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site-verification=bWsZs7W0_gSPuMoDXujZISVmSBQHlpw3IxoqFPAwWOg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약1:2-11) google-site-verification=bWsZs7W0_gSPuMoDXujZISVmSBQHlpw3IxoqFPAwWOg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약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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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를 쓴 사람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로 알려져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예수님 살아생전에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은 동생이었죠. 오히려 형 예수를 멀리하던 동생이었습니다. 형 예수가 유대 종교지도자들로부터 미움의 대상이자 감시의 대상이었기 때문이죠. 그 피해가 자신과 가족에게 미칠 걸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오죽했으면 예수님의 친족들조차도 예수님이 메시아 행세하는 걸 ‘미쳤다’고 할 정도였겠습니까?

그랬던 그 동생 야고보가 훗날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요, 제1회 예루살렘 공의회때 의장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습니까? 고린도전서 15장 4-8절에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살아나셨는데, 그때 먼저 게바 곧 베드로에게 보이셨고, 12사도에게 보이셨고, 또 500여 형제에게 보이셨다는 증언입니다. 바로 그때 그 야보고사 사도로 변화되었고, 예루살렘교회의 의장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야고보서는 예루살렘공의회가 열리기 이전에 쓴 편지였을 것으로 추정을 한다고 했죠.

 

어제 읽은 1절에서 야고보 사도는 그렇게 문안인사를 합니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여기에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란 이 편지를 받는 수신자들이죠. 스데반의 순교와 더불의 사울의 박해가 시작되었는데, 그때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세계 각지로 흩어졌던 것이었죠. 야고보 사도는 바로 그런 자들을 위해 이 편지를 써서 보낸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그들이 무엇보다도 믿음으로 인내하며 살게 아는 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전자책]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예스24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 속에서 페르시아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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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본문은 야고보서 전체의 서론 부분에 해당됩니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째는 2-4절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 사도는 시험을 당하면 오히려 기뻐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못하죠. 오히려 시험과 시련이 오면 두려워하고 곤혹스러워하는 게 우리 자신이죠. 초대예루살렘교회에서 세계 각지로 흩어진 유대계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였겠죠. 그들은 ‘왜 나에게 이런 시험이 오나?’하고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했고, ‘이 시험으로 어떤 결과가 올까?’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시험을 당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시험 당하는 걸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하고 권면하죠. 여기에서 ‘온전히’라는 말은 ‘억지로 하거나 마지못해 기뻐하라는 게’아닙니다. 전적으로 기뻐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고, 인내를 온전히 이룸으로서 우리가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로마정부의 극심한 박해를 받을 때 믿음을 지켰던 순교자들도 그랬죠. 또 일제 강점기 시대 주기철 목사님께서 순교하실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기고 인내를 온전히 이룸으로서 세계 역사가 바뀌고 한국의 기독교가 세워졌습니다. 우리도 어렵고, 힘들 수 있지만, 지금의 기쁨으로 우리에게 닥친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도록 하는 분입니다.

본문 4절의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라는 헬라어 원문은은 “에테 텔레이오이 카이 홀로클레로이”(ἐχέτω ἵνα ἦτε τέλειοι καὶ ὁλόκληροι)입니다. ‘온전하고’를 나타내는 “텔레이오이”는 인격의 완전한 성숙을 나타내는 단어이며, “구비하여”는 “홀로클레로이”는 “결핍이 없는 완벽한, 온전한”이란 뜻입니다. 두 단어 모두 고난 가운데서 인내하는 이 모든 과정을 통하여 성도가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성숙함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갈수록 인내심이 부족한 사회가 되고 있습니다. 불편한 것을 참지 못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즉시 불평을 표현합니다. 어려운 순간에 충동조절능력이 없어서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끔찍한 사고들도 우리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내”라는 단어의 헬라어 원어는 “휘포모네”(ὑπομονή)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흔들림 없이 머물러 있다는 뜻입니다. ‘확고부동’, ‘불변’이라는 의미를 지닌 이유입니다. 큰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자기의 믿음과 경건을 성실하게 지켜나갈 때에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욥은 연단과 시련 속에서 새로워질 자신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욥기 23장 10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그리고 그 시험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고 하시면서 5절에서부터 이렇게 권면하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주님께 구하면 시험을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알려주신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는 경건하고, 올바른 삶을 위해 갖추어야할 영적 지각력이며, 세상의 경험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계시에서 오는 영적 지혜를 의미합니다. 특별히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후히 주신다.”는 말씀의 헬라어 원어 “하플로스”는 ‘순수히’, ‘너그럽게’, ‘무조건’, ‘기꺼이’라는 뜻으로 조금도 거절하거나 사양치 않고 주저함 없이 주실 것임을 강조한 단어입니다.

 

[전자책]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예스24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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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혜를 구할 때에 믿음으로 구하고, 의심하지 말고, 담대히, 의연하게 대처하시기를 원하십니다. 6절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여기에서 “두 마음을 품는다”는 의미는 하나님과 세상 오가며 두 주인을 섬기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불안정한 변덕을 지닌 사람 말이죠.

이런 사람은 바람이 부는 대로 물결이 치고, 배가 흔들리듯이 외부 환경의 변화와 공격에 감정적으로 흔들리며 방황합니다. 이런 사람은 기도에 응답이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다고 약속하셨고, 하나님은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할 때 모든 시련을 이길 신령한 지혜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으며, 결국엔 주님과 함께 견뎌낼 것이며, 최후에 승리할 것입니다. 의심 없는 태도만이 하나님께 간구한 바를 응답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전자책]야긴과 보아스 - 예스24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이 책에는 사무엘서와 열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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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부분은 높아지거나 낮아졌을 때 지녀야할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겸손의 성격을 설명하고 있는데 9-11절입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9절에 “낮은 형제”란 헬라어로 “타페이노스”인데 “땅위에서 멀지 않은 자”입니다. 이른바 “밑바닥 인생”을 뜻하는 말이죠. 단지 경제적 가난뿐만 아니라, 배운 것도 없고, 내세울 지위나 직업도 없는, 당시 종이나 노예와 같은 수준의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자랑할 것이 전혀 없는 사람을 향해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라고 권면하죠. 영원한 생명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얻게 된 걸 자랑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부한 자는 헛된 재물을 의존하지 말고, 오히려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라고 권면하죠. 그만큼 “하나님 앞에 겸손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바로 그런 가르침을 받은 초대교회였고, 세계 각처에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이라 차별 없이 지냈던 것입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기 죽거나 열등의식을 갖지 않았고, 부자라고 해서 으스대지 않았던 것 말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나라에 있다는 그 의식 속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차별치 않는 온전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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