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자신의 백향목 궁궐 속에 살면서 하나님의 법궤를 모실만한 전을 지어 봉헌코자 했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뜻을 귀하게 받았지만, 그 아들 대에 성전을 짓게 하겠다고 하셨죠. 대신에 다윗의 시대에는 평안 가운데 이끌 것이고 가장 존귀한 자로 세워주시겠다고 약속하셨죠. 나단 선지자는 그와 같은 말씀을 직언했죠. 그때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순전히 받들었습니다. 자기 시대에 해야 할 바와 하지 말아야 할 바, 말씀을 받들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욕심내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안 다윗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들었던 것이죠.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다윗으로 하여금 주변국을 점령토록 해 주셨죠. 서쪽 블레셋, 북쪽 다메섹, 동쪽 모압과 에돔 등 이스라엘의 동서남북 경계선 넘어까지 모두 점령하여 속국들을 다스렸죠. 그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심이었죠. 다윗도 가는 곳마다 전쟁에서 승리할 때 그 모든 전리품을 하나님께 올려드렸죠.
오늘 본문은 그렇게 자기 시대에 하나님께서 평안함을 주실 때 한 일이 나옵니다. 사울 왕가의 집안 자손 곧 요나단의 아들이 있는지 살피는 모습이요, 그 아들을 후하게 대접하는 모습입니다. 본문 1절에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큰 은혜와 사랑을 받을 만큼 다른 사람에게 그 은혜와 사랑을 나누고자 한 것입니다. 그게 곧 사울의 집안 사람에게 맞추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궁극적인 이유가 있죠. 이전에 자신을 사랑해주고 자신을 챙겨준 요나단, 자신이 사울의 칼날을 피해 도피행각을 벌일 때 적극적으로 도와준 요나단과의 언약 때문이죠.
사무엘상 20장에 그 사실이 나옵니다. 요나단은 소년 하나를 데리고 들로 나가 에벤에셀 돌 틈에 숨어 있던 다윗 너머로 화살을 쐈죠. 그러면서 다윗에게 달아나도록 했죠. 그때 자기 소년은 궁으로 먼저 돌려보내고, 다윗과 남아 얼싸안고 둘이 울면서 최후 언약을 맺었죠. 그게 사무엘상 20장 42절에 기록돼 있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하니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다윗은 그때의 언약을 잊지 않고, 2-30년이 지난 지금 요나단의 아들에게 은총을 베풀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의 집에 종으로 있던 ‘시바’라는 사람이 나타나죠. 그가 다윗에게 와서 보고를 합니다. 사울의 손자 곧 요나단의 아들이 하나 있다고 말이죠. 그 아들의 이름이 ‘므비보셋’입니다. 사무엘하 4장 4절에 나옵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 다리 저는 아들 하나가 있었으니 이름은 므비보셋이라 전에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소식이 이스르엘에서 올 때에 그의 나이가 다섯 살이었는데 그 유모가 안고 도망할 때 급히 도망하다가 아이가 떨어져 절게 되었더라.”
므비보셋의 나이 다섯 살 때였죠. 그때 부친 요나단과 조부 사울 왕이 길보아산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비보를 듣게 되죠. 물론 그 소식은 므비보셋의 유모가 들었고, 그 때 어린 므비보셋을 보호하기 위해 그를 안고 도망쳤는데, 졸지에 므비보셋을 떨어뜨려 그때부터 절뚝발이가 된 것입니다. 그 후에 그 유모는 므비보셋이 왕손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요단강 동쪽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숨기면서 은둔생활을 하게 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시바라는 종이 므비보셋의 소식을 다윗 왕에게 고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시바가 어떻게 소개합니까? 본문 3절 마지막 부분을 보면 시바는 므비보셋의 이름을 밝히는 게 아니죠. 오히려 “다리 저는 자니이다.”하고 말합니다. 므비보셋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버림받은 존재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밝힌 것입니다. 바꿔 말해, 다윗 왕도 관심 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죠.
그렇다면 다윗은 그런 므비보셋을 어떻게 대합니까? 시바처럼 그의 존재감을 무시해 버립니까? 그렇지 않죠. 본문 6절에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그가 이르기를 보소서 당신의 종이니이다.” 시바는 므비보셋을 ‘다리 저는 자’라라고 불렀지만 다윗은 므비보셋의 이름을 친히 불러주고 있죠. 그만큼 다윗은 므비보셋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비참한 존재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똑같은 인격을 가진 존재로 대우한 것이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사울 왕이 살았던 당시에 소유했던 모든 밭을 주도록 명령하죠. 더욱이 므비보셋을 자기 식탁 곧 왕의 식탁에서 왕의 자식들과 함께 식사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줍니다. 그만큼 다윗은 므비보셋을 왕자 중 하나와 같은 신분으로 높인 거죠.
그러자 므비보셋이 다윗 왕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본문 8절에 “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니라” 므비보셋은 자신을 ‘죽은 개 같은 나’라고 말합니다.. 어찌하여 죽은 개 같은 나를 왕자의 한 한 사람으로 대우해 주시는 것입니까, 하고 감격하는 것이죠.
그런데 므비보셋이 그와 같은 은총을 덧입게 된 비결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알고 있죠? 므비보셋의 아버지 요나단 때문 아닙니까? 요나단이 아니었다면 므비보셋은 자기 말대로 평생 죽은 개 같은 존재로 은둔자의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 아버지 요나단 덕분에, 요나단이 다윗과 맺은 언약 때문에, 그런 은총을 덧입은 것이죠.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갈6:7)는 말씀을 성취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 은총을 덧입은 므비보셋의 입장은 어떻겠습니까? 죽은 개 같은 자신을 살려 왕자의 반열에 올려 준 다윗에게 얼마나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얼마나 다윗에게 충성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훗날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므비보셋을 ‘다리 저는 자’라고 소개했던 시바가 므비보셋을 모함해, 그 므비보셋이 ‘아비 즉 사울의 나라를 회복하려고 한다’고 모함한 일이 벌어졌죠. 그것은 시바가 예루살렘 궁을 벗어나 도망치는 다윗에게 약조를 받고자 한 계략이었죠. 므비보셋의 재산을 자신이 가로채기 위해서 말이죠. 그때 다윗은 아무 것도 모르고 시바의 말만 듣고 므비보셋이 역적의 중심에 선 줄 알고 그 재산을 시바에게 준다면서 약조해버리죠.
그런데 압살롬의 반란이 끝나 예루살렘으로 다윗이 돌아왔을 때 므비보셋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죠. 수염도 깎지 않고 옷도 빨지 않은 채 다윗을 애타게 기다렸노라고 말이죠. 그때서야 다윗은 그 모든 계략이 시바에게서 나온 줄 알고, 시바의 재산을 환수하려고 하죠. 그런데 므비보셋은 재산 때문에 다윗에게 충성한 게 아님을 증명코 그 모든 것을 사양하죠. 그래서 그런지 므비보셋의 아들 미가(삼하9:12)가 훗날 베냐민 지파의 지도자가 되어 다윗에게 충성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상과 같은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되는 성령님의 음성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예전에 므비보셋과 같은 영적 절름발이였다는 사실이죠. 우리는 본래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으니 말이죠. 그런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고, 주님의 성만찬을 나누는 식탁까지 베풀어주셨죠. 우리에게 그럴만한 자격이나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죠. 요나단과 다윗이 맺은 언약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의 언약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은혜를 진심으로 깨닫는 우리 자신이라면, 다윗을 향해 충성한 므비보셋처럼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때,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는 말씀처럼, 요나단이 심은 것을 그 아들이 받았고, 또 그 아들 대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게 되죠. 우리의 가정과 후손들에게도 동일한 은혜가 임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다윗이 요나단과의 언약으로 ‘다리 저는 자’ ‘죽은 개 같은’ 므비보셋의 신분을 높여주었습니다.
그 은혜와 사랑을 덧입은 자가 실은 우리 자신임을 고백합니다.
저희들도 주님의 은혜가 없었던들 ‘영적으로 다리는 저는 절름발이요’ ‘죽은 개 같은 자’일 뿐이었습니다.
그런 저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언약으로 하나님의 자녀를 삼아주심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이 주님나라를 위해 선한 것을 심고 뿌릴 수 있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의 자녀들과 후손들에게도 이와 같은 은총을 베풀어주시옵소서.
오늘도 천군 천사를 보내시사 당신의 사랑하는 권속과 가정과 자녀들을 영적인 울타리로 보호해주시고,
저희를 부르신 삶의 자리에서 만남의 복과 능력의 복을 베푸시사 하나님나라의 작은 건설자로 살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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