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인생을 10년 단위로 생각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15살 곧 10대 중반에 왕으로 지명받고, 후에 8년 곧 근 10년간 도피행각을 벌였죠. 그의 20대 시절은 도망자 삶을 산 것이었습니다. 이제 사울이 죽자 30살에 유다 지파의 왕이 되어 2년간 내전을 치렀고 5년 6개월간 여부스 성읍을 점령하며 살았죠. 그리고 37살 곧 40대 쯤에 이스라엘 전 지파의 왕이 되었죠. 그가 40대에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법궤를 모셔오고, 성전을 짓고자 했지만, 그 아들 대에 짓도록 하겠다는 응답을 받았죠. 그러면서 다윗은 외부 정복전쟁을 벌였죠. 이스라엘의 동서남북 각 경계 지역들을 정복하여 조공을 바치게 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47살까지 벌인 일이요, 그 기간을 10년으로 잡았을 때 그의 나이 50대에 신흥 패권국의 수장으로 떠오른 셈이었습니다.
그렇게 50대에 들어서기까지, 다윗은 숱한 역경과 죽음의 고비도 넘나들었죠. 그 상황에서 하나님은 시마다 때마다 성령님을 통해 보호해주시고 진리와 생명의 길로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50대에 접어들어 행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평안하고 안정될 즈음에 우리아의 아내였던 밧세바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성공가도를 달려 오다, 뭔가 안락한 생활을 하던 중년기의 나이에 다윗이 부정을 저지른 것이었죠. 그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다윗의 범죄인데, 그와 같은 죄를 짓게 된 원인이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죄는 민첩하게 파고들었고, 죄는 분명히 결실을 가져왔고, 죄는 하나의 죄악으로 끝나지 않고 연쇄적인 확산성을 가져왔죠.
그런데도 다윗이 훌륭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이었습니까? 사울과는 달리, 나단 선지자의 입술을 통해 죄악을 책망했을 때, 그 음성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자복했다는 점입니다. 비록 죄의 양상은 달랐지만, 사울은 그 죄를 책망하는 사무엘 선지자 앞 곧 하나님 앞에서 무반응으로 일관했지만, 다윗은 그 죄를 책망하는 나단 선지자 앞 곧 하나님의 앞에서 눈물로 침상을 적실 정도로 회개했습니다. 그것이 시편 51편에 나오는 참회의 시라고 했죠.
그렇게 처절하게 참회하고 회개하는 다윗의 모습을 하나님께서 외면치 않았습니다. 요한 일서 1장 9절에서도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가 사도행전 3장 19절을 통해 그렇게 외친 일도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에서 이를 것이요.” 그 당시 초대교회가 태동될 수 있었던 이유도 이전의 어리석은 삶에서 돌이키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위대한 점도 바로 그런 점이죠. 자신의 죄를 질책하고 책망하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즉시 엎드려 회개하고 돌이킨 것 말입니다. 그만큼 다윗은 보혜사 성령님의 은혜를 덧입은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에서도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이다.” 바로 이런 점이 다윗의 위대한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 제국을 세우신 이유요, 그가 비록 죄 가운데 넘어졌지만 회개하고 돌이켰다는 점 말입니다. 그래서 그의 나라를 영원토록 빛나게 해 주신 것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을 통해 중요한 것 하나를 깨닫게 해 줍니다. 어제 살펴본 것처럼 죄는 민첩성을 가지고서 파고들고, 죄는 분명히 결실성을 맺고, 죄는 하나의 죄를 덮기 위해 또 다른 죄를 끌어오는 확산성을 가져온다고 했죠. 그러나 또 하나의 특성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바로 본문 10-12절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죄의 마지막 특성 하나 곧 죄의 후유증에 관한 말씀입니다. 다윗이 눈물로 침상을 적실 정도로 회개했지만, 그 죄에 대한 후유증이 남는다는 걸 일깨워주는 말씀입니다.
무슨 후유증입니까?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할 것이다’, 또 ‘네 아내를 빼앗길 것이고 그가 네 아내들과 동침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을 백주 대낮에 다 벌일 것이다, 너는 사람들 눈을 피해서 은밀하게 했을지 몰라도 나는 그 일들을 환한 대낮에 다 드러나게 할 것이다, 하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이 뒤에 가면 다윗의 집안이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됩니다. 자기 집안 식구들끼리 칼부림이 일어나죠. 자기 아들 ‘암논’이 배다른 여동생 ‘다말’을 범하게 되고, 아버지 다윗의 사랑을 독차지한 아들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켜 여러 형제들을 죽이는 형제의 난을 벌이고, 그리고 내친 김에 아버지 다윗까지 죽이고 왕권을 차지하겠다고 칼부림을 하는 게 그것이죠.
그 일로 다윗이 예루살렘 궁궐을 내 주고 도망치게 되는데, 그때 그의 아내이자 후궁들을 궁궐에 남겨 뒀는데, 압살롬이 백주 대낮에 그 후궁들 곧 다윗의 아내들을 다 범한 사건이 일어나게 되죠. 그 모든 일들이 벌건 대낮에 벌어진 일들입니다.
왜 그와 같은 일들을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예고하는 것일까요? 비록 다윗이 침상을 적실 정도로 회개했지만 다시는 그와 같은 똑같은 범하지 말도록 엄중히 경고하기 위한 차원이죠. 그것이 실은 우리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이기도 하죠. 죄의 민첩성과 죄의 확산성만 있고, 죄의 결실성과 후유증이 남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죄를 범하고 회개하면 끝난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본문 15-19절에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임신하여 낳은 아들을 하나님께서 치신 첫 번째 후유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아이가 살아 있을 동안에는 혹시라도 하나님께 매달리면 살아날지 몰라 다윗이 금식을 하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끝내 그 아이를 데려 가셨습니다. 그 사건을 떠올리며 다윗은 다시는 똑같은 죄를 범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그 일을 겪은 후에, 이제는 바른 삶을 결단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 와중에 밧세바와 함께 다시금 아들을 낳는데 그 아들이 바로 솔로몬입니다. 본문 24절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나단 선지자는 그 솔로몬을 ‘여디디아’로 명명하죠.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이란 뜻입니다. 다윗의 죄를 책망하고 그 아들이 죽는 후유증을 겪은 후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위로하시고 다시 격려하는 차원으로 그 아들을 주시고 사랑을 베풀어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솔로몬을 통해 다윗의 인생을 일깨우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죠.
그리고 그런 과정 속에서 요압이 랍바를 쳐서 점령했고, 마지막 정복의 관문을 다윗 왕에게 돌리는이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모든 과정을 회복의 기회로 삼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이 본문 26-31절까지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서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죄를 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후에는 진정한 회개와 분명한 돌이킴, 생활의 변화, 철저한 근신의 자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것이 곧 하나님의 여디디아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거듭나게 하시는 은혜를 회복하는 길이기 때문이죠.
*사랑하는 주님.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자족하지 못하고,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할 때 다윗이 범죄했습니다.
그런 다윗이 진정으로 거듭난 삶을 살도록 그 아들을 죽이시고, 다시금 솔로몬 곧 여디디아를 주셨습니다.
그 아들을 보면서 다윗도 하나님의 여디디아로 다시 태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연약함이 있지만, 주어진 삶에 자족하며 감사하게 하옵소서.
매일매일 하나님의 여디디아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바른 인생을 택하며 살게 하옵소서.
오늘도 성령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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