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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오늘 점심 무렵에 목사님 두 분과 함께 밥을 먹었습니다.
장신순 목사님이 박성훈 목사님과 저를 초청해 대접한 식사자리였죠.
교회에서 함께 밥을 먹으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대부분 성경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오늘은 믿음과 죽음과 천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때 박성훈 목사님이 암태면 오상리에 있는 오상교회에서 목회한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그 당시 오상교회에서 14년간 사역했는데 천국에 대해 확실한 믿음을 간직한 장로님에 대해 이야기를 해 줬습니다.
그 장로님의 이름이 손옥기 장로님이었는데 그분은 간으로 죽을 뻔했는데 하나님께서 살려주신 확실한 체험을 지닌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장로님이 한 번은 이제 곧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박성훈 목사님을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고 하죠.
“목사님. 제가 이제 곧 죽을 것 같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실 것만 같아요.”
“장로님 아니예요.”
“그런데요 목사님.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시면 제가 떳떳하게 천국에 갈 수 있을지 너무나 걱정이 됐어요.”
“그래요?”
“그래서 제가 여태껏 하나님께 속인 십일조나 헌금이 있지 않나 싶어 몽땅 모았어요.”
“아이쿠 장로님.”
“이것은 제 아내 모르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니 이거라도 드리고 마음 편하게 천국에 가야 하나님께서 받아주실 것 같아요.”
(깨달음)그 목사님은 그때 하나님께 드리지 못한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모아서 하나님께 드리는 그 장로님을 보고 너무나고 감동을 받아 울고 말았다고 합니다.
실은 시골 교회에서 목사님 사례비를 드려야 하는데 어떨 때는 부족한 것을 알고 그 장로님이 권사님 모르게 50만원을 채워서 사례비를 드렸다고 하죠.
왜 그 권사님 모르게 죽기 직전에 그 많은 헌금을 드렸는가, 하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그 권사님은 믿음이 작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아직은 용납하지 못할 때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천국에 대한 확실한 체험과 간증이 있기 때문에 그 장로님은 죽음을 앞두고 하나님께 진실되게 바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었기 때문에 목회자의 사례비도 손수 감당할 때가 많았던 것이고요.
물론 그때 죽을 줄 알았던 그 장로님은 그 뒤로도 10년 넘게 교회를 잘 섬기다가 천국에 가셨다고 합니다.
(예화2)박성훈 목사님의 아버님도 실은 목사님인데 그 아버지 목사님이 암태 도창교회를 섬기고 있을 때 부흥회를 했다고 합니다.
그때 부흥강사가 성도들의 헌금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주는데 양미녀 집사님이란 분이 ‘뱀십일조’라고 봉투에 써서 헌금을 드렸다고 하죠.
부흥강사는 그 봉투를 읽으면서 무슨 뱀 십일조냐며 사탄의 십일조냐겨 양미녀 집사님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봤다고 하죠.
그러자 양미녀 집사님은 그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평소에도 하나님께 드릴 헌금이 없어서 땅굴을 뒤지면서 뱀도 잡고 구렁이도 잡는데 그날도 도창리 뒷 산 소나무 위에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게 보였다는 겁니다.
그래서 남자들도 두려워하는 뱀 잡는 것을 그 분은 중년 여성이었지만 당당하게 그 나무에 올라가 뱀의 메가지를 잡고 쭉쭉 훑어서 힘을 뺀 다음에 자기 팔뚝에 칭칭 감았다고 하죠.
그리고는 암태 중부에 있는 뱀 사는 가가에 들러 30만원을 받아서 그 중에 십일조로 3만원을 드렸다는 겁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전의 일이니까 오늘날로 치면 천만원 정도 하는 뱀 값이었고 100만원을 뱀 십일조로 드린 것이었습니다.
(깨달음)어떻습니까?
뱀 십일조가 흉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하나님께 드릴 게 없어서 뱀이라도 잡아서 드린 그 헌금의 손길을 하나님께 귀하게 받지 않았겠습니까?
도창교회에는 특이한 박박쥐 집사님도 있었고 양처녀 집사님도 있었고 양미녀 집사님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분들 모두가 형편이 여의치 않았지만 천국과 지옥의 확신을 갖고 하나님께 충성스럽게 헌신한 분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박성훈 목사님은 어느 교회를 가든 어느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든 그 분들의 간증을 빼놓지 않고 한다는 것입니다.
(적용)우리도 그런 믿음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천국와 지옥의 확신을 갖고 살아가는 믿음 말입니다.
내가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 살 수 있게 해 주신 게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자라면 부활신앙을 바라보며 내 모든 소유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 말입니다.
하나님은 동산의 모든 나무의 실과는 다 따먹을 수 있도록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지만 동산 중앙의 선악과만은 따먹
지 말도록 하셨습니다.
그것 역시 십일조의 관점처럼 나머지 모든 것은 우리가 임의대로 할 수 있지만 십일조만큼은 하나님의 것임을 구별하여 드리는 그 중심을 갖고 살도록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었죠.
그런 구분을 없애면서 살아간다면 어찌 하나님의 자녀답게 천국을 소망하며 살 수 있는 신앙인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전자책]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예스24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오래전 신영복 교수의 책을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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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이라고 했습니다.
부활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이 명확한 믿음을 일깨워주기 위해 쓴 편지 내용이죠.
바울은 부활의 이치를 씨앗과 그 씨앗이 땅에 떨어져 씨앗과 다른 꽃으로 피어난 예로 설명했습니다.
이른바 나팔꽃 씨앗도 땅에 떨어져 싹이 나면 씨앗과는 전혀 다른 꽃으로 피어오르는 것처럼 말이죠.
우리가 육체의 몸으로 죽고 난 뒤에 부활할때는 전혀 다른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다는 것과 같다는 이치겠죠. 그래서 바울은 현재의 육체는 썩고 욕되고 약한 것이지만 부활 후의 육체는 썩지 아니하며 영광스럽고 강하다고 한 것이죠.
(깨달음)바울은 그런 차이를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해서 논리적으로 설명해줬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근본적으로 육과 땅에 속한 자이기 때문에 그 후손인 우리가 썩어질 육에 속해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영과 하늘에 속한 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도 장차 신령한 몸으로 변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생령이 되었다’할 때 ‘생령’은 히브리어로 ‘네페쉬 하야’로 ‘살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그렇게 생명이 있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영’이 들어가 있는데 그때의 영은 아담에게 적용된 ‘프쉬케’(ψυχή)가 아니고 ‘프뉴마’(πνεῦμα)였습니다.
왜 그런 단어를 쓴 것입니까?
바울은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 차이를 뚜렷하게 제시하고자 한 것이죠.
첫 사람 아담은 단순히 살아 있는 존재에 불과하지만 그리스도는 종말의 때에 ‘생명을 주시는 영’이라고 말이죠.
그래서 첫 사람 아담은 땅에서 났고 둘째 사람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나셨다고 한 것이죠.
(적용)그래서 우리도 흙에 속한 자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공급받는 자로 살 것인지 생각해 봐야하는 것이죠.
우리가 흙에 속한 자로 끝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공동묘지에서 끝날 존재들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하늘에 속한 자 곧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하심으로 인해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덧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확고히 하는 자는 어떤 죽음의 환경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고 떳떳하게 천국을 맞이하며 살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본문)오늘 본문 50-52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원해)혈과 육은 살과 피를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살과 피는 지상에서 살때만 필요하기 때문이요 하나님 나라에 가서는 더 이상 살과 피가 필요 없는 것이죠.
더욱이 썩는 것도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이어받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비밀’을 말해준다고 하는데 ‘비밀’로 번역된 헬라어는 ‘유스테리온’(μυστήριον)입니다.
신약성경에 27번 사용된 단어인데 ‘감춰진 것’ ‘비밀’을 뜻하는 말입니다(마13:11, 막4:11,눅8:10).
그런데 바울은 종말의 날에 그토록 감춰진 비밀이 다 드러난다고 하는데, 그 비밀이 무엇입니까?
마지막 나팔을 부는 그 시간에 순식간에 우리의 몸이 변화되는 것이죠.
여기에 ‘홀연히’라는 헬라어 ‘이도우’(ἰδού)는 ‘보라’(behold, see)는 뜻인데 52절 전체를 수식하는 말입니다.
이른바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된다는 것 말입니다.
그렇기에 죽은 자들 곧 이미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을 입고 다시 부활한다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우리도 곧 지금껏 죽지 않은 바울 자신과 고린도교회 성도들 조차도 주님의 재림과 더불어 신령한 몸을 덧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깨달음)중요한 것은 바울은 자기 살아 생전에 주님의 재림이 임할 것을 믿었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종말신앙이 있었기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유무상통의 실제적인 삶을 실현하며 살았던 것이죠.
재물이 많은 자는 많이 또 적게 가진 자는 적게, 모두가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청지기로 알고 자기 믿음의 분량껏 하나님께 드리며 서로 나누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 종말 신앙이 확실했기 때문에 바울도 1차와 2차와 3차 전도여행을 다녔고 로마의 가택연금상태와 마지막 지하 마메르틴 감옥에 갇혀 참수형 당할 때도 기꺼이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죠.
(적용)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도 그런 종말 신앙을 갖고 살아야 바울처럼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그리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처럼 내 것을 내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청지기 답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종말 신앙을 지닌 신앙인은 언제 어디서든지 주님의 재림에 깨어 있을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께서 맡기신 재물도 기꺼이 드리며 살 수 있는 것이죠.
심지어 자기 몸까지 바울처럼 드리며 살 수 있는 것이고요.
[전자책]귀먹은 하나님 응답하소서 - 예스24
성경으로 문화 읽기를 접목한 세 번째 책이다. 첫 책은 출애굽기로부터 시작해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까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두 번째 책은 여호수아로부터 시작해 사사기, 룻기, 사무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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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2)오늘 본문 53-54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원해)여기에 ‘이 썩을 것’과 또 ‘이 썩을 것’ 두 개의 ‘이 썩을 것’이 나옵니다.
‘이 썩을 것’은 흙에 묻힐 육신의 몸을 말하는 것이고 ‘썩지 아니할 것’은 신령한 몸을 말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지금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놓고 이 문장을 놓고 설교를 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이 썩을 육신’은 썩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된다는 것을 강조했겠죠.
왜냐하면 주님의 재림과 더불어 썩지 아니할 몸이 사망을 삼키고 이길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원성)바울은 지금 이사야 25장 8절을 인용해서 말한 것입니다.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깨달음)누가 사망을 영원히 멸한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사망을 멸하시고 모든 얼굴의 눈물을 씻기시고 자기 자녀들의 수치를 제할 것이라고 약속한 말씀입니다.
그만큼 이 땅에서 겪는 일들이 수고와 슬픔뿐이지만 재림의 날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의 눈물과 고통을 씻겨주시고 사망을 멸하사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어주신다는 뜻이죠.
이 사실을 믿는 자들은 이 땅에서 겪는 수고와 슬픔도 능히 이겨내며 살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사실을 믿는 자들은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확신하며 사는 자들이요, 그런 자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청지기답게 살 수 있는 것이죠.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부활신앙으로 확실한 영생을 소망하며 사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암태오상교회 손옥기 장로님이 죽음에서 살려주신 하나님의 체험이 있었기에 마지막 죽음을 앞에 뒀다고 생각할때도 하나님께 숨긴 것 같은 십일조와 헌금을 모두 드리며 천국에 가고자 한 것 아니었겠느냐?”
“양미녀 집사님도 하나님의 은혜에 드릴 헌금이 없어 구렁이를 잡아서 뱀십일조를 드렸을 때 그것조차도 하나님께서는 기뻐받으셨지 않겠느냐?”
“지금도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땅의 것보다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고자 하지 않겠느냐?”
“그래서 바울도 부활신앙으로 무장돼 있지 않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 썩을 것’과 ‘썩지 아니할 것’으로 구별해서 일깨워주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
“부활 전의 이 썩을 몸은 흙과 함께 썩을 몸이지만 부활 이후의 몸은 썩지 아니할 영원한 몸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도 이 썩을 육신의 몸만 생각하지 말고 주님의 재림 앞에 부활할 영원한 부활의 몸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이 땅에서 살아가는 육신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 영원한 천국과 지옥의 삶이 영원한 부활의 몸임을 말이다.”
“내가 가야 할 천국을 확신하며 살아간다면 너도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며 이 땅에 심을 것과 버려야 할 것을 구분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느냐?”
“바울도 부활의 몸과 천국을 소망하며 살았기에 그 모든 고난과 고통과 죽음마저도 기꺼이 맞이하며 살지 않았더냐?”
“너도 손옥기 장로님처럼 양미라 집사님과 양미녀 집사님과 박박쥐 집사님처럼 사망을 삼키고 이길 부활의 몸을 바라보며 살았으면 좋겠구나.”
[전자책]하나님의 시간표 - 예스24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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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날 위하여 오시었네
내 모든 죄 용서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나의 구세주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 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주 안에서 거듭난 생명 도우시는 주의 사랑
참 기쁨과 확신 가지고 예수님의 도우심을 믿으며 살리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 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그 언젠가 주 뵐 때까지 주를 위해 싸우리라
승리의 길 멀고 험해도 주님께서 나의 앞길 지켜 주시리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 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몸을 입고 있는 이 육신은 죽음과 더불어 썩을 몸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함께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이 썩을 몸은 썩지 아니할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나팔꽃 씨는 죽어 그대로 존재하지 않고 나팔꽃으로 새롭게 변화되듯이 말입니다.
그 모두가 우리 주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의 본을 보여주셨기 때문이요 땅에서 오신 분이 아니라 하늘에서 오신 분이기에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런 부활과 영생의 나라를 소망하는 자라면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청지기로 담대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몸도 하나님의 것이요 우리의 물질도 우리의 자녀들도 모두 하나님의 것임을 믿고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며 살 수 있는 참된 부활의 신앙 말입니다.
죽음을 앞에둔 그 장로님처럼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가려고 하는 것도 좋지만 살아 생전에 더 분명한 부활신앙인답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전자책]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예스24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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