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site-verification=bWsZs7W0_gSPuMoDXujZISVmSBQHlpw3IxoqFPAwWOg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약2:1-13) google-site-verification=bWsZs7W0_gSPuMoDXujZISVmSBQHlpw3IxoqFPAwWOg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약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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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읽은 야고보서 1장에서는 ‘믿음’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믿음은 이론이 아니라는 것, 말씀으로 삼가고 말씀으로 실천하는 기둥과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게 믿음이라고 말이죠.

그것이 1장의 대명제였고, 오늘 이어지는 믿음의 내용은 ‘차별’치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신앙공동체 안에서 행해야 할 부분이라는 점입니다. 1-4절에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야고보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면 사람을 차별치 말라고 권면합니다.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올 때는 반갑게 맞아주고 자리도 안내해주는데, ‘남루한 옷’,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오는 가난한 사람들은 환영도 해주지 않고 앉고 싶은 대로 앉으라고 내버려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초대 예루살렘교회 내에도 있었던 관행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야 되겠느냐, 그것이 참 믿음의 모습이겠느냐, 하는 것이죠. 얼마 전에 택시를 타고 감찰회 모임을 갔는데, 그때 그 택시 기사분이 얼마전까지만 해도 삼호에 있는 교회에 열심히 다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운전하다가 예배 시간에 맞춰 나가면 좋은 옷을 못 입고 나가는데, 그게 눈치를 받는 일이 됐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런 분을 차별하시는 분이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죠.

예수님은 이사야 53장에서 ‘고운 모양도 없’는 분으로, ‘풍채도 없’는 분으로, ‘흠모할 만한 것도 없’는 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주님은 멸시와 천대를 받은 분이셨죠. 예수님은 나사렛 촌동네의 목수로 사셨고, 공생애 사역기간에는 유대 지도자들에게 비난을 받고 모함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당신의 가족들에게까지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죠. 그러다가 십자가 위에 못 박혀 죽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향해 야고보 사도가 어떻게 소개합니까? 그 주님은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소개합니다. 고운 모양도, 흠모할만한 것도 하나도 없는 분인데 말입니다. 왜죠? 예수님의 겉모습 안에 감춰져 있는 부활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이죠. 겉모습은 아무런 것도 자랑할 게 없고, 오히려 유대 당국자들에게 모함과 조롱을 받으며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그 분은 3일만에 찬란하게 부활하셔서, 야고보에게 나타나셨던 것이죠. 바로 그분의 본 모습 앞에 누가 감히 영광의 주님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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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지금 사람들의 겉모습만 본다면, 나중에 그가 천국에서 아름답게 변화돼 있을 것으로 보지 못하는 것 아니겠느냐, 하는 뜻입니다. 지금 겉모습의 화려함만 보고 그를 대우하고, 겉모습의 남루한 것만 보고 그를 무시한다면, 그것은 마치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의 예수님을 바라보는 관점이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그렇기에 그 사람 안에 있는 참된 가치를 눈여겨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5-7절에 이렇게 권면하죠.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를 택하셔서 믿음에 부요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가난한 자’란 외적인 가난만을 말하는 게 아니죠. 그 심령이 가난한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화려하게 살아도 심령이 가난한 자가 있을 수 있고, 가난하게 살아도 심령이 교만한 자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디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게 쉽지 않는 문제죠.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간에 자기 자아를 내려놓고 주님만 신뢰하는 자가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상속받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너희 공동체 안에서는 가난한 자들을 업신여기고 있느냐, 하는 뜻입니다. 더욱이 너희들을 억압하고 법정으로 끌고 가는 이들이 실은 부한 자들 곧 교만한 자들이 아니냐, 하는 것이죠. 더욱이 그들이 “그 아름다운 이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비방하고 모독하지 않느냐, 하고 반문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의 화려함에만 이목을 갖고 있지만, 진정한 가치 있는 이름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자들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오늘 믿음의 삶을 살고 있는 나 자신은 어떤 자인가,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 역시도 스스로 교만하고 완고하여 사람들의 화려함에만 눈길을 두고 있는 자인가, 아니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지 간에 그 사람의 가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자인가, 우리는 깊이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죠.

더욱이 스스로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주님의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고 모독하며 삽니다. 그러나 그들만 그러는 게 아니라, 나 자신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요? 내가 죄의 바이러스에 걸려 넘어져 살 때가 그렇습니다. 그때 나의 행위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늘 깨어 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이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한 이름이 야고보에게 남다르게 다가온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야고보 사도는 본래 예수님의 형제였죠.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 갈릴리에서 사역하실 때 그는 불신하고 비아냥거리던 형제 중 하나였죠(요7:5).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는 비로소 예수님의 제자가 됐습니다(고전15:7). 그만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외모로 주님을 평가하고 비난했던 그였지만 십자가 안에 감춰 있던 부활의 영광을 본 이후에는 완전 변화된 그였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모습 안에 담긴 아름다운 이름, 곧 아름다운 가치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바로 그런 진면목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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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8-13절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권면입니다. 특별히 8절에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또 13절에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이웃을 사랑하는 것, 이웃에 대해 긍휼이 여기고 품는 자가 심판까지도 이긴다고 권면해 주고 있습니다. 무엇을 강조한 말씀입니까? 예수님처럼 우리 자신도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참된 믿음의 삶이요, 차별치 않는 믿음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가복음 10장에서도 마찬가지였죠.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향해 “영생을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했죠. 그때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하셨죠. 그때 그는 “누가 내 이웃입니까?”라고 물었죠. 주님은 강도 만난 자를 돌봐준 사마리아 사람을 비유로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도 이와 같이 하라”하고 말씀하셨죠. 머리로만 믿는 믿음, 지식으로 믿는 믿음, 이상으로 그리는 믿음이 아니라, 삶으로 이어지는 믿음이 되라고 한 것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도 빈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차별치 않는 믿음, 외모로 판단치 않는 믿음, 그 안에 감춰진 진면목의 가치를 볼 수 있는 믿음을 지니며 살아가는 믿음 말입니다.

 

오늘도 사람을 차별치 않는 믿음, 있는 모습 그대로를 품는 믿음, 주님 앞에 가난한 심령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진면목을 보고 품는 하루의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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