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site-verification=bWsZs7W0_gSPuMoDXujZISVmSBQHlpw3IxoqFPAwWOg 살려주는 영(고전15:45-49) google-site-verification=bWsZs7W0_gSPuMoDXujZISVmSBQHlpw3IxoqFPAwWOg
 

살려주는 영(고전15:45-49)

반응형

살려주는 영.hwp
0.17MB

 

 

(설교열기)(예화)엊그제 아는 목사님의 집을 청소하고 옥상에 있는 흙을 마대 자루에 담아 트럭에 싣고 길 옆에 펐습니다.

그 집은 시어머니가 장사해서 산 집인데 그걸 자식에게 물려준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 시어머니에게는 세 남매의 자식이 있었는데 딸 둘과 아들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첫째 딸에게는 많은 재산을 상속해줬는데 막내 아들에게는 상속을 한 게 없었습니다.

 

이제 그 분이 늙어 치매가 왔는데 그렇게 죽으면 그 많은 재산을 또 나눠야 하고 그렇게 되면 막내 아들에게는 돌아갈 몫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 막내 아들의 아내가 지혜롭게 시어머니를 모시고 가서 공증을 받고 그 집이라도 상속받아 놓게 한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일로 큰 딸이 막내 아들과 대화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뭐랄까요?

있는 사람이 더 성내고 화를 내는 꼴이지 않나 싶었습니다.

만약 가진 게 없었다면 서로 우애하고 화목하게 지냈을텐데, 더 많이 못 가져서 그렇지 않나 싶은 것이죠.

그래도 막내 아들은 어떻게든 누나와 화해하고 싶고 좋게 지내고 싶은데 좀체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깨달음)어떻습니까?

무엇을 깨닫게 하는 이야기입니까?

살아 있을 때 그리스도인의 가치를 지니며 살아가는 관점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죠.

정말로 구원받은 자요 부활을 믿는 자라면 하늘의 것을 구하며 살아가는 자여야 하지 않냐는 것이죠.

이 땅의 것보다 위의 것, 곧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화평을 삶을 살아가는 자가 부활의 날에 기쁨으로 부활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이라고 했습니다.

부활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이 명확한 믿음을 일깨워주기 위해 쓴 내용이죠.

 

지난 시간에 살펴 본 바는 나팔꽃의 이치였습니다.

나팔꽃 씨앗이 땅에 떨어져 싹이 나면 씨앗과는 전혀 다른 꽃이 핀다고 말이죠.

그것이 육체로 죽은 우리 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화로운 몸으로 우리가 부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파종한 씨앗이 새로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그 씨앗들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만 가능하듯이 인간의 육체가 부활하는 것도 죽음의 과정을 필히 거쳐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바울은 현재의 육체는 썩고 욕되고 약한 것이지만 부활 후의 육체는 영원히 썩지 아니하며 영광스럽고 강하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런 차이를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해서 논리적으로 설명해줬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근본적으로 육과 땅에 속한 자이기 때문에 그 후손인 우리가 썩어질 육에 속해 있다는 것이죠.

그런 것처럼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영과 하늘에 속한 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도 장차 신령한 몸으로 변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흙에 속한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모든 사람은 죽어 없어질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둘째 아담 곧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는 죽기 이전의 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몸의 형체로 변화된다는 것이었죠.

 

(본문)오늘 본문 45-46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원해)여기에 ‘생령이 되었다’할 때 ‘생령’은 히브리어로 ‘네페쉬 하야’로 ‘살 수 있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살 수 있는 존재’ 곧 ‘생명 있는 존재’였다는 것이죠.

더욱이 아담에게도 ‘영’이란 용어가 들어가고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영’이 들어가 있습니다.

동일한 것 같지만 첫 사람 아담의 영은 ‘프쉬케’(ψυχή)이고 그리스도를 언급할 때의 영은 ‘프뉴마’(πνεῦμα)입니다.

 

(깨달음)무엇을 개닫게 됩니까?

바울은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 차이를 뚜렷하게 제시한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단순히 살아 있는 존재에 불과하지만 그리스도는 종말의 때에 ‘생명을 주시는 영’이라는 것입니다.

‘살려주는 영’이란 영원한 생명을 주는 존재란 뜻으로 구약의 메시야 사상을 반영한 것입니다.

메시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먼저는 육의 사람 아담이 왔고 후에 신령한 사람인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신령한 사람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때문이죠.

 

(본문2)본문 47-49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원해)여기에서도 바울은 대조 형식을 취합니다.

첫 사람 아담은 땅에서 났고 둘째 사람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나셨다고 말입니다.

여기에 강조되는 단어가 ‘속한’이란 단어인데 헬라어로 ‘에크’(ἐκ)인데 ‘-로부터’ ‘-에 의해’라는 뜻입니다.

그만큼 첫 사람 아담은 흙으로부터 흙에 의해 태어난 자요 둘째 사람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로부터 하늘에 의해 나신 분으로 분명하게 대조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입다’는 헬라어 ‘포레오’(φορέω)는 ‘옷을 입다’ ‘의복을 입다’ 할 때 쓰이는 단어입니다.

아담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을 수 밖에 없고 예수님은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을 수 밖에 없는 존재론적인 차이가 있다는 뜻입니다.

 

(깨달음)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나셨다는 이 구절을 이용한 초대교회 영지주의자들이 가현설(假現說, Docetism)을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출생한 게 아니라 하늘에서 유래한 몸으로 옷 입혀졌다는 교리입니다.

그들은 그만큼 그리스도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을 부정하고자 그 논리를 펼친 것입니다.

 

만약 그들의 논리에 빠져들면 어떤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말구유통에 태어나셔서 울고 또 눈물 흘리고 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 겪은 모든 고통과 괴로움이 다 거짓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대속의 죽음도 거짓이 되고 마는 것이죠.

예수님은 완전한 인성과 완전한 신성을 동시에 지닌 분임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원성)요한복음 3장 13절에서도 아주 명확하게 밝혀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이 하늘에서 오신 분이기에 하늘로 올라가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오신 분이 아니라면 어찌 부활승천하여 하늘 보좌에 올라가실 수 있겠습니까?

바울도 요한과 같은 주장을 지금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적용)그래서 우리도 흙에 속한 자로 끝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공동묘지에서 끝날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하늘에 속한 자 곧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하심으로 인해 우리도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덧입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지금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겠습니까?

썩어질 육체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게 될 영원한 나라에 입성하게 된다면 지금부터 하늘에 소망을 두며 살라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에서도 그렇게 말씀하죠.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부활의 은혜를 내다보며 살게 하셔서 하늘의 것을 구하며 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어머니가 남긴 재산을 자식들끼리 상속받는 것은 좋지만 그것으로 인해 다투고 말도 없이 살아간다면 그것이 부활을 바라보는 자들의 모습이겠느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도 십자가에 대속의 은혜를 베푸신 것도 죄로 물든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화평을 이루기 위함이지 않았더냐?”

바울이 지금 땅에 속한 아담과 하늘에 속한 예수 그리스도를 대비해서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이더냐?”

이 땅에 탐심과 같은 우상숭배의 마음을 버리고 하늘에 속한 자로서 위의 것을 구하며 살도록 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를 위해 바울도 매를 맞고 파선당하고 굶주리고 죽을 위기를 수차례 겪었어도 기쁨으로 감당한 것 아니었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도 땅에 속한 자로 태어났어도 하늘에 속한 자로 부활하는 걸 진정으로 믿는다면 하늘의 가치를 마음속에 두고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이 땅에 관계 맺는 사람 사이에 막힌 것이 없이 화평을 이루는 삶 말이다.”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과 같은 우상숭배의 마음을 비워내고 영원한 생명의 부활을 바라보며 사는 것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비움의 삶을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말구유통에 오셨고 그 비움을 통해 영원한 부활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 계시지 않느냐?”

비워야만 화평할 수 있고 비워야만 하늘에 속한 자로 살 수 있고 비워야만 영원한 생명의 부활에 참여할 수 있지 않겠느냐?”

 

(찬양)내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 나의 말에 주가 주신진리로 나의 눈에 주의 눈물 채워주소서

내입술에 찬양의 향기가 두손에는 주를 향한 섬김이 나의 삶에 주의 흔적 남게하소서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하리 십자가의 길을 걷는자에게 순교자의 삶의 사는이에게

조롱하는 소리와 세상 유혹 속에도 주의 순결한 신부가 되리라 내생명 주님께 드리리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 속한 자처럼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자들입니다.

하지만 하늘에 속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우리도 하늘의 속한 이의 형상을 덧입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죽으면 흙에 묻힐 육신에 불과하지만 부활의 날에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자들이라면 이 땅에 욕심과 탐욕과 같은 우상숭배의 마음을 비워내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자들에게 우리 주님은 하늘에 속한 자로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는 은혜를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728x90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