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열기)(예화)올해 그분은 쉰여덟입니다.
- 초등학교 5학년까지만 해도 그녀는 목포에서 제일 잘 나가는 부잣집 딸이었습니다.
- 당시 아버지는 매일신문사와 지금의 삼양사인 당시의 삼화사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 중등포 저수지 둘레 땅도 모두 그분 것이었고요.
- 집도 목포에서 제일 좋은 2층 한옥에 살고 있었습니다.
- 그 당시 그녀는 유치원과 초등학교도 자동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 그녀는 성악가 꿈을 키우고 있어서 조선대학교 음대 교수가 매주말마다 목포에 내려와 한번씩 지도를 해 주고 갔습니다.
- 그러면서 당시에 한달치 월급을 매주 받았다는 것입니다.
- 그런데 그토록 건강하던 그녀의 아버지는 갑자기 위가 좋지 않아 목포와 서울의 병원을 찾아다녔습니다.
-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하죠.
- 급기야 일본에까지 가서 치료하려고 했는데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 그러니 그녀의 어머니는 한순간 날벼락 맞은 셈이었지 않겠습니까?
- 매일신문사는 공중분해 되었고 삼화사도 인척이 운영하닥 경영 미숙으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 그 와중에 네 딸을 대학에 보내고자 그녀의 어머니는 2층 한옥을 팔고 점차 작은 집으로 이사하다가 결국 상동의 서민주택으로 들어갔습니다.
- 그런 드라마 같은 이야기는 실제입니다.
- 지난 주에 무안군 일로 장터에 닭을 사러 오가면서 그분의 남편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니까요.
- 제게는 시골 동네 형님이기도 한 그분의 남편은 현재 환갑으로 같은 지방회의 선배 목사님이기도 합니다.
- 스무 가지 반찬이 나오는 일로 장터 백반집에서 밥을 먹고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실 땐 그런 이야기도 곁들여 줬습니다.
- 그분의 아내가 가끔 그런 농담을 한다면서 말에요.
- “여보. 울 아버지가 살아있다면 난 당신을 쳐다보지도 않았겠죠?”
- 그것은 사실이지 않겠습니까?
- 목포에서 제일 잘 나가는 부잣집 딸이 서낭구지 가난한 동네 형님과 눈이나 마주치려 했겠습니까?
- 하지만 아버지가 죽고 가세가 기울자 그녀의 어머니와 네 딸은 모두 가난한 심령이 되었다고 하죠.
- 그녀도 성악 레슨을 곧바로 접고 엄마와 동생들 뒷바라지하려고 간호대를 나왔고요.
- 그 후에 들어간 곳이 목포 고하도에 있는 공생원이었는데 그곳에서 길 잃은 아이들을 돌보다가 지금의 형님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 하나님께서는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새롭게 빚으시고자 인생의 힘든 뒷골목을 마주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 만일 그 사모님이 그토록 어렵고 고통스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지금쯤 예수님을 믿었을까요?
- 설령 예수님을 믿을지라도 고아들의 어머니로 길 잃고 마음 둘 곳 없는 이들을 품는 위로의 어머니로 살진 못했죠.
- 그러나 그 사모님은 가난한 심령에 주어지는 천국이 있음을 믿었고 하늘나라의 상급이 있음을 믿었기에 고아들의 어머니로 살았던 것이죠.
- (적용)오늘을 사는 저와 여러분들도 부활과 천국을 믿는 신앙인답게 신실하게 하나님의 교회에 충성스런 일꾼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왜 그렇습니까?
- 이 세상이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서 받을 상급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 주님은 주님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지만 그 상급은 심는 자들에게 부여하신다고 약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역배)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이라고 했습니다.
- 부활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이 명확한 믿음을 일깨워주기 위해 쓴 편지 내용이죠.
- 바울은 부활의 이치를 씨앗과 그 씨앗이 땅에 떨어져 씨앗과 다른 꽃으로 피어난 예로 설명했습니다.
- 이른바 나팔꽃 씨앗도 땅에 떨어져 싹이 나면 씨앗과는 전혀 다른 꽃으로 피어오르는 것처럼 말이죠.
- 우리가 육체의 몸으로 죽고 난 뒤에 부활할때는 전혀 다른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다는 것과 같다는 이치겠죠. 그래서 바울은 현재의 육체는 썩고 욕되고 약한 것이지만 부활 후의 육체는 썩지 아니하며 영광스럽고 강하다고 한 것이죠.
- 바울은 그런 차이를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해서 논리적으로 설명해줬습니다.
- 첫 사람 아담이 근본적으로 육과 땅에 속한 자이기 때문에 그 후손인 우리가 썩어질 육에 속해 있다는 것이죠.
- 하지만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영과 하늘에 속한 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도 장차 신령한 몸으로 변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 그래서 첫 사람 아담이 생명있는 존재지만 그의 영은 ‘프쉬케’(ψυχή)지만 예수님의 영은 ‘프뉴마’(πνεῦμα)였습니다.
- 왜 바울이 그런 단어를 쓴 것입니까?
- 바울은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 차이를 뚜렷하게 제시하고자 한 것이죠.
- 첫 사람 아담은 단순히 살아 있는 존재에 불과하지만 그리스도는 종말의 때에 ‘생명을 주시는 영’이라고 말이죠.
- 그래서 첫 사람 아담은 땅에서 났고 둘째 사람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나셨다고 한 것이죠.
- (전개)지난 시간에는 혈과 육은 살과 피를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 살과 피는 지상에서 살 때만 필요하기 때문이요 하나님 나라에 가서는 더이상 살과 피가 필요 없는 것이죠.
- 더욱이 썩는 것도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이어받지 못한다고 했죠.
- 그것을 바울은 비밀이라고 말했는데 ‘비밀’로 번역된 헬라어는 ‘유스테리온’(μυστήριον)입니다.
- 신약성경에 27번 사용된 단어인데 ‘감춰진 것’ ‘비밀’을 뜻하는 말입니다(마13:11, 막4:11,눅8:10).
- 그런데 바울은 종말의 날에 그토록 감춰진 비밀이 다 드러난다고 하는데, 그 비밀이 무엇입니까?
- 마지막 나팔을 부는 그 시간에 순식간에 우리의 몸이 변화되는 것이죠.
- 이른바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 (깨달음)중요한 것은 바울은 자기 살아 생전에 주님의 재림이 임할 것을 믿었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 그런 종말신앙이 있었기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유무상통의 실제적인 삶을 실현하며 살았던 것이죠.
- 재물이 많은 자는 많이 또 적게 가진 자는 적게, 모두가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청지기로 알고 자기 믿음의 분량껏 하나님께 드리며 서로 나누며 살았던 것입니다.
- 그런 종말 신앙이 확실했기 때문에 바울도 1차와 2차와 3차 전도여행을 다녔고 로마의 가택연금상태와 마지막 지하 마메르틴 감옥에 갇혀 참수형 당할 때도 기꺼이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죠.
- (적용)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도 그런 종말 신앙을 갖고 살아야 하는 것이죠.
- 바울처럼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그리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처럼 내 것을 내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청지기 답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 주님의 재림을 믿는 자들은 이 땅에서 겪는 수고와 슬픔도 능히 이겨내며 살 수 있는 것이죠.
- 이 사실을 믿는 자들은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확신하며 사는 자들이요, 그런 자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청지기답게 살 수 있습니다.
- (본문)오늘 읽은 본문 55-57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 (깨달음)사망이 겨냥한 것은 무엇을 겨냥하는 것입니까?
- 죄의 싹이 죽음이기에 죄가 있는 곳에는 죽음이 왕 노릇할 수밖에 없습니다.
- 그런데 죄의 권능은 율법입니다.
- 죄를 죄로 정죄하는 것은 율법이죠.
- 그래서 율법만으로는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뿐 율법 그 자체로는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몸으로 죽음을 이긴다는 것은 죄를 이긴다는 것입니다.
- 죄를 이긴다는 것은 결국 모든 율법으로부터 자유케 된다는 것이죠.
- (적용)여기에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그 말이 헬라어로 마침표가 돼 있습니다.
- 우리에게 이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이죠.
- 우리가 부활한다는 것은 단순히 몸의 부활만이 아니라 죄로 인해 사망의 노예가 됐던 우리가 죄와 사망을 이기는 승리의 은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가 승리의 은총인데 그것을 부여해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 (본문2)본문 58절은 뭐라고 말합니까?
-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 (원해)사도 바울이 만약 이 세상이 모두라고 한다면 뭐라고 끝을 맺었을까요?
- 우리도 나가서 좀 더 마시고 좀 더 놀자 하고 말했겠죠.
-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 흔들리지 말라고, 세상이 뭐라고 해도 이것은 과정이니 견실하라고 권면하죠.
- 그리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당부합니다.
- 여기에 ‘힘쓰다’는 헬라어 ‘페리쉬오’(περισσεύω)는 ‘탁월하게 하다’ ‘풍성하게 하다’는 뜻입니다.
- 주의 몸 된 교회를 더욱 탁월하게 하고 풍성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 (깨달음)과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 너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 결코 헛된 것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그 이유는 부활하기 때문입니다.
- 그 연장 선상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회복하는 하나님의 심판이 그날 이루어지죠.
- 더욱이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상급이 주어집니다.
- 하나님의 상급은 믿는 자에게 심은 대로 그대로 거두게 되죠.
- 그러므로 네가 살아 있는 동안에 충성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 (적용)그래서 바울이 부활장을 이야기하는 15장을 통해 우리가 얻게 되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 우리의 죽음은 참된 생명으로 향하는 발로라는 것입니다.
- 바꿔 말해 이 땅에서 사는 삶은 사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 이 땅에서 사는 모든 삶은 영원한 삶을 위한 과정이라는 것이죠.
- 이것이 결코 목적일 수가 없고 목표일 수가 없습니다.
- 우리가 목적으로 삼고 목표하는 인생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는 것입니다.
- 그래서 바울의 결론과 같은 그 권면을 우리가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11절로 말씀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 사도 바울이 이같이 ‘전파하매’라는 단어 ‘페뤼소’는 현재형이고 ‘믿었느니라’는 단어는 과거형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언제든지 현재형입니다.
- 그때 너희들이 그 복음을 받아들이고 내가 고린도에 있을 때 너희들이 믿었다는 것입니다.
- 그런데 오늘 현재 너희들은 어떻게 살고 있느냐는 것이죠.
- 더욱 힘쓰고 있느냐? 흔들림 없이 견고하게 진리 위해 서 있느냐? 그렇게 반문해 볼 수 있습니다.
-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을 마무리하면서 우리 자신을 되돌아 봐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 우리가 늘 주님의 부활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사도신경을 통해 매일 몸이 부활한다는 걸 주일마다 고백한다면 내 삶이 현재형으로 어떤 삶인지 되돌아보며 사는 것 말입니다.
- 그래서 우리의 코끝에 호흡이 있는 동안에 주님을 위해 더욱 충성을 다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죠.
- 그 때 우리는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 우리 코끝에 호흡이 멈출 때 그때가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영원히 살리시고 이 땅에 심은 것을 우리에게 되갚아 주실 때이기 때문입니다.
- 그 사모님을 하나님께서 가난한 심령으로 빚어서 공생원의 고아들을 돌보게 하신 것도 마찬가지죠.
- 주님은 그런 방법을 통해서 그 분을 부르셨고 고아들을 돌보는 그 삶을 심도록 하셔서 영원한 상급을 바라보게 하신 것입니다.
- (주문)그렇기에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 (은혜)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부활신앙을 갖고 심은데로 거두시는 그 상급을 바라보며 충성된 일꾼으로 사는 은혜 안에 거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 “그 목사님의 사모님이 지금도 2층 한옥에 살고 목포에서 제일 부자로 살았다면 가난한 심령으로 살 수 있었겠느냐?”
- “그 사모님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를 잃고 가난한 심령이 되었기에 고아도 공생원에서 길 잃은 아이들을 품고 돌보는 어머니로 산 것 아니었겠느냐?”
- “그리고 그것이 하늘나라의 상급으로 주님께서 갚아주실 날이 있지 않겠느냐?”
-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지금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 부활을 계속 이야기한 것도 궁극적으로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급을 바라보며 살도록 한 것 아니겠느냐?”
- “이 세상의 삶이 끝이라면 더 마셔라 더 즐기라고 하겠지만 바울은 그 날의 상급을 바라보며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라고 권면한 것 아니었겠느냐?”
- “그만큼 이 땅에서 수고하고 헌신한 일들은 헛되지 않는 하나님의 상급이 된다는 것을 너도 기억하고 살았으면 좋겠구나.”
- (찬양)내게 있는 향유 옥합 주께 가져와 그 발 위에 입 맞추고 깨뜨립니다
- 나를 위해 험한 산길 오르신 그 발 걸음마다 크신 사랑 새겨놓았네
- 내게 있는 향유 옥합 주께 가져와 그 발 위에 입 맞추고 깨뜨립니다
- 나를 위해 십자가에 오르신 그 발 흘린 피로 나의 죄를 대속하셨네
- 내게 있는 향유 옥합 주께 가져와 그 발 위에 입 맞추고 깨뜨립니다
- 주님 다시 이 땅 위에 임하실 그때 주의 크신 사랑으로 날 받아주소서
-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이 땅에서는 잘 먹고 잘 사는 게 전부 같지만 이 세상 너머에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급이 있는 자들이 정말로 멋진 삶을 사는 자들인 줄 믿습니다.
- 왜냐하면 이 땅에서는 기껏해야 90-100세지만 저 하늘나라에서는 영원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 더욱이 이 땅에서 받는 대통령 표창이든 국무총리 상이든 그것은 기한이 있지만 죽음 너머에 하나님께 받는 상급은 절대적인 상급이요 영원한 상급이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를 바라보도록 그 사모님에게 그런 가난한 심령으로 부르신 것이고 그 분에 하늘의 상급을 베풀고자 고아들의 어머니로 살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권면한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 저와 여러분들도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며 더욱더 주님을 위해 심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설교열기)(예화)올해 그분은 쉰여덟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까지만 해도 그녀는 목포에서 제일 잘 나가는 부잣집 딸이었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매일신문사와 지금의 삼양사인 당시의 삼화사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중등포 저수지 둘레 땅도 모두 그분 것이었고요.
집도 목포에서 제일 좋은 2층 한옥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그녀는 유치원과 초등학교도 자동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그녀는 성악가 꿈을 키우고 있어서 조선대학교 음대 교수가 매주말마다 목포에 내려와 한번씩 지도를 해 주고 갔습니다.
그러면서 당시에 한달치 월급을 매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토록 건강하던 그녀의 아버지는 갑자기 위가 좋지 않아 목포와 서울의 병원을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하죠.
급기야 일본에까지 가서 치료하려고 했는데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그녀의 어머니는 한순간 날벼락 맞은 셈이었지 않겠습니까?
매일신문사는 공중분해 되었고 삼화사도 인척이 운영하닥 경영 미숙으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 와중에 네 딸을 대학에 보내고자 그녀의 어머니는 2층 한옥을 팔고 점차 작은 집으로 이사하다가 결국 상동의 서민주택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 드라마 같은 이야기는 실제입니다.
지난 주에 무안군 일로 장터에 닭을 사러 오가면서 그분의 남편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니까요.
제게는 시골 동네 형님이기도 한 그분의 남편은 현재 환갑으로 같은 지방회의 선배 목사님이기도 합니다.
스무 가지 반찬이 나오는 일로 장터 백반집에서 밥을 먹고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실 땐 그런 이야기도 곁들여 줬습니다.
그분의 아내가 가끔 그런 농담을 한다면서 말에요.
“여보. 울 아버지가 살아있다면 난 당신을 쳐다보지도 않았겠죠?”
그것은 사실이지 않겠습니까?
목포에서 제일 잘 나가는 부잣집 딸이 서낭구지 가난한 동네 형님과 눈이나 마주치려 했겠습니까?
하지만 아버지가 죽고 가세가 기울자 그녀의 어머니와 네 딸은 모두 가난한 심령이 되었다고 하죠.
그녀도 성악 레슨을 곧바로 접고 엄마와 동생들 뒷바라지하려고 간호대를 나왔고요.
그 후에 들어간 곳이 목포 고하도에 있는 공생원이었는데 그곳에서 길 잃은 아이들을 돌보다가 지금의 형님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하나님께서는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새롭게 빚으시고자 인생의 힘든 뒷골목을 마주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 사모님이 그토록 어렵고 고통스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지금쯤 예수님을 믿었을까요?
설령 예수님을 믿을지라도 고아들의 어머니로 길 잃고 마음 둘 곳 없는 이들을 품는 위로의 어머니로 살진 못했죠.
그러나 그 사모님은 가난한 심령에 주어지는 천국이 있음을 믿었고 하늘나라의 상급이 있음을 믿었기에 고아들의 어머니로 살았던 것이죠.
(적용)오늘을 사는 저와 여러분들도 부활과 천국을 믿는 신앙인답게 신실하게 하나님의 교회에 충성스런 일꾼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세상이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서 받을 상급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주님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지만 그 상급은 심는 자들에게 부여하신다고 약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자책]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예스24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오래전 신영복 교수의 책을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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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이라고 했습니다.
부활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이 명확한 믿음을 일깨워주기 위해 쓴 편지 내용이죠.
바울은 부활의 이치를 씨앗과 그 씨앗이 땅에 떨어져 씨앗과 다른 꽃으로 피어난 예로 설명했습니다.
이른바 나팔꽃 씨앗도 땅에 떨어져 싹이 나면 씨앗과는 전혀 다른 꽃으로 피어오르는 것처럼 말이죠.
우리가 육체의 몸으로 죽고 난 뒤에 부활할때는 전혀 다른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다는 것과 같다는 이치겠죠. 그래서 바울은 현재의 육체는 썩고 욕되고 약한 것이지만 부활 후의 육체는 썩지 아니하며 영광스럽고 강하다고 한 것이죠.
바울은 그런 차이를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해서 논리적으로 설명해줬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근본적으로 육과 땅에 속한 자이기 때문에 그 후손인 우리가 썩어질 육에 속해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영과 하늘에 속한 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도 장차 신령한 몸으로 변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사람 아담이 생명있는 존재지만 그의 영은 ‘프쉬케’(ψυχή)지만 예수님의 영은 ‘프뉴마’(πνεῦμα)였습니다.
왜 바울이 그런 단어를 쓴 것입니까?
바울은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 차이를 뚜렷하게 제시하고자 한 것이죠.
첫 사람 아담은 단순히 살아 있는 존재에 불과하지만 그리스도는 종말의 때에 ‘생명을 주시는 영’이라고 말이죠.
그래서 첫 사람 아담은 땅에서 났고 둘째 사람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나셨다고 한 것이죠.
(전개)지난 시간에는 혈과 육은 살과 피를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살과 피는 지상에서 살 때만 필요하기 때문이요 하나님 나라에 가서는 더이상 살과 피가 필요 없는 것이죠.
더욱이 썩는 것도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이어받지 못한다고 했죠.
그것을 바울은 비밀이라고 말했는데 ‘비밀’로 번역된 헬라어는 ‘유스테리온’(μυστήριον)입니다.
신약성경에 27번 사용된 단어인데 ‘감춰진 것’ ‘비밀’을 뜻하는 말입니다(마13:11, 막4:11,눅8:10).
그런데 바울은 종말의 날에 그토록 감춰진 비밀이 다 드러난다고 하는데, 그 비밀이 무엇입니까?
마지막 나팔을 부는 그 시간에 순식간에 우리의 몸이 변화되는 것이죠.
이른바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전자책]귀먹은 하나님 응답하소서 - 예스24
성경으로 문화 읽기를 접목한 세 번째 책이다. 첫 책은 출애굽기로부터 시작해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까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두 번째 책은 여호수아로부터 시작해 사사기, 룻기, 사무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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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중요한 것은 바울은 자기 살아 생전에 주님의 재림이 임할 것을 믿었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종말신앙이 있었기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유무상통의 실제적인 삶을 실현하며 살았던 것이죠.
재물이 많은 자는 많이 또 적게 가진 자는 적게, 모두가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청지기로 알고 자기 믿음의 분량껏 하나님께 드리며 서로 나누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 종말 신앙이 확실했기 때문에 바울도 1차와 2차와 3차 전도여행을 다녔고 로마의 가택연금상태와 마지막 지하 마메르틴 감옥에 갇혀 참수형 당할 때도 기꺼이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죠.
(적용)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도 그런 종말 신앙을 갖고 살아야 하는 것이죠.
바울처럼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그리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처럼 내 것을 내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청지기 답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을 믿는 자들은 이 땅에서 겪는 수고와 슬픔도 능히 이겨내며 살 수 있는 것이죠.
이 사실을 믿는 자들은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확신하며 사는 자들이요, 그런 자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청지기답게 살 수 있습니다.
(본문)오늘 읽은 본문 55-57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깨달음)사망이 겨냥한 것은 무엇을 겨냥하는 것입니까?
죄의 싹이 죽음이기에 죄가 있는 곳에는 죽음이 왕 노릇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죄의 권능은 율법입니다.
죄를 죄로 정죄하는 것은 율법이죠.
그래서 율법만으로는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뿐 율법 그 자체로는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몸으로 죽음을 이긴다는 것은 죄를 이긴다는 것입니다.
죄를 이긴다는 것은 결국 모든 율법으로부터 자유케 된다는 것이죠.
(적용)여기에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그 말이 헬라어로 마침표가 돼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부활한다는 것은 단순히 몸의 부활만이 아니라 죄로 인해 사망의 노예가 됐던 우리가 죄와 사망을 이기는 승리의 은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가 승리의 은총인데 그것을 부여해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전자책]야긴과 보아스 - 예스24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이 책에는 사무엘서와 열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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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2)본문 58절은 뭐라고 말합니까?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원해)사도 바울이 만약 이 세상이 모두라고 한다면 뭐라고 끝을 맺었을까요?
우리도 나가서 좀 더 마시고 좀 더 놀자 하고 말했겠죠.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흔들리지 말라고, 세상이 뭐라고 해도 이것은 과정이니 견실하라고 권면하죠.
그리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당부합니다.
여기에 ‘힘쓰다’는 헬라어 ‘페리쉬오’(περισσεύω)는 ‘탁월하게 하다’ ‘풍성하게 하다’는 뜻입니다.
주의 몸 된 교회를 더욱 탁월하게 하고 풍성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깨달음)과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결코 헛된 것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부활하기 때문입니다.
그 연장 선상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회복하는 하나님의 심판이 그날 이루어지죠.
더욱이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상급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상급은 믿는 자에게 심은 대로 그대로 거두게 되죠.
그러므로 네가 살아 있는 동안에 충성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전자책]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예스24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 속에서 페르시아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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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그래서 바울이 부활장을 이야기하는 15장을 통해 우리가 얻게 되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죽음은 참된 생명으로 향하는 발로라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 이 땅에서 사는 삶은 사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사는 모든 삶은 영원한 삶을 위한 과정이라는 것이죠.
이것이 결코 목적일 수가 없고 목표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목적으로 삼고 목표하는 인생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결론과 같은 그 권면을 우리가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11절로 말씀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사도 바울이 이같이 ‘전파하매’라는 단어 ‘페뤼소’는 현재형이고 ‘믿었느니라’는 단어는 과거형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언제든지 현재형입니다.
그때 너희들이 그 복음을 받아들이고 내가 고린도에 있을 때 너희들이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현재 너희들은 어떻게 살고 있느냐는 것이죠.
더욱 힘쓰고 있느냐? 흔들림 없이 견고하게 진리 위해 서 있느냐? 그렇게 반문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을 마무리하면서 우리 자신을 되돌아 봐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늘 주님의 부활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사도신경을 통해 매일 몸이 부활한다는 걸 주일마다 고백한다면 내 삶이 현재형으로 어떤 삶인지 되돌아보며 사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코끝에 호흡이 있는 동안에 주님을 위해 더욱 충성을 다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죠.
그 때 우리는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코끝에 호흡이 멈출 때 그때가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영원히 살리시고 이 땅에 심은 것을 우리에게 되갚아 주실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모님을 하나님께서 가난한 심령으로 빚어서 공생원의 고아들을 돌보게 하신 것도 마찬가지죠.
주님은 그런 방법을 통해서 그 분을 부르셨고 고아들을 돌보는 그 삶을 심도록 하셔서 영원한 상급을 바라보게 하신 것입니다.
[전자책]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예스24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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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그렇기에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부활신앙을 갖고 심은데로 거두시는 그 상급을 바라보며 충성된 일꾼으로 사는 은혜 안에 거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그 목사님의 사모님이 지금도 2층 한옥에 살고 목포에서 제일 부자로 살았다면 가난한 심령으로 살 수 있었겠느냐?”
“그 사모님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를 잃고 가난한 심령이 되었기에 고아도 공생원에서 길 잃은 아이들을 품고 돌보는 어머니로 산 것 아니었겠느냐?”
“그리고 그것이 하늘나라의 상급으로 주님께서 갚아주실 날이 있지 않겠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지금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 부활을 계속 이야기한 것도 궁극적으로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급을 바라보며 살도록 한 것 아니겠느냐?”
“이 세상의 삶이 끝이라면 더 마셔라 더 즐기라고 하겠지만 바울은 그 날의 상급을 바라보며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라고 권면한 것 아니었겠느냐?”
“그만큼 이 땅에서 수고하고 헌신한 일들은 헛되지 않는 하나님의 상급이 된다는 것을 너도 기억하고 살았으면 좋겠구나.”
(찬양)내게 있는 향유 옥합 주께 가져와 그 발 위에 입 맞추고 깨뜨립니다
나를 위해 험한 산길 오르신 그 발 걸음마다 크신 사랑 새겨놓았네
내게 있는 향유 옥합 주께 가져와 그 발 위에 입 맞추고 깨뜨립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오르신 그 발 흘린 피로 나의 죄를 대속하셨네
내게 있는 향유 옥합 주께 가져와 그 발 위에 입 맞추고 깨뜨립니다
주님 다시 이 땅 위에 임하실 그때 주의 크신 사랑으로 날 받아주소서
[전자책]하나님의 시간표 - 예스24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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