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새벽묵상DewSermon/에스겔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에 이르러(겔41:1-26)

by 권또또 2023. 6. 16.
728x90
반응형

사람은 자식의 손에 가시가 하나만 박혀도 가슴이 철커덩 내려앉는 법이죠. 더욱이 나라가 조금만 흔들려도 낙담이 됩니다. 북한이 미사일 한 방만 쏴도 흔들리는 이유가 그것이죠. 그런데 나라가 완전 멸망당하고, 자식과 부모가 생이별을 하고, 전쟁통에 포로로 끌려가는 상황이면 어떻겠습니까? 그 심정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겠죠.

그런데 그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바벨론 땅에 포로로 끌려 온 지 25년 째 되던 해, 곧 남왕국 유다가 멸망당하고 예루살렘 성읍이 무너지고, 성전이 불타버린 지 14년째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어제 읽은 에스겔서 40장 1절의 말씀이었죠.

에스겔이나 다른 포로자들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저 잿빛 하늘이 무겁고 버거울 뿐입니다. 지쳤고 고단하며, 징글징글 할 뿐입니다. 하루하루 소망 없는 나날을 보내야 하는데, 그런 하나님의 백성들의 상태가 조금이라도 이해가 되십니까?

그런 상황이라면 과연 예루살렘 백성들은 어떤 상태에 처해 있겠습니까? 어쩌면 자신들의 신앙에 대한 회의감이 들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자신들이 못났고, 철부지 신앙인들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자신들은 신앙공동체가 아니었느냐 하면서 말입니다.

사실 그들에게 신앙의 기본이 되는 것은 ‘성전'이었습니다. 열왕기상 9장 3절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기도와 네가 내 앞에서 간구한 바를 내가 들었은즉 나는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 이 말씀은 성전을 건축한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 때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언약입니다. 이른바 성전 안에 하나님께서 영원히 계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기도에 친히 응답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잘못을 범했을지라도 성전에 나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들어주시고 회복의 은총을 베풀어주시겠다고 성전 봉헌식 때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약속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굳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생각이 굳어졌습니까? 자신들은 그 어떤 잘못을 해서 결코 성전은 무너지지 않는다, 하는 생각들이 팽배해졌습니다. 심지어 자신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괘락을 좇아 이방 문화에 도취된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당신의 성전을 무너뜨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품고 있던 성전사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성전은 파괴되었습니다. 그래서 에스겔서 9-11장을 통해 선포하게 하신 메시지가 무엇이었습니까? 너희들의 우상숭배와 백성들 사이에 행한 악행으로 인해 너희 예루살렘 성읍은 무너질 것이고, 너희들이 떠받들고 있던 그 예루살렘 성전도 무너질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그 성전에 임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포하게 하신 그대로 예루살렘 성읍도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도 바벨론 군대에 의해 다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성읍도 그 성전도 회복이 된다고 선포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는 환상 가운데 에스겔을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 그 성전을 보여주셨는데, 성전의 외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물로, 성전의 내부에 관한 언급 그리고 제단과 성전의 현관에 대한 묘사까지 구체적으로 언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두께와 수치까지도 정확하게 그려주고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에스겔이 자로 잰 것 같지만, 그만큼 실제적이고 세밀한 성전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게 하나 있다고 했습니다. 에스겔서 40장부터 마지막 48장까지 보여주고 있는 성전은 인간의 손으로 지은 성전이 아니라는 점 말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지어놓으신 그 성전을 에스겔을 환상 중에 데리고 가셔서 보게 하신 성전입니다.

그래서 일부 성서학자들은 에스겔이 환상 중에 보게 된 성전은 아마도 이스라엘의 제3성전이 지어지고, 그 다음에 연결되는 천년왕국에서 보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의 성전’이 아니겠는가, 하고 추정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고린도전서 3장 16절의 말씀이라고 했죠.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곧 우리 자신이 매일매일 성전된 자로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죠. 그래야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께서 지어놓으신 그 성전안에 입성할 수 있기 때문이죠.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07032197

 

야긴과 보아스 - YES24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이 책에는 사무엘서와 열왕기

www.yes24.com

오늘 읽은 에스겔서 41장은 1-4절까지 ‘가장 거룩한 곳’ 곧 지성소로 들어가는 벽과 문에 관한 설명을 해 주고 있고, 5-11절까지는 성전의 사이드 방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고, 12절에서는 성전의 바깥 건물에 대해서, 13-15절까지는 성전의 열린 공간에 대한 길이를 보여주고 있고, 16-26절까지는 성전의 안쪽 가구들에 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모두가 건축과 관련된 설계도와 평면도를 보여주는 말씀이라고, 그 입체적인 부분은 그림으로 보면서 설명을 해야만 합니다. 물론 설계도와 평면도를 입수할 수는 있지만, 제가 거기까지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설명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왜 이와 같인 장황하리만큼 구체적인 식양으로 설명해주고 있는가, 하는 점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장황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것일까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죠. 지루하리만큼 자세하게도 설계도와 평면도를 보여주고 있는 이유는 바로 ‘소망’입니다.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이렇게까지 구체적이고도 장황한 성전의 설계도와 평면도를 보여주고 있지만, 이것은 인간의 손으로 지은 성전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어 놓으신 새 예루살렘과 새 땅의 성전, 곧 천년왕국의 입성 시에 보여주실 성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이죠.

그렇다면 왜 이 내용을 보여주시는 것입니까? 1차적으로는 지금 포로로 끌려가 있는 유대 백성들에게 환상 가운데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그 성전을 통해 포로귀환은 물론이고 무너진 성전을 재건할 수 있는 소망을 불어넣어주고자 하심이죠.

그리고 2차적으로는 이 에스겔서를 읽고 있는 우리 자신을 향해 이 땅의 건물로서의 성전보다도 참된 성전된 몸으로서, 매일 매일 주님의 임재를 모셔들이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고, 그런 자들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마주하게 될 천년왕국의 성전에 입성하는 자가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의 삶이 포로로 끌려간 예루살렘 백성들처럼 아무리 고달프고 힘든 나날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회복케 하시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실 새 성전에 입성하는 소망을 품고 살라는 것이죠. 나는 너희를 위해 지금도 그와 같은 성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 말입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 신앙생활하는 게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절대로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새 하늘과 새 땅 곧 천국을 바라보며 살라고 하시는 메시지입니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17314628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YES24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

www.yes24.com

그래서 오늘 본문을 대하다 보면, 미우라 아야코 여사의 ‘빛 속에서’라는 한 토막 글이 떠오릅니다. “50을 휠씬 넘은 그 환자는 눈도 못 보고, 혼자서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돌아눕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손가락도 마비되어 있어서 점자도 읽을 수 없고, 오직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다만 호흡뿐이었다. 그런데 그 분의 얼굴은 빛나고 기쁨에 넘쳐있었다. 이 광채가 나는 얼굴, 평화로운 모습은 그 무슨 힘에설까? 그분의 머리맡에는 점자로 된 성서가 한 권 놓여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그 힘의 원천이었다. 그분은 손끝으로 점자성서를 읽을 수 없으니까. 자신의 혀로 성서를 거듭거듭 읽는다는 것이다. 아니 하나님의 말씀을 혀로 빨아먹는다는 것이 그분께 대한 적절한 표현이리라.”

지금 이스라엘 공동체도 무기력한 환자와 같죠. 스스로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해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는 절망스러운 마비 환자처럼 말이죠.

그런 이스라엘을 향해 지금 하나님께서 손수 점자책을 만들고 계시는 모습이죠. 새성전에 대한 도면도 바로 그런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점자책과 같은 것이죠. 중요한 것은 우리를 향해서도 그와 같은 점자책을 만들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거 읽고 견디어 내거라. 이걸 혀로 빨아먹고 용기를 얻거라. 나는 항상 너희들과 있단다.”하고 말입니다.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