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살에 다윗이 왕으로 지명받고, 얼마 후 골리앗을 쓰러트리고 사울의 군대장관이 되죠. 심지어 사울의 사위가 되죠. 하지만 그 후에 사울의 칼날을 피해 도망자 신세의 삶을 8년 겪었죠. 이제 사울이 죽자 30살의 나이에 헤브론에 올라가 유다 지파의 왕이 되죠. 그로부터 2년간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 왕과 내전을 치렀고, 5년 6개월은 난공불락의 여부스 성읍을 점령해 예루살렘 성을 명명했죠. 그때 비로소 11개 지파를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왕이 되었죠. 그때 그의 나이 37살 무렵이었죠.
다윗은 그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 성 곧 자신의 다윗성으로 모셔왔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법궤를 안치할 성전을 짓고자 했죠.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마음만 받으셨고, 그 아들 대에 성전을 짓게 하겠다고 하시면서 그의 시대에 평안함을 주시겠다고 약속해주셨습니다. 그 후에 10년간 다윗이 정복 전쟁을 벌였는데, 이스라엘의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이방 지역들까지 가는 곳마다 승리할 수 있었고, 각 나라마다 다윗에게 조공을 바쳤죠.
그런 평안함 가운데 사울의 손자요 요나단의 아들인 두 발이 절둑발이인 므비보셋에게 사울의 땅을 다 선물로 줬죠. 또한 그를 자기 식탁에서 왕자들과 함께 먹도록 은총을 베풀었죠. 그리고 암몬 왕 나하스의 죽음 앞에 조문객을 보냈는데, 그들에게 수치와 모욕을 안겨 준 하눈의 일로, 그 암몬 족속과 싸움을 벌였는데, 그 전투 역시 승리를 거두게 되었죠.
그와 같은 다윗의 인생을 10년 단위로 생각한다면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 다윗이 15살 곧 10대 중반에 왕으로 지명받았고, 이후에 8년 넘게 근 10년간 도망자로 살았죠. 그의 20대 삶은 도피행각의 삶이었습니다. 이제 30살에 유다 지파의 왕이 되어 7년 6개월간 헤브론에 산 이후에 37살에 예루살렘에서 모든 백성들의 왕으로 등극했죠. 이른바 40대의 모습입니다. 그로부터 10년간 정복전쟁에 몰두하며 가는 곳마다 승전보를 올렸고, 그의 나이 47살 곧 50대 무렵에 신흥 강자로 떠올랐죠.
어떻습니까? 그런 모습이 사무엘하 1-10장까지의 모습이었습니다. 도망자 삶을 살고, 힘들게 왕위에 올라 모든 백성의 왕이 되고자 몸부림쳤고, 또 이방지역들을 정복하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왔습니까? 그만큼 한 분야에 탁월한 성과를 거둔 사람들은 남다른 비범함이 있는 게 사실이죠. 그런데 그토록 어려운 인생의 고비와 숱한 역경들을 극복하면서 주님의 은혜 가운데 외부 환경을 극복한 다윗이 50대에 접어들어 행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봤죠. 충직한 군사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말았죠. 뭔가 안정되고 평안한 중년의 나이에 그런 어처구니 없는 짓을 저지른 것이었죠.
과연 그 원인이 무엇이었습니까?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내 팽개친 채 자기 안일에 도취되었기 때문이죠. 고대 왕들은 해가 바뀌면 전쟁터에 나가 있는 병사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야 할 책무가 있었죠. 하지만 그걸 망각한 채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죄가 유혹해 들어왔죠. 그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밧세바를 범했는데, 그 일로 밧세바가 임신케 되었죠. 죄는 그만큼 민첩성과 결실성을 가져오는 것이었죠. 더욱이 그걸 덮고자 알리바이를 꾸미지 않았습니까? 그의 남편 우리아를 불러들여 그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하도록 한 게 그것이었지만. 하지만 두 차례나 우리아는 거부했고, 급기야 다윗은 요압 장군에게 편지를 보내 암몬 족속과 전쟁을 치를 때 최전선에 보내 적의 칼에 죽게 만들도록 했죠. 죄는 그만큼 확산성을 가져오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윗이 임신한 밧세바를 자기 아내로 삼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묻히는 것 같았죠. 하지만 시퍼렇게 살아계신 하나님은 그 일을 악하게 보셨죠.
오늘 본문은 그와 같은 다윗의 죄를 악하게 보시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 말씀입니다. 본문 1절에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그가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를 책망하기 위해서 나단 선지자를 보낸 것입니다. 이때 나단이 직접적으로 다윗의 죄를 고발하지 않고, 먼저 스스로 그 죄를 뉘우치도록 한 예를 들어 이야기하고 있죠. 그 동네에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는데, 그 가난한 자는 암양 새끼 한 마리를 자기 딸처럼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데, 외부에서 손님이 와서, 그 부자가 자기 양과 소로 그 손님을 대접하는 게 마땅한데도 그 부자는 그 가난한 자의 것을 빼앗아서 그 손님을 대접했다는 이야기를, 다윗에게 아뢰는 상황이죠. 그때 다윗은 그 일이 자기 나라 땅에서 벌어진 일인 줄 알고 뭐라고 대답합니까?
본문 5-6절에 “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한지라.” 다윗이 크게 진노하면서, 그런 자가 있다면 당장에 쳐 죽여야 한다고 이야기한 것이죠.
그런데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단 선지자가 말하죠. 본문 7절에 “당신이 그 사람이라.” 하나님께서 당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을 부어 세워주셨고, 또 사울의 칼날에서 지켜 주셨고, 유다 족속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족속의 전체 왕으로 세워주셨고, 또 가는 곳마다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 주셨는데, 그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하고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죄를 범하고 아내로 삼은 것입니까? 하고 호되게 책망하는 상황입니다.
이와 같은 나단 선지자의 모습을 보면 누구를 연상케 합니까? 그렇죠. 그 옛날 사무엘 선지자를 떠올릴 수 있죠.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투 앞에서 제사를 드린 후에 출정하게 돼 있는데, 그 제사를 집례해야 할 사무엘 선지자가 더디 오자 백성들의 마음을 얻고자 사울이 직접 제사를 집례하는 어리석음을 범했을 때, 또 아말렉 군사와 사람들과 모든 가축떼까지도 완전히 진멸토록 하나님의 말씀을 사무엘 선지자가 전했는데 그때 사울이 살지고 좋은 송아지와 염소와 양떼들을 모두 살려서 취한 일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때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을 향해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15:22-23)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 왕에게 분명하게 호되게 책망하듯이, 지금 나단 선지자도 다윗 왕에게 분명하고 호되게 책망하고 있는 모습이죠.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사울은 그때 사무엘의 책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왕위만을 굳게 세우는데 혈안이 된 반면, 다윗은 이때 침상을 적실 정도로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한다는 점이죠. 시편 51편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어떻습니까? 이것이 보혜사 성령님의 은혜 아닙니까? 우리를 보호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진리와 생명으로 이끄시는 성령 하나님 말입니다. 그 성령님께서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통해 다윗의 심령을 후벼 팠던 것 이죠. 왜요? 다윗의 심령을 일으켜 바르게 세워, 죄악을 벗어나, 진리와 생명의 길로 이끄시기 위함시죠.
그렇기에 우리가 다윗만 정죄할 게 아니라, 우리에게도 이런 연약함에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늘 직시하는게 중요하죠. 그때 성령님께서 말씀하실 때, “얘야, 그 길이 아니지 않느냐? 그 길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겠느냐?”하고 감동을 주실 때, 저와 여러분들은 기꺼이 그 길에서 떠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설령 남이 알지 못하는 죄악을 저질렀을 때, 성령님께서 책망하신다면 그 때도 다윗처럼 깊이 회개하며 진리와 생명의 길로 돌아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이 한주간도, 보혜사 성령님께서 내주하시는 역사가 가정과 일터 속에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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