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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에스겔

모든 규례와 율례를 귀로 듣고(겔44:1-31)

by 권또또 2023.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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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에스겔 44장은 성소의 동쪽 문과 제사장에 관한 말씀입니다. 본문 1-3절입니다. “그가 나를 데리고 성소의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돌아오시니 그 문이 닫혔더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문은 닫고 다시 열지 못할지니 아무도 그리로 들어오지 못할 것은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그리로 들어왔음이라 그러므로 닫아 둘지니라 왕은 왕인 까닭에 안 길로 이 문 현관으로 들어와서 거기에 앉아서 나 여호와 앞에서 음식을 먹고 그 길로 나갈 것이니라.”

1-3절의 내용은 ‘성소의 동쪽 문은 영원히 닫아 두라.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동쪽 문으로 돌아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은 동쪽 문 안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다시 그 문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먼저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성소를 떠나지 않으시겠다, 곧 이스라엘에게서 떠나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아울러서 백성의 지도자인 왕의 권한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결코 당신의 백성들에게서 떠나시는 분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시죠. 에스겔서에서는 그것을 ‘여호와 삼마’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거기 계시니라’하는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이시죠. 그만큼 우리 하나님은 주님의 백성 된 우리에 대해 깊고 섬세한 관심과 여전한 애정을 갖고 계십니다.

 

신명기 31장 6절에서도 그렇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그 말씀 그대로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결국은 누가 하나님을 떠납니까?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떠날 때가 많죠. 우리가 하나님께 등을 보이고 하나님을 소외시킵니다. 식탁이 친밀한 교제의 자리이듯,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의 자리도, 그 말씀의 자리나 기도의 자리도 실은 내가 떠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피곤하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괴로운 일이 생길 때,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말씀이나 기도의 그 친밀한 자리를 떠날 때가 많죠. 더욱이 세상의 죄악에 속아서 우리 스스로 하나님과 단절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떠나지도, 우리를 소외시키지도 않죠.

 

본문 4-14절 말씀은 레위인의 직무유기와 박탈, 그리고 레위인에게 다시금 기회를 주시는 부분에 대한 말씀입니다. 특별히 5절 말씀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전심으로 주목하여 내가 네게 말하는 바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규례와 모든 율례를 귀로 듣고 또 성전의 입구와 성소의 출구를 전심으로 주목하고.”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 성전에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했음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영광 가운데서 전심으로 주목할 것을 당부하십니다. 여호와의 성전에 관한 모든 규례와 모든 법도에 대해서 말이죠. 그 중에서도 성전의 입구와 성소의 출구를 전심으로 주목하라고 하십니다. 성전의 입구와 성소의 출구를 주목하라는 게 무얼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비상구가 어딘지 잘 알아두라는 것이 아니라, 성소의 출입 규칙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존중하고 귀담아 듣고 깊이 새기라는 뜻입니다.

왜 그렇게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전심으로 주목하라는 것입니까? 왜 그렇게 성소의 출입 규칙을 명심하라는 것입니까? 이유인 즉 그 전에 성전의 책임을 맡았던 레위인들이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 전의 레위인들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무시한 채 자기들 멋대로 그릇 행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에스겔에게 다시금 강조하면서, 주목하라고, 새기라고, 명심하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 강조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한다는 것은 듣고 그대로 준행하는 걸 뜻합니다. 그 때에만 그 영혼이 살고, 내면이 만족을 얻으며, 치유와 회복의 인생을 살 수 있기 때문이죠. 바꿔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준행하라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의 행복을 위한 길이기 때문이죠.

결코 자기 생각이나 주장을 고집부릴 때에는 그 영혼이 바르게 살 수가 없죠. 하나님의 진리와 생명대로 살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영혼이 영생의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그가 죽음의 관문을 맞이할 때, 그에게 어떻게 다시 사는 은총을 덧입을 수 있겠습니까? 믿는 자들에게 죽음은 곧 천국으로 입성하는 관문인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자기 탐욕과 고집으로 사는 인생이 어떻게 그 영생의 관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에 우리 자신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다만 습관적으로 듣거나, 종교적인 행위로 듣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 생각을 두고, 그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며, 잠잠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어린 사무엘도 그래서 그렇게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하고 말입니다. 그것은 종교적인 행위로서의 들음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께 인격적으로 듣는 자세입니다. 그런 자의 심령 속에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 말씀하시고, 진리와 생명의 길을 열어주시는 것이죠.

지금 레위인들 곧 제사장들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당신의 율례와 법도대로 준행하고, 성전에 출입하여 제사를 드릴 때에도 그 법도대로 준행하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너희들이 살 길이라고 하는 것이죠.

 

본문 15-31절은 레위 지파 사독 가문에, 제사장의 직무를 맡기시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15절 말씀이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 행하여 나를 떠날 때에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내 성소의 직분을 지켰은즉 그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되 내 앞에 서서 기름과 피를 내게 드릴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를테면 ‘이스라엘 족속이 나를 떠나 그릇 행할 때에도 레위 지파 사독 가문의 사람들은 내 성소에서 직분을 지켰다. 그러기에 이제 내가 그들에게 제사의 직무를 맡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들어올 때에 입어야 할 베옷, 머리털에 관한 부분, 포도주는 마시지 말도록 할 것, 과부나 이혼한 여인에게는 결혼하지 말 것, 또 재판에 관한 부분, 죽은 시체에 대한 접촉 문제, 그리고 각종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먹는 부분에 관한 내용이 이어지고 있죠.

왜 그와 같이 레위인들을 위한 그 구별법을 두시는 것입니까? 본문 28절에 그들에게는 기업이 있으리니 내가 곧 그 기업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그들에게 산업을 주지 말라 내가 그 산업이 됨이라.” 이른바 그들에게 기업 곧 일터와 생업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들에게 구별법을 두시는 것이죠. 그래서 그들의 먹을 것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로 드리는 것들을 먹도록 했고, 특별히 30절에서도 또 각종 처음 익은 열매와 너희 모든 예물 중에 각종 거제 제물을 다 제사장에게 돌리고 너희가 또 첫 밀가루를 제사장에게 주어 그들에게 네 집에 복이 내리도록 하게 하라.” 첫 소산과 첫 밀가루와 거제물을 레위 제사장에게 주도록 한 이유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기업, 하나님의 제사와 관련된 일을 하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제사장들에게 주면, 그 제사장들이 너희들에 집에 복을 빌 것이고, 그 복이 임하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상과 같은 말씀은 결국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믿음에는 지켜야 할 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제사장들은 제사장들로서, 또 이스라엘 백성들은 백성들로서, 하나님의 율례아 법도를 지켜야 할 도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 도를 지킴으로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세상 한 복판에서 진리와 생명의 삶으로 영생의 도를 지켜나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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