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야고보서 1장은 믿음의 정의에 대해 내려줬습니다. 믿음은 이론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기둥과 같은 것이라고 말입니다. 야고보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믿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에게 찾아오셨을 때, 그가 완전히 변화되었죠. 그때부터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 곧 메시아요 구원자로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믿음은 머리나 관념으로 믿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초대교회의 수장이 될 정도로 온전한 믿음의 삶을 보여줬습니다. 그 모습은 우리가 읽고 있는 이 야고보서 곧 초대교회에 핍박이 일어나 세계 각처로 흩어진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쓴 이 편지를 통해서도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이죠. 그에게 믿음, 그에게 주님의 사랑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이런 편지조차 쓰지 않았을 것이니 말입니다. 믿음은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받는 것이지만 그 믿음은 삶으로 입증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2장 전반부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까? 믿음은 차별하지 않는 것이란 내용이었죠. 교회 공동체에 부자가 들어왔을 때 상석이나 좋은 자리를 안내하고, 가난한 사람이 왔다고 해서 함부로 대하는 그런 태도는 주님께서 결코 기뻐하지 않을 것이란 내용이었죠. 만약 주님께서 그런 믿음을 원하셨다면 주님께서 ‘미쳤다고’ 비난한 야고보 자신에게 찾아오지 않았을 테니 말입니다. 믿음은 외모나 겉모습을 보고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는 것이요. 더욱이 지금 현재의 모습보다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모습, 곧 머잖아 천국에 입성하여 함께 바라볼 그 영광의 나라에서 변화될 그 모습을 보고 품는 자의 삶이라고 했습니다.
[전자책]눈을 뜨면 볼 수 있어요 - 예스24
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너무나 답답했다. 지금도 그게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모든 게 답답하기만 하다. 청년들도 꿈을 꿀 수 없는 상태다. 초등학생
www.yes24.com
오늘 읽은 2장 후반부의 내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편지를 받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입술로는 믿음을 고백하지만 삶속에서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죠. 야고보 사도는 바로 그들을 향해 이렇게 권면합니다. 본문 14-16절입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리고 17절에서는 이 단락의 결론부분처럼 이야기를 합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신앙인이 말로는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삶 속에서는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의 믿음을 올바른 믿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뜻입니다. 믿음과 행함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될 수 없는 것이죠.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만 그 믿음은 반드시 행함으로 드러나게 돼 있다는 뜻입니다.
본문 18-19절도 그 사실을 논증헤 줍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나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는 말이죠. 그런 지적 동의는 귀신들도 따라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믿음과 행함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믿음은 반드시 행함으로 나타나게 돼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그 믿음과 행함의 모습을 구약의 두 사람을 들어 예로 설명해줍니다. 누구와 누굽니까? 그렇죠. 아브라함과 라합입니다. 두 사람은 대조적인 면이 있죠. 아브라함은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가 믿음의 표본으로 삼고 있는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에 반해 라합은 이방 여인이었고 신분도 기생이었죠. 둘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믿음은 동일한 것이요, 그 믿음은 행함으로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보편적인 진리임을 이야기해주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부분을 드러내는 21-25절을 표준 새번역성경으로 읽으면 이렇습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고서 행함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까? 그대가 보는 대로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작용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함으로 믿음이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브라함의 의로움으로 여기셨다’고 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고, 또 사람들이 그를 하나님의 벗이라고 불렀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사람은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지,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창녀 라합도 정탐꾼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내보내서, 행함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까?”
야고보 사도는 구원은 인간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받는 것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경험하게 체험한 바였기 때문이죠. 그런데 행함을 강조한다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바울이 이야기한 믿음과 야고보의 행함이 별개인가, 하고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야고보가 강조한 행함과 바울이 강조한 믿음은 서로 상충되는 게 결코 아닙니다. 바울이 말한 것 곧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말은 ‘믿지 않는 사람이 믿음으로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뜻입니다. 야고보는 바울의 그 말을 그렇게 해석한 것이죠.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말을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게 삶으로 드러난다’ 하는 것 말입니다. 야고보는 ‘아브라함이 아들을 바쳤기 때문에,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가 아들을 바칠 수 있도록 한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은혜에 기인한 일이요, 그 순종의 행함이 그 믿음을 입증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또 그를 통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레알처럼 수많은 자손을 주겠다고 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아들을 바치라고 했는데, 믿지 못했다면 어찌 아들을 바칠 수 있었겠냐는 뜻입니다.
그것은 기생 라합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죠. 여호수아 2장 11절을 통해 라합은 하나님께서 상천하지에 참 신이심을 고백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숨겨주지 않았다면, 그런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았다면, 어찌 그녀의 믿음이 온전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만큼 믿음은 행함으로 증명되는 것임을 알게 해 주는 내용입니다.
[전자책]하나님의 시간표 - 예스24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www.yes24.com
물론 주의해야 할 것이 있죠. 때로 자기 열심, 자기 의로움, 그것을 강조한 나머지 하나님의 은혜를 축소시키는 경우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열심과 자기 의로움이 나를 향한 초점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향한 초점인가, 매 순간 살피는 일이 중요하죠. 하나님을 향해 초점을 맞출 때 ‘에덴’의 기쁨을 누릴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을 향해 초점을 맞추면 ‘아단’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그것이 믿음에서 변질된 행위가 되는 것이죠.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천국 가는 표를 사 놓고서,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지식만으로 동의하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을 믿는다는 것, 주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 주님의 종이 되었다는 것은 주님의 자녀다운 의무와 책임을 갖는 것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주님의 뜻을 삶 속에서 실천할 때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죠.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영화롭게 하는 길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주님을 향한 믿음이 지적인 동의가 아니라 삶의 실체로 드러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삶이 때로는 거룩한 부담감이긴 하지만 오리를 가라하면 십리를 가는 것, 겉옷을 달라 하면 속옷까지 주는 것, 그것이 주님의 온전한 자녀의 삶이자, 믿음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사는 하루, 한 주간이 되길 바랍니다
[전자책]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예스24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
www.yes24.com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