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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성화)우리가 죽으면 신령한 몸을 입게 됩니다.그렇다면 살아 있는 몸과 죽음 이후의 부활의 몸은 같은 몸일까요 다른 몸일까요?그에 대해 주님께서 몇 가지 단서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부활하셨습니다.부활하신 주님께서 마가의 다락방에 있는 제자들을 찾아갔죠.요한복음 20장에 보면 두 번을 찾아가셨는데 두 번 다 제자들이 문을 닫고 있었습니다.그때 주님은 그 문을 초월하여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또 누가복음 24장을 보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제자들은 분명히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인 줄 몰랐습니다. 그만큼 신령한 몸은 육체를 지닌 사람에게 보일 수도 있고 안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 형체가 누구인..
(설교열기)(예화)게으름뱅이 배추벌레가 여행을 떠났습니다.누런빛 몸뚱이를 꿈틀꿈틀거리며 아주 긴 여행을 떠났습니다.긴 여행이라고 하니까 여러분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죠.그렇다고 버스를 타고 가는 것도 아니고 기차를 타고 가는 것도 비행기를 타고 가는 여행은 더욱 아닙니다.마디마디 이어진 몸뚱이를 움츠렸다 폈다 하면서 넓은 신작로를 건너야 하는 여행길이죠. 가는 곳은 저 길건 너 숲속입니다.오래지 않아 추운 겨울이 올 것이기에 나무 위에다 누에집을 지으려는 것입니다.하지만 여행길은 그리 쉽지 않았죠.조심성 없는 어린이들의 발꿈치, 쉴새없이 오가는 짐차들의 바퀴. 그런 것들에게 밟히거나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되었죠.하지만 길 건너 예쁘게 피어 있는 노란 들국화를 보니 힘이 솟아났어요. 다섯 밤이 지나..
(설교열기)(예화)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는 전 세계에 가장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이야기입니다.나라마다 등장인물이나 배경은 약간씩 다르지만 이야기의 맥락은 거의 비슷합니다. 어떤 신학자는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에 대한 이야기가 뚜렷한 전달수단이 없던 옛날에 입에서 입으로 전파된 게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이지 않나 보고 있습니다. 하늘의 선녀들이 깊은 산 속에 있는 폭포에 내려와 목욕을 합니다.나무꾼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덫에 걸려 죽어가는 노루를 구해준 댓가로 노루가 알려준 대로 천사들을 발견하죠.그리고는 천사의 날개옷 하나를 감춥니다. 선녀는 하늘로 귀환하지 못한 채 결국 나무꾼과 결혼해 자녀까지 낳고 삽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으로부터 날개옷을 돌려받은 선녀는 홀로 하늘로 귀향해 버리죠.나무꾼은 노루..
(설교열기)(논지)우리는 2천년 전의 기독교 역사를 잘 알고 있습니다.그들은 네로 황제의 핍박 속에서 다들 고문 당하고 죽어간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번 만 주님을 모른다고 배교하고 부인하면 살려 줄 텐데 그들 모두는 죽음을 맞했습니다.누군가는 콜롯세움의 원형경기장 안에서 사자의 밥이 되었고 누군가는 로마의 어둠을 밝히는 화형불로 사라졌습니다. (깨달음)왜 그들이 사자의 밥이 되고 화형불로 사라지는 걸 기꺼이 받아들였습니까?죽음 너머에 영원한 부활이 있을 것을 소망했기 때문이죠.그 소망은 그들 자신에게서 나온 게 아니라 그전부터 여인들과 열두 사도와 수많은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그 사실을 그들이 믿고 체험했기 때문에 원형경기장의 사자밥에 되는 것도 화형불로 사라지는 것도 당당하..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입니다. 1-11절 사이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임을 이야기하고 있죠. 부활하신 예수께서 베드로를 비롯한 12 제자들에게, 500여 형제에게, 예수님의 혈육 야고보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모든 사도들에게, 심지어 예수님을 핍박하던 바울 자신에게까지도 임하여 주셨음을 이야기했죠. 그래서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1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은 것은 과거형으로 기록돼 있지만 전파한다는 것은 현재형이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성경 말씀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세계 곳곳에서 현재형으로 진행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것 역시 언제나 현재형으로 역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에 대한 사도 바울의 답변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이전과 달리,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음에도 바울이 부활의 내용을 편지로 썼다고 했죠. 이는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 부활신앙이 없는 사람들이 있었고, 부활의 참신앙을 모른채 교회내에 잡다한 것들로 다투고 있었기 때문에 바르게 세워주고자 함이었다고 했습니다. 본문 3절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여기에서 ‘내가 받았다’는 것은 바울이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것이고, 또 ‘전했다는 거’ 역시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복음의 시발점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복음을 받게 되면 ‘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살아 있기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