 접어들었도 한 눈 팔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가정을 잘 지켜나갈 수 있도록 저희들의 심령을 굳게 붙잡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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