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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을 넓혀줬다. 병아리 때는 닭장이 좁지 않을 것 같았지만 닭들이 커서 그런지 무척 좁아 보였기 때문이다. 기존에 지어놓은 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한쪽 면만 살짝 늘려줬다. 그렇다고 멋지고 세련된 자재를 사용한 것은 아니다. 폐자재를 실용적으로 활용한 것 뿐이다. 조금만 넓혀줬을 뿐인데도 녀석들은 더 넓은 공간이 생겼다면서 마음껏 뛰노는 분위기다.
물론 집만 지어주고 공간을 더 넓혀준다고 해서 녀석들이 잘 살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주인인 내가 아침과 점심과 저녁에 들여다봐야 하고 때때로 밥도 챙겨줘야 한다. 그렇다고 녀석들에게 손쉬운 사료를 먹이는 것은 아니다. 성도들에게 말씀을 전할 때도 손쉽게 퍼나르지 않듯이 말이다. 녀석들에게도 교회에서 가까운 중국 음식점에서 남긴 음식물과 영성 써니빌 아파트에서 남긴 음식물을 골라서 준다. 그런 수고를 녀석들이 알까 모르겠다.
그래서 그러는 걸까? 녀석들은 내가 닭장에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날갯짓을 하며 나를 반긴다. 마치 애완견이 주인을 보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대듯이 말이다. 그런 녀석들을 보면서 깨닫는 게 있다. 비록 허름한 닭장에 살지라도 간편한 사료보다 매일 같이 새로운 짬밥을 갖다 주는 주인의 얼굴을 볼때마다 녀석들은 행복감을 느끼겠다는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시84:1-5)
시편 84편의 표제는 “고라 자손의 시”다. ‘고라’는 다단과 아비람과 함께 모의해서 반역을 꾀하다 죽고 말았다. 사실 고라는 모세와 아론처럼 레위의 손자이자 고핫의 아들이다. 굳이 따지면 모세와 아론의 조카다. 그런데도 아론만 제사장직을 맡자 고라가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유다 지파에게 밀린 르우벤 지파의 후손 ‘다단’과 ‘아비람’을 부추겨 함께 반기를 들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민16장).
그 진노를 통해 250명이 죽었지만 하나님의 긍휼 속에서 고라의 후손은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조상의 불명예를 안게 된 고라의 자손들은 그때부터 더욱 헌신했다. 그런 순전함을 안 다윗은 그들에게 성전의 직무를 맡겼다. 마치 야곱의 저주를 받은 레위가 시내광야에서 하나님께 헌신할 때(32:29) 제사장 지파로 거듭난 것과 같았다. 그런 은덕을 입었으니 그들은 압살롬의 쿠데타 때 피난 길에 오르던 다윗을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도왔을 것이다.
다들 이 시의 저작 배경을 다윗의 시대라고 말하는 이유가 그때문이다. 그러나 더 구체적 말하면 다윗의 피난 길에 함께 한 고라 자손이 이 시를 읊조린 것이다. 지금은 하나님의 성소를 떠나 피난길에 있지만 다시금 그 성소에 임재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영광된 도구가 되길 간구하며 읊조린 시 말이다.
모든 사람은 집을 원하고 동물도 집을 마련한다. 새도 스스로 둥지를 튼다. 자기 거처가 있을 때 편안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집을 떠나 살던 딸이 때가 되어 집에 돌아오는 이유도 그렇다. 물론 그런 편안함은 집이라는 건물을 통해서만 누리는 게 아니다. 부모의 품이 있을 때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고라 자손들이 다윗과 함께 피난길에 올라 정처 없이 떠돌아 다닐 때 하나님의 성소에서 섬기던 그때를 그리워한 이유도 그렇다. 그들에게 성소는 하나님의 품이자 임재의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화려한 재료와 미적 감각을 지닌 성소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곳은 진정한 성소일 수 없다. 비록 초라한 둥지라 해도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 복된 성소인 이유다.1)
닭장 짓는 일은 이제 문만 달면 된다. 문을 달아줄 자재가 마땅치 않아 임시방편으로 나무 파레트를 세워놨다. 그걸 걷어내고 정식으로 문을 달아주면 끝이 난다. 그러면 그 문을 통해 녀석들의 얼굴을 자주 볼 수 있고 음식도 자유롭게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면 녀석들은 더 많은 날갯짓으로 나를 바라보며 환호해 줄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의 성소에 나오는 자녀들을 기쁨으로 맞이할 것이다.
1)https://torah.org/torah-portion/hamaayan-5771-tetzav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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